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53화 (253/325)

#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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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민수는 윤 대표의 권유를 받아들여 준성 식품의 전속 모델이 되었다.

정말 준성 식품의 요청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였고 웬만하면 CF를 찍고 싶은 생각이 없던 민수도 처음부터 꾸준히 자신에게 광고 모델을 제안하는 준성 식품과의 의리를 완전히 저버리기는 힘들었다.

우선 진 라면 과 준성 사이다의 광고를 다시 갱신해 새로운 버전으로 촬영하고 이번에 출시하는 새로운 제품인 “어머니라면” 의 CF를 촬영했다.

계약의 골자는 분명 하나지만 결국에는 3개의 CF를 찍게 된 민수는 속으로 한숨을 지을 뿐이었다.

다만 이번 신제품 “어머니라면”의 깔끔한 국물 맛은 정말 민수 마음에 들었다.

선전이고 뭐고 역시 식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맛이었으니 이번 제품은 정말 잘 팔릴 거 같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연기 연습.

민수는 자신이 만든 캐릭터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양한 감정을 가진 캐릭터를 번갈아 연기하면서도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것이 최종목표였는데 점점 그 목표에 근접해 가는 기분이었다.

“이거 되겠는데.

잘하면 이번 팬 미팅에서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어.”

민수는 이번 자신의 팬 미팅에서 자신만의 일인극을 선보일 계획이었다.

자신의 첫 팬 미팅이 생각보다 맹숭맹숭했다는 기억 때문이었는데 이왕에 팬 미팅을 하는 김에 팬들에게 한가지 즐거움을 추가해 주고 싶어서였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설아의 팬클럽 “프로즌 페어리”의 멤버들을 만나고 난 후였다.

예전에 설아가 한 말이 사실이 되어 결국 50인의 용사들이 윤 엔터를 찾아왔다.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남성으로 구성된 이 삼촌 팬들의 집단은 처음에는 설아의 섹시함(K-G 뮤비에서 섹시 바텐더)에 그리고 그 후에는 도도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미스 신데렐라”의 제니)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아의 매혹적인 노래에 완전히 빠져 열성 팬이 되었다는데 대부분 유부남으로 구성된 이 집단을 보며 민수는 저래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남자들이 웃으면서

“걱정하지 마세요.

설아를 진짜 여자로 보는 바보는 여기에 전혀 없고 어차피 마누라도 태준 씨나 민수 씨 팬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그러니 잊지 말고 사인 좀 부탁드려요.”

라고 말하는 바람에 걱정을 접어 둘 수 있었다.

하긴 부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이렇게 찾아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니 민수는 자신의 사인을 원하는 남자들에게 흔쾌히 사인을 전달했다.

“설아의 목소리에는 진짜 색다른 뭔가가 숨어있죠.

감성을 자극하는 특별함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벌써 팬 미팅 때 요청할 신청 곡 작성에 다들 열을 올리고 있으니까요.”

이 말을 들은 민수는 문득 설아는 팬 미팅에서 노래를 불러주면 다들 좋아할 텐데 자신은 어떤 걸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배우마다 다들 나름의 장기가 있어서 특별한 무대를 하나 정도는 다 보여줄 수 있었다.

우선 태준은 소소하게 다 잘했다.

프로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팬들이 그 정도를 요구할 리가 없으니 적당한 춤과 노래로 팬들을 즐겁게 해 줄 수 있다는 의미였는데 실제로 태준은 팬 미팅 때마다 그런 무대를 보여주곤 했었다.

그리고 수연.

수연은 게임을 잘했는데 이게 무슨 특기가 될까 싶지만 실제로 수연이 저번 팬 미팅 때 같이 게임을 한다는 연예인 친구들을 불러다가 팬 중 몇 명과 즉석에서 시합을 벌이는 이벤트를 진행했었다.

게다가 요즘 예능을 하면서 입담이 더 좋아져 그냥 말로 토크쇼를 진행할 정도였으니 수연은 그걸로 충분했다.

소희는 걸그룹 지망생답게 춤 하나로도 충분히 팬들을 열광시킬 특별 무대를 꾸밀 수 있었다.

스타성이 없다고 무시당하던 소희였지만 솔직히 성격적인 건 거의 극복한 상황이었고 게다가 이미 스타가 돼버린 상황에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마 소희가 팬 미팅에서 그런 화려한 댄스 무대를 선보이면 팬들이 다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은우.

은우는 어떤 의미에서는 민수와 좀 비슷했다.

특별한 장기가 없다는 뜻이었는데 대신 은우는 엄청난 인맥과 애교가 있었다.

어차피 샤방샤방한 은우가 좋아서 찾아오는 어린 여성 팬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친한 아이돌을 불러서 같이 적당한 무대만 보여줘도 팬들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었다.

은우는 지금까지 그런 품앗이를 해왔었다.

물론 그들의 팬 미팅에 은우도 따라가서 사회를 봐주거나 해야 했지만 어쨌든 유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솔직히 은우가 민수보다 기본적으로 노래나 춤 실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민수는 그런 게 없었다.

이상하게 박자감이 엉망이라 노래도 거의 음치 수준.

몸을 잘 쓰니 춤을 잘 출 거 같지만, 그 이상한 박자감 때문에 춤조차 이상했다.

그렇다고 말을 그렇게 재미있게 잘하지도 못하고.

그나마 장기는 요리인데 한두 명이면 몰라도 수천이 모일 팬 미팅에서 그 장기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민수가 생각한 것이 바로 연기.

이걸로는 최소한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진 않을 거 같았다.

어차피 캐릭터 창조와 숙달이 필요한 시기였으니 겸사겸사 병행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민수는 연기 연습에 열중하며 지금까지 연락이 뜸했던 소소한 인연들과도 자연스럽게 소통을 늘려나갔다.

지금까지는 바쁘다는 이유로 잠시 잊고 살았던 인연들 말이다.

연예계 외적으로는 이모님이 있었다.

민수가 사망할 때까지도 정정했던 이모님은 여전히 건강하고 푸근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가끔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예전에 민수가 여기 살았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 모습이 재미있다고 하셨는데 사람들은 못 믿다가도 큼지막한 민수의 사인과 지금까지 고마웠다는 글귀를 보면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눈을 떼지 못한다고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연예계에 몸담은 리온과 이찬성 피디.

이찬성 피디는 “남자의 생존” 이후 2개의 예능에서 무난한 성적을 기록하고 아예 예능 피디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다만 성격 탓인지 요즘에는 독한 예능이 점점 대세로 올라오고 있는데 그 부분을 완전히 적응하지 못해서 힘들다고 했다.

민수는 자신이 예능에 재능이 있었으면 한번 도와주기라도 할 텐데 자신이 가면 되레 손해만 끼칠 거 같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이 그냥 옆에 서 있기만 해도 도움이 된다는 걸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민수의 무지였는데 나중에 자신이 도움 될만한 몸 쓰는 예능을 제작하게 되면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이었다.

차라리 대놓고 도와달라면 당연히 도와줄 민수였지만 찬성의 성격 자체가 그러지 못하니 그건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리고 아이돌로 인기의 정점을 찍은 이카루스의 리더 리온은 각 멤버들이 개인 활동에 들어가자 자신도 다시 연기자로 도전하게 되었다.

서로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고 있던 민수는 리온이 드라마에 들어간다는 소식에 선전을 기원해 주었다.

이카루스가 너무 인기 있는 바람에 배우로서 활동할 시기를 놓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열정이 있고 재능도 있는 리온이었으니 민수도 리온이 좋은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하긴 지금의 리온은 보통 수준의 연기만 보여줘도 사람들이 열광할 테니 별문제 있을 리가 없었다.

가장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것은 바로 민수가 마음속으로 어머니같이 생각하는 조윤희 여사였다.

영화 촬영 때문에 명절에 찾아가지 못한 민수는 시간이 나자 역시 가장 먼저 윤희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의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바로 윤희가 곧 재혼하게 된다는 소식이었다.

찾아뵙지 않았을 뿐 연락은 꾸준히 드렸던 민수조차 금시초문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멋쩍은 표정의 윤희는 확실한 일이 아니라 성급히 알리지는 못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직접 뵙는 것은 처음이군요. 반갑습니다. 김정현입니다.

미관말직이지만 공직에 몸담고 있습니다.”

낮지만 또렷하고 힘 있는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 중년의 남성은 윤희와 남은 생을 해로할 상대방이었는데 두꺼운 눈썹과 단단한 하관이 심지가 굳고 믿음직한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딱 보기에도 신뢰를 주는 태도에 성정도 맑아 보이는 것이 윤희와 남은 인생을 같이 보듬어 갈 수 있는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줄 거 같았다.

딸에게 등이 떠밀려 “힐링 멘토”의 사교모임(예전에 민수의 팬 미팅으로 시작한 그 모임이 이제는 사교모임으로 변질된 지 오래임)에서 윤희를 만났다는데 그러고 보면 민수가 이 커플의 탄생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대부분 이런 식의 황혼 재혼은 자식들이 반대하고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디자인을 전공하고 싶어 하던 그의 딸은 윤희를 보자마자 바로 팬 모드로 돌변해 이제는 정현보다 윤희를 더 따른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하긴 디자인 전공이 목표면 윤희가 바로 신처럼 보이긴 할 것이다.

“호호. 이이가 참 점잖긴 한데 패션 감각도 엉망이고 가끔은 양말까지 짝짝이로 신고 다닌다니까.

챙겨줄 보람이 있다고나 할까?

그리고 나중에 윤정이는 꼭 파슨스로 보내야겠어.

생각보다 재능도 있는 거 같고.”

작게 웃으며 새로운 가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윤희의 모습을 보니 작년 설날에 혼자 쓸쓸해 하던 그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민수는 밝은 윤희의 모습이 진심으로 보기 좋았다.

윤희는 민수에게 조만간 가족끼리 하는 언약식에 참석해 줄 수 없는지 물어보았다.

윤희와 정현, 정현의 딸 윤정, 마지막으로 민수가 윤희의 아들 대신 언약식의 증인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민수는 당연히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언약식에 참가해 윤희와 정현의 결합을 진심으로 축복했다.

지금까지 공허하게 살아왔던 윤희가 새롭게 다가온 가족들과 새로운 행복을 다시 만들어가길 마음속으로 기원하면서 말이다.

참고로 “민수네”의 일원이던 윤정은 민수의 등장에 기절할 듯이 기뻐했다.

그리고 같이 찍은 사진을 팬 카페에 올려 많은 부러움을 샀다나?

외부 활동이 적어 수정이 올리는 사진 외에는 다른 사진을 찾기는 좀 힘든 민수였기 때문에 사적인 사진은 레어 아이템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한여름 8월.

민수가 어느 정도 연습을 마치자 수정은 민수에게 팬 미팅 일정을 조르기 시작했다.

하긴 수정의 성격에 두 달이나 기다렸으면 참 오래 기다리긴 했다.

하지만 민수는 적어도 한두 달 더 연습해 완벽하게 준비를 마치고 싶었다.

사실 지금 연습은 길면 길수록 민수에게 좋았으니까.

수정도 민수의 뜻을 거스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수정에게도 사정은 있었으니 적어도 일정을 확정은 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무조건 한국의 “민수네”를 모조리 초대하고 싶었던 수정은 일시는 늦어도 좋으니 확정된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야 팬들도 자신의 시간을 조율할 테니 말이다.

민수도 이 부분에서는 수정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11월을 제시했다.

혹시 수정이 격하게 반대한다면 살짝 10월 정도로 당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정의 반응은 생각보다 온건했는데 이건 또 의외였다.

“엑? 11월이요? 너무 늦지 않아요? 3달이나 더 기다리라니….”

생각보다 늦은 시간이라 수정도 움찔했지만 민수가 괜히 일정을 미루는 것은 아닐 테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일시를 확정해 주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네. 배우 오빠.

그럼 그렇게 알고 오피셜로 넘기고 바로 회사 쪽이랑 조율 들어갈게요.”

“그래 수정아. 부탁 좀 할게.”

민수로서는 자신의 팬클럽 회장이 근처에 있어서 참 편하긴 했다.

수정에게 말하면 바로 전달이 되고 수정이 알아서 회사와 조율도 해주니 편할 수밖에.

그리고 그렇게 일정을 확정하고 다시 연습에 매진하려는 민수에게 조금 진지한 표정의 설아가 찾아왔다.

설아의 노래들은 아직 차트 상단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팬덤에 의해서 차트 상단에 오른 것이 아니라 순전히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손에 차트가 올라간 설아였고 독보적인 음색으로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으니 노래의 수명이 길 수밖에 없었다.

설아는 두어 번의 라디오 활동을 끝으로 가수 활동을 더 이어나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배우로 다음 작품을 물색하는 중이었는데 저렇게 진지한 얼굴로 다가오는 걸 보니 배역에 대한 고민이 생겼나 보다.

도대체 무슨 고민일까.

민수는 진지한 얼굴로 설아의 말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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