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40화 (240/325)

#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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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쉽고, 빠른 수술법이라…..

아마 오늘 같은 경우는 바티스타-테리사를 말하는 거 같은데.

이봐요. 닥터 김.

바티스타-테리사 수술의 실패 확률이 얼마인지 알고 있나요?”

“네? 하지만 그건…..”

“아아. 물론 요즘은 성공률이 많이 올라가긴 했죠.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난이도와 변수 때문에 종종 실패하곤 하는 수술이죠.

게다가 최근에 학회에 올라간 수술법이라 아직 어떤 부작용이 있을지 정확히 알 수도 없어요.

시간을 들여 검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은 알 길이 없는 거죠.

하지만 내가 오늘 취한 방법은 부작용도 실패 확률도 거의 없는 고전적인 수술법이고요.

전 수술을 할 때 무조건 실패 가능성이 더 적은 수술 방법을 선택합니다.

이제 대답이 되었나요?”

“하지만 닥터.

바티스타-테리사 수술법으로 시간을 더 절약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환자가 더 안전해지는 거 아닙니까?”

제임스는 쓰게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런 식의 논쟁은 언제나 무의미했다.

“이봐요. 닥터 김.

난 새로운 수술법이 계속 생겨나는 것이 정말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움직임 하나하나가 의학의 발전을 이루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면 난 새로운 수술법을 따르지 않아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요?

그건 내가 더 빨리 움직이면 됩니다.

사전에 철저한 회의를 통해 동선을 최소화하고 내가 더 빠르게 정확하게 움직이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겠죠.

그러기 위해 기본부터 더 철저하게 연습을 하는 것이고요.”

태평은 오늘 보여준 제임스의 수술 실력을 생각하면 그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기본부터 철저하게, 제임스는 자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내가 노파심으로 하는 말이지만, 닥터 김.

수술실은 우리 외과 의사들의 솜씨를 자랑하는 재롱잔치가 아닙니다.

만약 수술방법을 선택할 때 한 줌의 과시욕이라도 들어가 있다면, 그 의사는 수술실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겁니다.

이 말을 꼭 기억하시길.”

말을 마치고 떠나는 제임스에게 태평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태평은 자신이 바티스타-테리사를 고집하는 마음속에 과시욕이 한 줌도 섞여 있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난 수술을 잘해.

난 이런 수술도 할 수 있어.

지금까지 무능력자로 무시 받던 자신이 빙의를 통해 뛰어난 수술 실력을 가지게 되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보기 시작했을 때 느꼈던 그 쾌감.

“하… 그랬구나.

내가…. 초심을 잃었어.”

한 명의 환자라도 꼭 살리고 싶다는 그 마음.

그리고 수술 실력이 없어 그 환자를 살리지 못했을 때의 죄책감.

갑자기 늘어난 실력은 그런 자신의 과거를 모두 잊게 만들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자신의 마음속에 이런 과시욕이 들끓게 되었는가.

태평은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이건 아니었다.

“OK!”

성공적으로 촬영을 마치자 민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긴장된 몸을 이완시켰다.

오늘 봉합 장면은 자신에게도 조금 무리가 오는 작업이었다.

특히 최고의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신속, 정확하게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팔과 어깨가 뻐근할 지경이었다.

“와, 진짜. 정 배우 하하하!

넌 정말 사람도 아니야.”

민수는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태준의 모습에 오늘 자신이 보여준 연기가 괜찮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 괜찮았다면 그나마 다행이네.

아후. 이 친구야.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내가 일주일 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나 하냐?”

“하하하. 이게 진짜 일주일 만에 될지는 몰랐는데.

역시 정 배우네.

대한민국에서 일주일 만에 이 정도 숙달해 올 배우가 누가 있겠어?”

민수는 태준의 너스레 섞인 찬사를 들으며 한숨만 푹푹 쉬었다.

태준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 그리고 모든 스태프가 다 민수의 연기에 만족하고 있었다.

특히 피디인 정욱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정욱은 이번 수술 장면 하나만으로도 시청률 30%의 벽을 깰 수 있을 거로 확신했다.

어쨌든 연기가 좋았다니 민수도 기분은 좋았다.

민수는 자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스태프들에게 인사한 후 올 때처럼 조용히 소속사로 돌아갔다.

영화의 개봉은 대충 5월 중하 순이라고 했으니 시간이 제법 남았다.

민수는 이때만 해도 이제 당분간 자신이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민수가 카메오로 출연한 부분은 그 주에 바로 방송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제게 민수 형이 직접 한 거라고? 무슨 재봉틀인 줄.

-손 진짜 빠르네. 저거 연습한 건가?

-아니 카메오 잠깐 나오려고 저렇게 연습했다고? 그 재능 낭비 무엇?

-저런 거 연습할 시간에 예능에라도 좀 나오라고. 민수형!

-저거네. 저거 때문에 다른 활동 못 했구나.

민수형 개불쌍. 저거 연습할 시간에 CF 5개는 찍었을 텐데.

-민수형이 원래 의리 쩐데.

태준이 드라마 잘되라고 응원 차 나온 건데 준비 진짜 많이 했네.

-민수형 기사에 약플 달던 애들도 안 보이네. 뭐만 해도 빼액하던 애들 있지 않았냐?

-진짜 배우다. 정민수. 정말 카메오 하나도 허투루 하지를 않는구나.

당연히 반응은 호평 일색.

특히 뛰어난 제임스의 수술 실력이 그에게 일침을 당한 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태평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해 줬다는 평가가 가장 많았다.

민수가 열을 내며 연습에 집중한 것도 제임스가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면 뒤에 이어질 태평의 행동이 시청자들에게 와닿지 않아 드라마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걱정돼서였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자신의 몫을 하고도 남았다.

그리고 그 주 방송분으로 드디어 “귀의”는 시청률 30%를 갱신.

이제 정말 탄탄대로만 남았다.

“귀의”의 피디 지정욱과 윤성희 작가의 근심은 닥터 제임스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시청자들의 뜨거운 요청뿐이었다.

“윤 배우 진짜. 내가 가만히 안 둔다.”

자신의 집에서 사람들의 반응에 안심한 민수는 다시 한번 태준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적어도 어려운 배역을 완벽히 소화하고 드라마에 큰 도움을 준 자신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복수 선언은 너무나 정당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이 지나고 4월도 중순이 넘어서 끝을 향해가는 시기.

설아의 “햇살이 비추는”과 태준의 “귀의”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시청률 부분은 “귀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미 32%를 넘어선 시청률이었으니까.

SBC 드라마국도 같은 시간대의 연속 빅 히트에 잔뜩 고무된 분위기였다.

그리고 설아의 “햇살이 비추는”의 시청률은 대충 10~15% 정도.

시청률 자체는 그럭저럭 이었지만, 이 드라마의 강점은 엄청난 수의 다시 보기였다.

전문가들은 이례적일 정도로 많은 다시 보기 클릭 수는 그 시간에 야근 때문에 본방을 볼 수 없는 젊은 직장인들의 애환일 거라고 예상하였다.

어쨌든 이렇게 설아의 드라마도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며 많은 사랑을 받는 중이었다.

“SBC만 노가 났네.

거의 반년이나 수목극을 정복한 거잖아?

이렇게 되면 내년 드라마 수상을 어떻게 되려나…..”

올해 2월에 끝난 수연의 드라마 “로열” 그리고 5월에 끝나는 태준의 드라마 “귀의”

두 드라마의 시청률은 거의 비슷하게 마무리될 거 같았다.

물론 후반기에 두 작품보다 더 시청률이 높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긴 하지만 그게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30%가 넘는 시청률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만약 이대로 두 드라마가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다면 두 사람이 대상 후보로 각축을 벌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재미는 있겠는데.

지는 사람이 은근히 복수심을 불태우지 않을까?

아무리 커플이라도 이건 또 이야기가 다르지.”

민수는 연말에 튀길 팝콘이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자고로 가장 재미있는 건 싸움 구경이었으니까.

태준과 수연이라, 생각만 해도 흥이 절로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민수는 며칠 동안 한껏 한가함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크게 다를 거 같지 않았다.

“Mama”와 관련된 홍보 활동이라고 해 봤자 별거 없었고 시사회도 한국에 국한되어 있었으니 중국 각지를 누비던 저번 영화와는 상대도 안 되었다.

다만 조금 신경 쓰이는 것은 일본이었다.

저번 영화도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자신을 응원하는 일본 팬들 때문에 일본에는 한번 갔다 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은혜를 입었으면 갚아주는 게 인지상정이라 아마 이번에 가게 되면 저번처럼 팬들의 돈을 갈취하는 방향보다는 최대한 저렴하게 팬들과 만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민수는 자비로 따로 팬 미팅을 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물론 한국 팬 미팅이 먼저겠지만 그 뒤에 일본에서도 그런 팬 미팅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일본까지지.

중국에서는 안 될 거야.

중국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아무리 나라도 재산이 거덜 나지 않을까?”

중국을 생각했던 민수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는 팬이 너무나도 많았다. 정말 너무나도.

하지만 이런 한가로운 생각들도 생각지도 못한 전화 한 통에 모조리 사라지게 되었다.

바로 “Mama”의 감독 김태원에게서 날아온 전화였다.

[하하하! 민수 씨. 기뻐하세요. 저희 영화가…. 칸 영화제에 경쟁작으로 초청되었어요.

저희 칸에 갑니다. 하하하.]

“……네?”

민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도대체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느닷없이 칸이라니.

이야기는 3월로 돌아간다.

찬진의 충고를 받아들여 초반부의 편집을 영화 촬영 중에 마치고 바로 CG 작업을 의뢰했던 태원은 그 결과물과 후반부 편집까지 마치고 3월 초에는 영화의 마무리 작업을 모두 끝낸 후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5월 초순에 개봉하기 위해 윤 대표와 상영관을 알아보았지만 5월 초순에는 자리를 마련할 수 없었다.

문제는 진룡이 투자한 영화 “쓰나미”

스타 감독인 이기민과 주연 배우 정진영, 거대 제작사 드림 픽처스, 그리고 진룡의 시너지는 어마어마했으며 황금연휴라는 5월 초순의 많은 스크린을 독식하고 있었다.

“Mama”도 민수가 출연하기는 했지만 3월 초만 해도 아직 영화가 개봉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배급사의 배려를 받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그나마 윤 대표와 안면이 있는 배급사 측에서 스크린을 배정해 주겠다고는 했는데 그 수가 총 600개 정도에 불과했다.

솔직히 영화의 주제를 고려하면 작은 수가 아니었지만 태원은 이 영화를 무조건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서로 합의한 시기가 5월 하순.

“쓰나미”가 내려갈 때 늘어나는 스크린을 배정받기로 한 것이었다.

만약 민수의 영화가 조금만 더 일찍 터졌으면 “쓰나미”랑도 스크린 경쟁을 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영화의 흥행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태원이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개봉 시기를 확정한 태원은 그때부터 홍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민수는 지금 영화를 흥행하는 거 자체가 홍보였고, 사실 정윤숙의 홍보 효과는 조금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고 자부해도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었으니 자신이라도 따로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에 태원을 찾아온 게 찬 진이었다.

“오. 진짜 잘빠졌네.

촬영할 때도 혀를 내둘렀는데 편집까지 완성되니….. “

찬진은 태원이 완성시킨 영화를 관람하며 자기 생각보다 태원의 재능이 뛰어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아무리 잘 찍어도 편집에서 아집을 부려 망치는 감독이 많았는데 태원은 기본적으로 시야도 넓은 데다가 아주 유연하게 편집을 완성한 것이었다.

편집에서 아집을 부린다는 것은 독립영화를 주로 찍는 감독들이 흔히 하는 실수였는데 영화를 어렵게 만든다는 뜻이었다.

영화의 예술성을 위해 좀 더 심오하게,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주기 위해 난해한 방향으로 편집을 하는 것인데 이런 편집기법은 결국 영화를 더 어렵게 만들고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관객의 공감을 자아낼 수 없게 된다.

결국 감독이 자기만족을 위해 관객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셈이었다.

“아… 이 정도면 진짜 영화제에 출품해도 되겠는데…..”

태원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찬진의 말에 눈앞이 확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생각을 못 하다니.

그리고 시기도 딱 알맞게 칸 영화제가 눈앞이었다.

게다가 칸 영화제를 마치고 바로 개봉할 수 있으니 초청만 받는다면 홍보는 더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

“맞아! 영화제, 영화제가 있었어.

입상은 못 해도 경쟁작으로 초청되는 건 기대할 만해.”

“응? 진짜 출품해보게?”

“네. 선배,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영화도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에 있는 데다가.

배우들의 연기도 정말 좋았으니 초청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음……”

찬진도 그럴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상은 몰라도 경쟁작 초청 정도는…..

그날 바로 태원은 칸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 기대가 결실을 보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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