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56화 (256/325)

#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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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세요?”

“오 민수!”

“오랜만이에요 선배님.”

민수가 대화에 끼어들자 다들 민수를 반겨주었다.

민수가 기억하기에 근래에는 다들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배우들이 이렇게 모일 일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무려 4명이나 모여 있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하긴 수연은 요즘 놀고 있고 소희도 숨 고르기를 하는 중이었으니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민수 오빠.

수연 언니랑 소희 언니가 제 영화에 같이 하고 싶다고 하시네요.

소희 언니는 상관없지만, 수연 언니는….”

“민수 뭐라고 말 좀 해줘.

내 드라마에 헐값에 들어온 너라면 내 마음 이해할 거 아냐?”

민수는 대충 상황을 알만했다.

하지만 좀 의외이긴 했다.

그냥 단순히 이제 그만 쉬고 일을 하고 싶었으면 자신이 주연인 영화를 찍으면 되었으니까.

아마 설아의 영화가 배우의 무게가 가볍다는 이유로 외면받을까 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영화가 어느 정도 흥행하게 되면 그게 아무 의미가 없어지지만, 개봉 전 홍보나 마케팅적인 부분에서는 배우 하나의 이름이 작지 않았으니까.

조연이라도 수연이 끼어 있으면 확실히 무게감이 있을 것이다.

평소에는 운동할 때마다 구박받고 설아에게 투덜대는 수연이었지만 설아를 아끼는 마음은 진심이었으니 이해는 되었다.

하긴 자신도 그 영화에 남주나 남조가 있었으면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설아가 처음 주연하는 영화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까.

“음….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수연 선배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죠.

그리고 소희 씨도 그렇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요.

이런 기회도 흔치 않고 재미있어 보이긴 하네요.

마침 주조연도 딱 여자 두 명이니까요.”

민수가 훑어본 시나리오상으로는 주조연이 여성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주인공을 보살펴 주는 라이브 카페의 사장.

그리고 한 명은 주인공을 밝은 곳으로 이끌어준 소속사 사장.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그냥 성공하는 여주인공의 이야기와는 조금 달랐다.

어떻게 배역이 배정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중에서 가장 많이 변하는 소속사 사장이 더 연기력이 요구되는 편이었고 카페의 사장은 그나마 좀 편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긴 그것도 연기하기에 따라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히힛. 그래 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뭐.

내가 이제 와서 돈을 더 벌거나 이 인기를 유지하려고 아등바등하고 싶진 않아서 말이야.

그냥 재미있게 살고 싶거든.

그러니 우리 설아가 하는 영화는 들어가야지.”

민수는 쿨한 수연의 태도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명리에 가장 초연한 수연다운 태도였다.

그나마 연기 외적인 것에는 무감각한 민수나 금전적인 부분을 신경 쓰지 않는 태준도 입상이나 최고의 배우라는 명예에는 관심이 있는 편인데 수연에게는 그런 것조차 없었다.

“그리고 말이야.

이 영화가 12월 말에 개봉한다지?

그럼 태준이 고 녀석 영화랑 겹친다는 거지.

내가 열심히 해서 고놈 관객을 야금야금 잡아먹을 생각이야.

저번에 드라마 시청률에서 내가 졌다고 얼마나 콧대가 올라갔는지.

게다가 이번 대상은 자신이 맡겨 놨다고 약까지 올리니 진짜….”

“에? 그 바보 오라버니가 그랬어요?

하여간 바보라니까.

좋아요. 언니.

같이 달려서 바보 오라버니 콧대 좀 꺾어 주자고요.”

민수는 이상하게 의기투합하는 설아와 수연을 보며 헛웃음만 났다.

아마 태준이 저번 드라마 끝나고 수연의 약을 좀 올린 모양이었다.

누구보다 수연의 연기를 좋아하는 태준이 아마 수연이 너무 욕심이 없어 보여 자극을 좀 한 것 같은데 그 내용이 너무 유치하긴 했다.

유치해서 효과가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정말 그런 거라면 차라리 자신이 주연으로 대작 영화에 들어가는 게 더 나을 텐데 설아의 영화에 들어가는 것도 좀 웃겼다.

그리고 말은 저렇게 해도 어차피 이건 TV 시청률과는 완전 달라서 100을 놓고 나눠 먹는 시스템도 아니었고 설아의 영화를 본 사람이 태준의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었다.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긴 이슈가 나뉘면 조금 피해가 있긴 하려나.

“지금 태준 선배의 영화는 제작비가 250억도 넘는 데다 벌써 대작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아무리 이 영화가 잘 돼도 태준 선배는 신경도 안 쓰지 않을까요?”

“물론 그거야 그렇지.

이 영화가 100억도 안 들어간 영화니까 아무리 해도 관객수로서는 상대도 안 될 거야.

하지만 잘 들어봐.

태준이 녀석 영화가 250억에 1500만이 나왔다고 쳐봐.

그런데 만약 설아 영화가 80억에 800만 정도 나오잖아?

그럼 내가 태준이한테 가서 이렇게 말할 거야.

250억이나 썼는데 그거 밖에 안 나왔어?

우린 80억 밖에 안 썼는데도 이 정도 나왔거든?

배우가 시원찮으니 그거 밖에 안 나오지 쯧쯧.

돈이 아깝다.

이러면 태준이가 얼마나 약오를까?

그렇게 되면 태준이가 이겨도 이긴 게 아니라니까.”

“오호.”

“…..”

자신 있게 말하는 수연의 태도에 태준을 잘 알고 있던 설아는 그럴싸하다는 분위기였고 객관적으로 생각하던 소희는 그게 무슨 개소리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소희의 생각이 옳았다.

돈이 얼마가 들어갔던 객관적인 지표는 태준이 찍은 영화의 압승이었으니까.

하지만 태준의 사고방식을 잘 알고 있는 민수도 지금 수연의 말은 솔깃했다.

태준에게 별다른 피해를 주지도 않으면서 정신적인 대미지를 주기에 안성맞춤인 방법이었다.

태준의 성격상 이 영화가 그 정도 성적을 내고 그렇게 정신 승리에 들어가면 정말 약 오를 것이 분명했다.

분명 자신이 이기긴 했는데 뭔가 찝찝하고 짜증 나면서 할 말 없는 그 상황.

이건 마치 자신이 카메오에 끌려간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민수는 이 영화가 나중에 어떤 식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좋은 이슈가 생겨난다면 충분히 관객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테고 소희랑 수연이 같이 열연해준다면 어느 정도의 성적도 기대할 만했다.

민수는 순간 이 영화에 자신도 발을 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연의 정신승리에 자신도 가담하리라.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 다 충격적이겠지.

“오. 선배. 진짜 태준이를 잘 아시네요.

좋아요. 왠지 저도 가담하고 싶어졌어요.

어떻게 발을 담글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겠네요.”

“오오. 민수까지 동참이야?

이건 이겼네.”

수연도 민수의 동참을 환영하고 있었다.

분명 영화에 남자 주연이나 조연은 없지만 찾아보면 민수가 발 담글 자리 정도는 충분히 찾을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렇게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본 소희는 고개를 저으며 슬그머니 대표실로 도망갔다.

왠지 계속 거기 있으면 이상한 바보 병에 옮을 거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자신도 저 영화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수연이 움직이고 민수도 적극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건 분명 호조였다.

재미있을 거 같기도 했으니 빨리 가서 윤 대표에게 보고하고 배역을 확정받을 생각이었다.

소희와 수연까지 영화에 가담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윤 대표는 며칠 후 이 영화의 감독이 되어줄 태원을 만나 영화 캐스팅 상황부터 전달했다.

태원도 지금 상황에서는 윤 대표의 제안이 감지덕지라 거절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캐스팅 보드에 이수연의 이름이 떡하니 걸려있자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 영화에 이수연 씨가 들어오나요?

아니 왜요?

올해 주연급 여배우들이 다들 쉬는 분위기라 찾는 곳도 엄청 많을 텐데요.”

조금 당황한 태원의 말에 윤 대표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확실히 자신의 배우들이긴 했지만, 그 녀석들의 생각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음. 진소희 씨라….”

영화판에 몸담은 태원은 요즘 독립영화에서 소희가 어떤 연기를 보여줬는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태원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윤 엔터 배우다운 그런 연기를 보여줬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도 감탄했던 윤숙도 요즘 소희의 연기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으니 연기력은 믿을 만했다.

다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유일한 문제였지만 이 정도 예산의 영화에서 중심 조연을 연기하기에는 충분했다.

“만약 중심 조연으로 두 분이 들어간다면 배분은 어떻게 들어가나요?

어느 분이 소속사 사장이고 어느 분이 카페 주인이죠?”

소희랑 수연이 들어오는 건 무조건 찬성이었지만 역할 배분은 좀 신경 쓰이긴 했다.

만약 두 배우가 같은 배역을 원한다면 좀 피곤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도 이 배우들 앞에선 특별한 의미가 없나 보다.

“배역도 자기들이 다 정해 왔더군.

소희가 소속사 사장이고 수연이가 카페 주인이야.”

“아. 그렇게 정해졌나요? 그럼 상관없죠.”

태원이 안심하자 윤 대표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미안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그 김 감독.

혹시 말이야.

이 영화에 민수가 들어갈 자리가 있을까?”

남자 배역이 없는 영화에 민수가 들어온다는 말에 태원은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네? 민수 씨요?

배역이 없는데요. 게다가 음악 감독이랑 시나리오 수정은 없기로 하지 않았나요?”

“아니, 주조연이 아니라 그냥 단역 말이야.

민수 녀석이 이상한 말을 해서 그러는데.”

태원은 윤 대표의 설명이 이어지자 조금 심각하게 생각을 이었다.

윤 대표의 말 대로라면 민수가 특수 분장을 통해 여러 단역을 소화하겠다는 말이었는데 사실 예전에 어떤 유명한 배우가 그런 기행을 벌인 적이 있었다.

그리고 홍보로 톡톡히 재미를 봤었다.

하지만 윤 대표의 말을 들어보니 특별히 홍보 목적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뜻인 거 같았다.

어차피 단역 배우를 제공하기로 따로 약속되어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건 좀 성가시긴 했다.

주연배우 아우라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연을 연기하던 배우들에게는 그 특유의 느낌이 있어서였는데 예전에 그 일이 화제가 된 것도 주연 배우가 단역과 엑스트라들과 너무나도 잘 아우러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민수가 연기를 잘한다고 해도 지금까지 거의 꽃길만 걸어왔는데 그게 가능할까?

태원은 조금 부정적이었다.

“음…. 민수 씨 특유의 느낌이 있는데 그게 될까요?”

윤 대표도 태원이 부정적이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태원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성과를 시험해 보고 싶다는 민수의 말도 거절하기 힘들었는데 그냥 단순히 돈이 좀 들뿐 다른 기회비용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안 되면 그냥 민수를 빼고 다른 단역 배우를 구하면 되었다.

“그래. 나도 강요할 생각은 없네.

솔직히 주연 배우들을 아무리 꾸며놔도 존재감이 죽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러니 그냥 한 번만 시도해 보고 안 되면 집에 보내게나.

그리고 이건 다른 말인데 민수도 영화에 투자자로 한발 걸칠 거야.”

민수가 영화에 들어오겠다는 건 생뚱맞은 일이었지만 이건 득이 되는 이야기였다.

저번에 민수가 투자하면서 대박 난 “Mama”와 잘 연계하면 괜찮은 이야기가 나올 것도 같았다.

단역으로 들어온 영화에 투자하는 배우라니, 이례적이라서 더 뉴스가 될 것이다.

“그건 괜찮은 일이네요.

민수 씨가 투자하면 금액이 문제가 아니죠.

그 자체로 이야깃거리가 될 테니까요.

나중에 홍보하기 좋은 소스가 될 거 같군요.”

태원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첫날 하루 민수 씨랑 같이 찍어보고 만약 존재감이 너무 크다 싶으면 바로 바꾸는 거로 하죠.

아마 연기적인 부분으로 확인할 게 있나 본데 지금까지 맺어온 관계도 있으니 거절하진 않겠습니다.

그럼 그건 그렇게 알고 있겠습니다.”

윤 대표는 경력이 오래된 감독이라면 기분 나빠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태원이 이해하고 수월하게 받아넘기자 조금 편한 표정이 되었다.

사실 민수 같은 배우가 단역으로 들어오면 감독은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꾸미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만약 알아볼 정도만 돼도 관객들이 시선이 순간 그쪽으로 확 쏠리기 때문이었다.

시선이 넘어가지 말아야 할 순간에 단역으로 시선이 넘어가는 건 감독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러니 이건 처음부터 시선을 모으기 위해 출연하는 카메오랑은 좀 다른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태원은 지금 그런 수고로움을 감수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태원도 마냥 사람 좋게 고개를 끄덕인 것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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