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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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오빠 새로운 작품 고른다던데 결정은 하셨어요?
게다가 이번에는 당연히 로맨스겠죠?
그걸 제가 같이 했어야…..”
조금 아쉬워 보이는 설아의 말에 민수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설아랑 할 거였으면 그렇게 준비를 할 것도 없었다.
예전에 “용의 울음”에서 그랬던 거처럼 그냥 감정이 나왔을 테니까.
“하하하.
에이, 설아 씨랑 할 거면 제가 그렇게 고생하지도 않았죠.
제가 언제나 설아 씨랑 로맨스를 찍을 수는 없잖아요.”
“그런 그렇지만요.
그래도 처음이란 게 중요하잖아요.
어쨌든 그래서 누구예요. 상대역이?”
매의 눈을 한 설아에게 민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자신이 점 찍은 작품을 소개했다.
설아는 민수가 설명을 마치자 한껏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오호. 유연희 선배요?
음…. 그렇군요. 좋네요. 윤연희 선배.
제가 들은 말인데요. 요즘 유연희 선배 연기가 많이 좋아졌나 봐요.
작년에 찍은 드라마에서 논란이 좀 있었잖아요?
그때 선배가 엄청 상처 입었었나 봐요.
그래서 올해 한 해를 통째로 쉬면서 칼을 갈았고요.
그러니 이번에는 괜찮지 않을까요?”
“아. 그래요? 하긴 그때 한창 그랬죠?
칼을 갈았다니 기대해볼 만하겠네요.
그래도 확정은 아니에요. 작가님이랑 피디님 만나보긴 해야죠.
그쪽에서 무슨 변경 사항이 있을 수도 있고 드라마니까 개런티 문제도 좀 신경 써야 하니까요.”
특별한 일이 생겨 자신이 거절당할 수도 있다고 말하자 설아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서 민수가 드라마에 들어가겠다는 걸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해서였다.
민수가 드라마에 주연으로 들어간다면 중국과 일본 수출도 거의 확정이고 CF에 거의 출연하지 않는 데다가 번듯한 이미지를 가진 민수에게 PPL도 많이 들어와 제작비도 절감될 텐데 어떤 피디가 거절하겠는가.
개런티도 마찬가지.
모르긴 몰라도 아마 거의 최고급의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오빠가 거절당할 일은 없을걸요.
솔직히 그 드라마 사전 제작하겠다고 덤비는 것도 오빠가 들어온다는 전제하에 그렇게 계획한 걸 테니까요.
사전 제작 드라마에는 도중에 PPL이 못 들어가니 드라마 제작 전에 PPL을 받으려면 배우의 인기에 기댈 수밖에 없잖아요.
유연희 정민수.
딱 사이즈 나오네요. 아마 오빠랑 연희 선배가 거절하면 그 드라마 물 건너갔다고 봐도 무방하죠.”
“음… 그런가요?”
민수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따져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제작비를 충당할 때 방송국 지원 분은 사실 배우들 출연료에도 한참 못 미치고 PPL이나 광고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사전 제작을 하게 되면 당연히 도중에는 PPL을 받을 수가 없는 거고.
흥행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들어오는 PPL.
그건 결국 드라마에 흥행과는 상관없이 배우들의 이미지를 노리는 PPL일 가능성이 컸다.
아니면 드라마의 대박을 기대하면서 한탕을 노리는 PPL이거나.
설아의 말대로 드라마 수출도 민수를 노리는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민수의 첫 로맨스라면 일본에서는 두 손을 들고 환영할 가능성이 컸으니까.
“그건 그렇네요. 설아 씨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음…. 제가 좀 더 세게 나가도 되겠는데요?”
“그래요. 오빠. 이제 오빠도 그냥 그런 배우는 아니니까요.
그쪽이 삐딱하게 나가면 그냥 영화나 찍으면 되잖아요.
영화에서도 로맨스는 충분히 보여줄 수 있기도 하고요.
뭐 그래도 가능하면 이 드라마를 찍으면 좋긴 하겠죠.”
민수는 설아가 이 드라마에 묘하게 긍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로맨스를 하는 것에 아주 뾰로통해 할 거 같았는데 조금 의외였다.
만약 자신이었으면 설아가 드라마에서 상대역이랑 막 키스 장면이 있다거나 그러면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을 것이다.
배우였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빠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설아 씨, 생각보다 반응이 잔잔하네요.
적어도 어느 정도의 반응은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요.
음… 이걸 좋아해야 하나 모르겠어요.”
설아는 자신의 질투가 없어서인지 조금 서운해하는 듯한 민수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요즘 좀 피곤했는데 오늘 은근히 민수가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었다.
“에헴. 제가 그래도 좀 쿨한 여자거든요.
연희 선배랑 키스신 정도야 머…..
충분히 이해할 만하죠.
우리 바보 오라버니라면 몰라도 연희 선배가 오빠의 이상형이랑은 거리가 좀 있잖아요?”
민수는 설아의 대답에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주가 누군 지부터 물어보더니 연희라는 이야기에 바로 계산이 선 모양이었다.
그래서 저렇게 관대해진 거겠지?
하지만 그 말을 부인할 수도 없는 게 자신이 이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 중에 연희가 여주인공이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있는 여배우랑 절절한 사랑 연기를 할 수 있어야 진짜 로맨스 문제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있었으니까.
정말 설아는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이상형과 거리가 먼 여성에게는 좀 무덤덤하다는 것까지 눈치채고 있었다니.
그래도 저 말을 할 때 자신의 가슴 앞에 양 손바닥을 펴고 위아래로 흔들어 보이는 건 좀 너무하긴 했다.
저건 자신의 몸매가 연희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가 저런 요망한 눈빛까지 보내다니.
물론 연희가 얼굴이 어여쁜 반면 설아에게는 어림도 없고 수연보다도 더 볼륨이 부족한 몸매인건 맞았다.
하긴 수연 정도면 키가 조금 작은 편이긴 하지만 나름 준수하다고 볼 수 있었으니까.
어쨌든 민수는 요망한 몸짓으로 한껏 자랑스러워 하는 설아에게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당당한 건 보기 좋지만, 저 요망함을 대체 어쩌면 좋을까?
그렇게 설아와 대화를 나눈 후 며칠이 지났다.
민수는 피디, 작가, 그리고 주연 배우인 연희와 사전 미팅이 가졌다.
설아의 예상대로 모두 자신의 합류를 환영하고 있었다.
피디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이 출연을 결정한 후 조연의 섭외도 좀 수월해졌고 스폰서의 반응도 즉각적이라고 한다.
자신이 들어가는 작품이 다 중박 이상을 쳤다는 것이 그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되고 있다는데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자신과 관련된 작품들은 다 괜찮은 결과를 만들어 내긴 했다.
아마 앞으로 계속 괜찮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자신이 흥행 보증 수표처럼 취급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처음 본 유연희는 생각보다 강단이 있는 배우였다.
이번 드라마로 자신의 연기력 논란을 완전히 잠재울 생각이 만만이었는데 민수에게도 같이 좋은 연기를 해보자며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연기를 혼자 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역과의 호흡도 중요했으니 연희가 민수에게 신경을 쓰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실 민수도 상대의 자세가 어떤지 탐색해 보기 위해서 연희를 관찰한 것이었으니 피차일반이긴 했다.
민수가 보기에 주연 배우인 연희와 자신 모두 이번 작품에 열정이 대단했고, 작가나 피디는 사고가 유연해 보였으며 사전 제작임에도 제작비가 부족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작품도 괜찮게 진행될 거 같았다.
드라마는 여러 가지 작은 문제들이 다 해결되면 2월이 되기 전에 촬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원래 7월 편성 예정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6월에도 방송이 나갈 수가 있단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고 민수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대본에 대한 완벽한 숙지와 배역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 하는 것뿐이었다.
민수가 받기로 한 개런티는 편당 8000만 원.
현재 드라마 판에서 최고급으로 취급받는 남자 주연 배우의 개런티가 편당 1억임을 생각했을 때 거의 최고의 대우를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민수가 드라마 계약을 완료 지을 때쯤.
드디어 민수가 예상했던 변수가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국이 낳은 작곡가 크리스 건.
빌보드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다. Stay, Don’t leave me. 빌보드 차트 진입.]
민수가 예상했던 대로 크리스 건이 저번에 만든 앨범의 타이틀 곡이 결국 빌보드 차트에 오르면서 한국에서도 이 이야기가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다.
민수는 기사를 살펴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자신들에게 긍정적인 기사는 맞았지만, 전생에서 본 거처럼 크리스 건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에 입맛에만 맞춘 기사였기 때문이었다.
“어째 저 기사는 여기서도 저렇게 나가냐?
낳긴 누가 낳아.
누가 보면 자기가 낳은 줄 알겠네.
크리스 씨의 어머님은 미국 분 아니셨나?”
재미 교포 3세.
사실상 한국인이라고 볼 수 없는 위치였다.
크리스 건도 당연히 이번 일을 마치면 다시 한국에 올 일이 없을 거고.
그런데 기사에는 마치 크리스 건이 한국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거처럼 꾸며서 서술하고 있었다.
한국인 특유의 뛰어난 음악적 감각이 세계적인 작곡가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니 참 어이가 없었다.
물론 크리스 건이 세계적인 작곡가가 되긴 하지만 그건 나중에 이야기였고 이제 겨우 한 곡을 빌보드에 올렸을 뿐인데 설레발이 과한 건 둘째치고 한국 방문이 이번이 두 번째라는 크리스 건이 한국에서 무슨 영향을 받았겠는가?
조부가 한국인이었으니 영향이 전혀 없진 않았겠지만, 학창 시절도 미국에서 보냈고, 음악도 미국에서 배웠는데 저건 너무 자기 편한 대로만 기술 하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 크리스가 한국에 들어와 있는 데도 크리스에게 인터뷰 요청조차 없이 자기들 마음대로 기사를 적어서 내고 있었으니 민수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아마 당사자가 지금 한국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윤 엔터에서도 언론 플레이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크리스의 인터뷰도 자연스럽게 나가게 될 것이고.
민수는 저런 자기 멋대로 기사를 쓴 기자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영화가 걸려있는 상황이니 크리스도 온건한 태도로 인터뷰를 하려나.
전생에서는 좀 막 나가는 경향도 없잖아 있었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연습실에서 마무리 작업이 끝나가는 설아는 기사를 읽으며 크리스를 다시 봤다는 듯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 우리 빵야 쌤.
진짜였네요. 빌보드에 올라갔어요.”
자신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던 설아가 감탄한 듯 바라보자 크리스 건은 그것 보라는 듯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짐짓 거만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빌보드에 오른 게 기쁘긴 한 거 같았다.
첫 수혜자는 당연히 가수였지만 작곡가에게 돌아오는 영광도 만만치는 않았으니까.
“이거 우리 빵야 쌤이 음악감독이라는 이야기가 언론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반응이 좋을 수도 있겠는데요.
어쨌든 한국인의 피를 이은 사람이 빌보드에 작곡자로 이름을 올린 건 처음 아닌가요?
쌤. 홍보에 도움 주실 거죠?”
설아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눈빛 공격을 날리고 있었다.
번잡한 것이 싫었던 크리스도 이번에는 도움을 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아무것도 없던 자신이 들고 온 영화를 조건 없이 찍어준 사람들이었다.
그들도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였겠지만 자신이 신세를 진 것은 분명했으니 자신도 당연히 최선을 다해 도울 의무가 있었다.
“그래. 그래야지.
어쨌든 내가 참여한 영화니까 적어도 기본은 해줘야겠지.
할아버지 체면도 있고…..”
“할아버지요?”
“아. 원래 이 시나리오의 원작자가 우리 할아버지야.
내가 시사회 때 초대할 분도 그분이지.
좋아. 그럼 인터뷰나 그런 거 있으면 나중에 말해줘.
아마 스케줄은 소속사 쪽에서 정하겠지?
대표님도 만나보긴 해야겠네.”
“오….”
설아는 신바람이 절로 났다.
전혀 상대가 안 될 거로 생각했는데 이거 어쩌면 조금 비빌 구석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자신을 찾아온 음악 감독이 진짜 빌보드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대단한 작곡가였다니.
어쩐지 좀 대단하다 싶었는데 이건 대단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대박이었다.
그러다 문득 반전이 있을 수도 있다는 듯이 개봉을 기다려 보자고 이야기했던 민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이야기했을 때도 크리스 건을 알고 있는 눈치였지.
“에이… 무슨.”
설아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민수가 무슨 예지몽을 꾸는 것도 아닌데 이런 걸 어떻게 알았겠는가.
자신도 참 중증이긴 했다.
긍정적인 것이 다 민수 덕분이라고 생각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뭐 기본적으로 재신의 가호를 받는 듯한 민수이긴 했지만 모든 게 다 민수 덕분이라는 건 좀 무리한 생각이긴 했다.
어쨌든 크리스 건의 노래가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 호재였다.
그리고 당연히 윤 엔터에서도 이 호재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