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48화 (248/325)

#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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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표는 한숨부터 쉬었다.

윤 대표는 지금까지 설아를 키워오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었는데 설아에게 뭔가를 강제하면 꼭 문제가 생긴다는 거였다.

어딘가에 청개구리 같은 심보가 숨어있는지 항상 그래왔다.

결국 윤 대표가 설아에게 아무것도 강제하지 않는 건 단순히 설아에 대한 편애만은 아니었다.

물론 딸에 대한 과도한 애정을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이 다는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설아에게 뭔가를 강제하는 건 마음에 안내키는 군.

그 아이가 예능 같은 걸 하고 싶었으면 자신이 하고 싶다고 먼저 얘기했을 거야.

혹시 다른 방법이 없을까?”

윤 대표가 돌려서 거절하자 미영과 찬수는 낙심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흘렀을까.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스케줄 팀 팀장 봉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차라리 앨범은 어떻습니까?”

“앨범?”

“네.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개인 영상 중 윤설아 씨의 노래 영상.

그러니까 “윤설아의 노래방”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오는 설아 씨가 노래 부르는 영상은 조회 수가 엄청난 편입니다.

게다가 유튜브에 링크가 걸려 외부로 알려지는 경우도 많고요.

지금 설아 씨의 음악 방송, 수연 씨의 게임 방송, 민수 씨의 요리 방송.

모두 거의 비슷한 숫자로 방청하고 있는데 설아 씨가 두 배우에 비해 팬층이 적은 걸 생각하면 설아 씨의 골수팬이 아닌 일반인들도 설아 씨의 음악은 듣는다는 뜻입니다.”

“홍보팀장, 그런가?”

“네, 대표님.

예전 마스크 싱어 이후에 설아 씨의 노래 실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퍼져 나갔고, 그때 설아 씨의 노래를 마음에 들어 했던 사람들이 종종 홈페이지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군요.

사실 설아 씨에 대한 앨범 문의, 피쳐링 같은 음악 관련 스케줄이 아직도 가끔 들어오곤 합니다.

물론 예전에 한창 뜨거울 때와 비교하면 많이 줄어 들었지만 그때야 한탕 치고 빠지겠다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게다가 개인 영상에 노래하는 영상을 올리는 걸 보면 설아 씨도 크게 저어하지 않는 거로 보이고요.

생각해 보면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노래라…..”

윤 대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긴 했다.

어차피 설아가 안 한다면 못 시킬 테니 설아에게 먼저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윤 대표가 생각하기에도 가능성은 있어 보였다.

“그리고 장기적인 예능이 아니라도 단발적인 건 할 게 있긴 합니다.

최근에 들어온 스케줄인데, 이거 한번 보십시오.”

“음…. 네버에서 하는 개인 방송 같은 건가?”

윤 대표가 확인해 보니 한국에서 가장 큰 포털 사이트인 네버에서 요청한 스케줄이었다.

요즘 아이돌들이 팬들과 더 가깝게 소통하기 위해 실시간 방송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네버에서는 특집방송을 구상해 줄 테니 윤 엔터 배우 중 아무나 소속사와 배우들의 이야기를 실시간으로 방송해 달라는 것이었다.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배우들의 인기가 끝없이 올라가고 있고 사람들의 궁금증과 요구가 커지자 네버 측에서 직접 나서 요청을 넣은 것이었다.

네버측도 크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지만, 만약 지금 한창 물이 오른 태준이나 민수가 방송을 하게 되면 아마 웬만한 아이돌보다 더 많은 시청자가 모일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이 조금 틀어져 둘의 직접 출연이 어렵다고 해도 윤 엔터 배우 누군가가 한창 호기심을 자극하는 윤 엔터의 모습을 찍어 방송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았다.

다만 문제는 TV 예능조차 꺼린다고 소문난 윤 엔터 배우들이 인터넷 방송을 해줄 것이냐는 거였다.

그러니 네버측도 별생각 없이 그냥 한번 던져본 셈이었다.

되면 좋고, 안되면 할 수 없고.

네버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이돌 소속사에서 소속사 자체로 마케팅을 시작한 지 꽤 되었습니다.

확실히 소속사가 유명해지게 되면 부수적인 이득이 많죠.

배우들을 알리기도 편해지고, 대중과 친해지면 언론 플레이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있는 홈페이지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겠군요.”

배우들을 유치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소속사의 명성을 올려 언론 플레이가 쉬워진다는 이야기는 윤 대표로서도 솔깃한 이야기였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언론사보다 소속사 홈페이지의 사실을 게시함으로 일반인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게 된다.

“그쪽은 구미가 당기긴 하는군.

누가 방송을 하든 간에 민수는 나올 수밖에 없을 테니 나쁘지 않아.

좋아.

그쪽도 한번 추진해봐.

설아가 CF나 예능에 생각이 없다고 하면 음악 활동이나 개인 방송 쪽으로 한번 물어보게.

뭐 하나라도 구미에 당길 수도 있으니까.”

설아에 대한 대책까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회의의 분위기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알아서 내버려 둬도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배우 셋을 제외하고 한창 활동에 열중하는 배우 둘을 빼면 설아가 가장 문제였는데 그쪽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민수 씨는 대체 뭘 하겠다는 겁니까?

올해가 아직 6개월이나 남았는데요.

아직 나이도 젊은 데 텀이 너무 긴 거 아닐까요?”

봉수의 의문에 윤 대표는 그냥 밝게 웃으며 주억거렸다.

잠시 고개를 끄덕이다 대답하는 윤 대표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기대감이 묻어있었다.

“연기 연습을 좀 한다는구먼.

아마 누님이랑 작품 하면서 확실히 느낀 점이 있는 모양이야.

배우가 연기 연습하겠다는데 뭐라고 할 수야 있나.

자신이 알아서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니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대표실에서 회의가 끝난 후 며칠이 지났다.

민수는 그동안 지친 몸을 추스르며 꿀 같은 휴식 시간을 보냈다.

태준은 스케줄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설아는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들르지 않았다.

계속 이러면 문제겠지만 설아가 1주일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민수는 그냥 기다리는 중이었다.

물론 민수가 그냥 쉬지만은 않았다.

민수가 이번 휴식을 계획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의 연기를 가다듬기 위해서였다.

캐릭터를 만드는 자신만의 연기방법을 터득한 민수는 연기실력을 가다듬기도 전에 이런저런 스케줄 때문에 끌려다니며 캐릭터를 만들 시간조차 없었고 만들어 놓은 캐릭터는 민수(연애 중)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의 밝은 캐릭터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모든 캐릭터를 정립해 저번 같은 과몰입 증상을 피하려는 생각이었으니 지금의 휴식은 앞으로의 연기 인생을 위한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항상 연기만을 생각할 수는 없는 노릇.

민수는 가볍게 노트를 꺼내고 이런저런 가벼운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중 요즘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건 바로 소속사 배우들의 인간관계와 역학관계(?)였다.

사람이 셋만 모여도 문제가 생기는 법이었는데 벌써 6명의 배우가 모였으니 혹시라도 관계가 틀어질까 봐 걱정돼서였다.

민수는 가장 먼저 수연과 설아의 이름을 쓰고 부등호를 넣었다.

설아 〉〉〉 수연.

아무래도 수연은 설아를 당하지 못한다.

가장 맏언니이면서 설아의 특훈에 벌벌 떨며 살을 뺀 것만 봐도 확실했다.

수연 〉〉〉 태준.

예전에 태준이 수연에게 꼬투리를 잡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여자 아이돌 노래를 듣다가 수연에게 덜미를 잡힌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에도 은우가 수연의 소개로 소속사에 들어왔지만 태준은 찍소리도 못했다.

아무래도 태준보다 수연이 강해 보였다.

설아,수연,태준 ??? 은우 소희.

은우 ??? 소희.

확실히 아직 은우랑 소희는 태준 패밀리와 조금 거리감이 있어 보였다.

은우야 온 지 얼마 안 되었다지만 한창 친해질 만한 시간에 소희가 중국에서 몇 개월이나 생활했던 것이 치명적이었다.

“다 좋은 사람들인데 조만간 시간이라도 내야 하나.

소희 씨도 영화 촬영을 마치면 특별히 일정이 없을 테니 가능할지도.

그리고 은우 선배라…..”

여성에게 항상 최고의 대우만을 받아왔던 은우가 이상하게 윤 엔터 여성 배우들에게는 좋은 대우를 못 받고 있었다.

그나마 드라마를 촬영했던 수연은 괜찮은데 설아나 소희가 은우랑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었다.

샤방한 미소를 머금은 은우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소희와 설아의 모습은 민수도 조금 충격이었다.

“음… 웃음이 너무 헤픈 사람은 왠지 진실해 보이지 않더라고요.

제 편견이긴 하겠지만 그냥 그렇네요.

잘생기긴 했는데 제 스타일은 아니라….”

똑 부러지게 말하는 소희와.

“나쁜 사람이 아닌 건 알겠는데요.

전 남자라면 민수 오빠만 있으면 되거든요.

어머.

제가 은우 선배랑 친하게 지내면 오빠가 질투라도 해 주시나요?

에휴, 그럴 리가 없죠.

어쨌든 그래서 남자랑은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네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을 흘겨보는 설아.

“난제군. 설마 은우 선배가 여자 배우들에게 배척받게 되다니.”

이건 민수도 예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그래서 민수는 자신이 최대한 은우랑 잘 지내기로 했다.

자신과 관계가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다른 배우랑도 사이가 좋아지리라.

“어 그런데…. 이거….”

민수는 자신이 그려놓은 표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설아 〉〉〉 수연 〉〉〉 태준

자신을 골탕 먹인 태준이 먹이 사슬의 가장 아래에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가장 어린 설아가 최상위 포식자라니.

그러고 보면 태준도 설아에게 찍소리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호라. 키는 설아 씨가 쥐고 있는 거군. 그리고 만약….”

민수 〉〉〉 설아

만약 자신이 설아를 제압한다면 자신은 명실상부한 윤 엔터 배우들의 최강자가 될 수 있었다.

“푸하. 진짜 웃기네. 최강자는 무슨.”

민수는 엉뚱한 곳으로 흘러버린 자기 생각이 너무 어이없었다.

유치하게 이게 무슨 짓인가.

그리고 잠시 후 갑작스럽게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응? 누구지?”

민수는 누군지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태준이나 설아, 수연이었으면 문을 두드리지 않고 그냥 비밀번호로 열었을 것이다.

윤 대표나 민 여사라면 자신을 불렀을 테고.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소희랑 은우인데 이 둘은 지금 드라마와 영화 촬영 중이었으니 누군지 감이 안 올 수밖에.

“누구세요?”

민수가 문을 열자 문밖에는 설아가 서 있었다.

설아가 노크라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민수는 매니저가 카메라를 들고 있자 돌발상황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분명 무슨 방송임이 틀림없었다.

“아…. 설아 씨.

무슨 일로….?”

당황한 민수가 쭈뼛대며 문을 열어주자 설아는 밝게 웃으며 민수의 방으로 들어섰다.

매니저는 그 모습을 조용히 촬영하고 있었다.

“여러분. 여기가 바로 할리우드 배우 정민수 씨가 기거하고 있는 옥상 방입니다!

이곳에 온 건 여러분이 처음이죠.

여러분들은 오늘 횡재하신 겁니다.”

민수는 홈쇼핑 호스트 같이 이야기하는 설아의 말투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분위기를 보니 지금 실시간으로 무슨 방송이 나가는 거 같았다.

“아. 우선 소개부터 해야죠.

민수 오빠.

시청자분들께 인사 좀 해주세요.

지금 많은 분이 보고 계시거든요.”

“아. 네. 반갑습니다. 영화배우 정민수입니다.”

갑작스러운 설아의 등장에 놀란 민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설아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여간 이 남매는 사람 놀라게 하는 데는 정말 일가견이 있었다.

겨우 정신을 수습한 민수는 설아와 팬들의 실시간 대화를 통해 지금 상황이 어떤지 유추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설아가 실시간으로 소속사를 소개하는 방송인가 본데 자신이 소속사에 살고 있으니 자신까지 곁다리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사전에 알려 줄 수도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서프라이즈라니 언제나 돌발적인 설아 다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민수보다 더 놀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이 방송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이었다.

아이패드를 통해 올라오는 실시간 채팅을 보니 사람들은 자신이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긴 언론에서 작년과 올해 수백억을 벌었다고 전해진 민수가 옥상 방에서 살고 있는 건 놀랍고 어이없는 일이긴 했다.

-와 진짜 저기가 민수형 집이야?

-엥? 민수형 그 많은 돈 다 어디다 쓰고 거기서 살아요?

독립할 때도 됐잖아요.

-민수형도 설마 사업 병인가? 벌써 다 날린 거 아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한창 활동하느라 CF도 못 찍고 있는데 사업할 시간이 어디 있어?

민수는 채팅창에서 자기들까지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에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신이 뭐라도 이야기해서 조금 정리를 해야 할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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