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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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의 팬 미팅이 모두 마치고 12월에 들어서자 두 영화 모두 본격적으로 홍보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윤 엔터의 세 배우는 평소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홍보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연기 외적인 활동에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수연이 고정으로 출연하는 예능에 “로드 오브 트릭(Lord of Trick)팀이 홍보하러 나왔을 때 보여준 태준과 수연의 미묘한 신경전은 보이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덕분에 두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도 더 커졌으니 결과적으로는 두 쪽 모두 손해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실 Cafe Jude는 로드 오브 트릭과 경쟁작이라고 하기에는 자본과 배우들의 인지도가 많이 부족한 영화였으니 그렇게 인식되는 것만으로도 Cafe Jude 쪽에서 얻은 것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건 수연이나 설아, 그리고 태준이 홍보 활동을 계속하는 와중에 그 자리에 없는 민수의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는 거였다.
태준은 민수와 같이했던 팬 미팅에 대한 이야기나 일본에서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민수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수연이나 설아도 영화를 홍보하다 보니 투자자로 이름을 올리고 단역으로 출연했던 민수의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그야말로 민수는 집에 머물면서도 사람들에게 계속 회자되고 있는 셈이었다.
민수는 배우들이 홍보 활동에 전념하는 이 상황이 재미있었다.
전에 태준과 드라마를 찍을 때 자신이 태준에게 왕 서방이라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자기가 꼭 그 꼴이었다.
예능에 나가지도 않았는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심지어 수연과 설아가 홍보에 열중해 영화가 더 많은 수익을 낼수록 투자한 자신에게 더 큰 혜택이 돌아오게 된다.
그러니 이 영화에 진정한 승자는 자신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배우들이 영화 관련 홍보 활동에 주력할 동안 민수는 시나리오와 대본의 살펴보고 있었다.
이제 연기 연습과 팬 미팅 일정까지 다 마쳤으니 다음 작품을 물색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작품에 대한 의욕이 한껏 치솟은 상황.
그리고 이번에 민수가 목표로 정한 건 당연히 로맨스였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했으니 써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드라마나 영화에 로맨스가 빠질 수는 없지.
그리고 난 지금까지 한 번도 로맨틱한 연기를 선보인 적이 없고.”
자신의 입으로 말하긴 뭐 했지만 젊고 잘생긴 배우가 아직 한 번도 로맨스를 제대로 선보이지 못했다는 건 확실히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무래도 자신에게 남자 팬들이 더 많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특별히 싫은 건 아니었지만 좀 미묘하긴 했다.
자신에게 여성 팬들이 더 많았으면 팬 미팅 때 평범한 응원 문구가 더 많지 않았을까?
민수는 팬 미팅 때 남자들이 올려놓은 그런 메시지를 상기하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민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대본들을 살펴보는데 딱 눈에 들어오는 대본이 있었다.
바로 가을에 방송 예정인 드라마 “달빛 연인” 이었다.
우리나라 드라마로는 보기 드문 100% 사전 제작 드라마였고 배우 관리팀이 달아 놓은 주석을 보니 자신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드라마라고 적혀 있었다.
내용은 전형적인 형식의 로맨스물이었는데 이미 확정된 여자 주인공을 확인해 보니 여배우 유연희였다.
민수랑 동갑인 여배우 유연희는 아마 단순히 외모로만 서열을 매기면 대부분의 사람이 한 손안에 꼽을 정도로 대단히 수려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스타일은 설아나 소희보다는 수연 쪽에 가까운 청순하고 순한 강아지상이었고 명문대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까지 있어 이미지도 매우 좋았다.
작년에는 작품활동을 하지 않고 쉬었음에도 아직 여러 개의 CF에 출연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녀가 광고주들이 선호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다만 민수보다 1년 선배인 이 여배우의 연기력에 기복이 심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마 꾸준히 배우를 생각하며 살아온 것이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갑작스럽게 연예계에 발을 들이게 된 것 때문에 기본기가 부족해 그런 거 같았는데 자신도 연기력 논란에 대하여 많이 생각했을 테고 올해 한 해를 쉬면서 어느 정도 기본기도 쌓았을 테니 자신의 상대역으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나쁘지 않네.
이 선배가 그래도 꽤 오랫동안 연기 활동을 했던 거로 기억하는데…..”
사전 제작이란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만큼 드라마의 성공을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는 모양새였고 아무래도 사전 제작이면 촬영 일정의 압박에서 더 자유로울 것이 분명했다.
문제라면 시청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드라마를 선회할 수 없어서 시청률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거였는데 솔직히 민수는 그 점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민수는 개인적으로 작가가 너무 시청자들의 의견에 끌려다니는 것에는 반대였다.
작가의 역량에 따른 문제였지만 쪽 대본이 난무하다 보면 결국 허점이 생겨 설정 붕괴가 일어나거나 드라마가 산으로 가게 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어떤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내용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만이 될 수도 있었으니 때에 따라서는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한목소리로 성토하는데도 작가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진행하는 건 좀 다른 문제겠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드라마 작가도 모든 사람이 불만스러워할 내용을 드라마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런 드라마가 제작까지 갈 리가 없고.
결국 시청률이 모든 것을 말해주니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민수는 쪽 대본 보다 차라리 사전제작이 나았다.
“좋아. 사전 제작이라니 이걸로 해보자.”
다음 작품을 결정하고 방을 나선 민수는 휴게실에서 설아를 만날 수 있었다.
요즘 평소와는 다르게 홍보 활동으로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스케줄이 없는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긴 말이 휴식이지 아마 오늘 소속사에 나온 것도 OST의 마무리 작업이 남아서일 가능성이 컸다.
예능 출연에 인터뷰, 그리고 OST 작업까지.
지친 설아의 모습을 보니 요즘 확실히 바쁘긴 한가 보다.
“설아 씨 많이 지치셨네요. 괜찮아요?”
OST 마무리 작업 중 틈을 내 한숨 돌리고 있던 설아는 민수가 다가오자 애써 웃으며 민수를 반겼다.
아무리 강철 체력을 가진 설아라도 체력과는 상관없이 여기저기 홍보 활동에 OST 녹음까지 병행하고 있는 지금의 스케줄은 대단한 강행군에 속했다.
체력이 버텨준다고 해도 정신적 피로 때문에 밤마다 녹초가 되곤 했으니까.
“네. 힘들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수연 언니한테 동조하지 말 걸 그랬나 봐요.”
설아는 자신의 주연 영화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수연에게 고맙긴 했지만, 왠지 템포가 빠른 수연을 따라가기가 좀 벅차다고 하소연했다.
확실히 RD에서 각종 CF와 인터뷰 스케줄로 단련된 수연이 정신적으로는 설아보다 우월하긴 한가보다.
하긴 한창때는 쪽잠 스케줄도 소화했던 수연이었으니 지금의 스케줄은 그렇게 빡빡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하.
수연 선배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거면 차라리 자신의 주연 영화를 찍는 게 나았을 텐데요.
요즘도 타도 윤태준을 외치고 다니던가요?”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답하던 설아가 수연을 생각하는지 실실 웃음을 보였다.
민수는 그런 공격성(?)을 보이는 수연이 처음이었는데 아마 설아도 그렇게 많이 경험해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원체 작은 일에는 대범하게 넘기는 수연이었으니까.
“언제더라? 오라버니가 언니가 진짜 아껴먹는 아이스크림을 홀랑 먹어버린 적이 있었어요.
언니가 제일 좋아하는 거였는데 그게 그때 단종되었거든요.
앞으로는 나오지도 않으니까 언니가 애지중지하면서 정말 먹고 싶을 때만 한두 숟가락씩 먹고 있었는데 그 바보 오라버니가 몰래 다 먹어 버린 거죠.
딴에는 유통기한이 다 돼 간다고 버릴까 봐 먹었다는데 그 말이 언니 귀에 제대로 들어가기나 하겠어요?
결국 언니가 열폭해서 달려들었었죠.
그때 이후로는 처음이라고 할까요?”
“아…. 그래요?”
아무래도 작은 일에는 대범하게 반응한다는 말은 취소해야 할 거 같다.
세상에 먹는 거로 그렇게 강한 반응을 보였다니.
의외로 수연의 분노 허들이 낮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저번 드라마 때 언니가 주연으로 연기하면서 부담이 많았나 봐요.
혜민이 일도 그렇고 오빠 일도 그렇고 언니가 다 해결한 거잖아요.
스트레스가 많았나 봐요.
빨리 극복해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그러고 보니 저번 드라마에서 아역을 못 구해서 전전긍긍하는 걸 수연이 혜민이를 데려가 해결했고 조연 예정자가 사고 친 것도 수연이 민수를 데려가서 해결했었다.
주연 배우이긴 했지만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수연이 필요 이상을 힘을 보태긴 했다.
“그러고 보니 그 드라마 피디랑 작가님이 완전 날로 먹었네요.”
“풋. 그게 그렇게 되나요?
문제는 언니가 다 해결했으니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언니가 또 은근히 오지랖이…..”
예전에 RD에서도 주연으로 연기하긴 했지만, 그때는 수연도 거의 자포자기의 상태였고 저번 드라마가 진지한 태도로 주연 연기를 처음 선보인 것이었다.
생각보다 책임감을 많이 가지는 스타일인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수연이 나서서 해결했고.
그렇게 두 번이나 문제가 생긴 드라마를 찍었다고 생각하니 확실히 늘어졌던 수연의 모습이 이해가 가긴 했다.
“그런데 요즘 혜민이는 어떤가요? 통 보이지가 않아서.”
“혜민이는 지금 꾸러기 어린이 한마당인가? 그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고 있고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특이하다고 많이 신기해했었죠 아마?
그리고 다음 달쯤인가? 드라마의 아역으로 들어간다고 하네요.”
“혜민이에게 어린이 프로라…. 왠지 느낌이 안 오는데요.”
“제법 괜찮은가 봐요. 시크한 캐릭터로 은근히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요.”
“…..9살이 시크라는 게 참….”
“그러니까 특이한 캐릭터죠. 아마 시크한 9살은 처음일걸요.”
“끙….”
아마 어린이 프로에 나가 자신의 성격대로 행동하고 있나 본데 요즘은 개성시대라고 하니 그런 특별한 모습이 재미있어 보이긴 할 것이다.
“어쨌든 저랑 언니랑 소희 언니도 그렇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역시 오라버니에게 대적하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여요.
그 인간이 좀 바보긴 해도 보통 잘난 배우가 아니잖아요.
나중에 언니가 상심하지나 않았으면 좋겠어요.
윽. 갑자기 그 인간이 의기양양한 모습이 떠올라서 기분이 나빠지네요.”
하긴 아무리 노력해도 인지도 자체에서 차이가 나긴 했다.
태준의 영화는 봉성구 감독이라는 이름도 무게감이 있었고 조태수도 알아주는 배우였으니까.
이제 가수와 배우로 한창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설아가 대적하기에는 좀 무리이긴 할 것이다.
영화의 내용도 자극적이라기보다는 잔잔한 느낌의 작은 감동과 일상의 행복을 주제로 한 영화이기도 했고.
“음…. 아무래도 그건 그렇죠.
하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잖아요.
흥행은 영화가 개봉한 뒤에야 알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 너무 실망하지는 마세요.”
“그랬으면 좋겠지만요.”
아무래도 태준의 영화에 대하여 떠드는 언론의 태도라든지 사람들의 반응 때문에 설아도 조금은 상심을 한 거 같았다.
자신이 아직 영화의 흥행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대단한 배우나 가수가 아닌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릴 수도 있고.
“투자자로서 예견하자면 이 영화 그래도 잘 될 거 같아요.
절 믿는다면 조금 기다려 보세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이는 민수의 말에 설아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민수는 투자와 단역, 그리고 팬 미팅에 다녀와서는 인터뷰까지 해주면서 자기 할 일을 톡톡히 해줬으니 더는 민수에게 의지할 수 없었다.
이제 민수의 말대로 기다리는 게 정답일 것이다.
“OST 앨범 준비는 잘 돼 가나요?
영화 개봉하면 2주쯤 있다가 발매라고 했죠?”
“네. 빵야 아저씨가 영화 개봉하면 어떻게든 노래가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그때 발매하자고 하네요.
참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아저씨라니까요.”
“… 빵야 아저씨요?”
“히힛. 크리스 건 이잖아요.
건이면 총인데 총 아저씨라고 하면 어감이 그래서 빵야!
그리고 나이도 30대 중반이면 아저씨죠.
그래서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가끔은 엉클 빵야! 혹은 빵야 쌤이라고 하기도 하고요.”
여러 날 동안 같이 작업을 하더니 이제는 제법 편한 사이가 된 거 같았다.
그래도 빵야라니. 차라리 총 아저씨가 더 낫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총이라는 말은 비속어로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아무튼 설아가 크리스 건이랑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좋은 일이었다.
혹시 나중에라도 크리스 건이 설아의 앨범을 도와줄 수도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