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58화 (258/325)

#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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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중요 조연인 소희도 자신의 매니저 형우와 함께 민수가 연기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두꺼운 특수 분장을 하고 나온 민수를 보고 소희도 기가 막혀 어이없어했었다.

하지만 연기가 끝난 후에는 생각이 완전히 변했는데 자신도 민수가 좋은 배우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연기의 느낌 자체가 지금까지 와는 전혀 달라서였다.

“허. 처음에는 저게 무슨 짓인가 했는데…..”

형우도 어이없긴 마찬가지였었는지 헛웃음을 지었고 소희도 그 부분에서는 같은 생각이었다.

“그야말로 예산 낭비죠.

특수 분장에 들어간 돈이면 아마 단역 배우 몇 명은 고용할 수 있을걸요.”

“예산 낭비라. 큭큭.

정답은 정답이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웃긴 짓이긴 하지.

저 형도 참 웃기는 형이라니까.

그런데 지금 저걸 보니 그 예산 낭비가 그냥 낭비만은 아닌 모양인데.

저거 확인해 보려고 웃긴 짓을 하면서까지 영화에 들어왔나 보네.

그냥 연기에는 문외한인 내가 봐도 평소에 민수형이 하는 연기랑은 좀 다른데.

내 생각이 맞아?”

냉정하게 꼭 집어 말하는 소희의 말이 재미있어서 웃음 짓던 형우는 천천히 표정을 고치며 조금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영화를 위해서라면 그냥 카메오나 한번 뛰어 줄 일이지 괜한 수선이라고 생각했던 형우도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아무래도 민수가 지금 자신의 무언가를 확인해 보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네요.

민수 선배님이 여름 내내 연기 연습한다고 두문불출이었죠?

그 성과가 저건가 보네요.”

소희도 민수가 자신을 스스로 밝은 연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평가한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건 민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 자신도 밝고 명랑한 연기나 코믹연기는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민수는 어떻게 인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 만에 단점을 거의 고친 것으로 보였다.

자신의 강점만으로도 충분히 통하고 있는 민수였는데 단점을 고치고자 두세 달을 소속사에서만 보내더니 결국 단점을 극복해 낸 것이다.

소희는 민수의 그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물론 자신도 자신의 좁은 연기 폭을 넓히기 위해 독립영화를 몇 편이나 찍기는 했지만 말이다.

“연기 성과 확인이라.

아마 우리가 투자한 영화가 아니라면 저런 짓은 못하겠지?

저게 다 돈이니까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확실히 의미가 있네.

하긴 민수형 정도면 저 정도 케어를 받을 자격이 있긴 하지.

지금까지 해준 게 얼만데.”

형우의 중얼거림을 들은 소희는 민수가 꼭 자신의 연기 확인만을 위해서 영화에 들어온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수연과 민수, 그리고 설아가 나눈 대화를 형우에게 전달해 준 것이다.

형우는 소희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설마 하는 표정을 짓다가 소속사의 배우들이 얼마나 나사 빠진 사람들인지 상기하고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진짜 대체 왜 이 회사에는 나사 빠진 인간들밖에 없는 거야?

저 형도 예전에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점점 이상해지네.

이 바닥이 터가 안 좋은가?

어쨌든 겸사겸사란 거지?

후…. 소희야 넌 저렇게 되지 마라.

너까지 그렇게 변하면 내가 마음이 아플 거 같다.”

그래도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형우는 대체 그게 무슨 유치한 짓인가 싶어서 이야기했지만 소희는 생각이 조금 다른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글쎄요. 경과 좀 봐가면서요.

그 원래 병신 같지만 멋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어이없는 일로 배우들이 저렇게 다 같이 단체 행동하는 게 좀 바보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체감? 소속감? 이런 게 느껴지기도 해서 나쁘지 않아 보였어요.

만약 수연 선배님이 성공해서 태준 선배님의 콧대를 꺾어 준다면 저도 앞으로는 동참할지도 모르겠네요.

다 같이 한발 앞으로 가는데 저 혼자 가만히 있으면 그건 또 웃긴 일이잖아요.

원래 애꾸눈 마을에서는 눈 두 개인 사람이 잘못된 거라고 하니까요.”

소희의 말에 형우는 작게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중에는 소희도 민수의 바보짓에 합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기 배우가 좋다는데 자기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지.

배우의 행복이 곧 자신의 행복이었다.

그리고 영화 “로드 오브 트릭(Lord of Trick)”의 촬영 현장에서는 태준이 뒤늦게 “Cafe Jude”의 정확한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다.

영화를 촬영할 때는 기본적으로 가족들과도 가능하면 거리를 두는 태준이기도 했고 이번 영화가 하나의 보물을 쟁취하기 위해 자신을 아티스트라 지칭하는 범죄자들이 속고 속이는 내용의 영화다 보니 태준에게도 적지 않은 도주 씬과 액션 씬이 배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집중하고 있어서였다.

“에? 수연이가 거기 들어갔어?”

“그렇다네.”

태준은 수연이 설아의 영화에 조연으로 들어갔다는 소식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에휴. 쓸데없이 너무 휴식이 긴 거 같아서 적당히 긁은 거였는데 그게 그렇게 되나?

웬만하면 자기를 원하는 영화에 주연으로 들어갈 것이지, 이수연 하여간 제멋대로라니까.”

“아무래도 설아가 첫 주연이니까 신경이 쓰인 모양이야.

수연 씨가 정도 많고 설아를 워낙 아끼잖아.”

“그건 그렇지.

그런데 거기에 소희 씨까지 들어간 데다가 아버지가 투자자고 민수가 단역에 투자까지 같이 들어갔다고?

그렇게 들어갈 정도로 시나리오가 좋아?”

“글쎄, 배우 지원팀에서는 그냥 그럭저럭이라고 하던데 만약 영화가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해도 노래랑 연기를 병행하는 설아 입장에서 손해 볼 일은 없어 보인다고 평가하기는 했지만.”

매니저의 말에 태준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특히 민수가 굳이 투자자로 들어간 건 어이없기까지 했다.

단역이야 카메오처럼 그냥 설아를 응원하러 간 거라고 쳐도 투자라니, 그러고 보니 민수가 지금 투자자로 들어간 게 어쨌든 영화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긴 할 거 같았다.

그런 식으로라도 이슈 메이킹이라도 하겠다는 뜻일까?

“아? 잠깐…..

그 영화 투자금이 얼마라고 했지?”

“응? 아아. 대충 80억에 +α 라는 거 같던데 영화를 다 찍어봐야 알겠지만 대충 그 정도?”

매니저의 말에 태준은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생각하던 태준은 순간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와. 우리 영화가 250억짜리니까 적어도 그쪽 세 배는 나와야 내가 할 말이 있겠는데.

그런데 노래 부르는 설아에 수연이, 거기다가 민수가 투자하고 소희 씨까지 나오는 영화라니.

생각보다 강적이네. 쉽지 않겠어.

이수연 이거….”

매니저는 태준의 말에 말문이 막힌 채 짜게 식은 눈으로 태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태준과 오랫동안 같이 지내 왔지만 이럴 때 보면 참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긴 예전에 느닷없이 민수를 소속사에 데려가야 한다고 말할 때도 이해를 못 하긴 했었다.

물론 그건 정말 신의 한 수가 되긴 했지만.

“야. 그게 지금 뭐가 중요해?

어디 영화가 투자금 비율로 흥행하디?

원래 얼마가 들어가든지 무조건 관객 많은 게 장땡이잖아.”

태준은 매니저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그게 아니지.

내가 윤태준이고 내 자존심이 있는데

그 영화 못해도 3~400만은 나오지 않을까?

수연이도 있고 아직도 설아 노래는 차트 중상위에서 롱런하고 있으니까 설아 노래 들을 겸해서 굳이 보러 가는 팬들이 있을 거 같은데.”

“그거야….”

“하…. 내가 적어도 1800만은 찍어야 안전하겠군.

그러면 진짜 수연이를 찍소리도 못하게 만들 수 있겠어.

오랜만에 설아에게도 오빠의 위엄을 보여줄 수 있겠고 말이야.

민수한테는 그런 영화 말고 내 영화에 투자했어야 했다고 타박 주면 되겠군.

좋아. 좋아.”

매니저는 태준이 유치한 말을 내뱉으며 의지를 다지는 모습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하긴 승부욕이 상당한 태준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배우들이 직접 맞대결을 펼친 적이 없어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자존심과 승부욕은 태준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차라리 지금까지 민수의 영화 흥행에 마음이 상하지 않았던 것이 더 신기할 정도였다.

소속사 내전(?)이긴 했지만, 자신은 태준의 매니저인 만큼 태준이 월등한 관객 수를 기록하며 콧대를 세울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촬영 중에 단역 및 엑스트라로 바쁘게 움직이던 민수는 소속사에서도 다른 일 때문에 바쁘긴 마찬가지였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팬 미팅 준비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주최하는 대규모의 팬 미팅은 처음이라 민수도 준비할 것이 많았다.

그중에 민수에게 가장 성가신 것은 바로 자신의 자필 사인.

다른 것은 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이것만은 무조건 민수가 손을 움직여야 했다.

“많긴 하네.

하루에 100장씩 해도 시간이 모자라잖아?

100장 하기도 쉽지가 않은데 말이야.”

“겨우 100장이라니요. 어림없어요.

어허! 배우 오빠, 손이 자꾸 보이는데요.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하셔야죠.”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 방에서 사인하는 민수를 수정이 보조하고 있었다.

민수가 사인 하고 있는 곳은 소속사가 준비한 민수의 사진첩.

지금까지 촬영장에서 수정이 틈틈이 찍은 사진들과 예전에 형우가 찍어 놓았던 미공개 사진들, 그리고 전문가에게 문의해 따로 찍은 사진까지 모아 놓은 일종의 화보였다.

이번 팬 미팅에 온 팬들을 위해 소속사에서는 민수의 얼굴이 찍혀있는 텀블러와 친필 사인이 들어간 화보를 준비했다.

간단한 구성이지만 화보가 워낙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팬들도 나름 만족할 것이 분명했다.

사실 팬클럽에서는 벌써 화보에 어떤 사진이 들어갈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야. 이거 은근히 팔이 아픈데.

지금 대충 몇 개나 했지?”

한숨을 쉬며 묻는 민수의 말에 수정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멀었어요. 배우 오빠.

오늘 300개 하기로 하셨잖아요.

내일은 또 대사 많은 배역이라 시간 오래 걸릴 거라고요.”

“하… 그래. 그랬지?”

수정에 채근에 민수는 다시 한숨을 쉬며 사인을 계속했다.

팬들을 만나는 건 그래도 좋았지만 이런 작업은 참 번거롭긴 했다.

복사된 사인보다는 당연히 자신이 친필로 사인을 넣어야겠다고 한 것도 자신이었지만 그래도 5000개는 너무 많았다.

“이거 가지고 뭘 그러세요.

나중에 일본으로 갈 때는 만개는 가져가야 할지도 몰라요.

아마 한국 팬들에게는 친필 사인으로 된 화보를 돌리고 일본에는 복사본을 돌리면 팬들이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요.”

“아… 맞네. 이게 끝이 아니잖아?”

수정의 말에 민수는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냥 사인하는 수 밖에 다른 답이 없었다.

팬 미팅을 마치는 순간 일본의 팬들이 화보의 존재를 바로 알아챌게 뻔했으니까.

수정의 말을 들어보니 일본의 팬 중 한국어에 능통한 팬들은 이미 소속사 홈페이지의 영상을 번역해 올리기도 하고 심지어 팬클럽에 가입해 민수의 행보에 대한 정보를 얻어 일본에 알리고 있단다.

내국인도 아닌 일본인이 자신의 팬클럽에 가입해 있는 건 좀 신기하긴 했다.

“힐링 멘토”의 번거로운 인증방법과 미묘한 분위기 때문에 한국인들도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참 대단한 열성이었다.

“후후후. 우리 배우 오빠.

일본은 그래도 그렇다 치고 중국은 어쩔 셈이세요?

만약 중국에서도 이런 식으로 하면 오빠 거덜 날지도 몰라요?

사인도 한 수십만 개는 해야 될 걸요?”

수정이 음충맞은 표정으로 이야기했지만 민수는 속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팬 미팅을 하겠다고 결심한 후 처음에는 자신도 좀 걱정했지만 중국의 분위기가 한국이나 일본이랑은 매우 다르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중국에서 인지도가 매우 높은 건 사실이었지만 일본이나 한국처럼 팬 미팅에 직접 찾아올 정도로 열성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쉽게 얘기하면 자신이 무슨 행사나 이벤트를 하게 되었을 때 지나가다가 발견하고 오 하고 달려들 사람은 많지만 자신이 날을 정하고 그날 팬 미팅을 한다고 했을 때 굳이 찾아올 정도로 열정적이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중국의 넓이를 생각하면 아마 근처에 사는 사람들 정도나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에이. 안 통하네.”

민수는 투덜거리며 아쉬워하는 수정의 모습에 웃음 지으며 다시 사인을 시작했다.

설령 그렇다고 쳐도 적어도 15000개의 사인본을 만들어야 했다.

중국은 몰라도 일본에는 친필 사인본을 돌려야 했으니까 말이다.

영화에 참여한 민수는 지금까지 대사 한마디를 뱉어도 밝고 익살맞으며 유쾌한 단역만을 선택해서 연기해 왔다.

다양하게 변신하며 단역을 연기한 것이라 영화에 최소한의 폐(?)만 끼치면서 자신이 이제는 긍정적이고 유쾌한 배역을 자신의 마음에 들 정도로 연기할 수 있음 확인한 것이었다.

물론 그 비용이 적지 않았지만, 그 돈은 어차피 민수나 윤 대표의 주머니에서 나왔고 배우들도 다 소속사 식구들이라 별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설아나 수연은 민수가 그런 연기를 할 때마다 완전히 달라진 느낌에 조금 신기해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오늘 해야 할 연기는 조금 달랐다.

분장도 전혀 없이 민수의 모습 그대로 연기를 해야 했으며 분위기도 완전 다른 데다 자신의 성격과도 많이 다른 연기였다.

그야말로 피라미 악역이었는데 지금까지 악역을 연기 해 본 적이 없다 보니 민수도 조금은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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