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66화 (266/325)

#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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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민수는 조용히 크리스에게 다가갔다.

영화가 주는 여운을 느끼고 있던 크리스는 민수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미소를 지은 채 영화가 마음에 드냐고 물어보았다.

크리스의 얼굴에 깃든 미소는 그가 영화에 크게 만족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네. 좋았어요.

마음에 드네요. 그런데 도중에…..”

크리스는 민수의 말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설명을 이었다.

“아, 그건 그렇죠.

일반적으로 그렇게 OST가 튀어 버리면 영상에 집중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런데 그건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겁니다.

민수 씨도 느끼셨겠지만,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잔잔한 느낌이죠?

그렇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사이사이 음악으로 관객을 자극해 지루할 틈을 주지 않은 거예요.

뭐, 세라의 노래가 그 정도까지 늘지 않았으면 이런 방법도 못 썼겠지만요.”

“흠….”

결국 설아의 노래로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해 영화의 단점을 커버해 보겠다는 뜻이었다.

민수도 크리스의 설명을 들으니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이런 연출이 영화의 흥행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가 의도한 연출이라고 하니 이해하고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결과는 관객 수가 말해줄 테니까.

민수는 이런 연출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길 바라며 조용히 시사회장을 떠났다.

시사회를 마치고 당연히 여기저기서 영화에 대한 감상평과 소감 그리고 평론가들의 평가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우선 로드 오브 트릭에 대한 관계자들의 평가는 매우 좋은 편이었다.

액션 영화로는 드물게 평론가들의 평점도 거의 최고 등급이었다.

각 배우가 보여주는 다양한 범죄 트릭과 긴박한 도주 씬, 그리고 마지막 반전까지.

아무래도 끝까지 극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관객들은 물론 평론가들에게도 크게 어필이 된 거 같았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낀 연휴에 로드 오브 트릭이 기록한 관객 수는 500만 이상.

아무리 첫 주에 가장 많은 관객이 든다고 하지만 그 기세가 심상치가 않았다.

반면 Cafe Jude의 전문가 평가는 조금 달랐는데 뭔가 조금 부족한 듯한 애매한 영화라는 평이 가장 많았다.

그나마 음악과 노래가 영화의 느낌을 많이 살려주고 있다는 평가는 양반이었고 어떤 평론가는 그냥 재미없는 영화였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전문가 평가와는 상관없이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진짜 저런 카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윤설아는 어디 가서 이제 배우라고 하지 말고 그냥 가수라고 해라.

영화가 끝났는데 윤설아 노래만 기억나네.

노래 오지게 잘함.

-그런데 영화는 좀 미묘하네. 스토리가 자극적이지 않아서 그런가? 뭔가 약간 허전한 느낌?

-나는 차라리 그게 괜찮던데.

요즘 사는 것도 더럽게 각박하고 빡빡한데 노래 부르면서 아기자기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니 좀 치유되는 기분이었어.

-자극적이지 않다니.

민수형이 중간에 튀어나와서 엄청 자극적으로 놀지 않았냐?

-아니 그러고 보니 그 형은 거기 왜 나와?

투자자라고 하더니 사심 출연한 거 아냐?

아주 늘씬한 여자를 둘이나 끼고…..

-모쏠의 발악이지.

그렇게라도 해야 형도 마음의 위안을 찾을 수 있지 않겠냐?

이제 곧 연말인데.

-ㅋㅋㅋ 민수형 딱하다.

클럽이라도 가면 여자들이 줄을 설 텐데 이젠 공인이라 그것도 힘들어.

투자 후 사심 출연 인정합니다.

-어쨌든 난 괜찮았다.

요즘 연말 시즌이라 그런지 월초부터 때려 부수는 영화가 대부분인데 저런 영화도 하나쯤은 있어야지.

-차라리 가족끼리 가서 보기 괜찮은 영화.

자극적이지도 않고 잔잔한 느낌에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자는 주제도 나쁘지 않았다.

이런 긍정적인 평가에 이어진 흥행 기록은 개봉 첫 주에 180만.

첫 주에 이미 손익 분기점을 돌파했으니 영화로서는 최소한의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다만 잔잔하다는 평가는 많았지만 지루하다는 말은 거의 없었는데 이것만 봐도 크리스가 생각한 연출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만약 일반적인 영화 음악처럼 음악이나 노래가 배경으로만 남았다면 스토리의 특성상 지루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영화의 흥행과는 상관없이 올해가 다 지나가며 수확의 시기가 다가왔다.

바로 시상식 시즌이 시작된 것이었다.

민수는 올해 수상과는 조금 거리가 먼 상황이었다.

“My Uncle Joe”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한국 영화가 아니었고 “Mama”는 주연으로 출연한 것이 아니었다.

조연상도 있긴 했지만, 그 상은 대부분 정말 임팩트 있게 조연 연기 보여준 배우에게 돌아가는 상이었으니 사실 민수와는 거리가 좀 멀었다.

“후후. 그래도 공로상 정도는 내가 받을 만하지.

내가 또 칸의 여제 아니겠니?”

윤숙은 아무 생각 없이 너스레를 떨었다.

자신의 주연한 영화로 영화제에 초대되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해하는 모습이었는데 민수는 오히려 윤숙이 대상을 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한 해 동안 한국 영화 중에는 크게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없었다.

그나마 괜찮았던 것이 “쓰나미”였는데 1200만 관객을 기록했고 그다음으로 1000만이 넘는 영화가 세 편뿐이었다.

평소에 대략 10편 정도의 영화가 천만 관객을 넘어선 것에 비하면 저조한 성적이었다.

올해 평소보다 외국 영화들이 강세를 보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한국 영화들이 주춤하게 된 것이었는데 민수가 출연한 “My uncle Joe”를 포함한 총 12편의 외국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어선 것만 봐도 상황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외국 영화라고 해 봤자 민수가 찍은 영화를 제외하고는 다 할리우드에서 촬영한 영화였으니 그냥 할리우드 영화의 성적이 좋았다고 판단해도 무방할 것이다.

심지어 최고 흥행작이라는 “쓰나미”의 주연 배우 정진영은 인기는 있지만, 상복이 없어서인지 아직 주연상도 한번 타지 못한, 윤숙에 비하면 정말 핏덩이 같은 어린 배우였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윤숙이 대상을 받을 가능성이 제법 높을 수밖에.

그리고 민수의 예상대로 대상은 윤숙의 차지였다.

칸에서는 어버버하며 당황하던 윤숙도 이번에는 제법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은근히 대상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일까?

여러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소감을 발표한 윤숙은 마지막으로 자신과 함께 영화에 출연하고 투자까지 해준 민수에게 특별히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민수는 진심 어린 축하의 박수를 윤숙에게 보냈다.

“Mama”는 윤숙의 대상 외에도 태원에게 작품상을 안겨주었다.

태원은 자신에게 건네진 작품상을 바라보며 감회가 남달라 보였다.

아무래도 자신의 어머니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로 상을 받은 것이니 그런 반응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민수는 자신이 수상하진 못했지만 별로 서운한 기색 없이 태원과 윤숙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입상하지 못했을 뿐이지 자신이 얻은 것이 가장 많았다.

자신이 원했던 대로 연기력도 완전히 인정받았을 수 있었고 투자 수익과 개런티까지 포함하면 100억도 넘는 이익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시상식이 방송하는 날.

민수는 설아와 함께 TV 앞에 앉아 여유 있게 시상식을 시청하고 있었다.

설아가 찍은 드라마는 아쉽게도 시상식에 초청받지 못했다.

드라마의 애청자들은 대한민국에 야근이 30%만 없어져도 20%의 시청률은 문제없이 달성할 수 있었다고 아쉬워했지만 이제 와서는 별 의미 없는 말이긴 했다.

“서운하지 않으세요?”

시상식에 초청받은 수연과 태준이 기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화려하게 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민수는 옆에 앉은 설아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예? 아뇨. 서운하긴요.

어차피 찍을 때부터 시상식에 초청되진 못할 거로 생각했어요.

드라마에 사이다가 전혀 없었잖아요.

요즘은 짠단이 대세라는데 참 우리 작가님 융통성 없기도 하시지.

게다가 제가 안 가본 것도 아닌데 굳이 부러워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다행히 설아는 시상식에 대하여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첫해 자신만 시상식에 못 가고 서운해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작년에 신인상을 받은 거로 상에 대한 욕심은 많이 접어놓은 거 같았다.

“헤헤. 차라리 이렇게 둘이서 같이 TV 보는 게 더 마음이 편하네요.

시상식 가봤자 상 받을 것도 아닌데 번잡하기만 하잖아요.

게다가 바보 오라버니의 들러리라니…. 생각만 해도 짜증 나는 거 같아요.

불쌍한 우리 수연 언니.”

공교롭게도 올해 방송한 드라마 중 시청률 탑을 기록한 두 편의 작품이 다 윤 엔터의 배우들이 나온 드라마였다.

수연의 “로열”과 태준의 “귀의”

둘 다 SBC의 작품이었으니 올해 드라마 판은 SBC가 먹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수연도 분명 상 하나 정도는 탈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대상은 태준이 수상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시청률 차이도 무려 4%나 났고 “귀의”는 무려 35%를 넘어서며 2010년 이후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로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설아가 태준의 들러리를 설 바에는 그냥 쉬는 게 낫다고 말한 것도 과한 말이 아니리라.

“히힛. 지금 수연 언니 괜히 엄청 속이 쓰리지 않을까요?

요즘 영화 때문에도 엄청 저기압이었거든요.”

영화가 개봉한 지 10일째.

태준의 영화가 미친 듯이 흥행하며 천만 관객을 넘어버렸다.

심지어 아직도 기세가 죽지 않았으니 1500만은 넉넉하겠다는 전망이었는데 그에 반해 수연과 설아의 영화는 현재 250만 관객을 기록했을 뿐이었다.

적어도 태준이 기록한 관객의 반은 기록하겠다고 의지를 다지던 수연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배정받은 스크린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선전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직도 관객들이 줄어들고 있지는 않잖아요?”

“음… 그렇죠. 저도 저희 영화가 500만은 충분히 넘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다음 주부터 스크린을 더 늘려준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Hero’s return”이 망해주는 바람에 저희 쪽도 수혜를 보게 된 셈이랄까요?”

설아의 말대로 이번 연말 특수에 “로드 오브 트릭”과 함께 쌍두마차라고 예상되던 할리우드 히어로 영화인 “Hero’s return”이 처참한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조기에 내려오게 되었다.

많은 사람의 기대를 모으던 이 영화는 이번에 대규모 중국 자본이 영화에 투입된다고 하더니 중국 스타일의 영웅도 하나 추가시키면서 내용이 완전 산으로 넘어가 버렸다.

이 시기의 중국 자본이 하는 행태가 기본적으로 대부분 이랬으니 중국 자본이 중국스럽게 행동했다고 평가될 뿐, 아주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이 영화에서는 특히 더 심하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결국 갑작스럽게 비어버린 자리에 현재 상영 중인 영화 중 성적이 가장 좋은 “로드 오브 트릭”과 “Cafe Jude”가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같은 스크린을 분배받는다고 해도 처음부터 2000개의 스크린을 배정받은 “로드 오브 트릭”에 비해서 600개밖에 배정받지 못한 “Cafe Jude”가 더 큰 수혜자라고 볼 수 있었다.

“어쨌든 더 두고 봐야죠. 끝나기 전에는 끝난 게 아니니까요.

게다가 이제 다음 주에 OST 앨범도 발매되거든요.

어쩌면 조금 반등의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수연과 태준의 내기처럼 되어버린 이 상황.

둘은 승리 조건에 대하여는 어느 정도 합의에 도달해 있었다.

태준의 영화와 비교해서 1/3 이상의 관객 수를 기록하면 수연의 승리.

설아의 영화보다 세 배 이상의 관객 수를 기록하면 태준의 승리.

이렇게 합의를 본 상황에서 태준의 영화가 전생의 기억대로 1800만을 기록한다면 설아의 영화가 600만을 넘어야 승리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게 아니라도 지금의 전망대로라면 1500만은 여유 있게 넘을 태준에게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설아의 영화가 최소한 500만은 넘어야 했으니 개봉 10일 차에 250만을 기록한 상황에서 수연의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하지만요.

만약 오라버니가 이기고 나서 혼자 의기양양 하면 저도 따로 할 말이 있어요.”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요?”

궁금해하는 민수를 바라보며 설아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돈도 못 벌어오는 게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할 생각이에요.

어딜 소속사에 백억도 못 벌어오는 주제에 그렇게 말이 많냐고 하면 오라버니도 할 말이 없을걸요?

음… 백못쓰라고나 할까요?”

“… 뭐에요 그건?”

“백억도 못 버는 쓰레기라고요. 히힛.”

“…..”

좀 어이없기도 하고 맥락도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설아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닌 게 소속사를 기준으로 본다면 설아의 영화는 투자금의 70%를 소속사가 부담했고 그에 따라 이번 영화로 못해도 100억 정도의 수익을 내게 된다.

설아와 수연의 개런티에서 나오는 수익까지 합치면 그것보다 많을 것이고.

반면 태준은 런닝 개런티를 포함한다고 해도 개인적으로는 많아야 20억에서 30억.

소속사에는 대략 6억에서 9억 정도의 수익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정신승리의 길은 다양하다더니.

그렇게 새로운 방향을 찾아낸 설아가 차라리 신기할 지경이었다.

아마 태준이 이 말을 듣고 말문이 막힌다면 그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어이가 없어서가 아닐까?

하지만 설아가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수연도 덩달아 가세할 테고 이건 논리와는 상관없이 태준이 무조건 지는 싸움이었다.

민수는 황당해하는 태준의 표정을 기대하며 팝콘이라도 튀겨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원래 흥미진진한 일에는 팝콘이 최고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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