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43화 (243/325)

#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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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귀의” 잘 봤어.

진짜 멋지더라.

중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대체 수술 연습은 언제 한 거야?”

“아… 뭐. 그렇죠. 틈틈이 했어요.”

민수는 지금 엄청나게 피곤했다.

중국에서 오자마자 바로 수술 연습에 들어갔고, “귀의”를 촬영한 후에는 갑작스럽게 칸 영화제에 초대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스케줄의 향연.

결국 중국에서 고생하고 돌아와서도 강행군을 계속 한 셈이었고 영화제를 다녀와도 다시 영화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이 말은 당분간 쉴 수가 없다는 뜻이었으니 지금보다 더 피곤해질 것이 분명했다.

오자마자 바로 휴식을 취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 개봉 스케줄을 소화하려 했던 민수의 생각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 시작이 바로 태준의 엉뚱한 카메오 요청이었다.

만약 태준이 일반적인 카메오 출연을 요청했다면 적어도 그때만이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민수는 다시 태준이 얄미워졌다.

지금 민수가 태준에게 미묘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하. 진짜 얼마나 멋지던지.

태준이도 와서 네 칭찬을 엄청 하더라.

네가 진짜 배우라고 말이야.

감탄과 감탄의 연속이었다니까.

나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옆에서 직접 본 태준이는 오죽할까.”

수연의 말을 들어보니 태준도 놀라서 자신을 칭찬한 모양인데 태준도 인정할 정도였으면 자신의 노력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사람들도 많이 칭찬했고, 자신이 생각해도 그 연기는 나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풀어지는 것도 같았다.

민수는 그렇게 기분이 풀어지려다가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던 수연이 갑자기 소속사에 나타나서 자신을 폭풍 칭찬 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이야기에 기분이 풀어지려고 하고 있고, 이게 자연스러운 일일까?

그런 생각이 들자 지금 자신을 칭찬하며 웃고 있는 수연의 뒤에 음흉한 표정의 태준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혹시 태준이 뒤탈이 두려워 수연을 이용해 자신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것이 아닐까?

태준에게 크게 당한 민수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쓸데없이 단련되는 민수였다.

“어쨌든 감사해요. 선배.

좋게 봐주셨다니 다행이네요.”

민수는 부드럽게 웃으며 수연에게 대꾸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수연이 태준에게 자신의 마음이 많이 풀어졌다는 거짓 정보를 전달하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자신의 복수심(?)은 겨우 이 정도로 약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충격적인 수연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민수는 칸 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로 출발하게 되었다.

출발하는 공항에서도 많은 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에는 우리나라에서도 2편 정도의 영화가 초청되곤 했는데 올해는 우리나라 작품 중에서는 “Mama”가 유일하게 칸에 경쟁작으로 초청을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출발하기 전부터 기자들의 관심이 제법 뜨거웠다.

수상 가능성과 심정을 묻는 기자들에게 겸손한 자세를 보인 “Mama” 팀의 배우들과 감독 김태원은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무사히 비행기에 탑승했다.

“하…. 이게 웬일이라니.

영화를 마치고 휴식에 들어간 윤숙을 다시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민수가 진작에 찾아뵈려고 했지만, 아직 몰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민수를 만류했던 윤숙은 최근에서야 몰입을 벗어내고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평정을 되찾았으니 다행이었지, 만약 조금만 늦었으면 정상적인 상태로 칸에 가지도 못 할 뻔했다.

긴 연기 경력과 다양한 경험으로 단련된 윤숙마저 몰입에 허덕일 정도의 영화였으니 민수가 그 당시 몰입에 빠져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두 배우가 완전히 몰입해 혼을 갈아 넣을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기 때문에 경쟁작으로 초청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시 예전의 윤숙으로 돌아와 만나자마자 민수를 가볍게 껴안고 감사를 표했던 그녀는 온갖 일들을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 생각보다 많이 긴장하고 있었다.

얼마나 초조해 보이는지 옆에서 별생각 없이 앉아있던 민수까지 덩달아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하하. 선생님 왜 이렇게 긴장하세요?

그냥 부산 국제 영화제에 초청받았다고 생각하세요.

거기는 자주 갔다 오셨잖아요.”

윤숙은 잘게 떨다 민수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가볍게 흘겨보았다.

“얘는, 어떻게 그러겠니.

칸이란 말이야. 하…..”

감격한 듯 가만히 눈을 감은 윤숙은 처음 태원에게 연락을 받은 순간부터 밤잠을 설치고 있었다.

자신이 주연한 영화로 칸에 초청받다니.

윤숙은 자신의 연기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듯한 감격에 지금까지 가슴속에서 굳어있던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려나가는 기분이었다.

민수는 윤숙의 떨리는 눈꺼풀에서 지금 그녀가 느끼는 감동을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기세를 타 영화 흥행에도 성공해 지금까지 쌓아 놓았던 마음속의 울분을 모두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랐다.

긴 시간 동안 조연으로 영화와 드라마의 주연 배우들을 빛내 주었던 윤숙이라면 그런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프랑스의 남부 휴양도시 칸.

영화의 상영과 레드카펫 입장이 3일 차로 결정되어 있었으니 일행이 특별히 해야 할 일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태원은 따로, 민수와 윤숙은 같이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관람하기로 했다.

일반인 관객과 기자들은 빡빡한 조건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모두 볼 수는 없었지만 초대되어 온 감독과 배우들은 원하면 자신의 원하는 대로 수월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민수가 선택한 영화는 영국의 무명감독 “제린 스미스”가 메가폰을 잡은 “흐린 날의 기억”과 중국의 신인 감독 “장찌쉬” 의 입봉작인 “번뇌” 였다.

특히 중국의 감독인 “장찌쉬”는 전생에 민수가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던 유명한 감독이었기 때문에 다른 영화보다 더 관심이 갔다.

영화 “번뇌”는 급격히 발전하는 중국 사회에서 한 남자의 가치관이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였는데 배우의 다중적인 감정연기가 두드러지는 그런 영화였다.

급격하게 변하는 가치관에 맞춰 섬세하게 이어지는 남자 주인공의 연기는 민수도 감탄을 내뱉을 정도였다.

민수가 이름을 전혀 들어보지 않은 배우인 것을 보니 아직 무명 배우인 모양인데 저런 연기력이라니.

민수는 영화를 보고 감탄스러워 감독과 배우가 이야기하고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자신을 소개하며 영화가 좋았다고 이야기하려던 찰나 생각보다 상대의 반응이 격렬하여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어! 정민수 씨 맞죠?

무신 정민수! 와 세상에….

이번에 칸에 초청되셨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민수는 자신을 보고 놀라며 두 손으로 악수를 받는 신인 감독 “장찌쉬” 와 신인 배우 “장리췬”을 보며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서양에서는 완전 무명 배우였지만 그래도 중국에서는 상당히 먹어주는 민수였기에 이번에 첫 영화를 찍은 두 사람으로서는 민수가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보고 감동하였다는 민수의 말에 장찌쉬는 자신이 더 감동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정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장리췬은 장찌쉬의 친동생이라는데 민수가 대단한 연기였다고 추켜세우자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형제가 첫 영화를 같이 하다니, 다소 이례적인 일이라 형제가 없는 민수로서는 조금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민수에게 큰 감흥을 준 “번뇌”와는 달리 “흐린 날의 기억”을 본 감상은 그냥 무덤덤하다는 것이었다.

그게 영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민수가 보기에는 그냥 그랬다.

특별히 느껴지는 바도 없었고, 딱히 거슬리는 것도 없었다.

민수는 영화를 본 후 혹시 자신의 영화도 다른 영화 관계자들에게 이런 느낌을 줄까 봐 조금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대망의 3일 차.

드디어 “Mama”가 상영하는 날이 되었다.

민수는 날렵한 턱시도를 입고 곱게 차려입은 윤숙을 에스코트하기로 했다.

“배우 오빠! 오늘 평소보다 더 멋진데요?

그리고 선생님도 10년은 더 젊어 보이세요.”

수정이 윤숙에게 다가와 방방 뛰면 너스레를 떨었지만, 잔뜩 긴장한 윤숙의 표정을 펴질 줄을 몰랐다.

민수는 그런 윤숙의 잘게 떨리는 손을 꽉 쥐고는 부드럽게 에스코트해 레드카펫으로 인도했다.

“오늘은 선생님이 주인공이신데 이렇게 긴장하시면 어떡해요?

정말 고대하던 일이잖아요.

오늘보다 완벽한 날이 어디 있겠어요?”

민수의 말에 심호흡을 마친 윤숙도 마음을 다잡았는지 흔들리던 눈동자가 고요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래. 가자.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니까.”

민수와 윤숙이 레드카펫에 올라서자 한국 기자와 외신 기자, 그리고 많은 관객과 관계자들이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는 민수와 윤숙이 아시아 변두리에서 온 낯선 배우들이라는 사실도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민수와 윤숙은 칸에 초청될 정도로 수준 높은 영화를 촬영한 훌륭한 배우일 뿐이었다.

긴장되는 레드카펫을 통과하고 드디어 영화가 상영할 시간이 되었다.

많은 영화를 상영하기 때문에 관객이 적을 수도 있겠다는 민수의 걱정이 무색하게 상영관 안은 관객으로 꽉 차 있었다.

어떤 의도로 상영관을 찾았는지는 그들의 개인적인 사정이겠지만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 영화가 상영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민수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드디어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영화의 시작 부분.

사실상 가장 많은 자본이 투입된 이 부분은 민수의 기대대로 매끄럽게 처리되어 있었다.

아이를 처음 만난 30년 전, 그리고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13년 전, 시간대별로 젊어진 윤숙의 모습은 정말 사실적이었고 정교했다.

17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윤숙의 모습에 관객들이 작게 탄성을 내뱉는 것만 봐도 태원의 의도는 제대로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민수도 영화를 직접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영화가 전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는데 김태원 감독은 윤숙이 사망한 시점에서 시간을 돌려 윤숙을 중심으로 다시 영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영화의 러닝 타임이 1시간 40분 정도인데, 1시간 10분쯤이 되는 시점에 주인공인 춘천댁이 사망하고, 필름을 다시 돌리는 연출을 한 후 그때부터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 춘천댁을 중심으로 그녀가 혼자 어떤 고군분투를 벌였는지를 25분 동안 계속 보여준 것이었다.

암 선고를 받고도 정수를 걱정하는 춘천댁.

그리고 아픈 몸으로도 정수의 재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고생하는 춘천댁.

고통에 이를 악물면서도 정수를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이는 춘천댁.

춘천댁은 끝까지 자신보다 혼자 남을 정수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야위어 가는 춘천댁과 희망에 부풀어 밝아지는 정수의 모습이 대비되며 묘한 슬픔을 자아냈다.

민수도 춘천댁이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정수를 끊임없이 걱정하는 모습에서 자기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 후, 춘천댁과 민수가 사이 좋게 누운 상태로 춘천댁이 다시 눈을 감고, 어두워진 화면이 밝아지며 넋이 나간 정수가 장례를 치르는 장면과 마지막 뼛가루를 뿌리며 자장가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작은 탄식과 함께 눈가를 훔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머니들은 자신의 이름을 잃고 그렇게 살아가곤 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이름보다는 누구 엄마라고 그렇게 부르곤 하니까.

우리는 그렇게 뒤에서 헌신하는 그녀에게 훗날 은혜를 갚는다고 하지만 그때는 이미 우리 곁에 없다.]

떠오르는 문구와 넋이 나간 정수의 얼굴이 겹쳐지며 영화는 그렇게 대미를 장식했다.

화면이 밝아지고 잠시 후 뜨거운 박수가 상영관을 가득 채웠다.

민수가 둘러보니 상당수의 관객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손뼉을 치고 있었다.

상영관을 가득 메운 박수 소리에 민수는 발끝부터 짜릿하게 올라오는 희열을 느끼며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조금 무덤덤했던 민수였지만 머리 색이 다른 관객들이 자신의 영화에 감동하고 진심으로 터트리는 박수에는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윤숙은 아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 느껴지는 감정이 민수보다 더 깊었을 것이다.

단순히 감사와 희열의 눈물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희한 을 모두 안고 흘러나오는 그런 눈물이었다.

민수는 그런 윤숙을 부드럽게 끌어안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마치 영화에서 춘천댁이 정수를 그렇게 안고 달래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박수 소리가 잦아들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윤숙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칸에 따라온 기자들은 당연히 박수갈채를 받은 “Mama”의 반응을 그대로 한국에 기사로 내보냈다.

기사는 당연히 기립박수를 받은 한국의 명작이라는 내용이 따라 들어갔다.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지금까지 어떤 작품도 기립박수를 받았다는 평가를 받지 않은 작품은 없었으니까.

그것이 사실이든 과정이든 간에 언론은 항상 그렇게 기사를 올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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