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47화 (247/325)

#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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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엔터의 수장 윤강철, 고문 민아리, 홍보팀장 이미영, 스케줄 관리팀장 오봉수, 배우 관리총괄 실장 박찬수.

대표실에 모여 회의를 진행하는 인물들의 면모였다.

그야말로 윤 엔터의 실질적인 수뇌부가 다 모여있는 셈.

오늘 이들이 이렇게 모인 이유는 바로 배우들이 동시에 휴식을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우선 상황부터 알아보지.

박 실장 브리핑하세요.”

“네, 대표님.

우선 정민수 씨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정민수 씨가 현재 진행 중인 CF 계약은 0건.

요청 들어온 CF가 6개.

드라마나 영화 쪽 섭외는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생각보다 CF 섭외 수는 많지 않네요.”

“네, 여사님.

사실 CF 쪽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역시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민수 씨가 올해 영화만 두 편에 출연했고, 성적 자체는 좋았지만 그게 광고 쪽에서 평가하는 구매력 향상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건 아니라고 평가하는 모양입니다.

그나마 6건은 기존에 민수 씨가 가진 이미지와 해외에서의 인기를 고려한 제안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인 건 지금까지 민수 씨가 연기한 배역 중에 이번에 카메오로 들어간 닥터 제임스가 가장 구매력 상승에 유리한 캐릭터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겁니다.

6건의 섭외 중 3건이 제임스의 이미지를 차용하겠다는 CF입니다.

다만 지금 영화계에서는 민수 씨에 대한 평가가 태준 씨 이상으로 올라간 상태입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금 태준 씨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보다 민수 씨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더 많습니다.”

”결국 지금은 영화계 쪽은 민수를, 광고계 쪽은 태준을 더 높게 평가한다는 말이군.”

“네. 그리고 특이 사항인데, 준성 식품은 무조건 민수 씨를 모델로 쓰겠다고 합니다.

진 라면 계약이 끝난 후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연락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좀 확실히 매듭을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민수 씨가 준성 식품 CF에 참여할 때마다 결과적으로 준성 식품의 매출량이 20%씩은 오르고 있으니 아마 그쪽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준성 식품이면 저번에 사이다랑 라면 CF를 찍었던 곳 아닌가요?

지금 민수의 단가가 거의 업계 탑급에 근접했는데 식료품 CF로 그 단가를 맞춰 줄 수 있을까요?”

“단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습니다.

업종 전속 계약으로 그쪽에서 제시한 금액이 웬만한 대기업 광고보다 많으니까요.

지금 소속사 배우들의 한국 CF 중에 가장 높은 금액을 받은 것이 이수연 씨의 화장품 광고인데, 준성 식품은 그거보다도 많은 금액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허… 화장품보다 높은 단가의 식품 광고라….”

윤 대표는 찬수의 보고를 듣고 정말 준성 식품이 어지간히 민수를 원하는구나 싶었다.

하긴 저번에 민수가 광고했던 진 라면이 신제품임에도 불구하고 라면 업계를 잠식하고 있었으니 큰 무리도 아닐 것이다.

진 라면 자체가 워낙 저렴하고 품질 좋은 제품이었지만 그 당시 한창 잘나가던 민수의 CF도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 윤태준 씨.

현재 진행 중인 CF 계약 0건.

CF 섭외요청 18건.

사전에 이미지 때문에 커트한 CF를 제외하면 11건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대본은 반려하고 있습니다.

태준 씨가 6월 이후부터 작품물색을 시작하겠다고 스케줄 팀에 전달했으니까요.

아무래도 지금 한창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귀의” 때문에 CF 요청이 급증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관리팀은 아마 이번 분기가 끝날 때까지는 이런 추세가 이어질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확 뜬 드라마 이후에 CF라…. 확실히 정석적이긴 하지.

이쪽은 무슨 특이 사항 없나?”

“네, 대표님.

윤태준 씨가 선별해서 찍기만 하면 별문제 없는 것들뿐입니다.”

왠지 사족이 길었던 민수의 보고와는 달리 태준에 대한 보고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태준까지 민수처럼 이상하게 달라붙는 곳이 있었으면 조금 피곤해졌을 것이다.

“다행이구만.”

“그리고 이수연 씨.

지금 이수연 씨가 유지 중인 CF는 2개.

섭외 요청은 14건.

수연 씨에 대한 CF 요청은 예전부터 계속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기간별로 선정해서 2개 정도씩만 찍고 있는데 그게 기업 쪽에는 더 큰 매리트로 다가간 거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냥 찍어도 전속 같은 효과를 내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계약 중인 두 곳 모두 계약 연장에 적극적입니다.

특히 화장품 쪽은 이수연 씨가 광고에 출연한 이후로 매출량이 17% 상승했다고 하니 아마 놓치고 싶지 않을 겁니다.”

민 여사는 그 정도 인기를 가지고도 출연 중인 CF가 전혀 없는 태준과 민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수연에 대한 보고를 들으니 수연이 그나마 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민 여사의 착각에 불과 했지만 어쨌든 똥 묻은 개 옆에 있으면 겨 묻은 개가 더 깨끗해 보이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나마 수연이가 사람같이 살고 있군요.

2개라도 하고 있으니까요.”

“아마 그 녀석도 따로 추가 CF를 찍을 생각은 없을걸.

저 화장품도 제한이 별로 없어서 찍은 거뿐이야.”

“어쨌든 그래도 소속사 생각도 해준 거잖아요.

수연이가 돈 때문에 CF를 찍었겠어요?”

“하긴, 그건 그렇지.

예전에 CF 찍을 때도 소속사에 빚진 돈 갚겠다고 찍은 거였으니까.

이번에도 아마 그런 뜻으로 찍었을 거야.

소속사 운영비? 뭐 이런 거 아니었을까?

민수랑 소희가 잘 벌어오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몫만큼은 자기가 벌자는 생각이었을 거야.”

소속사 운영비 때문에 CF를 찍는 배우라니 어이없긴 했지만, 수연답다고 생각한 민 여사는 수연이 이젠 완전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아들 딸은 둘 다 소속사 운영에는 관심 없는 웬수들인데 그나마 민수랑 수연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진소희 씨랑 지은우 씨는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진소희 씨가 중국에서 찍은 CF랑 이번에 드라마 마치고 지은우 씨가 찍은 CF가 10편이 넘는군요.”

“그나마 정상적인 녀석들이지.

소희는 당분간 독립영화에서 연기 연습을 한다니 스케줄은 관여하지 말도록 해.

지금이 연기가 가장 많이 느는 시기니까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지은우 씨도 이제 드라마에 들어가면 한동안은 스케줄을 신경 쓸 일이 없어 보입니다.

그나마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배우들도 있으니 좋긴 하군요.”

여기까지 보고를 마친 찬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 초고의 난제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윤설아 씨 차례군요.

이번에 드라마 마치고 윤설아 씨한테 들어온 CF가 5개인데, 설아 씨가 5개 전체를 다 거절했습니다.”

“그래? 거절했다는 건 어떤 의미지?

CF를 아예 안 찍겠다는 거야? 아니면 CF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야?”

“음…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그 중 가장 단가가 높았던 것이 여성용품이었습니다.

생리대였는데 윤설아 씨가 자신이 쓰는 제품이 아니라서 CF를 찍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커피 CF도 자신이 마시는 커피가 아니라고 거절했고요.

대부분 이런 식입니다.”

윤 대표는 찬수의 말에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허.. 그러니까 자신이 쓰는 물건, 진짜 자신 있는 물건만 CF를 찍겠다?

이 녀석도 참…..”

“자신이 쓰지도 않는 물건을 선전하는 건 소비자에 대한 기만이라고 하는데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좀 어이없긴 한데 뭐라고 할 문제도 못되네요. 그건.

아직 설아가 물건을 골라가며 CF를 찍을 정도는 아니니 당분간은 못 찍겠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할 수 없지. 본인이 싫다는데 강요할 수는 있나.”

찬수는 두 부부의 대화를 들으며 기가 막혀 말을 잇지 못했다.

태준과 민수가 CF를 거절할 때와 분위기가 전혀 달라서였다.

그리고 배우들이 그냥 하고 싶은 것만 하게 하려면 오늘 이렇게 모일 이유도 없었다.

소속사에서 가장 실세가 민 여사 그리고 그다음이 윤설아라는 직원들의 우스갯소리가 단순한 농담만은 아닌가 보다.

“....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윤 대표가 저렇게 나오면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따르는 수밖에.

“그럼 CF 쪽은 이렇게 해요.

민수는 적어도 진성 식품 쪽 CF는 찍을 수 있게 조율해 보세요.

아마 1개만 찍으면 된다고 하면 거부하지 않을 거예요.

수연이는 지금 계약 중인 제품과 추가로 1개만 더할 수 있게 이야기하시고요.

태준이는…. 이 녀석은 지금이 제철(?)이니 무조건 3개 이상.

방법 불문하고, 무조건 그렇게 해주세요.

협박하셔도 좋아요

아마 이번에 민수가 카메오로 들어가서 공짜로 주연급 연기 보여주고 나온 걸 핑계로 삼으시면 좋을 거 같네요.

그거 연습하느라 민수가 못 찍은 걸 책임지라고 하면 할 말이 없을 거예요.

그리고 설아는….

뭐, 그냥 내버려 두세요.

알아서 잘하는 아이니까요.”

민 여사가 결론을 내자 찬수는 그대로 받아 적었다.

특히 민수를 핑계로 태준에게 CF를 떠넘기는 건 나름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또 설아가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자 마음이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럼 홍보팀.

그쪽은 문제없나요?”

“네. 여사님.

예전부터 계속되었던 민수 씨에 대한 비방은 완전히 수그러들었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이런 분위기가 유지될 거라는 예상입니다.”

“그래요. 그런데 이 팀장도 알다시피 우리 배우들이 당분간 활동을 안 한다고 해요.

적어도 몇 개월은 쉬게 될 텐데, 그 시간 동안 배우들의 인지도가 어떻게 될지 예상 가능한가요?”

미영은 민 여사의 말에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연기력이 좋은 배우라도 사람들이 찾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법.

태준과 민수, 수연은 이미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설아는 아직 아니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설아가 CF도 안 찍고 이러고 있으니 문제는 문제였다.

“솔직히 배우들이 쉰다고 인지도가 떨어질 수준은 넘어섰습니다.

다만 문제는 설아 씨인데…..”

“음….”

윤 대표도 설아의 입지가 아직은 완벽하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오늘 모인 가장 큰 이유가 설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태준이나 민수, 수연은 그냥 저대로 놔두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연기를 알아서 할 것이니 문제가 없었다.

“팬층은 설아 씨를 잊거나 그러지 않을 겁니다.

지금도 설아 씨랑 수연 씨, 그리고 민수 씨는 홈페이지의 개인 영상을 계속 올리고 있으니까요.

반응도 좋고 꾸준히 찾아 주시는 팬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일반 대중들이고 그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예능이나 CF를 찍는 건데 설아 씨가 둘 다 안 하겠다고 하니….”

미영이 이점을 지적하자 찬수도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그나마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정상적인 사람이 한 명은 있다는 걸 확인한 찬수는 이 기회를 빌려 무조건 설아의 스케줄을 잡을 생각이었다.

사실 찬수도 RD에 있을 때는 소속사가 배우나 가수들에게 스케줄 폭탄을 안겨주는 것에 환멸을 느꼈었다.

연예인이 기계인 것도 아니고 그들도 쉴 때는 쉬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자신이 원하지 않는 스케줄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스스로 지쳐 떨어져 나가게 되니 소속사 입장에서도 손해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이곳에 와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 달라지게 되었다.

아니 생각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직도 찬수는 과도한 스케줄은 배우에게 독으로 작용한다는 대전제를 잊지는 않았다.

다만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스케줄을 거부하는 사고뭉치 배우들에게는 최소한을 스케줄을 강요해야 한다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거뿐이었다.

정말 이곳의 배우들은 스케줄에 너무 인색했으니까.

“문제긴 하군.

그래서 이 팀장.

이 팀장의 생각은 어때?”

윤 대표가 진지하게 묻자 미영도 굳은 표정으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미영을 찬수가 속으로 강하게 응원하고 있었다.

“제 생각은 차라리 예능에 나가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적어도 고정으로 출연하는 자리에요.

사실 연초에 민수 씨랑 같이 나간 “무모한 도전” 이후에 설아 씨에 대한 예능 섭외도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런가요? 오 팀장?”

“네. 대표님.

고정으로 요청이 들어온 것도 몇 개 있었습니다.

요즘도 가끔 섭외가 들어오곤 하고요.

이번에 드라마 끝나고도 몇 개 들어왔습니다.”

“음…. 예능이라.”

“설아가 하려고 할까요?”

“글쎄. 안 하려고 할 거 같은데.”

“하지만 대표님.

이번에는 무조건해야 합니다.

작품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작품을 고르는 게 무리라면 적어도 얼굴이라도 계속 노출해야 합니다.

아직 설아 씨는 태준 씨나 수연 씨처럼 확고한 자리를 잡은 게 아니니까요.”

윤 대표도 미영의 말이 옳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아에게 스케줄을 강요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윤 대표의 고민이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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