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29화 (229/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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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하네다 국제공항에 도착한 민수는 이번 일본 일정을 조율해줄 “스타 샤인”의 해외 기획팀 팀장이라는 아리마 켄타의 안내로 사전에 예약된 호텔을 향해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민수는 자신에게 크게 관심을 주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 보이는데 긴장된 기색으로 서둘러 움직이는 아리마의 행동이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어차피 이곳에서의 일정은 그가 관리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군말 없이 그를 뒤따랐다.

“오늘은 이곳에서 편하게 쉬시면 됩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바로 스케줄을 소화하셔야 하니 마음 단단히 먹으시고요.”

“네, 안내해줘서 고마워요. 켄타상.”

민수는 깍듯이 인사라고 물러나는 아리마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신과 동행한 동원에게 오늘 느낀 이상한 점을 물어보았다.

“동원 씨. 켄타상이 공항에서 엄청 서두르던데 왜 그런 거죠?

혹시 아시는 게 있나요?”

“아 그거요? 배우님이 일본에서 생각보다 더 인기가 많으시거든요.

혹시 알아보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싶어 그리 서두른 걸 겁니다.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공항을 빠르게 빠져나가기가 힘들거든요.”

“네? 그렇다고 하기엔 공항에 아무도 없었잖아요?”

무릇 정말 인기 있는 스타가 방문하면 공항에서부터 팬들이 진을 치고 모이기 마련인데 오늘 공항의 모습은 파리 한 마리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민수는 예전에 윤 대표도 그러더니 동원까지 왜 이러나 싶었다.

자신이 진짜 한류스타였으면 이렇게 쉽게 숙소로 도착하지도 못했을 게 아닌가.

“하하. 그거야 지금 배우님이 여기 계신 걸 아무도 모르니까 그렇죠.

스케줄 상의론 지금 한국에 들렀다가 내일 입국하는 거로 되어 있거든요.

어쩌면 한국 기자들이 인천 국제공항에서 배우님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스케줄 관리하는 직원들이랑 대표님만 알고 계신 일인데.

시작부터 쓸데없이 힘 뺄 필요는 없다고 대표님이 그렇게 지시하셨어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저희 소속사 직원들은….”

“입이 엄청 무겁죠.

그래요? 거참…..”

한마디로 사기를 쳤다는 건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그리고 사기를 쳤으니 또 기자들을 달랠 떡밥을 나눠 줘야 할 텐데 윤 대표가 귀찮은 방법을 선택한 기분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배우님

원래 비일비재한 일이니까요.

다만 차이는 다른 소속사에서는 그렇게 일정을 바꿔도 알게 모르게 세어나가는 일이 많은데 저희는 그런 게 전혀 없다는 거 정도니까요.

우리가 불러 모은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그냥 모인 거라 어디 가서 하소연할 데도 없고요.”

“뭐 그렇다면, 오늘은 그냥 하루 푹 쉬면 되겠네요.”

“네, 그러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웬만하면 외출도 자제해 주시면 좋고요.

특히 길거리를 그냥 나가는 건 절대 안 되십니다.

외국이라고 안심하고 다니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 건데 배우님한테 이곳은 외국이 아니에요.

꼭 기억하십시오.”

민수는 진짜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으로 매니저 같은 이야기를 하는 동원의 모습이 자못 재미있었다.

어쩐지 조금 신이 난 거 같기도 하고 어깨에 힘도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수의 짐작대로 동원은 오늘 처음으로 진짜 민수의 매니저가 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는 사실 그냥 운전사에 불과했다.

천성적인 집돌이라 거의 소속사에서만 살고 있고 어딜 나다니지도 않는 민수에게 이런 말을 언제 또 해보겠는가.

“풋. 알았어요. 알았어.

숙소에만 얌전히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럼 일정은 대충 어떻게 되는 건가요?

대부분 팬 미팅에 사인회. 그리고 악수회? 이런 게 있다는 거 같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도쿄 TV에서 하는 토크쇼지만, 나머지 일정은 대충 그렇습니다.

아마 엄청 피곤하실 테니 각오는 좀 하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일본에 처음 방문하신 거니까 사람이 많이 올 겁니다.

이곳 팬들도 배우님 성향을 대충 알고 있어서 아마 이런 기회가 자주 오지 않을 거로 생각할 테니까요.”

진지한 동원의 말에도 민수는 그냥 웃어넘길 뿐이었다.

모여봤자 자기를 보겠다고 얼마나 모이겠나 싶어서였다.

“OK. 알겠습니다.

그럼 매니저님도 쉬세요.

제가 힘든 만큼 매니저님도 힘드실 테니까요.”

민수는 동원이 나가자 바로 침대로 몸을 날렸다.

표현은 안 했지만, 중국에서 여기저기 다니며 행사를 뛰느라 몸이 많이 피곤하긴 했다.

만약 윤 대표의 예상대로 공항에 팬이 몰려왔다면 파김치가 되긴 했을 것이다.

“어디 보자…… “귀의”는 역시 시작부터….. 하긴 소재도 좋고, 배우들도 …..

그에 비해서 “햇살이 비추는”은 시청률보다는 짤방이나 커뮤니티 댓글이 많은 분위기네.

하긴 계속 이런 추세면 결국 시청률도 따라 오르긴 하겠다만….”

침대에 누워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민수는 한국에서 식구들이 출연하는 드라마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 찾아보다가 대체로 자신이 예상한 대로의 반응이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귀의”의 VOD를 재생했다.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 모니터링이나 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태준이 출연하고 있는 “귀의”는 시작부터 시청률이 괜찮은 편이었다.

같은 시간대 드라마 중에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로열”에 이어 방송된 드라마였기 때문에 유리한 고지에서 시작한 할 수 있었지만 드라마가 재미없으면 그것도 바로 사라질 허수였으니 3화 4화가 방송된 이번 주가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1, 2화에는 크게 별것 없네.

그냥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제 몫을 해준 느낌이고 “태평”이 본격적으로 빙의 당해서 수술하는 장면에 들어가야 제대로 된 반응을 볼 수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저 시청률이라고?

이거 잘못하면 또 사고 한번 치시겠네, 우리 윤 배우께서.”

시작부터 좋은 반응이 쏟아지는 “귀의” 와는 다르게 “햇살이 비추는”은 조용한 편이었다.

다만 주인공이 너무 짠하다는 반응과 찌질한 설아의 짤방이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겨우 이걸 보고 짠하다고 하면 안 되지. 저건 이제 시작에 불과한데.

그나저나 저것도 정말 모 아니면 도네.

드라마 망하면 설아 씨 굴욕 짤방으로 박제가 될 기세야.

아니, 차라리 연기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려나 연기는 진짜 잘하고 있으니….”

그리고 인터넷을 이것저것 뒤져보던 민수는 피곤한 몸을 침대에 기대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일본에서 일주일 정도의 스케줄을 마치면 다시 중국이나 한국으로 돌아가 영화 시사회에 참가해야 하니 어쩌면 편하게 쉴 수 있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아리마가 민수를 찾아왔다.

아리마의 설명을 들어보니 생각보다 자신의 일본 스케줄이 많았다.

그저 몇 군데에서 팬 사인회를 해주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는데 윤 엔터에서 자신을 빌려다가 아주 뽕을 뽑으려는 시차쿠와 스타 샤인의 단호한 의지가 느껴질 정도였다.

“음…. 좋아요.

이번 일본 스케줄은 스타 샤인에 전적으로 위임했으니 전 그냥 따를 생각이에요.

그럼 서둘러 출발하죠. 켄타 상.”

“네. 민수 상. 안내하겠습니다.”

민수가 일본의 묘한 분위기를 가장 먼저 체감한 곳은 바로 헤어 메이크업 샵 에서였다.

행사를 나서기 전 민수도 당연히 외모를 가다듬어야 했는데 의상은 수정이 다 준비해 왔지만, 전문적으로 관리를 받을 필요는 있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스타 샤인과 전속으로 계약하고 있다는 샵이었는데 샵에 들어가자마자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술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연예인들이 자주 찾는 샵에서 연예인을 보는 것은 일상이니만큼 자신을 무덤덤하게 맞이해야 할 터인데 웅성거리면서 얼굴을 붉히는 것이 아주 이상한 분위기였다.

“어머…. 민수 상.

맞나요? 진짜네요. 진짜에요.

일본에 친히 왕림하신다고 말을 듣긴 했지만 진짜 저희 샵으로 오시다니.”

민수는 중간에 이상한 단어를 끼어 들어 있어 움찔했지만 그냥 자신을 반겨준다고 받아드리며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감격한 얼굴로 자신을 맞이해 주시는 원장 선생님부터, 메이크업을 마칠 때까지 주변을 서성이는 아티스트, 그리고 조심스럽게 사인을 요청하는 다른 고객까지, 특히 이곳의 고객이면 자신이 모르긴 해도 연예인일 가능성이 큰데(외모도 연예인급 외모였으니 아마 분명할 것이다.) 자신에게 사인 요청이라니 상황이 좀 신기하긴 했다.

어쨌든 그들은 프로페셔널이었고 안달만 낼 뿐 민수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에 민수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만 하면서 행사장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그리고 행사장.

첫 행사인 사인회는 “용의 울음” DVD를 구매한 팬들 중 일부를 추첨해서 사인을 해주는 행사였기 때문에 그래도 가장 무난하고 한산할 거로 생각했던 민수는 근처에 몰려든 인파를 보며 그 생각을 고쳐먹을 수 밖에 없었다.

수많은 인파 사이로 등장한 한대의 벤.

누가 봐도 오늘의 주인공인 민수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고 사방에서는 비명과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꺄!~~ 비스토!!!!”

“민수 사마!”

“아이시떼루!!! 민짱!!”

차 안에서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여러 가지 비명소리.

게다가 대부분 여성인지 데시벨도 엄청 높았다.

민수는 순간 멍한 얼굴로 자신의 옆에서 질렸다는 표정인 아리마를 바라보았다.

“켄타상. 오늘 사인회는 추첨받은 500분만 오시는 게 아니었나요?”

“맞습니다만…. 아마 저분들은 그냥 민수 상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찾아오신 분들일 겁니다.”

“그냥 절 보러 이렇게 모였다고요?..... 대체 왜요?”

“…… 왜냐고 물으셔도….”

아리마는 대로 민수를 이상한 사람 보듯이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민수는 자신 때문에 모여들었다는 엄청난 인파를 보며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사히 탈 없이 행사를 마칠 자신이 없어져서였다.

민수가 일본에서 사인회를 개최하고 있는 그 시간, 한국의 기자들은 갑작스럽게 사라진 민수의 위치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신문사의 연예부 기자는 일본 쪽에서 날아온 소식에 인상을 잔뜩 구기고 있었다.

“망할. 일본이네.

어제 바로 그냥 일본으로 간 거였어.”

“그러게요. 설마 했는데…..”

“하여간 윤 엔터 이 자식들 진짜…..”

할리우드 액션 거장 에릭 존스와 영화를 촬영한 지 몇 달, 영화를 찍긴 했지만 언제 개봉한다는 말이 없어 잠시 관심에서 멀어졌던 민수는 이번에 영화 개봉이 확정되고 미국, 중국, 한국, 일본에서 동시에 개봉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2월 초에는 영화 촬영이라는 이유로 접근도 못 하게 했고 중순에는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듯 두문불출, 하루는 인천에서 봤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그날 인천에서도 갑자기 사라졌다.

무슨 허깨비 홍길동도 아니고 도대체 만날 수가 없다.

그러다가 2월 말이 되자 바로 중국으로 홍보 활동을 떠나서 이때다 싶었는데 중국에서는 중국 기자들에게 밀려 전혀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겨우 일본으로 가기 전 하루 한국에 들른다는 소식을 접수하고 공항으로 부리나케 나갔다가 결국 허탕만 치고 돌아왔는데 한국에 안 들르고 바로 일본으로 날랐다니 정말 짜증이 몰려왔다.

“그 자식들한테 뭘 바래?

진짜 윤 엔터 직원들 누구라도 좋으니까 한 명만 뚫어봐.

맨날 이게 뭐야?”

“에휴, 선배. 그쪽은 바늘도 안 들어가요.

친분이 좀 있다 해도 방실방실 웃으면서 모른다는데 어떡해요? 답도 없지.

그나마 좀 친하면 소소한 건 곧잘 알려주는데, 배우들 스케줄은 칼 입이다. 칼.”

“에잉. 진짜. 더러워서.”

“와…. 정민수 팬 사인회에 모인 게 8000여 명이라고? 미친.

선배 이게 말이 되는 거예요?

팬 미팅도 아니고 그냥 팬 사인회…. 그것도 500명 추첨 팬 사인회에 왜 이렇게 사람이 모였어?

일대 교통 마비…… 맙소사.”

“바보야.

“용의 울음” 일본 매출액이 얼만지나 아냐?”

“네? 그럭저럭 이러고는 들었는데 얼만데요?”

“듣고 놀라지나 말자.

자그마치 수백억이야 수백억.

영화 하나가 수백억이라면 대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짐작이나 가냐?”

“미친! 진짜요? 그런데 왜 전 전혀 몰랐죠?”

“한국이나 중국 매출이 워낙 대단해서 신경을 못 쓴 거지.

게다가 일본이 한두 달 만에 바로 딱 매출액이 합산돼서 나오는 게 아니잖냐.

영화도 길게 상영하고 거의 DVD 판매량이라 시간이 한참 지나야 해.

그때는 이미 한국에서는 김 다 빠진 사이다니 관심 가진 사람도 없었고.

원래라면 소속사에서 알아서 홍보자료로 이용하려고 했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윤 엔터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죠.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그리고 솔직히 정민수도 그 정도 했으면 바로 일본 가서 일본 활동부터 했어야지.

그랬으면 돈을 얼마나 끌어모았겠어?

보통 소속사였으면 당연히 그런 순서를 밟았겠지만….”

“윤 엔터가 그럴 리가 없죠. 이거 뭐, 그냥 다 윤 엔터 때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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