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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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작 드라마 연기 대상은 특별할 거 없이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유일하게 볼거리가 있었다면 초대 가수로 나온 “레이디 밤” 정도일까?
“오… 레이디 밤이네요.”
“전에 드라마 같이했던 진주 씨가 있는 걸 그룹이던가요?
그때는 완전 신인 걸 그룹이었는데요.”
민수의 첫 드라마 “송포유”에 출연해 잔망스럽고 깜찍한 연기를 선보였던 진주가 포함된 걸 그룹 “레이디 밤”.
원래대로라면 이미 해체해야 했을 “레이디 밤”이었지만 진주를 얼굴로 내세워 조금씩 팬덤을 확보하더니 이제는 어느덧 탄탄한 팬덤을 가진 중견 걸 그룹이 되어 있었다.
덕분에 이미 배우의 길을 걷고 있어야 할 진주가 아직도 걸 그룹에 몸담고 있어 그녀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평가하기는 힘들었다.
배우와 걸 그룹 두 가지 모두 명확한 일장일단이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이 원하던 걸 그룹으로 무난하게 활동하는 게 진주에게는 더 행복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명예의 대상 발표.
“윽. 역시 이변은 없었네요.
하긴 여우 주연상을 수연 언니가 받는 순간 다 끝난 거긴 했죠.”
예상대로 태준이 명예의 대상을 거머쥐었다.
민수는 TV 속에서 대상을 들고 환하게 웃는 태준을 바라보며 자기 나름대로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렇게 수술 연습에 의학 용어를 외우며 고생하더니 확실히 고생에 따른 대가를 얻은 셈이었다.
“와, 그러고 보니 저놈도 상을 받았네요.”
여우 주연상에는 수연이, 그리고 남우 조연상 중 하나를 박창민이 수상했다.
설아가 말하는 저놈은 바로 박창민.
더러운 인성의 소유자지만 이번 드라마에서는 연기력까지 인정받아 상을 받은 것이었다.
모든 것을 떠나서 이번에는 수준급의 연기를 선보이며 연기력 논란을 일소하기까지 했으니 수상에 이견이 있을 수는 없었다.
“뭐, 잘됐네요.
다음 작품에서도 저게 통할지는 모르겠지만요.”
민수의 말대로 만약 저런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면 배우 생활이 그렇게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배우들은 계속 등장하고 있었고 창민보다 잘 생겼으면서도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었다.
“윽. 또 엄청 으스대는 바보 오라버니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설아가 볼멘소리를 내뱉었지만, 어차피 탈 만한 사람이 탄 것이었다.
아마 설아도 말은 저렇게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자신의 오라버니가 상을 탄 것을 기뻐하고 있지 않을까?
배우들이 시상식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듯 아리 재단 이사장실에서는 민 여사와 이사들이 회의를 통해 올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해를 준비하고 있었다.
“언론 쪽은 별문제 없죠?”
“네. 이사장님.
연말에 따로 한 바퀴 돌렸습니다.
접대하는 직원들이 좀 피곤해하긴 했지만 아마 다른 뒷말이 나오진 않을 겁니다.”
“그래요.
굳이 적은 돈에 연연할 필요 없어요.
괜히 딴생각 못하게 먹이를 적당히 던져 주도록 하세요.
돈 말고 기사를 더 원하는 기자들은 따로 명단 작성해 놓으시고요.”
윤 대표와는 다르게 민 여사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쓸 방법이 있으면 굳이 안 쓸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적당히 돈 몇 푼으로 배우들의 평안을 살 수 있다면 그건 차라리 자신이 이득 보는 거래라고 생각하는 민 여사.
지금까지 윤 엔터의 배우들이 언론과의 접촉이 거의 없음에도 특별한 잡음이 일어나지 않는 건 민 여사가 뒤에서 적당히 기름칠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돈을 원하는 기자들에게는 적당히 얼마를 쥐여주면 뒷말이 없었고, 특종에만 목을 매는 기자는 중요한 순간에 몇 가지 소스를 던져 주기도 해도 되었다.
만약 상대가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린다면 다른 방법을 쓰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은 그런 기자가 없었다.
물론 그 다른 방법이 상대에게 매우 위태로운 불법적인 방법이 될 가능성이 컸으니 상대 입장에서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네, 다음으로 진룡에 대한 보고섭니다.”
“하. 진룡, 진룡.
진짜 이제 거기 이야기는 그만 듣고 싶은데요.
후… 좋아요. 특별한 변동사항이 있나요?”
분기마다 받는 보고서에는 진룡의 움직임에 대한 내용이 언제나 빠짐없이 체크되어 있었다.
요즘에는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지만 민 여사로서는 솔직히 이제 저 이름이 들리기만 해도 짜증이 올라왔다.
“올 하반기부터 진룡의 투자 흐름이 좀 바뀌었습니다.
여기 표를 보시면…..”
민 여사는 서류에 몇 가지 항목을 확인하고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진룡에서 “로드 오브 트릭”에도 투자가 들어갔어요?
J 투자에서 들어간 게 아니라요?”
“메인 투자자는 J 투자가 맞습니다.
진룡은 후발 주자로 10%의 자금을 투자한 거고요.”
후발 주자로 투자에 들어갔다는 건 결국 태준이 주연으로 확정된 후 투자자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이건 지금까지의 진룡과는 조금 다른 행보였다.
조 이사가 따로 추가 보고를 하게 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투자금 유치 후 주연에 대한 언급이 잠깐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당연히 그 자리에서 바로 거절당했고요.
봉성구 감독이 그딴 소리 할 거면 그 돈 가지고 당장 꺼지라고 했답니다.”
민 여사는 조 이사의 말에 구겨진 미간을 펴고 잠시 웃을 수 있었다.
투자자의 간섭을 가장 경멸하는 봉성구 감독이 상대를 정면으로 들이받은 것이었다.
“후후.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죠.
만약 40% 이상 투자했다고 해도 영화를 엎을 어른인데 그 앞에서 주연을 바꾸자니요.
그 장면을 못 본 게 아쉬울 정도네요.”
“어쨌든 이번 일은 생각보다 의미가 큰 거 같습니다.
사실 징조는 “쓰나미 때부터 있었는데 투자를 망설이다가 민수 씨가 들어간다는 소식에 바로 투자금을 넣었었죠.
이번 일도 그 일에 연장선이 아닐는지….”
조 이사의 말에 민 여사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진룡에서 그나마 이익을 얻은 곳이 쓰나미라고 했던가요?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완전히 죽을 쑤었으니까요.”
“네, 이사장님.
진룡이 제작하거나 투자한 드라마는 작년에 “현대 달기전” 을 시작으로 한편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정도 시청률이 나와 손해 보지 않은 드라마는 있지만 크게 이익 본 작품이 없다는 뜻이고, 심지어 크게 손해 본 드라마도 있을 정도입니다.
처음에는 “현대 달기전” 처럼 많은 투자금을 넣어 무조건 큰 스케일로 승부했으니까요.
거기다가 그 후에 경쟁작으로 계속 저희 배우들의 작품을 만나는 바람에….”
“그건 아마 그쪽에서 일부러 그렇게 했을 거예요.
우리가 굽히고 들어와야 하는데, 신경도 안 쓰니 그런 식으로 표출을 하는 거죠.
뭐, 결과는 전혀 반대가 되어서 망신만 당했겠지만요.”
그래서 계속되는 실패로 진룡은 결국 드라마 쪽에서는 작은 투자에 고효율을 노리고 영화에서 대박을 노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그리고 밉살맞은 민수가 들어가려고 했던 영화에 투자자가 된 후 주연을 바꿔 개봉한 영화가 그해 최고의 수익을 낸 것이었다.
투자금을 빌미로 상대를 밀어내고 영화는 성공해 큰 이익을 얻는다.
윤 엔터 배우들의 안목을 역이용하겠다는 진룡의 새로운 전략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 이번에는 태준이를 밀어내지는 못했지만, 결국 투자금만큼 이익은 보겠군요.
음….. 이건 생각 좀 해봐야겠는데요.
전략팀에선 뭐라고 분석하고 있나요?”
“네. 이사장님.
조 이사님 말씀대로 진룡이 투자 전략을 선회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저희 배우들이 들어가는 영화에 투자자로 끼어들어 배우를 내보내든지 금전적인 이익을 보든지 둘 중 한 가지는 취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또 이런 움직임이 드라마 쪽으로도 이어질 수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지금 진룡이 드라마 쪽 영향력을 많이 잃었지만, 투자자로 자본을 넣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요.”
“음…. 확실히 그렇게 들어와서 분탕질을 치면 좀 곤란하긴 하네요.
영화랑 드라마는 좀 다르지만, 적어도 상대가 진짜 같이 죽자고 나오면 아예 드라마를 망치는 방법도 있으니까요.
그쪽은 어차피 자본만 굴리는 거지만 배우는 실패작이 쌓일수록 설 자리를 조금씩 잃게 되니…..
아예 배제하는 것만 생각했지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아무래도 이제 저희 소속사를 진짜 상대로 인정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는 얕보다가 저희 배우들이랑 상대해서 손해를 많이 보았으니까요.”
“막상 가장 큰 손해를 끼친 건 그때 그 어이없는 미국 드라마였는데 참…..”
민 여사는 전략팀의 이야기를 듣고 조 이사가 허탈한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진룡이 야심 차게 거액을 투자한 드라마가 미국 수입 드라마에 참패하고 고배를 마시는 장면이 참 쌤통이긴 했었다.
그때 입은 손해가 적어도 100억은 넘을 게 분명했으니까.
“뭐 좋아요.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은 해봤나요?”
“네. 이사장님. 어쩔 수 없이 자본은 자본으로 상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배우들이 들어가는 영화나 드라마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도 배우들이 선전해 주고 있어서 소속사 내 자본이 포화상태이기도 하니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결국 최소한의 안정 장치를 마련하자는 거네요.
다른 소속사였으면 좀 힘들겠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벌어놓은 돈이 많으니까요.”
“네. 맞습니다.”
“음…. 이건 대표님께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만약 돈 때문에 배역에서 밀려난다고 하면 윤 대표님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죠.
우선 그렇게 정하고 앞으로도 계속 움직임을 감시하세요.”
민 여사의 주된 업무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의 관리와 진룡의 움직임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자 바로 배우들의 다음 작품과 그에 대한 특이 사항 보고가 이어졌다.
“아무래도 가장 큰 문제는 이수연 씨와 정민수 씨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이수연 씨가 7월에 들어가는 드라마랑 정민수 씨가 계약한 드라마가 같은 시간대에 만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요?”
“네. 이사장님.”
“음…..”
민 여사는 잠시 인상을 구기더니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골치 아프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 녀석이랑 딸내미가 같은 날 영화를 개봉해서 은근히 신경 쓰였는데 이제는 아예 드라마의 경쟁작으로 만난 다고요?
이거 확실한 거예요?”
“아닙니다. 가능성이 큰 상황일 뿐 확실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이수연 씨의 드라마가 SBC 수목으로 들어가는 건 확정된 사항이고요.
정민수 씨의 드라마가 지금 KBC 수목으로 조율 중인데, 그쪽에서 100% 사전 제작이라는 말에 조금 난색을 보이고 있습니다.
만약 계약이 불발된다면 그다음 차선책이 5월 MBS 월화인데 MBS는 차라리 자신들하고 계약하자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깁니다.”
“시기가 좀 당겨지긴 해도 차라리 그게 낫겠네요.
제작사 쪽이 어떻게 판단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런데 그 시간대에 SBC 드라마가 4월 말에 시작하는 드라마인데 그게 진룡 쪽 투자로 만들어지는 드라마라서…..”
“…. 결국 민수는 수연이 아니면 진룡이랑…..”
“네.”
“이제 와서 작품을 바꾸는 건 무리겠죠? 수연이나 민수 둘 다 말이에요.”
민 여사의 말에 조 이사는 조금 인상을 구기며 한숨을 쉬었다.
민 여사는 그의 반응에 대답을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을 옆에서 보좌하면서 배우들이 어떤 종자들인지 잘 알게 된 조 이사도 자신이 말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였다.
“그래요. 그건 역시 무리겠죠.
뭐…. 그런 건 배우들이나 배우 지원팀에서 알아서 하겠죠.
우리는 외부적인 문제나 신경 쓰자고요.
드라마 제작환경이나 제작사 쪽은 문제가 없는 곳이죠?”
“네. 투자자도 점잖은 편이고, 전체적으로 양호합니다.
참여 배우들도 뒷이야기가 거의 없는 배우들이고요.”
“그럼 됐어요.
어쨌든 진룡 쪽은 좀 더 신경 써 주시고요.
언제든지 자금 투자할 수 있게 여유자금을 좀 만들어 두세요.”
민 여사는 골치 아픈 배역에 대한 문제는 그냥 윤 대표에게 미뤄버릴 생각이었다.
자신이 신경 써야 할 언론과 진룡의 문제로도 충분히 골치 아팠으니까.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민수랑 수연이 같은 시간대에 경쟁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경쟁해도 둘 중 하나는 잘되지 않겠냐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둘 중 누가 잘 돼도 이익이긴 했다.
새로운 해가 밝아 오고 배우들은 잠시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영화의 성공과 드라마의 중국, 일본에서의 선전 때문에 해외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 태준은 아마 당분간은 이렇게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설아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OST 앨범 발매 후 성적 여하에 따라 바로 가수로서 잠시 활동할 계획이었고, 그 후에 또 다음 작품을 알아볼 생각이었으니 설아에게도 최후의 휴식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나은 건 민수와 수연이었는데 둘 다 이미 다음 작품이 계약된 상황이었으니 따로 준비에 들어가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이래저래 배우들이 바쁘게 움직일 시기가 다가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