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52화 (252/325)

#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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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는 설아의 내심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조금 편해진 표정에 만족하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편해지자 자연스럽게 여러 의문이 뒤따랐다.

설아의 가수 데뷔 일정이 궁금해진 것이었다.

“그럼 다음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나설 생각인가요?”

“그냥 피쳐링에 음원 발매 정도만 생각하고 있어요.

어차피 제가 무대에 서고 그러긴 힘들 테니까요.

그리고 반응이 괜찮으면 나중에는 OST 정도려나요?

우선 지금 생각은 그래요.”

하긴 배우인 설아가 본격적으로 가수로 나서는 게 아닌 이상 본격적인 무대 활동은 힘들 것이다.

무대란 것이 그리 쉽게 꾸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기회비용이 장난이 아닐 테지.

그 시간이면 다른 작품을 하나 더 할 수 있을 정도일 테니.

하지만 우선이라는 말에서 상황이 변하면 다른 방식으로 움직일 거라는 의도가 느껴졌다.

어쩌면 진짜 가수로서의 활동도 병행할 각오가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피쳐링은 우선 규진 씨랑 하기로 했어요.

사실 마스크 싱어에 나가자마자 가장 먼저 요청이 들어왔었거든요.

서로 시간이 잘 안 맞아서 계속 미뤄줬는데 지금 그쪽이 개인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니 시기적으로 맞아 들어갔죠.”

“규진 씨면…. 아아. K-G요?

하긴 지금 이카루스가 각자 활동을 시작한다고 했었죠?”

이제 완전히 아시아를 먹어 치운 이카루스는 언제까지인지 기약 없는 개인 활동에 들어갔다.

래퍼인 K-G 역시 솔로 활동으로 자신의 개인 앨범 제작에 들어간 상황.

그리고 예전부터 탐내왔던 설아와의 피쳐링 곡을 한 곡 발매할 생각이었다.

설아로서는 뮤비 때의 인연도 있어 첫 음악 활동이라는 부담감을 조금 덜 수 있었으니 나쁘지 않은 상대였다.

게다가 K-G랑 같이 음원을 내면 화제성도 보장될 테니 이래저래 이득이 많았다.

“네. 그래서 K-G 씨가 이번에는 꼭 작업을 같이하자고 해서요.

제가 지금까지 거절한 것도 있고, 이왕에 음원을 낼 거면 아는 사람이랑 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요.”

“음… 확실히 그건 그렇네요.”

“그리고 제 개인 앨범은 아크쥰 이던가? 이분이 프로듀싱해 주시기로 했는데요.

예전부터 워낙 적극적이시고, 어머니가 알아보니 괜찮은 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

아크-쥰. 아마 본명이 조철수던가? 이 프로듀서는 전생에서 세라의 거의 모든 앨범을 제작한 프로듀서였다.

워낙 괴짜라 자신의 마음에 드는 목소리를 가진 가수만 프로듀싱하기로 유명한 이 프로듀서는 세라의 목소리에 반해 자신의 뮤즈로 삼았었다.

물론 어느 순간부터 세라가 직접 작곡을 시작하면서 곡 자체는 주지 못하게 됐지만, 앨범을 제작하는 건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도 아크-쥰이 설아의 목소리에 큰 감흥을 느낀 모양이었다.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설아가 아크-쥰의 곡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크-쥰이 가수를 보고 그 가수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곡을 주는 거로 유명한데 설아가 어떤 곡을 받아 어떻게 부를지 정말 기대가 되었다.

사실 민수는 설아의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가수가 되는 것에는 부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에 노래를 부르던 세라는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으니 어떻게 그런 일을 다시 권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설아를 더 잘 알아가고 지켜보며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도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상황이 변하면서 사람이 완전히 변한 자신처럼 그렇게 설아도 완전히 달라진 것이었다.

이게 참 당연한데도 그때는 확신하지 못했었다.

이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인 상황이었고 자연스럽게 설아의 노래가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민수만 아는 비밀이었는데 설아가 좋은 연기자인 것은 분명했지만 개인적으로 민수에게는 노래하는 설아가 더 매혹적이었다.

아마 민수가 훌륭한 배우인 것을 설아도 인정하지만 요리하는 민수를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렇군요. 기대할게요.”

“헤헤. 기대하세요. 정말 좋은 노래를 부를 테니까요.”

기대 섞인 민수의 말에 설아도 정말 좋은 노래를 부를 각오가 만만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지친 표정의 태준이 휴게실로 들어섰다.

요즘 한창 바쁘게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태준은 지친 표정으로 흐느적거리며 민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오. 윤 배우네. 요즘 바쁘다며?”

“흑. 이건 너무하잖아.”

민수가 태준을 반겨주자 태준은 민수에게 바로 하소연부터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번에 태준이 찍는 CF가 무려 5개.

거기다가 각종 인터뷰나 화보 촬영은 덤이었다.

태준으로서는 충분히 반발할 만한 스케줄의 향연이었지만 여러 가지 자료를 들이대는 민 여사를 거역하지는 못했다.

특히 민수가 이번에 벌어온 개런티 금액을 말해주며 우리 아들도 이 정도는 벌어와야지? 하는 민 여사의 말에는 대답할 말이 궁색할 지경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기분 나쁜 일이 친구나 엄마 친구 아들 혹은 옆집 아들이랑 비교하는 거라는데 이건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엄마 친구 아들이나 옆집 아들은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이지 않은가.

심지어 자신이 민수를 카메오로 뺀 일을 들먹이면서 자신 때문에 민수가 CF찍을 시간이 없었다는 말에는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 시간에 민수가 CF따위를 찍을 리가 없다는 걸 자신도 알고 민수도 알고 회사 모든 직원이 다 알 텐데 정말 너무했다.

“야. 솔직히 그 시간에 네가 CF 같은 걸 찍을 리가 없잖아.

이건 진짜 너무한 거 아냐?”

자신이 휴식을 취하며 연기에 대해 고민한 시간에 고된 스케줄을 소화한 태준이 좀 안쓰럽긴 했지만, 왠지 은근히 고소한 기분을 떨치기는 힘들었다.

이런 걸 쌤통이라고 하던가?

역시 세상에도 아직은 정의가 남아있었다.

“저런. 너무하긴 하네.”

“정 배우….. 왠지 너 지금 쌤통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태준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자 민수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런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참 애석해. 드라마 끝나고 바로 휴식에 들어가고 싶었을 텐데.

24부작 드라마가 좀 피곤한가?

이제 얼마 안 남았다면서? 조금만 기운 내게.”

흐뭇하게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민수에게 태준도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뭐 아니라는데 화색이 도는 얼굴에는 깨소금만 가득했다.

자업자득이라 태준도 자신이 한 짓이 있어 한숨만 쉬고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런데 너 진짜 장난 아니더라.

나도 할 말 많은 놈인데 정산표 한 장에 내가 입을 닫았다니까. 진짜 네 말대로 몇 배는 벌어오겠다는 게 실현될 줄은 몰랐어.”

“후후. 그 정도는 기본이지.

내가 말했잖아. 승산 있다고.”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주제에 민수는 당연하다는 듯 으스대고 있었다.

설아도 예전에 분명 민수가 별로 기대하지 않는 모습을 봤는데 저러고 있으니 좀 웃기긴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 정도 과시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개런티 쪽으로 벌어온 돈은 민수가 단연 탑이었으니까.

아마 태준이 본격적으로 중국에 진출하지 않는다면 저 격차를 줄일 방법은 없을 것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스케줄이 치어 살던 태준도 드디어 스케줄을 마무리하고 겨우 한숨 돌리게 되었다.

원래는 한두 달 쉬다가 다음 작품을 알아보려고 했던 태준의 휴식 시간이 한 달 정도로 줄어든 것이었다.

하지만 기회를 틈타 수연과 해외여행을 떠나겠다는 원대한 포부는 지켜지지 못했다.

수연이 뜬금없이 예능에 고정으로 출연하기로 결정해서였다.

수연이 출연하게 된 방송의 정식 명칭은 “헤드 샷”

요즘 트랜드로 자리 잡기 시작한 독한 예능 프로그램 중 하나였는데 6명의 여성 MC가 게스트를 모셔 놓고 조금 장난스럽고 짓궂은 질문과 가끔은 과거의 잘못을 후벼 파기도 하는 그런 토크쇼였다.

여기서 수연의 캐릭터는 직설적이고 칼 같은 태도의 예쁜 사차원 또라이였다.

워낙 평소에도 가식을 부리지 않는 수연이었고 윤 엔터에서 가장 예능 감이 좋은 편이라 즐겁게 촬영 하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태준도 이 쇼에 초대되어 갔다가 MC들한테 떡실신을 당하고 돌아왔다.

물론 민수에게도 은근히 섭외가 들어오긴 했다.

하지만 민수는 태준이 실신 당하는 걸 보고 “와 저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애써 고사했고, 수연은 몹시 아까워하며 입맛만 다셨다.

어쨌든 예능 출연은 수연에게 여러 가지 즐거움을 주었다.

MC들이 다 여성이다 보니 게스트로 남자 아이돌이 초대되는 경우가 많아서 눈요기도 되는 편이었고 여자 아이돌 1세대 래퍼 출신인 쥬디와 함께 직설적인 캐릭터로 사랑도 많이 받고 있으니까.

설아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다.

설아가 피쳐링한 K-G의 싱글 앨범인 “어느 날” 이 발매되고 그 후 바로 설아의 미니 앨범 “사랑”이 뒤를 이었다.

“사랑”에는 미묘한 레트로풍의 통통 튀고 익숙한 멜로디가 강점인 고백 송 “칵테일처럼”과 전형적으로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곡 “언제나 그대를” 그리고 R&B 느낌의 애절한 이별 노래 “눈을 감으면” 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세곡 다 설아의 독보적인 음색과 매력을 잘 살린 곡이었다.

당연히 음악 방송이나 가수로서 다른 활동을 할 생각이 별로 없는 설아가 방송 차트에서 수위권을 차지할 수는 없었지만 음원 사이트에서는 강세를 보였는데 민수도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설아의 “칵테일처럼”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전생에서는 설아가 전혀 부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스타일의 노래였으니 민수가 느낀 놀람과 즐거움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완전히 입이 익어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릴 수준까지 이르렀으니 민수가 설아의 노래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배우 윤설아 가수 “세라” 변신 대성공? 음원 차트 정복]

며칠 뒤 올라온 설아의 기사였다.

단 하루뿐이지만 설아의 세 곡이 다 차트 최상위권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설아의 가능성을 믿고 있던 민수는 설아의 노래가 차트 상위에 위치한 것보다 가수 활동명을 “세라”로 정한 것이 더 놀라웠다.

자신의 이름과 비슷하면서도 어감이 마음에 들어서라는데 아마 전생에서도 그런 이유로 그런 활동명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세상에는 바뀌지 않는 것도 있나 보다.

수연과의 휴가를 강제로 포기하게 된 태준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음 작품을 찾았다.

이번에 태준이 들어가는 영화는 로드 오브 트릭 (Lord of Trick)

전생에서 태준의 위치를 한 단계 올려준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였다.

태준 말고도 조태수, 정연주, 김성태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이 영화는 1800만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하며 한국 영화사에 새로운 지표를 열었었는데 이번 생에서도 주연 배우들의 면모만으로도 1500만은 충분히 넘을 거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민수는 결국 태준에게 로드 오브 트릭의 섭외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세상에 어느 정도의 정해진 운명이란 게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출연작이 변하는 와중에도 태준의 인생작은 결국 다시 태준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소희와 은우도 충실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독립영화를 촬영하는 소희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없었지만, 자신의 내적 역량을 충실하게 갈고 닦고 있었다.

특히 요즘 “칸의 여제”라고 불리는 윤숙이 꾸준하게 소희의 촬영장을 찾고 있었다.

여우 주연상 한 번으로 모든 한을 씻어 버린 윤숙은 요즘 한껏 여유로운 입장이었는데 마음의 여유가 생기다 보니 예전에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소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상황이었고 소희는 영화를 찍으면서 윤숙에게 1:1로 연기지도를 받는 셈이었다.

“어차피 요즘은 할 것도 없는데 뭐 어떠니.

소희는 참 이상하게 정이 간다니까.”

이제는 연기자로서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려는 윤숙은 소희에게 모든 것을 전수해 주고 싶었다.

은우가 출연하는 주말 가족 드라마는 시청률이 정말 좋았다.

기존에 가족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들부터 가족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 은우의 개인 팬이 합쳐져 평소보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이다.

팬들은 팬으로서 은우를 정말 좋아했지만 그래도 은우의 연기력이 논란에 휩싸이면 할 말이 없었는데 지금 은우가 보여주는 연기력은 남들이 흠잡을 구석을 찾기 힘들 정도였으니 팬들도 힘이 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윤 엔터에는 은우를 좋은 배우로 만들어 줘서 감사하다는 선물이 자주 날아오고 있었다.

아이돌 팬덤과 성향이 가장 비슷한 은우의 팬클럽은 돈을 모아 그런 선물을 전달하는데 전혀 인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사랑하는 연예인 말고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보내는 건 정말 드문 경우였으니 직원들도 다 놀라고 있었다.

이게 다 인터뷰에서 선생님에게 연기 지도를 받은 후 배우로서 다시 태어난 거 같다고 말한 은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고 그 당사자인 진성은 생각지도 못한 일에 난색을 짓고 있었다.

아마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진성이라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물론 민수도 그 시간 동안 놀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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