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42화 (242/325)

# 242

5

“솔직히 놀라긴 했어요. 뜬금없이 칸이라니요.

김 감독도 정말 제법이에요.”

“그래. 제법이지. 예전에 대뜸 찾아와서 CG 처리 비용 더 내달라고 할 때부터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

나 원…. 세상에 그렇게 당당하게 투자자를 찾아와서 돈 내놓으라는 감독이 있을 줄이야.

그런데 그 CG로 퀄리티가 그렇게 올라간다니 돈을 안 줄 수도 없더라고.

당당한 태도도 마음에 들긴 했고.”

윤 대표는 영화 시작과 거의 동시에 CG 비용을 더 달라고 찾아온 태원을 회상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때 자신에게 찾아와 이렇게 이렇게 할거라고 설명하며 당당하게 요구하는 태원에게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돈이 영화의 퀄리티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되긴 했을 테니 군말 없이 투자한 자신의 선택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태원의 태도가 의외이긴 했다.

원래 그렇게 강단 있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아서였다.

윤 대표는 자신의 돈을 갉아먹자는 심정으로 CG에 대하여 태원에게 알려주고 자신의 성격을 이용해 당당하게 나가야 돈을 받기 쉽다고 코치한 찬진의 개입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찬진은 자신의 와이프로 협박한 윤 대표가 괘씸해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야기한 것이었는데 실제로 태원은 찬진만 믿고 윤 대표에게 당당하게 돈을 달라고 해 결국 거액의 CG 작업을 무사히 마친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영화가 칸에 초청된 이유 중 하나가 영화 초반부에 절묘하게 첨가된 CG가 작품을 더 자연스럽게 만들며 완성도를 올려 줘서였으니 참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수상 가능성은 없을까요? 만약 수상이라도 하게 된다면 영화 홍보에 많은 도움이 될 거 같은데요.”

“글쎄…..

사실 수상은 좀 어렵지 싶어.

지금까지 칸에서 수상한 한국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감독상이나 작품상 정도였거든.

그리고 그 영화들은 진짜 작품성에 올인한 작품들이었고.

물론 이 영화가 나쁜 영화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주제가…..”

수상에 회의적인 윤 대표의 말에 민 여사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영화의 주제가 모정에 관한 것이잖아요.

그건 모든 나라에 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하는데요.

어느 나라라도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니까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동양의 모정하고 서양의 모정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사실 모든 영화제가 서양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서양 사람들이 한국인의 조금 집착적인 모정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음….”

민 여사도 윤 대표의 설명을 듣자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목숨조차 도외시할 정도로 집착적인 모정.

특히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입양 후 아이를 떳떳하게 독립시키는 것이 미덕인 서양의 풍조를 생각해 보면 아이를 입양해 그렇게 집착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사실 칸에서 입상한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잖아?

처음도 아니고 작품상이나 감독상은 이미 여러 번 받아 왔어.

그런데 그 영화가 다 흥행에 성공한 것도 아니니까.

다만 만약 수상한다면 다른 수상작보다는 흥행할 수 있을 거야.

그 작품들처럼 작품성에만 집착한 영화는 아닌 데다가 액션 배우로 알려진 민수가 정극 연기로도 인정받은 것이니 아마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지겠지.

하긴 그게 아니라도 민수 때문에 어느 정도 흥행하긴 하겠군.”

결국 큰 의미는 없다는 말이었다.

민 여사는 아쉬움을 느꼈다.

기껏 영화제에 초청되었는데 큰 의미가 없을 거라니.

민 여사는 그래도 여러 가지 변수 중에 가장 큰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일이 풀려야 할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민 여사의 질문에 윤 대표는 가장 변수가 클 만한 상황을 설명했다.

“글쎄…. 말도 안 되겠지만 만약 주연상이나 황금 종려상쯤을 받게 되면 상황이 다르긴 하겠군.

그건 지금까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으니까.”

윤 대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서양인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주제로 입상을 하는 것은 영화계의 중심이 서양으로 치우친 지금의 시대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민수는 다음날부터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게 되었다.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 가장 바쁜 나날이었다.

중국에서의 홍보 일정도 이동 거리가 길었다뿐이지 일 자체가 이 정도로 많은 것은 아니었다.

가장 주된 활동은 역시 언론사 인터뷰.

그리고 잡지 인터뷰와 화보 촬영이었다.

윤 대표는 예능이나 CF를 찍는 대신에 잡지 화보 촬영 스케줄을 잡았다.

특히 여성잡지에 노출이 제법 있는 화보들도 많이 실었는데 덕분에 한국 여성들은 민수의 놀랍도록 아름다운 신체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윤 대표는 최근의 일들로 민수가 여성들에게 이상하게 비난받는 이 상황을 조금 경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한때거니 했던 것이 예상외로 지금까지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여성들이 많이 보는 잡지에 출연하여 일반 여성들의 지지를 끌어낼 생각이었다.

돈이 되는 CF보다 차라리 여성들의 접근성이 좋은 여성잡지를 선택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예전부터 수연이나 설아의 인터뷰 등을 실으며 민수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준 잡지사들은 민수의 화보를 실으면서 대박을 터트렸다.

민수의 화보와 인터뷰가 실린 잡지들이 일본으로 미친 듯이 팔려나갔기 때문이었다.

특히 민수의 상반신 누드가 실린 어떤 잡지의 이번 달 판매량이 이 잡지의 1년 판매량보다 많았으니 얼마나 많은 일본 여성들이 이 잡지를 사 갔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언론사 인터뷰.

민수는 인터뷰를 진행하며 자신의 예상과는 조금 다른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기자들과 1:1로 진행된 이 인터뷰 내내 기자들이 과도한 친절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자신에게 특종을 안겨주기 위해 단독 인터뷰를 해주는 배우에게 친절하지 않을 기자가 누가 있겠냐마는 이것만으로도 민수는 생소한 기분을 느꼈다.

게다가 가끔 짓궂은 질문들을 던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민수에게 호감을 느끼고 다가왔으니 참 신기하기까지 했다.

회귀의 보상으로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는 사람과 적의를 가진 사람을 거의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게 된 민수가 그렇게 판단할 정도였으니 그들이 민수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건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만약 어릴 때 자신이 차라리 당당하게 몇 군데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으면 그렇게 벌떼같이 달려들어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지 않았을까?

민수는 순간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나이도 어리고 사회 경험도 전혀 없는 데다가 부모를 모두 잃어 패닉에 빠진 자신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불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자신이 이 정도 위치에 올랐으니 그들이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일 테니 그때 어린 민수가 의연하게 대처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사실 이미 지난 일이었으니 그런 생각들도 다 부질없었다.

다만 적어도 기자들이 자신에게 해를 입힐 거라는 피해 의식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윤 대표의 말대로 굳이 가까이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너무 피해 다니기만 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민수가 계속 인터뷰를 하는 동안 언론사 곳곳에서 민수에 대한 특집 기사들을 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민수에 대한 이야기가 떠들썩하게 퍼지기 시작하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제 개봉이 임박한 영화 “쓰나미”의 관계자들이었다.

이제 “쓰나미”의 개봉이 1주일 정도 남은 시간.

정말 홍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시간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쏟아져 나온 민수의 특집 기사에 “쓰나미” 관계자들의 인상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돈이 한두 푼 들어간 영화도 아니고 200억 이상 투자된 영화이니만큼 홍보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대중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뜬금없이 남의 영화에 재를 뿌리게 된 상황.

하지만 이 상황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윤 대표는 민수의 인터뷰 시기를 칸에 다녀온 후,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이나 영화가 개봉한 후로 잡을 수도 있었지만, 굳이 지금으로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예전에 민수에게 무례한 짓을 벌인 드림 픽처스의 행패를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민수의 영화가 “쓰나미”와 동시에 개봉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었는데 만약 영화가 동시에 개봉되었으면 단순히 재를 뿌리는 정도가 아니라 똥을 퍼붓는 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쓰나미”가 이 정도 일로 큰 피해를 볼 영화는 아니었으니 상대가 기분 나쁠 수준으로 쌓인 감정만 해결한 셈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인터뷰에 시달리고 소속사로 돌아온 민수는 오랜만에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던 수연을 만날 수 있었다.

수연은 그동안 아예 밖으로는 전혀 나다니지 않았는지 잡티 하나 없이 뽀얀 얼굴로 민수를 반겨주었다.

“오. 민수! 이번에 칸에 간다며? 캬~ 민수 많이 컸네!”

오랜만에 만난 수연은 왠지 기분이 업되어 있었다.

민수는 소속사에서 가장 단신인 주제에 자신에게 많이 컸다는 수연이 어이없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이라 그런지 반갑긴 반가웠다.

“고마워요. 수연 선배.

요즘 통 안 보이던데 대체 뭘 하면서 지내신 거예요?”

“아? 내 개인 영상 못 봤어?

후후. 내가 드디어 다이아를 뚫고 마스터가 되었다는 거 아니겠니?

마지막에 내가 멱살 틀어쥐고 하드 케리 하지 않았으면 그것도 불가능했겠지.”

민수는 수연의 말이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수연이 게임을 했다는 건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저렇게 상쾌한 표정으로 즐거워하는 걸 보니 그 안에서 상당한 업적을 이룬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배우가 집에서 틀어박혀서 게임만 하다니.

요즘 바빠서 확인은 못 했는데 말을 들어보니 그 모습을 개인 영상으로 홈페이지에 까지 올렸나 본데 여배우가 이래서야 쓰겠나 싶었다.

수연은 민수가 자신을 짠한 눈으로 바라보자 왠지 울컥해 소리를 내질렀다.

“야.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올해는 그냥 쉰다고 했잖아.

그런데 태준이도 바쁘니 내가 뭐 할 게 있어?

그래도 팬들은 좋아했어.

차라리 인터넷 방송으로 하면 달 풍선 쏘면서 보겠다고까지 했단 말이야.”

당연히 여배우가 인터넷 방송으로 게임을 하면 남자 팬들이 좋아하긴 하겠지만 수연이 돈을 벌겠다고 인터넷 방송을 하는 건 너무 웃긴 말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CF를 하나 더하고 말지.

십시일반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수연의 CF 단가를 생각하면 대체 그 달 풍선이란 걸 몇 개나 받아야 할지 계산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니 아마 방송을 하면 그건 순전히 팬 서비스 차원일 것이다.

“…. 뭐 팬 서비스 차원에서라면 크게 나쁘지 않을 지도요.

파프리카 TV에서 팬 미팅이라…..

어떤 의미에서는 좀 신박하기도 하네요.”

“그렇지? 나도 괜찮은 거 같았는데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결국 뭐 무산됐지.

딱 팬들이랑 같이 편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수연의 말을 들어보니 진짜 진지하게 생각은 해봤나 보다.

아무리 윤 대표라도 그걸 용인하긴 힘들었는지 반대했다는데 민수가 생각하기에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수연의 다음 일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2월부터 12월까지 놀겠다는 건 너무했다.

“그나저나 선배. 진짜 올해 이대로 끝낼 거에요?

배우가 1년에 1작 하는 게 작은 건 아니지만 2월에 드라마 끝내고 10개월을 노는 건 좀….”

“에휴… 그렇겠지? 그건 내 욕심이겠지?

나중에 영화나 하나 괜찮은 거 있으면 해볼까 고민 중이긴 해.

드라마는 뭐… 올해는 쫑이고.”

“음…. 역시 그나마 가능한 건 영화인가요?”

“솔직히 그보다 중요한 건 이제 내가 쉴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거야.

설아가 내 영상을 보고 5월부터 특훈에 들어가재.

요즘 집에만 있었더니 살이 좀 오르긴 했거든.

예전에 설아가 살이 찌지 않을 정도로만 쉬라고 했는데.

내가 너무 방탕했나 봐.

지금부터라도 미리 준비해야 하나? 안 그러면 진짜 죽겠지?”

듣고 보니 수연이 평소보다 조금 통통해지긴 했다.

그러면 설아가 그걸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수연의 자업자득이긴 했지만, 예전에 수연이 고생하던 모습이 눈에 선해 민수는 마음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차기작에 대한 고민보다 설아랑 운동하는 걸 더 고민하다니 확실히 요즘은 그나마 정상인이던 수연조차 조금 글러 먹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