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35화 (235/325)

#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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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는 북미 흥행 3000만 불이라는 대목에서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이 정도면 대체 어느 정도일까?

“북미 흥행이 3000만 불이네요.

이건 어느 정도죠?

개봉 10일째인데 그럼 대충 윤곽은 잡힌 거 아닌가요?”

민수와 식사 중인 에릭 존스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민수는 에릭의 얼굴을 보고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확실히 좋지는 않은 상황인가 보다.

“뭐…..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지.

아무리 내가 만든 영화라지만 우선 중국 자본에 중국에서 만든 영화인 데다가 주인공까지 동양인이었으니까.

너도 알겠지만, 할리우드에 들어간 중국 자본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잖아.

참견도 심한 편이고, 그래서 영화가 산으로 가게 되는 경우도 많아서 말이야.”

아직 북미에서 중국 자본 보는 시선이 좋지 않아 덩달아 손해를 보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에릭 존스의 말대로 중국 자본이 할리우드로 급격하게 유입되면서 할리우드가 변질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민수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자본가의 참견으로 지금까지 제작된 중국 투자 할리우드 영화는 실패한 사례가 많았으니까.

민수가 기억하기론 시간이 더 흐른 후에는 그런 양상이 완화되긴 하지만 아직은 한창 그럴 시기였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단순히 중국 자본이 들어간 영화 정도가 아니라 중국에서 제작한 영화였으니 사람들이 그릇된 편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지금 분위기를 보면 더 좋아지긴 할 거야.

처음에는 거의 없었던 관객이 이제는 많이 차 들어가고 있으니까.

영화를 본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여기저기 떠들고 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영화관을 찾고 있는 형국이지.”

“음…. 그렇군요.

감독님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었다는 것만 알려져도 감독님 팬들이 다 영화관을 찾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제가 주연인 것은 아무 상관이 없겠죠.

그들은 절 보러 오는 게 아니니까요.”

“맞아. 그래서 메이킹 영상이나 매체를 통해 이런저런 소식을 알리고 내가 팔자에도 없는 토크쇼에까지 나갔는데 말이야.

사실 북미 자체만 보면 완전 손해지.

북미 쪽에 투자된 홍보 비용이 어마어마 했거든.

천루 쪽에서 정말 원하는 것은 북미 쪽 흥행이었으니까.”

에릭의 말을 들어보니 민수도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천루 쪽에서는 아무래도 영화가 북미에서 어느 정도 스코어는 기록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건 천루의 염원이기도 했고 자국 문화 발전의 기틀이 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중국인의 자문화 우월주의는 확고한 편이었지만 그건 지금이 아니라 미래라는 단서를 달고 있었다.

지금은 발전하는 단계지만 나중에는 세계문화를 선도할 거라는 자부심.

하지만 그 기저에는 당연히 지금은 자국의 문화가 세계에 통하지 않는다는 실망감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니 천루가 북미에 정성을 기울이는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감독도 에릭 존스에 스태프들도 에릭의 스태프들이었으니 허울뿐인 만족이겠지만 중국은 그 허울을 가장 중요시하는 면이 있었다.

“어쨌든 관객이 더 늘어나긴 할 거라는 말이네요.”

“그래. 다만 얼마나 스크린에 오래 걸려 있을 수 있을지가 문제지만 걸려만 있다면 스코어가 올라가긴 할 거야.

벌써 10일이나 지났으니 이제 슬슬 스크린을 줄일 시기긴 하거든.

아마 천루 쪽에서 많은 자본을 투자하지 않았으면 그 10일도 불가능했겠지.

오픈 초기에는 관객이 거의 없었으니까.”

아무리 에릭이 여기저기에 떠들고 다녔어도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 믿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이 입소문이 퍼지기 전에는 믿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당분간 북미에 개봉하는 큰 건은 없거든.

그리고 상영관 측도 이제 관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걸 모르지 않을 거고.

아마 적으면 1주 많으면 2주 정도는 더 스크린에 올라갈 거야.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겠지.”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거 은근히 제 개런티도 걸린 문제라고요.”

진지하게 이야기하던 에릭도 민수의 말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민수가 흥행에 대하여 신경 쓰는 게 당연하기도 했다.

“하하. 그랬지.

자네 런닝 개런티라고 했던가?

제작비와 홍보비가 엄청 많이 들어 순이익이 별로 나지 않을 거라는 데도 굳이 런닝 개런티로 간다고 에드워드가 어이없어하긴 했지.”

“제가 동료들한테 런닝 개런티로 처음에 제안받은 금액보다 많이 가져가겠다고 큰소리를 쳤거든요.

지금 상황 보니 북미 상황만 호전되면 가능할 것도 같아요.”

에릭은 눈앞에 민수가 사실 이 영화의 진정한 흥행 수표임을 체감하고 있었다.

사실 일본과 한국에서의 흥행만 생각해도 민수에게 주는 런닝 개런티가 아깝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중국에서도 민수의 이미지가 아주 좋았으니 영화에 보탬이 되면 되었지 손해는 아니었다.

아마 흥행적인 측면을 생각하면 웬만한 중국 배우를 쓰는 것보다 그냥 민수를 쓰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 영화의 선두에서 흥행을 이끄는 자가 에릭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일부만 맞는 말이었다.

당연히 북미 흥행은 자신이 선두겠지만 과연 아시아에서도 그럴까?

“그래?

내 자네가 최대한 많은 개런티를 가져가길 기원하겠네.

그런데 자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차기 계획은 어떤가?”

“음…. 아마 당분간은 다른 작품을 할 생각은 없고요.

밀린 일들도 좀 처리하고….. 연기 연습도 좀 하려고요.

게다가 5월에 또 다른 영화가 개봉하니, 아마 당분간은 또 그쪽 일을 처리해야겠죠?”

에릭은 민수의 말에 조금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민수의 에릭의 얼굴에 깃든 애석함을 읽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랬군.

사실 이번에 할리우드로 돌아가 새로 영화를 찍을 생각이야.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스티븐의 연기가 많이 안정되기도 했고 인간적으로도 성숙해진 느낌이니까.

그래서 예전부터 계획했던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거 같아.”

민수는 에릭의 말에 지금 이야기하는 영화가 “버닝 레이지” 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스티븐을 위한 영화, 스티븐을 할리우드 액션 스타로 완전히 자리 잡게 만든 그 영화였다.

아무래도 에릭은 영화에 대한 시나리오를 완전히 준비해 놓은 상황에서 스티븐이 성장하기만을 기다린 모양이었다.

하긴 진짜 아끼는 수제자 이기도 했고 에릭의 액션 연기를 완전히 물려받은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으니 그 정이 이해가 가긴 했다.

“사실 너의 공이 크긴 했지. 스티븐이 널 보고 많이 변했으니까.

감정 잡는 것도 그렇고 액션 연기에 임하는 자세도 그렇고 말이야.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단다.”

민수는 에릭의 치하에 머쓱한 기분이 되었다.

사실 이번 영화는 자신의 연기에서 특별히 보고 배울 만한 점이 없었다는 생각에서였다.

있다면 초반부의 잠깐 나온 감정 표현이었는데 그 정도 이런 치하를 받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다.

“에이, 영화 내내 때려 부수기만 했는데 뭘 배웠겠어요?

영화 촬영 직전에 일어난 사고는 제가 치하를 받을 만하지만 연기는 아닌 거 같네요.”

“하하. 아니야.

초반에 잠깐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했지.

너의 그 오묘하고 암울한 분위기, 그리고 터지는 분노가 스티븐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을 거야.

스티븐도 그렇게 이야기했으니 틀린 말이 아니지.”

민수는 스티븐이 자신에게 도움을 받았다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사실 이번 영화도 너랑 같이하고 싶어.

너랑 스티븐 둘을 주연으로 영화를 만드는 거지.

아마 괜찮은 그림이 나올 거야.

어때 생각 있니?”

에릭이 만드는 “버닝 레이지”는 분명 좋은 영화였다.

흥행에서도 엄청난 성공을 이루는 할리우드 대작.

하지만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영광은 오롯이 스티븐의 것이 되어야 옳았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자신만의 계획이 있는 데다가 아직 할리우드 진출은 너무 일렀다.

지금은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더 채워놓고 싶었다.

민수는 흥행 배우도 좋지만, 자신의 연기에 스스로가 만족하는 그런 배우가 더 되고 싶었다.

우연히 많은 돈을 벌게 되었으니 이제 자신이 그래도 되지 않을까?

“말씀은 고맙지만 그건 역시 안될 거 같아요.”

민수의 말에 에릭은 애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해 다시 한번 물어본 것이지 사실 처음에 민수의 계획을 들을 때부터 거절은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아깝긴 했다.

민수와 로우가 쌍두마차가 되어 영화를 이끄는 것만 생각해도 배가 부르거늘.

“그래. 그렇구나.

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에릭은 입맛을 다시며 민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개봉 3주차가 넘어가며 이제 민수의 중국 활동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중국 박스오피스에서는 최종 매출액 20억 위안을 기록하며 영화가 막을 내렸다.

역대급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손가락 안에 드는 흥행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막판에 힘이 빠져 1200만 관객을 기록하며 스크린에서 내려왔는데 재미도 있고 화려한 액션이 시원하긴 했지만, 너무 액션 일변도라 시각적으로 피곤한 것이 유일한 단점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정민수 액션의 끝을 보여준 “Joe” 1200만 기록하고 내려와.]

[완벽한 액션 연기. 모든 관객의 극찬을 받은 정민수.]

[이보다 더 완벽한 액션은 없다.]

처음에 비판적인 어조로 접근하던 기사들이 관객들이 늘어나며 재빠른 태세 전환 후 찬양 조로 넘어간 것도 아마 자연스러운 흐름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대 흥행작이라고 평가하는 기준이 1000만 관객이었는데 자신들의 짐작과는 달리 영화가 1200만 관객이나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의 북미 흥행도 막판 갑자기 관객이 늘어나며 최종적으로 8000만 불을 기록하였다.

에릭은 지금까지 간을 보며 영화를 보지 않았던 자신의 팬들이 입소문을 통해 안 좋은 편견을 걷어내고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막판 흥행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민수도 거기에 동의하는 바였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것은 일본 흥행이었는데 지금까지 일본에서 얻은 매출액은 70억엔.

극장에서 장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스크린 수익보다 DVD 수익이 많은 일본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정말 대단한 흥행이었다.

아마 이 금액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계속 늘어날 텐데 이건 천루 측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수익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결실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하자 천루는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그들은 가장 큰 수익을 안겨준 중국 흥행보다 북미의 8000만 불과 일본의 70억 엔을 이 영화의 가장 큰 업적이라고 평가했다.

잘 만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골수 팬층이 어마어마한 히어로물 같은 경우 북미에서 2억 불 이 넘는 흥행 이익을 얻는 것이 자연스러우니 에릭 존스를 모시고 와 8000만 불을 기록한 것이 작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중국 자본과 동양 배우를 주연으로 쓴 영화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흥행이었다.

이 지표는 천루에게 지금은 아직 이르지만 계속 준수한 영화를 만들어 할리우드에 진출하면 결국에는 할리우드에서도 1억 불의 넘는 흥행을 기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물론 시간은 걸리겠지만 불가능은 아니었다.

실제로 전생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났고 중국의 감독들이 북미에 영화를 개봉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그런 시절이 결국에는 도래하게 된다.

“어때? 올 때랑 완전 대우가 다른데?”

일정을 마치고 헤어지기 직전 스티븐은 민수에게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스티븐의 말대로 대우가 완전히 달라지긴 했다.

천루가 민수에게 전세기를 대동해 한국으로 보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곳에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전세기라니 참 쓸데없는 낭비이긴 했지만 지금 그만큼 천루가 민수를 대우해 주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긴 민수가 천루 측에 안겨준 이익을 생각하면 과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천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는 제스쳐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게. 과하긴 한데….

나쁜 기분은 아니지. 대우받는 걸 싫어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기분이 좋다는 민수의 표정이 별로 밝지 않아 스티븐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정신이 다른 곳에 쏠려있는 분위기였다.

“그렇다기엔 정신이 딴 곳에 있는 거 같은데?”

“아. 좀 그렇긴 해. 빨리 돌아가 봐야지.

스티비. 이제 주연으로 영화를 찍는다지?

그 영화 진짜 잘 될 거야.

그러니 나중에 모른 척하지 말자고. 친구.”

“그래. 나중에 또 보자고 친구.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잘 해결되길 바라.”

서두르는 듯한 민수가 의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친구의 덕담을 고맙게 받아들인 스티븐은 서둘러 떠나는 민수를 바라보며 친구의 앞날이 순탄하기를 바랐다.

민수는 정말 괜찮은 녀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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