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62화 (262/325)

#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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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미팅을 마친 후 민수는 영화 촬영 때문에 거의 만나지 못했던 태준과 오랜만에 회포를 풀 수 있었다.

민수는 예고도 없이 자신의 팬 미팅의 사회를 봐준 태준이 고맙기도 했지만 갑작스러운 그의 행보가 의아하기도 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태준은 민수의 의문에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사실 태준은 정말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특별히 가식이 포함되거나 그러진 않았다.

“에이. 뭘 이런 걸 가지고.

영화가 끝났는데 홍보 일정은 2주도 넘게 남았으니 마땅히 할 일은 없고, 그런데 정 배우가 팬 미팅을 한다면서 사회를 구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넙죽 한다고 했지. 재미있어 보이기도 했고 말이야.”

가볍게 말했지만 민수는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몸도 많이 쓰고 힘든 영화였을 텐데 영화가 끝나자마자 자신을 도와주다니.

할 일이 없으면 차라리 휴식을 취하는 게 이치에 맞았다.

조금 감동한 듯한 민수의 태도에 태준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봤자 눈에는 장난기가 가득했으니 근엄한 표정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허. 이게 그만큼 친구를 생각하는 정이 깊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민수는 태준의 닭살 돋는 근엄한 어조를 무시하며 다시 물어봤다.

아마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 입에 발린 소리는 잘 들었고요.

그래서 진심은?”

민수가 묻자마자 바로 답이 튀어나왔다.

“아. 수연이 영화가 아직 다 안 끝났잖아.

게다가 얘가 뭘 잘못 먹었는지 나를 잡아먹을 정도로 노려보더라고.

내가 무서워서 같이 있을 수가 있나.

그래서 도망쳐 나왔어.”

“에라이. 네가 그럼 그렇지.”

말을 그렇게 했어도 아마 자신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을 것이다.

자신이 준비한 단독 공연이 궁금하기도 했을 거고, 그의 말대로 수연을 잠시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긴 했겠지만.

하긴 게다가 집에 가 봤자 타도 태준의 기치를 높이 든 설아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것도 꺼림칙했으려나.

“그러길래 대체 가만있는 수연 선배는 왜 긁은 거야?

이거 완전 범의 코털을 뽑을 친구 구만.”

민수의 타박에 태준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작품 끝난 지가 벌써 10개월이 넘었는데 다음 작품에 들어갈 생각을 안 하잖아.

뭐 이대로 은퇴해도 남자 윤태준은 전혀 불만이 없지만, 배우 윤태준은 좀 아쉽더라고.

너무 이르잖아?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할 수 있는 좋은 배우인데 말이야.”

수연의 휴식이 좀 길긴 했지만 사실 1년에 한 작품도 찍지 않는 배우들이 많았는데 태준이 오버하긴 했다.

그래도 그 마음은 좀 이해가 간다고 해야 할까.

민수 자신도 수연이 이대로 작품을 찍지 않는다면 서운하긴 할 것이다.

평소에 배우인 이수연과 인간 이수연을 모두 좋아하는 태준은 더욱 그럴 테고.

“와 진짜.

작품 끝나고 처음 만나자마자 얼마나 쪼아 대는지.

진짜 수연이 영화보다 세배 이상 안 나오면 바보 취급 당할 거 같아.

밑밥 엄청나게 깔아 놓더라고.”

민수는 영화가 시작되기 전 수연이 했던 말을 생각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적당히 뽑고 정신승리 할 수 있다고 했던가.

하긴 적당히 뽑아도 손익 분기점이 원체 낮으니 더 이익을 볼 수도 있다.

흥행의 지표는 관객 수지만 영화의 성공이 관객 수 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니까.

“그런데 수연이가 왠지 엄청 자신 있어 하던데.

이봐, 정 배우 뭐 아는 거 없어?

너도 같이 찍긴 했잖아.

있으면 좀 털어놔 보시지.”

태준이 은근히 이야기했지만 민수는 아무것도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어떻게 될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마 일이 흘러가는 꼴을 보면 태준이 황당하긴 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미리 이야기하는 것보다 태준이 직접 당하는 게 더 재미있을 거고.

이미 수연이 밑밥을 하도 깔아놔서 웬만한 관객 수 차이로는 태준이 오히려 낭패감을 느낄 테니 일이 재미있게 되긴 했다.

“어허. 나도 엄연히 투자자거늘.

어찌 적에게 정보를 흘리겠는가.”

“와…. 정 배우 이거 이거.

뭐 좋아. 두고 보자고.

내 영화가 한 세 배는 더 흥행할 테니까.

그 정도 차이가 나면 결국 수연이도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겠지.

굴욕적인 수연이가 보이는 듯하군.

우리 영화가 엄청나게 잘 빠졌단 말이지.”

전생에 그 영화를 직접 봤던 민수도 태준이 자신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장 봉성구 감독이 몇 년 만에 복귀해 야심 차게 준비한 영화였고 배우들의 명성도 장난 아니었으니까.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 시기가 대목임에도 액션 영화들은 다 12월 초를 개봉 일시로 잡고 있단다.

굳이 같은 장르의 영화로 “로드 오브 트릭(Lord of Trick)” 과 정면 대결을 하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차라리 설아의 영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가 편했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2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차지하는 건 무리였고 남은 자리는 다른 영화가 들어가야 했으니까.

아마 같은 장르였으면 태원도 그 시기를 피하지 않았을까?

대작 영화와 맞대결 하는 것은 로망이지만 흥행은 현실이었으니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나저나. 너희 팬들 진짜 재미있네.

앞으로 한동안 심심하지 않겠어.”

“응? 앞으로도 계속 같이 다니려고?”

“그래야지. 아마 일본 팬 미팅까지?

그거 끝나고 바로 홍보 활동 들어가면 시간이 맞긴 하네.”

“허….”

민수는 태준이 일본 팬 미팅까지 따라오겠다는 말에 아연한 기분이 들었다.

이 친구가 대체 왜 이럴까.

혹시 또 무슨 흉계가?

민수는 의심하고 있었지만 태준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다.

순수하게 재미있기도 했고 이 기회에 일본에 가서 구경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맡은 일을 끝까지 해주고 싶다는 책임감도 있었다.

“아. 그런데 그 일인극 그거 일본에서도 할 수 있는 거야?”

태준이 맹점을 지적했다.

일반적인 연기라면 몰라도 섬세함이 깃든 그런 연기를 타국의 언어로 하기는 무리였다.

아무리 민수가 일본어에 정통하고 있다고 해도 미묘한 느낌까지 완벽하게 잡지는 못할 테니까 말이다.

“솔직히 그건 좀 무리.

일본에서는 다른 걸 해야 할까 생각 중이었어.”

“오호. 그래?”

태준은 왠지 민수의 말을 반가워하고 있었다.

아마 태준에게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 같았다.

“그럼 일본에서는 나랑 2인극을 해보면 어때?

재미있어 보이던데 나랑 같이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2인극이라…..”

민수도 왠지 솔깃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혼자서 무대를 꾸미는 것보다 둘이 더 낫다.

그 상대가 태준이면 더더욱 좋은 장면이 나올 거고.

“대본은 뭐.

용의 울음에서 너랑 나랑 같이 나온 부분을 적당히 각색해 보자고.

둘이 합쳐 15분 정도면 대충 몇 개만 붙여도 충분하겠네.

이미 촬영했던 거라 익숙하기도 하고 사실 일본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그 영화잖아?”

민수도 차라리 그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의 울음이 한국어와 중국어로 발매되었지만 결국 일본어로 나간 건 없었으니 팬들도 분명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기대되기도 했다.

태준과 호흡을 맞추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좋아.

이 기회에 민수 팬들에게 민수 친구로 자리를 완전히 잡아 보이겠어.

이번에 우리 영화도 일본에 수출되니까 나쁘지 않군.”

민수의 영화가 일본에서 괜찮은 성적을 보이면서 일본 배급사들도 한국 영화에 제법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특히 이미 일본에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봉성구 감독과 태준, 그리고 조태수, 한류 스타인 정연주까지 모인 태준의 영화는 확실히 일본에서도 눈독을 들일만한 라인업이었다.

민수의 영화로 실사 영화도 잘 만든다면 어느 정도 흥행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났으니 그쪽 배급사에서도 충분히 도전은 해 볼만한 할 것이다.

“그러네. 겸사겸사 홍보도 되면 좋긴 하겠어.”

“크. 역시 이럴 때는 친구 버프가 최고지.

민수 친구라고 민수 팬들이 반만 내 영화를 봐주면 장난 아닐 거야.”

민수는 태준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지금 “귀의”가 일본이랑 중국에 수출돼 지금 한창 방영 중이라 태준의 인기도 만만치 않은 거로 아는데 엄살인지 장난이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특히 일본에서는 “별에서 온 당신”과 “서쪽 해변” 그리고 민수랑 같이했던 “용의 울음”으로 상당한 인지도가 있었던 태준이었는데 “귀의”에서 보여준 사실적인 듯하면서도 만화 같은 수술 실력 때문에 태준의 인기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아마 이번에 영화가 성공을 거두면 인기가 더 올라가지 않을까?

영화가 아니라도 “귀의”가 일본에서 방영을 마치면 인기가 장난 아닐 것이 분명했다.

“그래그래. 액받이 토템에 친구 버프까지 참 골고루 잘도 써먹는구나.”

민수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이 친구가 아직 일본에 못 가봐서 실감을 못 하나 본데 일본에서 한류 스타로 바람을 타면 인기가 걷잡을 수 없어질 정도 올라간다.

그게 잘 안 터져서 그런 거지 어차피 될 놈은 어떻게 해도 된다고 전생에서도 일본에서 터졌던 태준이었으니 조만간 자신처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며 한류스타가 될 것이 분명했다.

장난스럽게 시작한 둘의 연기 연습은 점점 진지해지더니 일본에 떠나기 전에는 놀라운 완성도를 보였다.

“이거 일본 팬들도 좋아하긴 하겠네.”

“그렇지? 무대 준비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이래저래 남는 장사야.”

무대의 완성도도 완성도였지만 우선 태준과 같이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호흡도 잘 맞았고 서로 배울 점도 많았으며 배우로서의 교감이랄까? 그런 연기의 느낌도 좋았다.

일본 팬들이 이 무대를 좋아할 거라고 민수는 자신의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네 전 재산이 얼만지나 알고 지금 그걸 거는 거야?”

자신만만한 민수에게 태준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일침을 날렸다.

그 재산을 다 걸다니 민수의 배포가 참 크긴 했다.

이래서 팬들이 사업하지 말고 사기 조심하라고 하나 보다.

“흠흠.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거고.”

민수의 자신감과 함께 시작한 일본 팬 미팅은 엄청난 성공을 기록했다.

한국에서 5000명이 최종적으로 팬 미팅에 참여했다면 일본에서 팬 미팅에 참여한 사람은 15000명도 넘었다.

그나마 기존에 예고한 대로 “Mama”의 DVD 시리얼 넘버로 추린 것이 이 정도였다.

결국 태준과 민수는 10차례도 넘는 팬 미팅을 진행 해야 했다.

5번 정도 생각하고 있던 민수도 생각 외로 많은 사람 때문에 스케줄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팬 서비스의 일환이었으니 가능하면 많은 팬에게 만족을 주고 싶어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혹시나 해 수정의 채근으로 친필 사인본을 넉넉하게 준비해 놓았다는 거였다.

일본 현지의 팬 미팅 관계자와 사전 조율이 빗나가면서 참사가 벌어질 뻔했는데 참으로 다행이었다.

텀블러는 급하게 추가할 수 있었으니 일본 팬들도 한국 팬들처럼 원하는 것을 모두 가져갈 수 있었다.

민수의 팬 미팅이었지만 태준에 대한 호응과 애정도 상당했다.

민수의 팬치고 윤 엔터 배우들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고 태준 자체도 지금 한창 일본에서 인기가 치솟는 중이었으니 민수의 팬들은 꿩 먹고 알 먹고 한 셈이었다.

팬 미팅 마치면서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도 꼭 봐달라고 민수와 같이 홍보하며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태준도 이번 행보에 얻은 것이 많았다.

그렇게 2주의 시간이 지나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태준과 같이한 한국 팬 미팅과 일본 팬 미팅에 대한 이야기가 한바탕 연예계를 휩쓸고 지나간 후였다.

한국에서 보여준 민수의 1인극과 일본에서 태준과 같이한 2인극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전 비용을 민수가 내며 총 2만에 달하는 팬들을 초청해 대접했다는 이야기까지.

솔직히 화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민수의 팬들은 옥탑방에 사는 우리 민수형이 너무 무리했다고 하면서 우스갯소리를 퍼트렸고 이 이야기가 여러 가지로 방향으로 퍼져나가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아 민수형. 그 돈으로 집이나 좀 사지.

-아 민수형. 그 돈으로 차나 좀 사지.

-아 민수형. 그 돈으로 클럽가 헌팅이나 해서 여자나 좀 사귀지.

-야 위에 놈은 뭐냐? 민수형은 솔로로 남아야 하거든.

그 형이 애인까지 있으면 진짜 다 가진 건데 그건 너무하잖아.

-저 위에 배신자는 처단해. 어딜 감히 민수형한테 여자를 들먹여?

“자기들끼리 잘 노네 진짜.”

민수는 자기들끼리 장난치며 티격태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민수의 팬 미팅은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민수도 좀 피곤하긴 했지만 즐거웠고 팬들도 당연히 즐거웠고.

하지만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있긴 했다.

“야 정민수! 실망이야.

너 어떻게 태준이 영화를 홍보해 줄 수 있어?

배신이야! 배신!”

이렇게 와서 따지는 수연이었다.

“선배. 일본 흥행은 카운트에 안 들어가잖아요.

그건 좀 이해해 주셔야죠.”

민수가 이렇게 점잖게 타일렀지만.

“흥! 배신자! 배신자!”

수연은 전혀 들어먹지 않았다.

이것도 민수가 감당해야 하는 업보임이 틀림없었다.

다 큰 어른이면서 가끔 보면 이 배우들이 참 유치하긴 했다.

물론 민수는 자신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엄청나게 유치하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소속사 직원들은 민수 태준 설아 수연을 같은 선상에 놓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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