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60화 (260/325)

#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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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네….”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돌려본 조연출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연출이 가장 걱정했던 장면이 생각보다 더 괜찮게 나와서였는데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했던 거치고는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왜 그래? 무슨 문제 있어?”

한번 보고 좋다고 생각했던 태원은 조연출이 계속 그 장면을 돌려보고 있자 왜 저러나 싶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처럼 고개를 갸웃거리기까지 하니 태원으로서는 당연히 무슨 일인지 신경 쓰일 수 밖에.

“아뇨.

평소의 민수 씨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이 장면이 어색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요.”

“난 또 뭐라고. 그게 이상해?”

“감독님도 민수 씨 같이 생긴 남자가 좀 지분댄다고 해서 밥맛 없어 보이진 않을 거 같다고 걱정하셨잖아요.”

조연출의 말에 태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태원도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으니까.

저 장면에서 성진은 정말 재수 없고 혐오스러워야 했다.

태원이 걱정한 건 바로 올곧은 민수의 평소 이미지와 그 말쑥한 외모.

어지간히 진상을 떨지 않는다면 저 장면을 원하는 방향으로 소화할 수 없었을 것이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고 잘생긴 놈은 그냥 서 있어도 떡이 굴러들어온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혹시라도 관객이 민수의 외모 때문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느낌을 받는다면 저 장면은 완전히 꽝이었다.

태원이 걱정한 건 바로 민수가 자신의 외모와 이미지를 뛰어넘는 진상을 부려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재수 없이 연기를 잘했다.

자신도 그런 점을 고려해서인지 대본보다 좀 더 강한 느낌으로 연기했고 저 연기를 보는 동안에는 평소의 민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저래서 민수 씨는 연기를 하고 내가 감독을 하나 보다.

야. 어쨌든 잘 나왔으니까 이제 오늘 촬영은 여기서 끝이야.

오늘은 해산하자.”

“네. 감독님.”

촬영 종료를 알리러 조연출이 떠나자 태원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유 자금이 넉넉하다지만 오늘 장면이 마음에 안 들었으면 적어도 하루 이틀은 일정이 늦춰졌을 거고 그러면 그만큼 손해였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제 폭탄 같은 민수가 출연하는 부분도 없으니 나머지는 별 탈 없이 잘 끝날 것이 분명했다.

“이제 좀 마음 편하게 촬영하겠네.”

아무리 이상한 분장을 덕지덕지 붙이고, 엑스트라에 섞여서 단역만 연기한 것이라도 연기자의 탈을 쓴 투자자인 민수는 좀 부담스럽긴 했다.

아직 병아리 감독에 불과한 자신이었으니 영화 투자금의 30%를 낸 투자자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아무리 민수가 그런 걸 신경 안 쓴다지만 자신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민수는 자신의 촬영분이 완전히 마무리되자 촬영장에 갈 일이 없어졌다.

게다가 한국 팬 미팅과 바로 이어 일본까지 팬 미팅을 하러 가게 되면 영화 촬영 막바지가 되어서나 돌아오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것저것 단역을 연기하면서 배우들과 호흡 맞추는 건 쏠쏠한 재미가 있었고 틈틈이 설아를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는데 참 아쉽게 되었다.

팬 미팅이 하루 남은 오늘, 민수는 팬 미팅의 최종 리허설을 위해 팬 미팅 장소인 리잔 아트센터 대 공연장을 찾게 되었다.

팬 미팅에 무슨 리허설이냐고 할 수도 있었지만 민수의 개인 공연 때문에 리허설이 필수적이었는데 특히 조명에 대한 섬세한 체크가 이어졌다.

민수는 이번 공연의 대본을 준수에게 넘겨받고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공연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이번에 민수가 선보이게 된 일인극은 분노한 제프리, 행복한 리단, 우울한 칸토, 공허한 진저, 슬픈 조던, 사랑에 빠진 딘 이렇게 6명이 인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일인극이었고 사람이 바뀔 때마다 관객에게 직관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던 민수는 이 부분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고민하게 되었다.

차라리 가면을 쓰고 변검처럼 가면이 변하는 연출을 하자는 의견부터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민수가 선택한 것은 특수 의상과 조명을 이용한 장치였다.

특수한 재질의 옷감에 특정한 염료를 가공해 의상을 제작하면 비추는 조명의 색에 따라 의상의 색깔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윤희의 조언을 따른 장치였는데 특수 제작한 의상을 입고 인물이 바뀔 때마다 스포트라이트의 색을 바꿔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대사가 바뀔 때마다 스포트라이트가 변해야 하니 사전에 연습과 조율이 필수적일 수밖에.

대사에 따라 바뀌는 조명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조명 기사가 민수의 대사에 맞춰 불을 켜는 것은 타이밍이 늦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정해진 시간에 민수가 대사를 뱉게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이 기계도 아닌데 모든 대사를 정해진 시간에 정확하게 말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결국 남은 것은 연습에 연습뿐이었다.

처음에는 서로 맞지 않았던 호흡도 여러 번 연습을 거치니 결국 이제는 어느 정도 맞아 들어가게 되었고 민수는 겨우 타이밍이 맞아 들어가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시간이 온종일 걸리긴 했지만 겨우 하루 만에 6개의 조명과 손발을 맞게 된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민수도 대사와 동시에 조명이 켜지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는 잘 몰랐으니까 말이다.

어쩌면 대사가 나옴과 동시에 정확하게 조명이 나오기를 바랐던 민수의 욕심이 너무 과했는지도 모르겠다.

일반적인 팬 미팅에는 거의 젊은 층만 찾아오는 경우가 많은데 민수의 팬 미팅은 그 성격이 조금 달랐다.

참여하는 남녀노소의 인구 비율이 비교적 고르다는 것이었는데 “힐링 멘토”에서 시작된 팬덤의 특성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힐링 멘토” 자체가 거의 가족 단위로 가입하는 사이트였고 단순히 배우 정민수를 응원하는 것보다는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인간 정민수를 성공을 기원하는 것이었으니 연령에 제한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힐링 멘토”의 높은 진입 장벽을 돌파한 배우 정민수를 사랑하는 사람들, 비교적 젊은 층에 속한 이 사람들도 민수에 대한 애정은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서울 팬 미팅에는 평소에 민수를 친구같이 생각하는 “힐링 멘토” 사람들, 그리고 민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애초에 고지는 몇 달 전에 이루어졌고 무료 참가에 텀블러와 화보는 당연히 지급, 모든 음식을 제공함과 동시에 마지막에는 추첨을 통해 푸짐한 경품까지 준비된 장소.

민수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처럼 기뻐하고 민수와 함께하고 싶어 하는 팬들이 이곳을 찾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사전에 조사한 대로 서울 팬 미팅에 참가하겠다는 인원은 1500여 명.

오늘 오기로 했던 1500여 명의 서울과 인근 경기도에 거주하는 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리잔 아트센터로 모여들었다.

민수의 팬클럽 총원이 대략 5000여 명이었고 5번에 걸친 팬 미팅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한 인원도 거의 5000명이었으니 정말 부득이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 빼고는 다 참석하는 셈이었다.

아무리 팬클럽이라고 해도 놀라운 충성심(?)이었다.

1500명이 모인 공연장 대기실에서 민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중국의 행사나 일본에서의 팬 미팅에는 이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인 적도 많았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더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와. 원래 가수들 콘서트 같은 데 가면 수천 명씩 모이잖아?

그래서 1500명이면 별로 많다고 생각 안 했는데 아까 보니까 정말 많아 보이더라.”

민수의 메이크업을 점검하던 수정은 긴장한 듯한 민수의 말에 피식하고 웃음을 머금었다.

예전에 일본에서 팬 미팅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더니 민수도 사람이긴 한 모양이었다.

“전에는 별로 긴장 안 하시더니 오늘은 웬일이래요?

원래 이런 거로 긴장 잘 안 하시잖아요?”

“그러게. 왜 이러지?

아. 설마 이거 내 돈으로 해서 그런 건가?

그때는 그냥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들고 들어간 거였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처음부터 다 차린 거잖아.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 그 돈은 그냥 날리는 거고.

돈 받고 하는 거랑 돈 내면서 하는 거.

차이는 이거뿐인데 정말 그래서 그런 건 아니겠지?

풋. 내가 말하고도 참 어이없긴 하다.”

민수는 혼자서 실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민수는 실소를 터트렸지만 사실 이번 팬 미팅에 민수가 투자한 돈이 적지 않았다.

모든 비용이 민수의 사비로 처리되는 일이었으니 5000명이나 모이는 이 행사의 비용이 적을 리가 없었으니까.

물론 그래 봤자 영화를 찍을 때마다 목돈을 벌고 있는 민수에게는 별로 큰돈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사실 소속사에서 모두 부담하겠다는 걸 민수가 바득바득 우겨서 자기가 낸 거였으니 별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민수를 보며 수정은 이 오빠가 왜 이러나 싶으면서도 긴장하는 모습이 좀 인간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원체 긴장감도 없이 척척 해내는 모습들이 멋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좀 비인간적이기도 했으니까.

“오늘 윤희 선생님과 따님분도 오셨다지요?”

수정은 민수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소소한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긴장한 배우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도 자신의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긴장도 풀리게 되리라.

“그렇다네.

선생님도 그렇고 윤정이도 내 팬클럽의 일원이니까.

어르신은 아무래도 일 때문에 힘들다고 하셨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 어르신은 무슨 일을 하시는 거예요?”

“글쎄.

특별히 뭐라고 말씀은 안 하셨는데 공직이라고 하신 거 보니 공무원이신 게 아닐까?

사실 어떤 일을 하시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

상처 많으신 선생님이 의지할 만한 분인지가 중요한 거니까.

그런데 딱 첫눈에 봐도 믿음이 가시는 분이라.”

“오호….”

윤희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자 민수도 마음이 점점 편해졌다.

그리고 다른 배우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설아의 이야기까지 나오자 이제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온 민수는 행사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입구에 도착한 민수는 자신을 부르는 신호를 기다렸다.

민수는 오늘이 자신의 팬 미팅이었지만 누가 진행하는지는 잘 몰랐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였는데 그냥 어련히 알아서 잘 정했거니 하며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입장을 기다리고 있으니 대체 누가 진행하고 있는지 궁금해지긴 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무대에 오르면 누가 오늘 행사를 진행하는지 알 수 있으리라.

“민수 씨 올라가세요.”

스태프의 지시에 민수는 서둘러 무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태준이 민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수는 환한 미소로 자신을 반겨주는 태준을 보며 반가운 마음보다 저 녀석이 여기에 왜 있냐는 생각부터 들었다.

민수는 태준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많은 사람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관객 앞에 서서 인사부터 드렸다.

시작부터 정말 당황스러웠다.

태준은 당황하는 와중에 관객들에게 인사를 드리는 민수를 보며 속으로 웃음 짓고 있었다.

7월부터 촬영에 들어간 태준의 영화는 며칠 전에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적어도 두 달 이상의 편집과 CG 작업이 들어가야 하는 영화였으니 12월 말에 개봉하려면 지금쯤에는 촬영이 종료되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그리고 그 후에 첫 스케줄로 민수의 팬 미팅 사회를 맡았다.

오로지 태준이 순수한(?)마음으로 민수를 위해 자청한 것이었다.

자신보다 민수를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민수의 팬 미팅을 진행하는 것에 자신보다 더 적합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회사에서도 친한 태준이 맡아주면 민수의 마음이 더 편할 거라는 계산에 태준의 제안을 승낙했다.

영화 개봉까지는 앞으로도 두 달이나 남았고 어차피 그 안에 태준이 다른 스케줄을 할 생각도 없을 테니 태준의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는 계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민수가 인사를 마치자 가벼운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자 태준은 빠르게 행사를 진행했다.

첫 번째 순서는 바로 민수의 공연.

가장 중요한 공연부터 마치고 마음 편하게 팬 미팅을 진행하고 싶다는 민수의 의견대로 공연이 가장 빠른 순서에 자리 잡고 있었다.

민수가 마음의 준비를 마치자 태준이 운을 띄우고 소개를 시작했다.

“오늘 민수 씨가 사랑하는 팬분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무대가 있습니다.

몇 달간 방송에서 민수 씨를 볼 수 없어서 서운하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오늘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자 여러분들 모두를 배우 정민수의 단독 공연에 초대하겠습니다.”

태준의 말을 마치자 무대를 포함한 대공연장 전체 조명이 하나둘씩 암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들려오는 내레이션이 공연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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