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55화 (255/325)

#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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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표는 가장 먼저 시나리오를 가져온 오택건을 만났다.

영화감독도 아닌 택건이 시나리오를 가져왔으면 적어도 자신만은 플랜은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고 택건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아야 자신도 계획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택건이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아무리 설아가 졸라도 영화에 투자할 생각은 없었다.

투자를 생각할 때 자신은 단순히 배우의 소속사 대표도, 그렇다고 설아의 아버지도 아닌 투자자 윤강철이 되어야 했다.

윤 대표는 적어도 택건이 비전을 보이지는 못해도 방향 정도는 제시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윤 대표는 아무리 자신이 가져온 시나리오라도 택건이 자신의 위치인 음악 감독의 영역 이상의 참견을 허락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어쨌든 영화는 감독의 뜻대로 찍는 것이 옳았다.

사공이 둘이 되는 건 윤 대표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으니까.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영화에 투자까지 해 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군요.”

“아,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시나리오가 완전히 바뀌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제작은 감독님이 알아서 하실 일이죠.

전 그 안에 제가 원하는 음악을 넣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다만 감독님이 정해지면 제가 이번 영화에 쓸 음악을 먼저 들려드리고 싶군요.

아마 영화 촬영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윤설아 씨가 주연이라면 다른 배우들은 아무래도 좋습니다.

다만 윤설아 씨가 아니라면 이 영화를 찍을 생각도 없으니 그 점만 고려해 주십시오.”

“아. 보수는 괜찮습니다.

한국에 돈 벌러 온 것도 아니니까요.

다만 VIP 시사회 때 티켓 몇 장만 쓸 수 있게 해주십시오.

꼭 초대해야 하는 분이 계시는데 누구보다 먼저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으니까요.”

윤 대표는 아까 택건이 했던 말들을 생각하며 민 여사와 이 영화를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태건이 특별히 생각해 온 바는 없어 보이지만 그만큼 어떤 권리도 원하지 않는 모습이라서 윤 대표는 합격점을 내렸다.

그건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일임하겠다는 뜻이었으니 차라리 나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한 방향이 “음악은 내가 영화는 전문가가” 라면 자신과 충돌할 일은 없을 테니까.

택건과 대화해본 윤 대표는 그에게서 특별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자신감 넘치지만, 명리에는 조금 무감각하고 자신의 영역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모습에서 점점 호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은근히 풍겨오는 장인정신이 윤 대표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확실하더군요.

버클리 졸업생인 것도 확실하고, 이번에 미국에서 앨범을 제작하고 온 것도 확실하고요.

처음에 설아에게 소개한 말이 다 사실이었어요.

아, 물론 자신이 빌보드 탑에 올라갈 거란 말은 뭐 아직 알 수 없지만요.”

택건에 대하여 대충 조사해본 민 여사는 그의 말이 대부분 사실이라는 걸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애당초 버클리에서도 괴짜로 통했고 재학들도 아직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알아내는 것도 너무 수월했다.

윤 대표도 택건과 이야기 해보고는 그가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란 걸 금방 알아챘다.

그러니 설아에게 들은 능력도 아마 진짜가 맞을 것이다.

“그래.

헛소리할 사람으로는 안 보여.

게다가 자기 위치도 정확하게 지킬 거 같고.

감독에게 월권을 행사할 거 같진 않군.”

“그래서 투자는 확정인가요?”

“그러려고 해.

시나리오도 크게 모난 데가 없고 설아가 첫 주연이니 차라리 부담 없는 입장에서 연기하는 게 더 나아보기도 하니까.”

투자는 확정되었지만, 윤 대표의 심각한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지금 생각보다 꼬인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제작사를 따로 운영하지 않는 윤 엔터에서 영화를 만들려면 적어도 감독과 영화 제작팀이 필요했다.

지금까지 2편의 영화를 수월하게 만들 수 있었던 건 찬진의 팀을 편하게 고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때마침 찬진이 자신의 영화를 촬영 중이었다.

치트키 하나를 잃은 윤 대표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단역배우를 책임 져 주던 강환의 극단조차 상연에 한창이니 곤란이 더 가중된 상황.

어제 두 곳을 연락해 보고 상황을 파악한 윤 대표의 얼굴이 구겨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설아가 갑자기 시나리오를 가져오는 바람에 사전에 그들의 스케줄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패착이라면 패착이었다.

민 여사는 구겨진 윤 대표의 표정을 심각하게 바라보다가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어쩌면 이 이야기가 해결책이 될 수도 있어 보였다.

“음… 지금 김태원 감독은 마땅히 차기작을 못 정했다네요.”

“김태원 감독? 결국 상업 영화판에 남은 건가?”

“네. 지금 차기작을 찾고 있나 본데요.”

“하긴, 그렇게 첫 영화에서 빛을 보게 되면 다시 돌아가기가 쉽지는 않지.

김태원 감독이라…. 찬진이 말을 들어보니 그래도 제법이라고 하던데.

하지만 이번 영화가 작품상이나 각본상, 감독상을 받은 게 아니라 윤숙 누님이 연기상을 받은 거라 김 감독이 크게 인정받지는 못할 거야.

물론 이대로 어떻게든 두어 편을 더 흥행시키면 그런 말들이 쑥 들어가겠지만, 지금이야 윤숙 누님이나 민수의 인기 빨을 받았다는 말이 안 나올 리가 없지.”

“그러게요. 그래서 차기작을 맡기가 힘든 모양이에요.”

“흠… 김 감독이라….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나쁘지 않지.”

윤 대표가 신중하게 고민하는 듯하자 민 여사는 설명을 추가했다.

아마 이 설명이 윤 대표에게 판단에 큰 도움이 되리라.

“혹시 기억나세요?

김 감독이 처음에 시나리오 가져갔던 제작사요.”

윤 대표는 민 여사의 설명을 들으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예전에 민수와 얽혀서 갑질 논란이 일어난 제작사 “두두 픽쳐스”는 그 뒤로도 한동안 떠들썩했다.

외부에 갑질하는 사장이 내부에서 갑질을 하지 않을 리가 없었고 결국 그것까지 터지면서 점점 나락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안 좋은 이미지가 계속 누적되자 사장이 결국 자금을 들고 야반도주.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찾지 못하고 있단다.

사장이 그렇게 되자 회사도 결국 사라지고 다 각자 제 갈 길을 찾아갔지만 문제는 제작 스태프들이었다.

감독마다 자신들의 스태프를 꾸리고 다니는 현재 한국 영화계의 실정상 그들이 다시 자리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영세한 제작사라 스태프를 꾸릴 정도의 역량을 가진 감독이 없었다는 점이 그들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두두의 촬영 감독이 태원을 만나게 되었고, 이제 본격적으로 상업영화의 길을 걷고자 했던 태원에게 주인(?) 없는 두두의 스태프들은 잘 차려진 밥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여러 번 서로 손발을 맞춰온 스태프들을 신인 감독인 태원이 어디서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두두 의 스태프들은 나름 준수하다고 평가되는 재원들이었고 만약 그들이 각자 찢어져서 제 갈 길로 흩어졌으면 자리 잡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 맞춰온 손발이 아까워 혹시 자신들 전체를 원하는 새로 생기는 제작사들을 알아보는 중이었고 만약 이대로 시일이 더 지났으면 그들도 각자 제 갈 길을 갈 수밖에 없었을 테니 태원도 운이 좋은 편이었다.

영화 수익의 일부를 배당받은 태원은 당분간 스태프들을 건사할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스태프들도 다 각자 흩어지는 것보다는 새로운 감독, 그것도 연기상이긴 하지만 칸에 초청받아 갔다 온 감독에게 한번 걸어보자는 식으로 의견이 모였다.

그렇게 의기투합한 태원과 두두 스태프들이 다음 영화를 찾고 있다는 것이 민 여사의 설명이었다.

“허허. 그게 그렇게 돌아갔다고?

진짜 어이없긴 하네.

야반도주도 웃기는데 그 스태프들이 하필 김태원 감독이랑…..

무슨 그런 인연이.”

“어차피 문제는 사장이지 스태프들이 무슨 죄겠어요?

스태프들도 김 감독한테는 별 감정 없다고 했어요.

원래 그런 놈이었다고 하면서요.”

“그럼 김 감독이 지금 스태프들까지 데리고 있다는 뜻이렷다?”

상대하기 편한 김태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어차피 태원과 같이 작업을 하더라도 따로 스태프를 구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민 여사의 말대로라면 김 감독만으로도 제작진은 충분히 보충된다는 말이었으니 충분히 고려할 만했다.

“김 감독으로 한다면 다음 문제는 이제 배우들이네요.

원래 제작사들은 따로 계약하고 있는 연기학원에서 단역 배우들을 섭외하는 편인데, 영세했던 두두가 계약한 곳이 제대로 된 곳일 리는 없겠죠?

당신은 단역도 어느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건 그렇군.

조연 배우들도 신경 쓰이지만 단역도 문제긴 하지.

가끔 단역 때문에 씬이 완전히 죽는 경우도 생기니까.

그래도 그건 김 감독이랑 말해보고 결정하자고.

김 감독이 알고 있던 재야의 배우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독립 영화를 몇 편이나 만들어 봤으니 적어도 몇 명은 있을 거야.”

그렇게 윤 대표가 제작진 섭외 밑 기타 잡무에 열중하고 있을 무렵.

윤 엔터에서는 여배우들이 모여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윤 엔터는 지금 전체적으로 설아가 새롭게 들어가는 영화에 관한 업무로 떠들썩했다.

태준이 들어간 영화야 정해진 제작사가 있어서 태준이 따로 할 일이 없었다.

배우로서 연기만 잘하면 됐으니까.

자연스럽게 지원팀도 태준이 연기하는 것만 신경 쓰면 됐다.

하지만 설아의 영화는 윤 엔터에서 작은 하나까지도 다 챙겨야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소속사가 떠들썩해질 수밖에.

그리고 소속사가 떠들썩하니 독립영화 후 휴식을 취하던 소희와 마냥 놀고 있던 수연까지 이 사실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에? 언니 진짜요?

언니가 들어올 만한 배역이 없을 텐데요.

여주 원탑 영화라서 남은 건 조연 뿐인데…..”

“뭐 어때? 그냥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나도 뭐 드라마에서나 이수연이지 영화에서야 뭐 별거 없잖아.”

설아는 느닷없이 찾아와 영화를 같이 하자는 수연의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이야 수연이 같이 해준다면야 좋긴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장 문제는 역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수연의 몸값.

그리고 배역이었다.

자신이 영화에서 별거 없다는 말과는 다르게 지금 수연의 몸값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보장된 물오른 연기력, 그리고 여러 가지 긍정적인 이미지.

영화 경력이 별로 없다고 해도 연기 경력이 짧지 않은 수연이었고 주연으로 꾸준히 대본이 들어오는 건 그만큼 수연에 대한 평가가 좋다는 뜻이었다.

“언니 지금 언니 몸값이 얼만지나 알고 하시는 말이에요?

주연보다 비싼 조연 해보시려고요?”

설아의 걱정스러운 말에도 수연은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손을 휘저으며 쿨하게 대답했다.

“에이 개런티는 무슨.

투자자가 선생님이랬지?

그냥 적당히 런닝 개런티로 3~4% 달아 놓으시라고 해.

설아가 잘하면 나도 덕 좀 보게.

태준이 그것이 저번에 700만밖에 안 나왔는데도 제법 가져왔더라?

역시 배우라면 러닝 개런티지. 암 그럼.”

음침하게 웃으며 너스레를 떠는 수연의 모습에 설아도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말은 저래도 돈 때문에 자신이랑 영화를 찍을 리가 있나.

지금도 주연으로 계속 섭외가 들어오는데 그런 영화를 찍었겠지.

“언니도 참….”

소희는 수연과 설아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차분하게 한마디 거들었다.

소희도 자리가 있으면 이번에 영화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윤숙도 웬만하면 이제 상업영화에도 발을 밀어 넣으라고 충고했으니까.

“그럼 난 어때?

나도 대표님한테 여쭤보고 자리 있으면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기왕이면 나도 이번에는 좀 편하게 가고 싶어서.

우리 배우들 들어가는 영화니까 엉뚱한 건 아닐 거고.”

상업 영화에 들어가고 싶었던 소희는 최근에 형우가 한 말이 생각났다.

형우는 소속사에서 만드는 영화가 있으면 두말없이 들어가야 한다고 조언했었다.

요즘 소속사 기세를 생각하면 뭔 짓을 해도 될 거라나.

그 중 민수나 설아가 들어가는 건 요주의 대상이라고 했었다.

민수는 그냥 재신의 사랑을 받는 남자고, 설아는 윤 대표가 열과 성을 다해 서포트 할 거니 실패할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특히 윤 엔터의 진정한 실세(?)인 설아가 움직이면 민수도 움직이고 다른 배우들, 그리고 소속사 직원들까지 미친 듯이 적극적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지금 수연이 움직이는 걸 보니 정말 그런 거 같았다.

일견 설아가 편애를 받는다고 서운할 수도 있었지만, 소희에게 그런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실 중국에서 계속 돌았으면 소속사로서는 훨씬 이익이었을 텐데 독립영화판에서 계속 노는 걸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윤숙까지 자신을 따라다니며 신경 써 주는 걸로 이미 과하게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약 자신에게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언제나처럼 그렇게 배우들이 발 벗고 나서 주겠지.

예전에 “용의 울음”에 모든 배우가 두 팔을 걷어붙인 거처럼 밀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꽃피우고 있는데 저쪽에서 민수가 나타났다.

민수는 여배우들이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어 서둘러 대열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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