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45화 (24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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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숙의 수상 소식을 누구보다 빠르게 접한 윤 대표는 놀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들끓는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누구보다 윤숙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기에 윤숙이 이번 영화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였다.

촬영 후 실신까지 하며 정말 온 정성을 다 쏟아 넣더니 결국 이런 사고를 치고 말았다.

사고는 사고지만 참으로 바람직한 사고였다.

“하….. 여우 주연상.

하하하. 진짜 이렇게 되다니.”

윤 대표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지금껏 보아온 윤숙의 연기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데뷔 초 평범한 외모 때문에 여러 배역에서 물을 먹었던 모습.

그리고 조연이라도 하나 잡아보려고 온갖 고생을 다 하던 모습.

조연으로 완전히 자리를 잡은 후에는 단 한 번이라도 주인공이 되고 싶어 오디션이란 오디션은 다 보고 다녔었다.

하지만 옆집에서 당장 튀어나올 거 같은 평범한 외모, 수더분한 모습으로는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좌절을 겪었지만 윤숙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작은 미련 때문에 포기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시절이 바뀌면, 드라마나 영화의 기조가 바뀐다면, 그런 작은 기대 하나로 끝끝내 연기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온단 한번의 기회.

윤숙은 모든 것을 바쳐 그 기회를 잡았다.

연기 후 바로 실신하고 병원에 실려 가다니.

실신할 정도로 몰입해서 연기에 모든 것을 바치는 것.

말이 쉽지 이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던 혼을 갈아 넣은 연기가 무엇인지 윤숙이 몸으로 직접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세계인이 인정하는 칸 영화제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한참을 그렇게 자신만이 소회를 풀어 놓으며 웃음 짓던 윤 대표는 이제 정신을 차리고 대표로서 자신이 할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윤 대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민 여사는 가장 먼저 언론에 윤숙의 연기 인생에 대한 자료를 풀어 놓으며 포장할 수 있는 데까지 포장하기 시작했다.

요즘 민수의 단독 기사로 재미를 좀 본 언론사들은 민 여사의 충실한 수족이 되어 주었다.

물론 앞으로 드라마가 끝난 후 태준과 설아에 대한 여러 가지 자잘한 요구사항이 있었지만 민 여사는 흔쾌히 허락했고 윤 엔터와 언론사 사이의 딜이 물밑에서 이루어졌다.

물론 태준이 반발할 수도 있었지만 민 여사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어차피 집에서는 자신이 왕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요즘 윤 대표가 태준이나 설아에게 조금 난처한 부탁을 할 때는 무조건 민 여사를 통하고 있었다.

예전에 이런 일을 하지 않은 이유는 윤 대표 자체도 이런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윤 대표도 이제는 어느 정도 사전작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으니 민 여사로서는 거리낄게 없었다.

윤 대표는 변한 상황에 따라 각 배급사에 연락을 돌렸다.

단순히 민수가 출연한다는 이유로 배정받은 스크린 수로는 칸의 여왕이 된 윤숙에게 가당치도 않았다.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와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는 달리는 속도가 다른 수밖에 없었으니까.

오픈 스크린 수는 늘릴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

하지만 이제 서서히 줄어드는 “쓰나미”의 스크린은 충분히 먹어 치울 수 있을 것이다.

배급사들도 긍정적인 분위기였다.

특히 당장 내일부터 늘려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도 충분히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실 그들도 이런 특수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영화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배급사 입장에서는 차라리 입소문이 터지기 전, 한창 화제가 되었을 때 빨리 스크린을 배정해 주는 게 이익이었다.

그래야 흥행성적이 형편없을 때 빠르게 치고 빠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너무 시간이 늦어 그렇게 하긴 힘들었고 추후 관객 수의 변화를 보고 스크린을 조정하기로 했다.

윤 대표로서는 상대가 상황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스크린을 배정하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 것만으로 이미 소기의 성과를 이룬 셈이었다.

영화의 퀄리티는 정말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부터 “Mama”의 시사회 일정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역시 VIP 시사회.

연예계에서 성품 좋기로 소문난 윤숙이라서 그런지 많은 연예인이 참석해 윤숙을 축하해 주었다.

연예인들이 많이 움직이니 자연스럽게 기자들도 북새통이었고 시사회에 들른 연예인들의 면모 자체만으로도 좋은 기삿거리가 되어주었다.

게다가 어제 전해진 윤숙의 수상 소식이 아직도 뜨거웠으니 사람들의 관심이 이곳으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민수는 자신을 축하하러 모여준 소속사 식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특히 이제 한창 중요한 부분을 촬영하고 있던 태준의 방문은 조금 뜻밖이기도 했다.

“귀의”는 이제 종반부를 향해 달리고 있었는데 시청률도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추세였고 드라마가 끝날 때쯤에는 진짜 사고를 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드라마가 좋은 분위기로 순항하는 데에는 민수가 기여한 몫도 작지 않았으니 태준이 이곳에 오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물론 촬영이 정말 빡빡하다면 오기 힘들었겠지만, 오늘 태준이 참가한 것만 봐도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었다.

설아가 주연한 “햇살이 비추는”은 이번 주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총 16부작으로 그렇게 길지 않은 여정이었는데 마지막 시청률이 20%를 넘지 못한 17.9%로 조금 아쉬운 결과였다.

충분히 높은 시청률이긴 했지만, 초반에 기세를 탈 때는 20% 정도는 기대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이 드라마가 너무 현실적이라 시청률을 치고 나가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드라마에서는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현실처럼 흘러가는 드라마가 김이 빠질 수 밖에.

이 드라마가 얼마나 현실적인지 심지어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끝까지 이뤄지지 않고 썸만 타다가 끝났으니 시청자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나마 열린 결말이긴 했지만, 시청자들이 원한 건 그게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드라마가 주는 사회 비판적 메시지만은 확실했다.

처음부터 기획 의도 자체가 그랬으니 그런 주제로 이 정도 시청률을 기록한 것만으로도 제작진 측은 만족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수연 선배는 그새 많이 변했네요?”

민수의 말대로 민수가 영화제에 참석하는 2주의 기간 동안 조금 통통했던 수연이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2주만에 이 정도면 나름 열심히 운동을 했을 텐데 아마 수연을 움직이게 한 것은 설아의 압박이었을 것이다.

설아의 드라마가 끝날 시기가 다가오니 이를 악물고 움직였음이 분명했다.

“응. 운동 좀 했어.

어차피 할 거 굳이 설아의 특훈 코스를 밟을 필요는 없잖아?”

설아의 특훈 코스가 세긴 센가 보다.

“윤 배우는 한창 바쁠 텐데 여기까지 왔어?

드라마는 잘되고 있지?”

그냥 인사처럼 건네는 민수의 말에 태준은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마치 오늘 여기 온 것이 이거 때문이라는 듯 매끄럽기 그지없었다.

아마 비율로 따지면 민수를 축하하기 위해서가 40%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가 60% 정도가 아닐까?

“응. 드라마야 잘되고 있지.

우리 정 배우가 들렀다 간 날부터 분위기가 더 좋아졌거든.

아. 정 배우.

그 미안한데 혹시 마지막 부분에 카메오 한 번 더 가능할까?

이거 제임스가 너무 인기가 있어서 그런지 시청자들의 요청이 장난 아닌가 봐.

어때? 힘 써주는 김에 팍팍 좀 도와주는 게.”

민수는 태준의 말에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부터 튀어나왔다.

“허….

야. 너 진짜.

내가 그때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걸 또 해달라고?”

“에이, 전과는 좀 다르지.

야. 그리고 이미 수술 연기는 익숙해졌잖아.

그거 아니라면 별로 시간 걸릴 일도 없고.

연습해 놓은 게 아깝지도 않냐?

내가 좀 심하긴 했지. 나도 인정해.

하지만 솔직히 나도 예전에 네가 영화사 사장이랑 대판 하는 바람에 쓸데없이 인터뷰도 끌려다니고, 어? 이번에도 드라마 마치고 스케줄이 갑자기 막 늘어났던데 내 스케줄이 왜 늘어났겠어?

자, 정 배우 원래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잖아.

쓰는 김에 좀 더 써줘.”

민수는 태준의 말에 대답할 말을 찾기 힘들었다.

예전 인터뷰도 그렇고 이번에도 태준의 스케줄이 늘었다면 아마 자신의 영화 때문일 것이다.

영화와 윤숙의 과거사가 보기 좋게 포장돼서 패키지로 떠다닌다 했더니 수속사 측에서 손을 내민 모양이었다.

게다가 수술 장면의 연습이 완전히 몸에 익은 상황이라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도 맞는 소리였다.

자신 덕분에 드라마가 더 잘 될 수만 있다면 좋은 일이긴 하지만 왠지 속는 기분인 게 썩 개운치가 않았다.

태준의 말이 다 옳은 말이긴 했지만, 그냥 기분이 그랬다.

“뭐…. 그래. 좋아. 알았어.

“귀의”가 6월 중순 까지지? 24부작이니까.

이 영화 스케줄 마치면 바로 시간 잡아 볼게.”

“오. 역시. 좋아 좋아.

바쁜 촬영 중에 시간을 뺀 것에 대해 나도 할 말이 생기는 구만.

대본은 돌아가면 바로 보내줄게.

저번에 네가 연기하는 거 보고 작가님이 또 엄청 힘을 준 거 같더라고.

작가님 말로는 시청률을 한 번 더 올릴 기회라는데 내가 보기에도 나쁘지 않은 거 같아.”

“끙. 알았어. 나중에 보내줘.”

민수는 승낙하면서도 왠지 억울했다.

맨날 당하는 기분이니 어찌 좋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데도 태준이 원하는 데로 해주는 게 윤 엔터 비공식 호구다웠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는지 태준이 흔들고 지나간 자리를 설아가 따듯하게 보듬어 주었다.

민수가 영화 관련 활동을 하는 동안 설아도 적당히 스케줄을 소화한 후,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는데 민수도 나중에 설아와 같이 보낼 시간이 기대되어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시사회 자체는 큰 문제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원래 시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 때문인지 민수는 안심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액땜 같은 게 없는 건지 순조롭게 흘러가기만 했다.

민수는 아무 일 없는 지금 같은 상황이 더 부자연스러웠다.

큰 문제가 생기는 거보다는 차라리 작은 문제로 액땜을 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한 법이거늘.

민수는 상황을 지켜보며 작게 혀를 차고 있었다.

워낙 당한 게 많다 보니 민수는 아예 문제가 생길 것을 전제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었다.

영화의 호평 일색이었다.

[뻔한 주제. 특이한 구성. 놀라운 연기]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로 관객들을 울려버린 칸의 여제.

진정한 연기력이란 이런 것.]

-솔직히 이건 좀 너무했어.

마지막에 민수형이 여행 가자고 하면서 웃는데 내 마음이 다 찡하더라.

엄마가 이상한데 대체 민수형은 왜 모르는 거야?

-에필로그에 엔딩 문구, 그건 솔직히 누구나 다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이었지.

그런데 막상 그 상황에 그게 올라가니까 울컥해서 시골집에 바로 전화부터 드렸다.

-그런데 그 문구 어이없긴 하더라.

생각해보니까 영화 중간에 여주인공 이름이 한 번도 안 나왔어.

그런데도 영화는 자연스럽게 흘러갔고.

정말 일상에서는 대부분 누구 엄마 누구 엄마 이렇게 불리니까 자기 이름으로 뭘 하는 게 거의 없어.

왠지 좀 짠해졌다고나 할까.

-그래도 새겨들어라.

원래 자기가 다 커서 제 몫 할 때가 되면 이미 늦은 거야.

나도 내가 자리 잡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못내 한이 되긴 하더라.

어머니가 언제나 내 옆에 계시는 건 아니더라고.

원래 대로였으면 뻔한 주제의 신파극이라고 집중 공격이 들어올 수도 있는 영화였는데 윤숙이 칸에서 입상하면서 주제는 뻔했지만, 연기력으로 그걸 극복했다는 기사와 평론이 지배적이었다.

아무리 배짱 좋은 평론가라고 해도 어제 여우 주연상을 받은 윤숙의 연기를 평가하기는 부담스러웠는지 그들답지 않은 온건한 평가였다.

“호호. 칸의 여제라니 이건 너무 하잖니.”

윤숙은 말을 이렇게 했지만, 기분이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 이었다.

게다가 혼자서 여러 번 “칸의 여제”를 되뇌는 모습이 생각보다 그 호칭을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영화는 이렇게 사람들의 호평 속에 전국적으로 개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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