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44화 (244/325)

#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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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상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알게 모르게 초조함을 느끼고 있던 세 사람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며 여유를 되찾았다.

민수는 이 영화제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무덤덤한 태도를 유지하려 했지만, 옆에서 워낙 초조해하는 두 사람 때문에 덩달아 긴장감을 느꼈었는데 두 사람이 정신을 차리자 빠르게 평정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긴 일행은 시상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한가롭게 각자 마음에 든 영화를 감상하기로 했는데 “Mama”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는지 윤숙과 민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사람은 주인공으로 출연한 윤숙이었다.

윤숙이 영어에 익숙하지 않아 민수가 계속 옆에서 통역을 자처했는데 다른 나라 영화 관계자들이 윤숙에게 끊임없이 접근하고 있었다.

특히 연기를 칭찬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는 있었지만 실룩이는 입가를 완전히 주체할 수는 없어 계속 꿈틀꿈틀하는 윤숙의 입 모양은 꽤나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였다.

심지어 가끔 도도한 표정으로 땡큐라고 말하고 새침하게 인사할 때는 평소의 윤숙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 민수도 웃음을 참기 힘들 정도였다.

“하하. 선생님 그냥 좋으면 웃으시면 되잖아요.

억지로 참으니까 더 웃긴 표정이 나오는 거 아세요?”

자신에게 인사하고 가는 사람들이 다들 유쾌해 하며 떠나자 의아했던 윤숙이 민수에게 넌지시 물어보자 민수는 좋은 걸 억지로 참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 거 같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얘는. 누가 칭찬 한마디 한다고 헬렐레하면 날 얼마나 없이 보겠니?

마치 연기력으로 한 번도 인정받아 본 적 없는 사람같이 볼 거 아니니?

내가 주연을 못 해봐서 그렇지 연기력은 꾸준히 인정받아 왔는데 그런 취급을 받아서야 쓰겠니?”

물론 윤숙이 연기력으로 인정받는 배우는 맞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외국 관계자의 칭찬에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거부터 도도한 척은 이미 글러 먹은 게 아닌가 싶었다.

하긴 이곳은 그냥 축제의 장이었고 모두 즐거우면 그거로 된 거 아닌가?

민수는 이렇게 생각하며 기분 좋게 윤숙을 따라다녔다.

태원은 젊은 감독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럽이나 미국의 감독들은 도대체 영화가 왜 그런 내용으로 진행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처음 예상했던 대로 한국 어머니의 정서를 이해하는 게 어려워서 그런 거 같았다.

“휴…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작품상이나 그쪽으로는 완전히 텄네요.

가장 중요한 주제를 이 사람들이 이해를 못하니까요.”

민수는 아쉬워하는 태원을 차분한 어조로 위로하고 나섰다.

원래 가장 연장자인 윤숙이 나서야 할 일이었지만 윤숙은 그럴 겨를이 없어 보였으니 민수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건 어쩔 수 없죠.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잖아요.

그래도 여기서 이 정도 반응인 걸 보니 한국에서는 관객들이 아예 울음바다를 터트릴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겠죠? 사실 저도 사람들이 에필로그 들어가기 전에 눈물 훔치는 걸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거든요.

이건 통한다! 이렇게요.”

민수의 말에 태원도 마음을 조금 진정시킬 수 있었다.

처음부터 한국에서의 흥행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것만 이루면 일단 목표는 달성이었다.

그리고 민수.

민수에게도 태원, 윤숙 정도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이 인사를 건넸는데 놀랍게도 민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특히 미국 쪽 영화 관계자들은 민수가 “My uncle Joe”에 출연한 주연 배우였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액션 배우라고 생각했던 민수의 섬세한 감정 표현능력을 치하하면서 조금만 가다듬으면 미국에서도 통할 수 있겠다고 립 서비스를 날렸다.

당장 주연은 어렵겠지만 민수의 얼굴이 서양 쪽에서도 통할 만한 매끄러운 인상이었고 영어 발음도 미세한 악센트만 잡으면 충분히 배우로 활약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는데 민수는 그냥 웃으며 고맙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미국에서 온 한 신인 여배우는 전작에서 민수의 샤워 장면이 엄청 섹시했다면서 포옹하고 귓가에 바람을 불어 넣는 데 이건 무슨 아메리칸 조크인가 싶어 조금 난감하기도 했다.

게다가 떠나면서 농염한 윙크와 손 키스까지.

나나세처럼 손아귀에 호텔 룸 번호가 적힌 쪽지를 쥐여주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할지 아쉬워해야 할지 참 황당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접근하는 여배우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주변을 맴돌던 수정이 왠지 묘한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모골이 송연한 느낌이었다.

“야. 넌 왜 맨날 내 옆에 있냐? 여기에 꿀이라도 발라놨어?

너, 내 코디로만 여기 따라온 건 아니잖아?

선생님도 챙겨야지.”

“왠지 모르겠지만 지금 제가 여길 지켜야 할 거 같아서요.

선생님한테는 매니저 오빠가 따라갔잖아요.

우리 배우 오빠가 혼자 있다가 엉뚱한 일이 생기면 어떡해요?

원래 동양 남자들한테는 동양 여우보다 서양 여우가 더 무서운 법이니까요.”

“뭔가 이상한데…..”

왠지 감시하는 듯한 수정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원래 엉뚱한 짓을 잘하는 수정이라서 그냥 그러려니 하며 넘겼는데 마지막 말은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요즘 태준 때문에 민감해진 민수의 감각이 이건 뭔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너 설마 무슨 부탁을 받은 건 아니겠지?”

정곡을 찌르는 민수의 말에 수정은 태연하게 무슨 소리냐고 웃어넘겼다.

민수는 너무나도 태연한 수정의 태도에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저게 연기라면 수정은 지금 코디가 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어야 했다.

“끙. 그래.

하긴 부탁은 무슨 부탁이냐.

자기가 맡은 배우가 매니저도 없이 있으니까 그냥 걱정돼서 그런 거겠지.

이런 곳에서 스캔들이라도 터지면 그건 그거대로 난감하니 신경 쓰는 거겠고.”

하지만 민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미 수정은 설아에게 민수가 의심할 때 취해야 할 행동 양식에 대하여 숱하게 교육받았다는 걸 말이다.

우선 무조건 태연해라. 그러면 절대 안 걸린다.

길게 대꾸하지 마라. 말이 길면 걸린다.

첫 어감이 중요하다. 특히 첫 단어를 내뱉을 때는 절대 떨지 마라.

그리고 위기 시에는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라고 말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후 아무 말도 하지 마라. 그럼 민수가 알아서 자기 혼자 결론 지을 것이다. 등등.

그리고 이미 여러 번 민수에게 의심을 받은 적 있는 수정은 그 부분에 완전히 특화되어 버렸다.

결국 수정은 지금 적어도 민수를 속이는 연기만은 아카데미 시상식에 설 정도의 실력이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수정이 설아의 눈이 되어 줄 것이다.

기브 엔 테이크가 확실한 설아는 수정과 좋은 파트너였다.

설아의 기브가 계속되는 한 수정은 설아를 배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드디어 영화제의 끝이 다가오고 시상식 날이 되었다.

세 사람은 편안한 마음으로 지정된 자리에 앉아 수상자들의 수상 소감을 듣고 있었다.

그나마 가능성을 점칠 수 있었던 심사위원 특별상이나 각본상, 감독상이 지나자 태원은 조금 실망한 표정이었다.

민수의 말을 듣고 마음을 다잡아 먹긴 했지만 그래도 시상식에 초청되어 온 이상 뭐라도 하나 받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아서였을 것이다.

반면 윤숙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며칠간 사람들의 극찬을 받으며 배우로서 쌓였던 울분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된 상태였고 수상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인정하고 있어서 그런 거였다.

하지만.

[여우 주연상. “Mama” 윤숙 정.]

“응?”

“어?”

여우 주연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모두가 손뼉을 치고 있는데 정작 수상자인 윤숙은 아무 생각 없이 같이 손뼉을 치고 있었다.

민수는 윤숙이 수상한 것도 놀랍지만 수상자가 수상하러 나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손뼉만 치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황당해 잠시 당황하다가 급하게 윤숙에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선생님이에요.

여우 주연상. 빨리 나가서 수상하셔야죠?”

“응? 그게 무슨 소리니?

내가 뭐라고?”

“여우 주연상이요. 빨리요. 선생님.

지금 다 선생님 기다리고 있잖아요.”

민수가 계속 보채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던 윤숙은 자신에게 좋은 연기 잘 봤다고 말했던 영화 관계자들이 자신을 쳐다보며 계속 손뼉을 치자 겨우 정신을 차리고 엉거주춤 무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와…. 이게 이렇게 되나.”

민수는 무대에 오르는 윤숙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영화 내용에 대한 의문은 계속 있었지만 윤숙의 연기력에는 다들 감탄만 내뱉을 뿐이었으니 이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고 이해조차 잘 되지 않는 내용의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던 관객들은 그저 윤숙의 연기 자체에서 느껴지는 슬픔과 애달픔에 압도된 것이리라.

단상에 오른 윤숙은 혼란스러운지 잠시 아무런 말로 내뱉지 못하였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입만 바라보고 있자 이제서야 실감이 나는지 얼떨떨한 표정이 눈물로 얼룩져 들어갔다.

그리고 겨우 입을 열고 이야기하는 수상소감.

두서없이 이어지는 수상 소감이었지만 오늘은 그 모든 것이 다 용납되는 날이었다.

민수도 울먹이며 겨우겨우 입을 떼는 윤숙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윤숙은 자신의 30년 연기 인생을 세계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인정받았다.

조연으로 주연을 빛내 준 시간이 무려 30년.

윤숙의 연기 인생에서 자신이 주인공으로 세상에 선 그 첫날이었다.

윤숙의 여우 주연상 수상 소식은 당연히 한국 언론을 통해 전국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영화 “Mama”가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에 상영되기 시작할 것이다.

민수와 윤숙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그다음 날부터 바로 말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윤숙은 자신의 수상이 믿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내가…. 여우 주연상이라니.”

“선생님. 아직 실감이 안 나시나 봐요.

아마 인천에 도착하면 이제 완전 실감하게 되실걸요.

분명 인천에 기자들이 엄청 진을 치고 있을 테니까요.

칸에서 연기상을 받은 건 처음이니 분명 득달같이 달려들겠죠?

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테니 선생님은 수고 좀 해 주세요.”

“어머. 얘 좀 봐.

그게 무슨 소리니.

죽어도 같이 죽어야지. 나 혼자 죽으라고?”

기자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윤숙도 정신이 들었는지 민수를 물고 늘어졌다.

그 많은 기자를 혼자 상대하라니 자신이 여우 주연상을 받은 건 분명 경사였지만 그건 너무 심했다.

하지만 민수는 차라리 자신이 빠져 주는 게 윤숙에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오늘 기자회견은 오로지 윤숙이 주인공이어야 했다.

괜히 자신이 껴서 시선이 분산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았다.

이건 윤숙을 위한 판단이었다.

결코 기자들에게 시달리기 싫어서가 아니었다.

정말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절대 믿지 못하겠지만 정말이었다.

민수는 자신에게 애써 여러 번 강조하며 윤숙을 피해 따로 도망가기로 했다.

윤숙도 민수가 여러 번 이야기하자 결국 민수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윤숙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자신에게 기자들이라니. 참 어울리지 않았다.

인천공항에 작게 설치된 기자회견장에서 윤숙이 기자들을 상대하는 동안 민수는 무사히 빠져나와 소속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곁에는 태원도 같이 있었다.

“좋은 일이지만 기자들은 상대하기 피곤하니까요.

선생님이 알아서 잘하시겠죠.”

태원도 기자들에게 시달리고 싶진 않았나 보다.

민수는 난처하게 웃는 태원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소속사로 돌아가는 길.

민수와 태원은 이번 수상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줄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제 시상식은 끝났고 내일부터는 영화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민수 씨 혼자 끌던 마차를 선생님이 같이 끄는 형세가 되었네요.

게다가 수상 때문에 영화 평론가들도 함부로 펜대를 놀리지 못 할 테고요.

언론도 우리 편이겠죠.

이건 정말……”

태원의 말 대로였다.

단순히 칸에 경쟁작으로 초청된 것이 무기로 따지면 잘 벼려진 장검 정도였다면 칸에서 여우 주연상을 받은 것은 수백 발의 총알을 탑재한 기관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언론과 평론가들을 완전히 등에 업을 수 있었고 사람들의 관심이 최고조로 올라간 지금, 바로 내일부터 영화가 개봉된다.

“이거…. 흥행에 실패하는 그림이 전혀 안 떠오르네요.

많은 사람이 보기 시작하면 영화는 자신 있거든요.

잘 나온 영화니까요.”

태원의 말대로 영화도 잘 빠진 데다 이런 호조까지 겹쳤으니 영화의 흥행은 자신 있었다.

영화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보니 내일 시사회가 생각나 민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흥행도 좋았지만, 몸이 피곤한 건 피곤한 거였으니까.

민수는 피곤한 몸을 편안한 차량 좌석에 기대며 조금만 버티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 영화가 끝나면 진짜 쉴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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