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75화 (275/325)

#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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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여사님 말씀이 아무래도 이번 일이 진룡 쪽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시더라.”

“음…. 저도 들었어요.

아무래도 그렇다죠?

하긴 거기 아니라면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할 사람들이 누가 있겠어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가능하다면 진룡 쪽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좀 알 수 있을까?

투자나 그런 쪽으로 말이야.”

“음….. 투자요?”

진지하게 말하는 민수의 모습에 설아도 조금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자신이라면 쉽게 알아 올 수 있는 정보이긴 했다.

민수도 경우에 따라서는 충분히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고.

그런데 민수가 굳이 자신에게 부탁한다는 건 단순히 알 수 있는 그 이상을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 모르게 정보를 얻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민수답지 않게 음흉한 행동이었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지금 이런 정보를 원하는지 점점 궁금해졌으니까.

“솔직히 말하면 어렵지 않은 일이에요.

그런데 좀 궁금하긴 하네요.

오빠가 저한테 그런 부탁을 한다는 건 무슨 다른 생각이 있어서겠죠?”

“그래. 가능하면 민 여사님이나 대표님이 모르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내가 물어보고 다니면 당연히 민 여사님한테 이야기가 들어가겠지?

하지만 난 그걸 원하지 않아.

그리고 아마 너라면 충분히 여사님 모르게 알아 올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런 거고.”

민수는 아리 재단이나 윤 엔터 직원들에게 설아가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는 몰랐지만 무슨 기밀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 회사의 동향 정도는 충분히 알아 올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설아의 생각과는 달리 그녀에게만 모든 걸 맞길 생각은 아니었다.

“아 물론 너한테 모든 걸 맡기겠다는 건 아니고 우선 윤 엔터 쪽은 내가 슬쩍 물어보고 다닐 생각이야.

그런데 아리 재단은 그럴 수가 없잖아.

사실 왠지 아리 재단에 진짜 정보가 있을 거 같은데 내가 그러기는 좀 힘들다고 할까?

그래서 설아 넌 아리 재단 쪽에서 좀 알아봐 줬으면 좋겠어.”

민수의 말에 설아는 더욱더 흥미롭다는 얼굴이 되었다.

이 남자가 이번에는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걸까?

“무슨 첩보 작전 같네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오빠가 하는 일이니 우리한테 손해날 일은 없을 거고.

뭐, 손해가 좀 나도 별 상관은 없지만요.

그럼 제가 아리 재단 쪽에 한번 알아볼게요.”

설아가 이유도 묻지 않고 허락하자 민수도 가벼운 마음으로 웃음 지을 수 있었다.

“그래 줄래? 부탁 좀 할게.”

이야기가 끝나자 설아는 좀 야릇한 표정으로 민수에게 다가왔다.

“음… 결국 오빠가 절 첩보원으로 이용하는 상황이네요?”

“아? 그게 그렇게 되나?”

“그럼요. 그런 거죠.

그럼 그 보수는 어떻게 지급하실 생각이시죠?

아무리 우리 사이라도 공과 사는 확실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설아의 말에 민수는 작게 침을 삼키며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대가라. 솔직히 민수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자신이 설아에게 무슨 대가를 치를 수 있을까?

“대가라…. 내가 줄 수 있는 게 있을지 모르겠네.

특별히 원하는 게 있어?”

민수의 말에 설아는 더욱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뭘까요? 후후.

전 오빠에게 대가를 받을 생각이에요.

뭐냐고요? 바로 오빠의 몸으로요. 후훗.

대가를 치를 각오는 되셨겠죠?”

설아의 말에 민수도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마음의 가다듬고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공격에 한 번 물러나기 시작하면 계속 후퇴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어떻게 대가가 되냐?

오히려 나한테 더 좋은 거 아냐?

그러지 말고 다른 걸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당연히 계속 당황할 줄 알았던 민수가 생각보다 빨리 평정심을 찾자 설아도 약간 김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물러날 설아가 아니었다.

설아는 조금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러게요. 솔직히 좀 억울하긴 해요.

자고로 한 번도 못 먹본 놈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놈은 없다고 하던데.

오빠에게는 그런 상식조차 통용되지 않는 걸까요?”

“쿠..쿨럭. 뭐?

도대체 그건 또 어디서 들은 이야기야?”

침착하던 민수도 설아의 말에는 당황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헤헤.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뭐, 세상의 진리에 가까운 말이라나?

그러니까 어서 이쪽으로 오시죠.

대가를 지급해야 하지 않겠어요?”

민수는 못 말리겠다는 얼굴로 설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예전에 품번도 그렇고 설아의 교우 관계를 한번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한차례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고 민수는 홀로 남은 침대 위에서 설아가 떠나며 남긴 말을 곱씹어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이번 일과 연관이 있는 거겠죠?

하지만 오빠. 너무 거기에 매몰되지는 마세요.

원래 가장 좋은 복수는 상대가 어떻든 간에 그냥 제 갈 길 가면서 행복하게 사는 거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저도 좀 화가 나긴 하지만 어차피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도 거기까지잖아요.”

확실히 설아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한방 적도는 먹여줘야 울분이 풀릴 거 같았다.

그리고 그 후에 일은 그때 생각하면 될 일이었다.

민수는 그때부터 윤 엔터 배우 관리팀, 그리고 스케줄 팀 직원들에게 지나가듯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 그놈들이요? 진짜 웃긴 놈들이에요.

그 윤태준 씨 영화에도 투자를 넣었다나 봐요.

워낙 많은 투자자가 달려든 영화다 보니 많이 넣지는 못해서 별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지만요.”

“쓰나미에는 우발적으로 들어간 거라는 말도 있고요.

그런데 그런 영화에서 그런 수익을 냈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마 설아 씨 영화도 우리가 투자자가 아니었으면 투자금을 넣으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이건 소문인데 원래 소희 씨가 들어간 드라마도 하마터면 진룡으로 넘어갈 뻔했다네요.

그쪽 담당 피디가 진룡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이라 진룡이랑은 일 안 한다고 한데다가 그 피디가 다른 제작사까지 물고 와서 그냥 그렇게 제작하게 된 거고요.”

민수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상황을 보니 자신이 쓰나미에서 배제된 것도 단순히 자신과 장진영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윤 대표가 민수가 기분 상할 까봐 굳이 말하지 않은 정보까지 알게 된 것이었다.

이런 말들을 듣다 보니 자신이 연기 외적인 부분에 참 무심하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생각보다 진룡은 윤 엔터를 더 많이 견제하고 있었으니까.

배우들의 역량이 뛰어났으니 망정이지 그저 그런 배우들이 모인 회사였으면 생각보다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설아가 가져온 정보는 더 직접적이고 확실했다.

역시 민수의 예상대로 아리 재단은 진룡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진룡의 투자 전략은 생각보다 간단하네.

우리 쪽 배우들이 관심을 가지는 작품에 투자를 넣어 만약 가능하면 배우를 바꾸거나 아니면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정으로 성공을 기다리거나.”

“얌체 같긴 한데 생각보다 효과가 괜찮은 방법인데요.

솔직히 우리 배우들이 들어가서 망한 작품은 없으니까요.

아. 제가 찍은 드라마가 그나마 가장 안 좋은 성적을 기록하긴 했지만요.”

“그것도 본전은 했으니까.

시청률은 보통이었지만 VOD로 충분히 수익을 냈을 거야.”

“그럴까요?”

민수는 자료를 보고 확신을 얻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그나저나 앨범은 언제 나와?”

“헤헤. 이제 곧 요.

생각보다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 거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설아의 앨범 발매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회사에서도 회사 홈페이지와 여러 사이트에 티져 영상을 올렸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았다.

아무래도 영화에서 불렀던 그 압도적인 OST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진룡 본사가 중국에서 음악 시장 위주로 영업하던가?

만약 네 앨범이 대박 난 후에 “이카루스”처럼 천루랑 같이 중국 활동하면 볼만은 하겠네.”

“훗. 이번엔 정말 잘 빠졌으니 기대해도 좋을 거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제 노래를 듣고 마음에 든 적은 처음이었거든요.

빵야 쌤한테 보냈더니 빵야 쌤도 마음에 들어 하셨고요.

듣는 귀는 솔직히 빵야 쌤보다 뛰어난 사람이 드물잖아요?”

“그러네, 크리스 씨까지 좋다고 하면 진짜 좋은 거겠지.”

확실히 설아의 이번 앨범은 기대할 만했다.

그리고 설아의 성공이 진룡을 압박하는 또 다른 수단이 될 수도 있었다.

민수는 그날 바로 윤 대표를 찾아갔다.

그의 손에는 동원에게 부탁해 따로 전해 받은 한 권의 대본이 들려 있었다.

윤 대표는 생각지도 못한 시기에 민수가 찾아와 대본을 내밀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적어도 한 달 정도는 쉴 거로 생각했던 민수가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동원에게 일부러 대본도 전해 주지 말라고 했는데도 대본을 들고 온 것을 보니 자기가 나서서 대본을 챙긴 모양이니 평소와는 조금 다른 행동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원 녀석도, 차라리 좀 쉬는 게 나을 텐데 왜 이렇게 서두르는 게냐?

대본은 동원이가 전해 준 거야?

내가 대본도 전해주지 말랬는데 이거야 원….”

윤 대표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민수는 웃으며 자신이 먼저 부탁했다고 말한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차라리 빨리 다른 작품에 들어가는 게 나아 보여서요.

지금 상황이 좀 그렇잖아요.

괜히 이상한 뒷말이 나오는 것보다야 이게 낫지 않겠어요?”

“… 그건 그렇다만….”

윤 대표도 민수의 말이 옳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지금 모든 사람이 민수가 촬영하던 세트장에 불타버렸고, 드라마가 엎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언론에서 사고에 대하여 계속 때려대고 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만약 민수의 칩거가 길어진다면 부상설부터 어이없게는 사망설까지 별별 이야기들이 다 튀어나올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인터뷰나 그런 걸 한다면 분명 예전 사고까지 들먹이면서 이번 사고에 대한 시시콜콜한 작은 것까지 캐물으며 피곤하게 할 테니 그냥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했다.

윤 대표는 다만 민수를 걱정해 쉴 때는 쉬라고 했을 뿐이었다.

어차피 그깟 루머는 그냥 루머일 뿐이었고 활동을 시작하면 어느 정도 잦아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활동을 하겠다면 그냥 좋은 활동을 할 수 있게 밀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리라.

윤 대표는 민수가 건네는 대본을 보자마자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예전에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드림 픽처스에서 제작하는 “에이전트 K”라….. 액션 영화구나.

게다가 감독은 김윤성 감독.

굳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있니?

너도 알다시피 드림 픽처스는….”

“네. 저번에 “쓰나미” 제작한 곳이죠?

저랑 정진영 선배를 저울질하다가, 아니지.

저울질이라기보다는 그냥 절 이용한 셈이었죠?

진룡의 투자를 완벽하게 끌어내려고요.

하여간 거기 맞죠?”

“음.. 잘 알고 있구나. 그런데?”

“뭐 그런 일이야 비일비재한 거고.

이제 제가 그런 대우 받을 상황은 아니니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번 시즌에 블록버스터로 만드는 영화는 이거뿐이네요.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죠.”

윤 대표도 민수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액션 영화라니.

원래 로맨스나 그런 말랑말랑한 걸 하려고 하지 않았니?”

민수는 윤 대표의 말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조금 억울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나요?

드라마 하나가 완전히 엎어졌고 그걸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요.

게다가 뉴스에서는 아직도 그 이야기를 떠들고 있고요.

워낙 큰 사고다 보니 사람들 머릿속에 항상 남아 있을 거 같아요.

어쩌면 이유 없는 구설도 좀 따를 수 있겠네요.

그러니 이번에는 그냥 제가 가장 잘하는 거로 사람들 머릿속을 한번 휘저어 놓으려고요.

지금은 제가 건재하다는 걸 보여줄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요?”

윤 대표도 민수의 뜻에 동의하는 바였다.

분명 민수와는 상관없는, 아니 상관은 있지만 민수의 잘못이 전혀 없는 사고였지만 사람들은 민수와 사고를 어떤 식으로든 연관하여 기억할 가능성이 높았다.

워낙 큰 사고였으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민수가 양보해서 자신이 원하지 않던 액션 영화를 찍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누가 뭐래도 액션 영화는 민수에게 가장 확실한 흥행카드임이 확실했으니까.

하지만 윤 대표는 선뜻 허락할 수가 없었다.

이 영화가 생각보다 좀 불편한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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