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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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1년이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윤 엔터 내에선 꽤나 많은 일이 벌어졌다.
우선 태준의 영화는 결국 1500만을 돌파했다.
이제 기세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민수의 기억대로 1800만까지는 쾌속 질주를 계속할 거로 예상되었으니 태준은 연말 시상식을 기대해 볼 만한 무기를 하나 거머쥔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태준이 승부에서 완전히 승리한 것은 아니었다.
1500만을 넘자마자 역시나 태준답게 수연과 설아에게 으스대기 시작했지만 설아의 백못쓰 공격에 격침되고 만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우리 민 여사님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어?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돈도 제대로 못 벌어 오고 말이야.
한창 일해야 할 시기마다 꽁무니 빼기에만 바쁘니 언제 돈을 벌겠어?
하여간 도움이 안 된다니까?”
“와. 이수연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논 거로 치면 나보다 네가 더 심하지 않냐?”
“후후. 이보세요. 전 CF는 찍고 놀았고요.
당신은 그냥 배 째고 있었잖아요?
당신이 이번에 찍은 5개를 다 합쳐도 소희가 중국에서 찍은 거에는 한참 못 미치고요.
심지에 당신이 실컷 놀랐다고 말한 저보다도 안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네가 우리 소속사에서 돈 제일 못 벌어 오는 놈이란 말이지.”
아무리 태준이 이번 드라마 끝나고는 열심히 찍었다지만 저번 드라마부터 CF는 몇 개씩 꾸준히 찍은, 게다가 가장 단가가 높다는 화장품 CF를 2번이나 찍은 수연보다는 조금 모자랐다.
“와… 이걸 이런 식으로….”
어이가 없어서 잠시 말문이 막힌 태준은 한숨을 쉬며 민수를 바라보았다.
민수는 이 광경을 즐겁게 바라보다가 태준이 자신에게 하소연을 시작하자 태준을 외면하며 점잖게 대꾸했다.
“아니 도대체 우리 영화에는 왜 투자를 안 넣으신 거야?
그랬으면 내가 저런 소리를 들을 이유도 없는 거였잖아.
우리 영화에서도 100억은 충분히 나왔을걸?”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너희 영화야 투자자도 빵빵한 데 뭐하러 들어가겠어?
대표님이 돈 벌려고 투자하시는 것도 아닌데.”
“…..그건 그렇지만.”
설아의 꼬투리에 불의에 일격을 허용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긴 건 이긴 거였고 태준은 그걸로나마 마음에 위안으로 삼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일이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될 리가 없었다.
-내가 들은 말인데, 카페 주드에 민수형이 단역으로 여러 번 나왔고, 엑스트라라도 여러 번 나왔다던데. 최소 10회 이상이었다고 함.
-민수형 한 번밖에 안 나왔던데 그게 무슨 소리임?
-난 발견했다. 설아가 서울에 첨 왔을 때 지나가다가 부딪친 남자가 민수형이었어.
-미친. 숨은 민수 찾기나 민수를 찾아라도 아니고 그건 뭐냐. ㅋㅋㅋ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이 진짜였다고?
-ㅋㅋㅋ 투자자의 엑스트라 출연 실화냐?
-흔한 투자자의 제작비 절감. 민수형의 노력을 인정합니다.
-음대생이랑 음악감독 지망생들한테 Cafe Jude가 필수 감상 작품이라더라.
지금까지 나온 영화 음악이랑은 방향성이 완전 다르다고.
-내 친구가 음악 감독을 목표로 배우면서 잡일도 같이 하고 있는데 그 영화 보고 완전 감탄하더라.
-하긴 음악이랑 노래가 좀 쩔긴하지.
민수가 엑스트라로 들어간 게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서라는 웃지 못할 농담들과 음악 감독 지망생 및 음대생들이 음악 때문에 영화를 찾는다고 이야기까지.
영화가 개봉한 지 2주가 넘었지만 소소한 이야기들이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회자하였다.
이런 소스들이 흥행에 직접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지만 이런 이야기가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영화의 존재가 잊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3주 차, “로드 오브 트릭”의 관객 수가 서서히 줄어들 때쯤.
설아의 OST가 발매되면서 “Cafe Jude”는 마지막 반전을 꾀하고 있었다.
-와, 사람들이 노래 좋다고 그렇게 말했을 땐 그냥 하는 소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들어보니 이건 진짜 장난 아니네.
-노래를 들으니까 갑자기 영화를 한번 보고 싶어진다. 이거 내릴 때 되지 않았냐?
-개봉 3주 차니까 내릴 때 됐지.
참고로 난 이미 보고 왔는데 음반으로 듣는 것보다 영화에서 듣는 게 훨씬 좋다.
안 본 놈은 한번 가서 봐라.
사람들은 잔잔하다고만 하는데 설아가 콘서트에서 노래하는 장면도 나름 괜찮다.
만약 설아가 가수가 돼서 노래한다면 저렇게 하겠지라는 생각도 들고.
놀라운 완성도를 자랑하는 OST는 다시 관객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특히 영화에서 들을 때 더 느낌이 산다는 감상평과 이제 며칠 후면 다시는 못 본다는 매진 심리까지 그런 움직임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리고 개봉 4주 차가 되어 스크린에서 내려오는 “로드 오브 트릭”이 1870만 관객을 기록하며 쾌재를 부르고 있을 때 “Cafe Jude”는 820만을 기록하면서도 아직 200개의 스크린을 남겨놓고 있었다.
“와. 진짜 이런 미친 일이 있나…..”
관객들의 추이를 지켜보던 태준은 설아의 영화가 막판 스퍼트를 시작하더니 개봉 당시와 같은 기세로 700만을 돌파하는 순간 망연자실한 상태가 되었다.
“푸하하하. 이봐 윤태준이. 너무 기분을 일찍 낸 거 아니야?
이거이거 이래서 풋내기랑은 상대를 못 하겠다니까 풋.”
한껏 승리에 도취해 자신에게 깐죽대는 수연의 앞에서 태준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이기기도 전에 설레발을 친 것은 맞는 말이었으니까.
어이없게 돈 못 벌어 왔다고 비난받은 것도 억울한데 승부에서도 결국 패배하다니.
태준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태준은 바로 해외 스케줄을 준비했다.
“너무 서두르는데. 좀 쉬었다 가는 게 낫지 않겠어?
이번에 가면 대충 한두 달은 못 오는 거잖아?”
민수가 만류했지만 태준의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 100억 벌러 간다.
한국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100억 못 벌어.”
기운 빠진 듯한 태준의 말에 민수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친구가 은근히 소심한 면이 있는지 설아와 수연이 말했던 돈 못 벌어 온다는 이야기에 생각보다 맺힌 것이 많았나 보다.
돈을 버는 것과는 상관없이 예전부터 잡아 놓은 스케줄이었는데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말이다.
지금 해외에서, 특히 일본에서 “귀의”와 “로드 오브 트릭”에 대한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민수와 팬 미팅을 다니면서 다시 한번 얼굴을 알린 태준이 드라마와 영화의 시너지를 통해 완전한 한류스타로 자리 잡기 직전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회사에서도 태준이 일본 활동을 하겠다고 하자 쌍수를 들고 환영했고.
민수는 태준을 떠나보내며 자신의 친구가 돌아올 때는 다시 예전에 기운찬 태준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일본에서 팬들에게 환호를 받으면 바로 기운을 차릴 게 뻔했으니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로드 오브 트릭” 이 내려온 자리에 올라온 다음 영화는 바로 “버닝 레이지(Burning Rage)”였다.
에릭 존스 감독이 몇 년 동안이나 심혈을 기울여 구상한 스티븐 로우의 할리우드 액션 영화.
스티븐 로우를 할리우드 액션 스타로 만든 바로 그 영화였다.
에릭 존스는 기본적으로 중국과 한국에서 이미지가 좋은 감독이었다.
비록 허울에 가깝긴 했지만, 저번 영화를 중국에서 만들어 할리우드에 수출하기도 했고 한국에서는 한국인 배우인 민수를 할리우드에 진출시킨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기본적으로 에릭 존스의 영화를 좋아하던 고정 팬들부터 저번 영화를 계기로 에릭 존스를 응원하기 시작한 새로운 팬들까지.
에릭 존스의 영화가 한국이나 중국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하는 건 이제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다.
스티븐 로우 역시 저번 영화로 동양 팬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아직은 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때 민수의 영화에 같이 나온 서양 배우라고 하면 “아! 그 사람.” 이라고 반응할 사람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에릭 존스는 아직 부족한 스티븐의 인지도를 보충하기 위해 여주인공으로 당대 최고의 섹시 심벌중 한 명인 “릴리아나 디온즈”를 선택했다.
릴리아나는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배우 중 하나였고 결국 영화 “버닝 레이지”는 에릭 존스나 릴리아나 때문에 보러 왔다가 스티븐 로우의 팬이 되어 나가는 그런 영화가 되어 버렸다.
개봉과 동시에 북미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까지 흥행 붐을 일으키며 엄청난 흥행 수익을 올린 이 영화는 한국에서도 개봉 첫 주 만에 700만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민수는 영화가 개봉한 그 다음 주 아침에 몰래 “버닝 레이지”를 관람하러 영화관을 찾았다.
당연히 한창 바쁜 틈에 어렵게 시간을 낸 설아가 민수와 동행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유적 탐색자”이후로 극장은 처음이네요.”
“그러게요.
아무래도 함부로 다니기는 어려운 처지니까요.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나섰다가 팬들에게 둘러싸였었죠?”
“풋. 맞아요. 설마 벌써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지는 몰랐으니까요.”
저번에 아무리 아침이라도 알아보는 팬들이 있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둘은 이번에는 적당히 정체를 숨기고 극장을 찾았다.
너무 꼭꼭 숨긴다면 오히려 수상해 보일 가능성이 컸으니 적절히 분장한 것이었다.
변장은 에이 설마? 라는 생각만 심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둘은 영화가 상영하기 직전까지 기다리다가 아무 말 없이 빠르게 어두워진 극장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히힛. 이번에는 안 들켰네요.”
매니저까지 이용한 첩보 작전(?) 끝에 무사히 자리를 잡은 둘은 웃으면서 영화의 시작을 기다렸다.
사람들 몰래 영화관에 침투(?)해 들어오니 생각보다 그 재미가 쏠쏠했는데 역시 뭐든지 몰래 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법이라더니 옛말이 정말 틀린 것이 없었다.
“그나저나 태준이는 괜찮나 모르겠어요.
생각보다 우울해서 가더라고요.”
민수가 떠나가는 태준의 무거운 발걸음이 생각나 지나가듯이 이야기했지만 설아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지금은 완전 황당해서 저러는 건데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정신 차릴 거에요.
생각해 보면 결국 자신이 찍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고 그 수혜를 입을 사람도 자신이라는 걸 금방 깨달을 테니까요.
그리고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지금 일본에 수연 언니가 따라갔거든요?
언니가 알아서 잘 달래줄 테니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거죠.”
어쩐지 과하게 몰아붙인다 했더니 수연은 처음부터 일본에 따라갈 생각이었나 보다.
어쩌면 저런 것도 그들 나름의 밀당이 아닐까?
일반인들이 하는 그런 밀당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밀고 당긴다는 개념만은 확실히 지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거기까지 말하던 설아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쓱 살피더니 아침 시간이라 주변이 완전히 비어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민수에게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원래 연인에게는 연인들만의 화해 방법이 있는 거잖아요.
우리 바보 오라버니가 적당히 자제하려나 모르겠네요.
괜히 무리했다가 스케줄이 문제 생기는 건 아니겠죠?
왜, 그런 거 있잖아요. 확 분위기를 탄다는 뭐 그런 거요.”
“흠흠.”
민수는 설아의 말에 작게 헛기침을 하며 주위를 환기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그 순간 영화가 상영하기 시작했다.
민수는 설아의 말을 못 들은 척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며 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주시했다.
“아. 이제 시작하네요. 자, 스티비가 얼마나 연기를 잘했나 한번 봐야겠어요.”
“풋.”
설아는 자신의 말을 애써 외면하는 민수를 보고 작게 웃으며 자신도 스크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버닝 레이지의 스토리는 전생에서 민수가 봤던 것과 거의 바뀐 것은 없었다.
하긴 감독도 그대로고 두 주연 배우까지 같은데 크게 바뀌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미묘하게 바뀐 것이 있었으니 바로 주연 배우인 스티븐 로우의 연기력이었다.
민수가 기억하기론 아직 이 시기에는 감정을 잡는 부분에서 조금 어색했던 스티븐이었는데 그 점이 많이 개선되어 있었다.
영화를 끝까지 지켜본 민수는 이 영화가 전생보다 더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스티븐의 연기가 살아나자 상대 여배우 릴리아나의 연기력까지 덩달아 빛나고 있었고 그 결과 이 영화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지적되던 두 배우의 시너지와 호흡이 오히려 강점으로 변모했으니 그때보다 흥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그리고 민수의 예상대로 “버닝 레이지”는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고 있었다.
전생에 기록했던 흥행 기록을 완전히 뛰어넘으면서 그렇게 말이다.
설아와의 극장 데이트를 다녀오고 며칠 뒤, 민수는 휴게실에서 호승심과 음흉함이 가득 담긴 미소를 짓고 있는 수연과 만날 수 있었다.
민수는 왠지 저 웃음이 일본에 가서 태준을 달래주고 돌아온 것과 무관하지는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냥 웃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자신의 주변에서 맴도는 모양새가 무슨 할 말이 있는 것도 같고 참 이상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