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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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가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며 방송이 끝난 지 한참 후.
왠지 설아는 조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었는지 표정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처음에 자신을 찾아왔을 때 한껏 올라있던 탠션을 생각하면 예상외의 상황이었다.
있을 거 없을 거 다 있는 실속 있는 소속사의 모습을 여과 잘 보여줬고 마지막에는 설아가 노래까지 불러 엄청난 임팩트를 줬다.
민수는 배우 6명 밖에 없는 소속사가 왜 이렇게 크고 잘 차려져 있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사실 우리 소속사의 배우들이 9명이나 되고 그중에 3명이 원로 배우 진성, 윤숙, 강환이며 이들이 자신들에게 연기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라고 설명하자 그 소속사에서 연기를 못하는 게 더 이상하겠다는 사람들의 반응에 한번, 그리고 노래하는 설아의 모습에 감탄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또 한 번 가슴 가득 뿌듯함을 느꼈었다.
그리고 그 방송 어디에도 설아의 마음에 들지 않을 부분이 없었다.
그나마 있다면 노래를 별로 부르지 않으려고 했던 설아에게 노래를 불러달라고 조른 것인데, 애당초 정말 싫었으면 그녀의 성격상 노래를 부를 리가 없었으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었다.
“제가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설아 씨 마음이 별로 편하지 않아 보이네요.”
민수가 꼭 집어 이야기하자 설아도 한숨을 쉬며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게…..
마음이 편하지 않은 건 맞아요.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닌데…
이게 참 표현하기 복잡하네요.”
설아의 표정은 그야말로 자신의 표현 그대로 복잡해 보였다.
뿌듯함과 감사함도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자책감과 자괴감도 있어 보였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약간에 후회가 묻어 있어서 불편해 보이는 거였다.
“소속사 소개도 깔끔하게 잘했는데 왜 그럴까요?
저한테 말할 수 없는 거예요?”
설아에게는 설명하긴 조금 힘든 그런 사정이 있었다.
처음에 소속사에서 이 스케줄을 맡길 때 설아에게 권한 방식은 녹음실에서 음악 방송 식으로 신청곡을 받고 노래 실력을 뽐내면서 사람들을 모은 후, 소속사를 소개하는 방법이었다.
만약 태준이나 수연, 민수를 출연시키게 되면 당장에는 더 많은 사람을 모을 수 있겠지만 설아가 들러리처럼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자신들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에서였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소속사의 이미지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설아였고, 우선 영상을 올려놓으면 영상이 남아 설아가 유명해지면 해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영상을 보게 될 테니 좀 느리게 갈 뿐 소속사 이미지가 좋아지는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판단한 것이다.
낮이었지만 휴일이었고 규모는 작지만, 응집력이 강한 설아의 팬클럽이 기본을 깔아 줄 테니 아의 노래 실력이면 어느 정도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판단.
그리고 설아가 완전한 주인공이 되어야 설아 자체가 노출되며 효과가 더 좋을 거라는 판단.
설아가 노래를 불러 사람들에게 설아의 개인 앨범이나 피쳐링에 대한 기대감을 올릴 수 있다는 판단은 다 옳다고 생각했지만 설아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스케줄 팀과 관리팀에 이걸 하긴 할 건데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설아는 소속사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 대신 소속사 이미지는 확실히 올려줄 테니 그걸로 타협하자고 주장했다.
회사는 조금 아쉬웠지만 설아의 뜻이 워낙 완강했고 그나마 소속사 이미지는 확실히 올려주겠다는 설아의 뜻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설아가 오늘 이렇게 민수부터 찾아온 것이었다.
설아는 전부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냥 소속사에서 어떤 방향을 원했는지 정도는 설명할 수 있었다.
“와! 그래요? 그럼 더 잘된 거잖아요?
설아 씨 결국 앨범도 내시는구나.
진짜 잘됐네요.
나오면 제가 제일 먼저 사서 들어야겠어요.”
“네? 굳이 그럴 필요가…. 제가 당연히 선물로 드릴 텐데요.
아니 아니, 이게 아니고.”
한숨을 쉬면서 설명하던 설아는 순간 민수가 꼭 사서 듣고 싶다며 환하게 웃으며 끼어드는 바람에 잠시 이야기의 템포를 뺏기고 말았다.
그렇게 되니 결국 조금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되던 이야기가 김이 확 빠져버린 기분이었다.
원래는 자신이 왜 민수를 먼저 찾았는지 설명하려고 했지만, 그냥 맥이 빠져 어차피 이렇게 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겠나 싶었다.
“에휴. 그래요. 다 잘됐어요. 너무 잘됐어요. 후….”
“음?”
민수는 설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 잘됐는데 왜 저럴까?
하지만 설아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설아가 민수를 찾아온 건 순전히 민수를 위해서였다.
자신과 민수가 같이 진행을 할 경우 자신보다 민수에게 더 시선이 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영리한 설아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는데 이렇게 한 이유는 사람들이 민수에 대하여 너무나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까도 까도 좋은 점만 있는 정말 좋은 사람.
이게 민수에 대한 설아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민수에 대하여 잘 모르고 단편적인 이야기나 모습들로만 민수를 판단하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민수의 수익이 엄청나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로는 이상한 소문이 날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민수는 자신의 일에 겨의 신경 쓰지 않아서 잘 모르고 있었지만, 소문은 천태만상이었다.
물론 이미 소속사 측에서 그런 억측에 대해서는 단속에 나선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어디 남의 말을 쉽게 믿는 사람들이던가.
설아는 차라리 열 번의 설명과 해명보다 그냥 한번 보여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자신이 과하게 예민한 것이 맞긴 했다.
사실 민수의 재산에 관한 루머 따위는 그냥 민수의 기부내용 한 번만 읊어줘도 다들 깨갱거리게 될 것이 뻔했으니까.
소속사에서는 차라리 그런 일이 벌어져 한방의 반전을 더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마저 없다면 민수가 기부 명세 따위를 공개하길 원할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설아는 민수의 더 큰 성공 따위와는 상관없이 예전에 쓸데없는 루머로 신경 쓰던 민수의 모습이 생각나 그것이 포함된 이상한 루머들을 다 일소하고 민수의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하고 싶었다.
이것이 설아가 들러리를 자처한 이유였다.
물론 작은 흑심도 숨어있긴 했다.
나중에 스캔들이 나면 아무래도 여성인 자신의 팬들이 더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컸다.
사실 민수 팬들은 스캔들이 나도 그냥 오 축하해요 하고 넘어갈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삼촌이 조카를 보는 느낌으로 자신을 아껴주는 “프페”라고 해도 일이 벌어지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모르는 거였다.
자신이 아이돌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나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젊은 여배우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순 없었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예상대로 가장 먼저 “프페”가 모여들었다.
자신에게 우호적인 “프페”는 기본적으로 민수에게도 우호적인 사람들.
이야기가 시작되자 바로 숙소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왔고 민수가 얼마나 소시민적인 마인드로 살고 있는 순박한 사람인지 공개되었다.
민수가 나온 방송 아마 본방송보다 다시 보기가 월등히 많을 테니 지금 당장 사람들이 많지 않아도 다들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프페”는 역시 민수가 최고의 신랑감이라는 걸 인정하고 있었다.
게다가 은근슬쩍 자신과 민수가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다들 그건 그렇다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설아는 그 모습에 안심할 수 있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팬클럽의 성향이 거의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
정말 소속사를 제대로 띄워줬다.
예상치 못하게 등장한 소희와 은우의 모습도 좋았다.
하지만 마지막에 노래를 부른 건 솔직히 마음에 안 드는 일이었다.
자신은 철저히 MC처럼 민수를 부각할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자신이 중심을 차지하게 된 꼴이었으니까.
그냥 노래를 안 부르면 되는 일이라지만 저렇게 민수가 진심으로 원하는데 안 하기는 또 힘들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노래를 정말 좋아하던 민수였으니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또 거절하겠는가.
사실 방송이라서 민수가 무안해할까 봐 결국 거절하지 못한 것도 없진 않았다.
처음에는 자신도 크게 이슈가 되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다.
이미 중심은 완전히 민수에게 넘어갔고, 사람들은 그냥 오 잘 부르네 정도로만 생각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자신은 녹음실에 들어가 있어서 몰랐는데 매니저의 말을 들어보니 민수가 또 사람들의 기대감을 엄청나게 올려줬다고 한다.
안 봐도 대충 알만했다.
평소에 자신이 노래 부를 때마다 짓던 그 오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노래를 진심으로 극찬했겠지.
그리고 민수의 팬들이 대부분인 그 상황에서 민수가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극찬하니 당연히 엄청 기대했을 거고.
한껏 올라간 기대감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만약 자신의 실력이 별로였으면 큰 타격일 수도 있었지만, 자신의 노래 실력이 그 이상이면 기대감을 충족시키면서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실력이 그 이상이었는지 자신의 노래 부른 짤방과 그에 관련된 이슈들이 지금 인터넷을 점령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냥 노래 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릴 때와는 전혀 다른 기세였다.
원래 지금쯤 민수에 생활 모습과 생각들이 인터넷을 점령해야 하는데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물론 설아의 기대대로 소탈하게 살고 생각하는 민수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호감으로 다가가긴 했다.
하지만 설아는 민수가 요리로 자신을 완전히 녹여 버렸듯 자신도 노래로 민수를 해롱해롱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자신의 노래 실력을 얼마나 빨리 늘게 했는지, 그리고 그 노래 실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 인지까지는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냥 자신의 노래를 직접 듣고 기분 좋아할 민수의 모습이 기대돼서 결국 노래를 부른 것이 실수였을까.
생각을 정리한 설아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래요. 잘 풀렸죠. 너무 잘 풀렸어요.”
자세한 설명을 포기하자 설아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그리고 앨범을 내면 미리 말 좀 해주지 그랬어요?
그랬으면 오늘 방송도 아예 그쪽으로 가닥을 잡았을 텐데요.”
설아는 오히려 아쉬워하는 민수의 모습에 오빠가 그럴까 봐 걱정돼서 그랬다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그러면서 자신도 상처가 많은 주제에 자신에게는 좀 무심하고 자신의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민수의 모습에 또 한숨이 나왔다.
그게 민수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지만 사람 잘못 만나면 호구 잡히기 딱 좋은 유형이 아닌가?
역시 민수에게는 자신 같이 딱 부러지는 사람이 어울렸다.
아마 자신의 엄마가 아빠에게 목을 매며 빠져 사는 것도 그런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민수가 아빠랑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설명은 포기했지만, 이 상황에 대한 감사함은 표현하고 싶었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민수의 덕을 봤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역시 가장 큰 원인은 민수 때문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 다면 자신의 노래가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더 잘 먹혀서 일까?
어쨌든 자신은 잘난 애인의 덕을 보는 게 별로 달갑지 않은 사람인데 애인이 요즘 너무 잘나가서 상황이 좀 이상해졌다.
설아는 차라리 이럴 바에는 이 기회에 자신이 가능하면 가수로라도 많이 떠서 민수에게 도움을 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내는 윤 대표와는 다르게 자신은 아직 어리고 충분히 재능도 있다고 믿기 때문에 천천히 자리를 잡으며 올라가겠다고 생각하던 설아.
배역 욕심은 조금 있었지만, 인기에 대한 욕심이 별로 크지 않던 설아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는 순간이었다.
“일이 좀 이상하게 됐는데 오빠 덕분에 정말 많은 사람이 저를 알게 되었어요.
덕분에 이번 앨범이 더 잘될 거 같아요.”
애써 웃으며 고마워하는 설아였지만 민수는 지금 설아의 복잡한 마음이 거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겨우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 일은 은근히 충격이었는지 설아의 표정이 쉽게 읽혔기 때문이었다.
사실 자신은 설아의 발걸음을 조금 빨리 옮겨준 것뿐이었는데 어쩌면 그것도 설아의 높은 프라이드를 자극했을지도 모르겠다.
복잡해 보이는 설아의 모습은 그런 이유 때문인 거 같았다.
“아아. 그래서 노래를 불러 달라고 했을 때 머뭇거린 거군요.
음… 그렇다면 차라리 제가 미안한데요.”
설아는 민수가 미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아차 싶었다.
자신의 의도가 전혀 다르게 이해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자신은 민수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아. 오빠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음. 전 그러니까요.”
설아는 차라리 속 시원히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서로에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돌려 말하다가 서로에게 오해가 쌓이면 문제가 생긴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였다.
“사실 전 오빠가 저를 잘난 애인을 이용하려는 그런 사람으로 생각할까 걱정돼서 그런 거였어요.
제 마음은 전혀 그게 아니었는데 일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니까요.”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했던 민수는 설아의 말을 듣고 보는 방향에 따라서는 그렇게 이해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뭐 좀 그래도 어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설아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에이. 그럴 리가요.
설아 씨 벌써 잊었어요?
세상에서 설아 씨가 최고의 가수가 될 거라고 제일 먼저 알았던 사람이 바로 저예요.
제가 아니라도 설아 씨는 어차피 잘 됐을 거고요.
그러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알았죠?”
설아는 민수가 그런 오해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음에 조금 놓였다.
그리고 민수의 자상한 말에 이러니저러니 해도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