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65화 (265/325)

#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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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실 파악에 나선 윤 엔터는 그날부터 바로 자신들에게 우호적이던 언론에 연락해 크리스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영화에 대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하자며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홍보팀장 이미영의 패기에 눌린 크리스는 학을 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많은 인터뷰 스케줄을 소화했다.

다만 크리스도 도중에 질릴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도 도와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이건 많아도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주.

크리스가 작곡한 곡들이 빌보드 싱글 차트에 최상위권.

그리고 앨범의 이름마저 빌보드 200 차트 상위권에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소설 쓰듯이 쓴 엉터리 기사가 아니라 제대로 된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다시 크리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또한 그가 작곡했다는 노래들 역시 당연히 흥미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관심이 크리스가 한국에서 작업했다는 영화 “Cafe Jude.”에 까지 이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영화의 개봉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기.

언론의 어조, 기사가 흘러가는 방향,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방향을 유심히 살펴보던 태준은 일련의 사태에 혀를 내 두를 수밖에 없었다.

“와…. 민수가 투자자로 들어갔다고 했을 때부터 뭔가 싸하더라니.

이런 변수가 있었어?”

재신의 사랑을 받는 자, 혹은 사고를 불러오는 자.

손대는 일마다 좋든 나쁘든 무슨 일이 터지는 민수가 투자한 영화가 왠지 그냥 특별한 일없이 개봉한다 했더니 막판에 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소속사 입장에서야 당연히 환영할 일이었지만 태준 개인의 입장에서는 조금 찝찝한 일이었다.

“영화 음악이라….”

단순히 이슈 몰이에 성공한 것뿐만 아니라 음악이 어쩌면 흥행에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태준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

태준의 머릿속에도 영화에서 음악은 단순히 영화를 보조하는 그런 존재에 불과했다.

그리고 아무리 빌보드에서 이름 날리기 시작한 대단한 작곡가라고 해도 일반적인 음악 감독이랑 크게 다를 거로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다른 감독들도 다 이 방면에서는 난다 긴다 하는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자신의 영화에 음악을 맡은 음악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영화의 중심은 연기와 스토리였고 이번 영화는 자신이 만족할 만큼 대단한 영화였다.

아마도 자신이 목표했던 3배의 관객 수를 여유롭게 기록하며 자신의 자존심을 세워 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영화 시사회 전날.

민수는 어이없게도 태준과 수연에게 동시에 시사회 초대를 받았다.

같은 날 개봉하는 영화다 보니 당연히 시사회도 같은 날이었다.

“민수, 설마 정말 배신을 때리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시사회는 우리 영화로 와야지. 안 그래?”

수연이 이렇게 말하는 건 이해가 갔지만.

“이봐 친구.

저쪽 영화에는 투자까지 해줬는데 시사회 정도는 우리 영화에 나와 달라고.

한쪽에만 애정을 쏟는 건 너무 불공평한 처사잖아?”

태준이 자신을 초대한 건 조금 의외였다.

아니 황당했다고 표현해야 할까?

“야, 윤 배우.

네 말대로 내가 투자한 영화인데 그 시간에 다른 영화의 시사회에 참석하고 있는 건 좀 웃기지 않냐?

하긴 그렇게 하면 확실히 기사가 쏟아지긴 하겠네.

그 내용은 짐작할 만하지만…..”

민수의 말에 수연은 당연하다는 듯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고 태준은 이거 안 통하네 하는 표정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만약 민수가 영화에 투자하지 않았어도 아마 설아의 영화를 찾아갔을 것이다.

봉성구, 조태수 등의 명성 때문에 수많은 인사로 붐빌 태준의 영화 VIP 시사회 보다 상대적으로 인맥이 빈약한 수연이나 설아의 영화를 찾는 내빈들의 수가 적을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태준의 황당한 제안을 물리친 민수는 다음날 바로 영화 시사회장을 찾았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다른 배우들의 영화 시사회장을 찾은 적은 처음이었다.

작년에 태준의 영화가 개봉할 때도 자신은 영화 촬영에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태준을 제외하고는 이번 영화가 식구들이 처음 출연한 영화였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의 인맥이 참 빈약하긴 했다.

나중에 리온이나 은우가 영화를 촬영하게 되면 찾아가게 되려나?

민수는 자신의 영화계 인맥에 대하여 생각하다 잠시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에 드라마나 영화를 촬영하게 되면 이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배우들과 어울려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은우는 태준의 영화 시사회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아무래도 여성 배우들이 은우와 그렇게 매끄러운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다.

모든 소속사 배우들이 이곳에만 신경 쓰고 있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은우라도 그곳에 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소속사가 메인 투자자로 들어가는 바람에 일반 직원들도 태준의 영화보다 이 영화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으니 나중에 태준이 서운함을 토로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이곳에 투자하지 않았어도 이 영화에 더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원래 아들보다는 딸이야.

세상의 이치가 그렇지.”

수연은 근거 없지만 묘하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수연의 말이 틀리지 않은 거 같았다.

윤 대표라면 반드시 그랬을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태준은 이미 자리를 잡은 배우이고 설아는 이제 시작하니 더 세심한 케어가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다.

어떻게 보면 윤 대표야말로 진정한 성차별의 선두주자라고 볼 수 있었다.

오늘 수연이 선택한 옷은 짧은 미니스커트에 산뜻한 아이보리색 재킷이었다.

날도 추운데 참 시원하게 입었는데 옷만 봐도 오늘 수연의 전투 의지가 상당하다는 걸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건 그렇죠.

대표님이라면 분명 그랬을 거예요.

오늘 옷이 예쁘네요.

그럼 전 이만 들어가 볼게요.”

민수는 찾아오는 대부분의 내빈을 수연이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에 옷이 예쁘다는 칭찬 한마디만 남기고 빠르게 자리를 비켜줬다.

수연은 민수의 배려 아닌 배려에 작게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자신을 찾아온 다른 손님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자신의 영화 시사회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한가한 상황에서 시사회장을 바라보니 시사회장에는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배우들이 초대한 손님 외에도 기자들이나 평론가, 그리고 소속사 쪽에서 연결된 수많은 사람이 시사회장을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예상치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가요계에 이름난 작곡가들이나 프로듀서들이 크리스를 만나러 이곳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크리스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만나보고 싶어서 온 사람들도 있을 테고, 사람들이 크리스를 계속 띄워주는 게 고까워서 얼마나 좋은 작업을 했는지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찾아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일 적인 문제로 찾아온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지금 크리스의 곡을 받게 된다면 그가 받는 사람들의 관심들까지 업고 앨범을 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영화 시사회에 지인들의 초대로 가수나 가요계 관계자들이 찾아오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많은 인사가 찾아온 건 확실히 특별한 일이긴 했다.

물론 그렇다고 어차피 미국으로 돌아갈 크리스가 신경이나 쓰겠냐마는.

그리고 여유 있게 주위를 살펴보던 민수는 크리스를 찾아온 건장한 체구의 어르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백발이 성성하여 연세가 무척 많아 보였지만 기력이 정정해 보이시는 게 적어도 10년은 더 사실 거 같은 어르신이었다.

“오 크리스. 내 손자. 하하하. 결국 네가 해냈구나.”

어르신은 찾아오자마자 성큼성큼 크리스에게 걸어가 등을 거칠게 내리치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크리스에게 접근하던 음악계 관계자들이 다들 흠칫하며 물러날 정도였다.

“아. 오셨어요.”

크리스는 즐거워하며 자신을 칭찬하는 조부에게 멋쩍은 웃음을 보인 후 민수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민수를 조부에게 소개했다.

“이쪽은 이번 영화의 투자자 중 한 명인 정민수 씨에요.

아시아에서는 아주 유명한 배우분이죠.”

“오. 그랬나? 반갑네. 난 택건이 조부 되는 사람일세.

오천명이라고 하지.

자네 정말 된 사람이구먼.

사람만 보고 영화에 투자하다니. 안목도 괜찮고 말이야. 하하하.”

영화에 가장 큰 투자자는 윤 엔터였지만 민수가 투자한 비용도 만만치 않았으니 투자자로 대우를 받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마치 자신이 가장 큰 투자자인 거처럼 대하는 천명의 태도는 민수도 조금 부끄러웠다.

아무래도 설아가 자신이 가장 먼저 이 영화를 찍는 게 좋겠다고 했던 걸 크리스에게 전달한 모양이었다.

“아. 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어르신.”

“하하. 어? 그러고 보니 자네 낯이 좀 익은데….. 아 그래.

자네 올해 “Mama”랑 “My Uncle Joe.”에 출연했던 그 배우 아닌가?

정민수… 맞네! 맞아 하하.

이거 반가운 얼굴을 만났구먼.”

자신을 알아보는 천명의 태도에 민수는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재미 교포이긴 하지만 먼 미국 땅에서 사시는 어르신이 자신을 알아보다니.

자신의 영화가 그렇게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도 못했는데 참 의아하긴 했다.

“아. 할아버님이 이쪽 관련 일을 하시는데, 한국인 배우가 미국 개봉 영화에 주연으로 나오는 걸 우연히 보신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들어본 기억이 나는군요.

그때 할아버님이 많이 즐거워하셨었는데….”

“그래. 쾌거지. 언젠가는 그렇게 될 거로 생각했는데 내 생각보다 아주 빨랐으니까.

처음이 어렵지 이제 점점 동양계 배우들도 할리우드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야.

아시아 시장이 작은 시장이 아니란 걸 이제 미국도 알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영화 쪽 관계된 일을 하시면서 이쪽 일에 관심이 많은 분인 거 같았는데 어쨌든 자신을 알아보는 천명의 모습에 민수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하. 정말 한을 풀었어.

손자가 결국 그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들다니.

심지어 자신이 만든 음악으로 말이야.

내 돈으로 만든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그게 정상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단순히 내 위안을 위해서 만들기에는 그 시나리오가….”

무슨 사연이 있는지 말을 아끼시는 천명의 모습에 크리스는 작게 헛기침을 하며 주위를 환기했다.

“아. 내가 주책이었군.

그래, 어쨌든 내 이 은혜를 잊지는 않겠네.

그럼 나중에 또 보도록 하지.”

크리스는 민수에게 작게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조부인 천명을 모시고 지정된 자리로 안내하기 위해 민수를 떠나갔다.

그런 조손의 모습을 바라보며 민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능력 있으신 분이시구나.

영화를 만드는 걸 그렇게 가볍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그래도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을 한이라고 하시면서도 끝까지 영화를 만들지는 않으신걸 보니 크리스 씨가 누굴 닮아 그리 외골수적인지 알만하네.

아마 단순히 자기만족을 위해 영화가 만들어지는 건 못 보겠다는 뜻이겠지?”

사람의 관점에 따라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아마 크리스의 조부 천명은 자신의 돈으로 그 영화를 만들게 되면 그 시나리오에 대한 자신의 순수성을 해치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던 거 같았다.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천명에게 그 시나리오가 가지는 의미가 생각보다 싶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정정한 어르신이 몇 년 안에 돌아가신다고?

무슨 병이라도 있으신가?”

민수는 문득 전생의 이야기가 생각나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냥 천수를 다해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왠지 찝찝했던 민수는 오늘 시사회를 마치면 설아를 통해 크리스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영화를 기억해 주는 분이었으니 자신도 조금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민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영화를 관람하고 있었다.

과연 얼마나 괜찮게 나왔을까?

영화의 질을 한 단계 올려줄 수 있다는 크리스 건의 영화음악.

민수는 그 실체를 눈앞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힐링 영화답게 영화에는 큰 반전이나 대단한 위기는 없었다.

그나마 있다면 민수가 연기했던 양아치 재벌 3세가 진아에게 성 상납을 요구하는 장면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배경음악이나 OST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특히 회사를 떠난 진아가 쓸쓸한 표정으로 거리를 걸을 때 나오는 OST인 “외로운 발걸음” 이나 처음 혜영이 진아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을 때 흘러나오는 “Sweet, My home” 그리고 다시 주드로 돌아온 진아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 부르는 “행복”은 극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관통하며 음향적 자극으로 화면상에 표현된 감정을 완전히 주도하는 수준에 이를 정도였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흐르는 잔잔한 음악의 밸런스는 어떤 한가?

민수는 대체 왜 할리우드의 거장 감독들이 크리스를 극찬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민수가 느끼지 못하는 부분에서도 저 음악들이 기여하는 바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수는 아름다운 영화 음악에 감탄하면서도 쉽게 인상을 펼 수 없었다.

영화 음악이란 배우의 연기를 뒤에서 묵묵히 보조해 줘야 하는데 설아가 노래 부르는 몇 장면에서는 영화의 내용보다 설아의 목소리가 더 귀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잔잔한 화면 구성인데 신경을 분산 시킬 정도로 과하게 아름다운 노랫소리라니.

솔직히 이렇게 되면 영화음악으로는 낙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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