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28화 (228/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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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가 떠난 촬영장.

같이 촬영을 마친 조연 배우 하나가 떠나는 민수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설아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어머~ 설아 씨.

민수 씨는 갔어요? 이번에 영화도 하나 찍었다죠?

정 선생님을 위해서 투자금까지 넣었다던데 사람이 낭만이 좀 있네요.”

설아에게 다가와 관심을 보이는 이 배우는 극 중 나은의 입사 동기 중 하나인 유나 역을 맡은 신인 배우 김서연.

사람이 서글서글하고 솔직해서 설아와 쉽게 친해진 배우 중 하나였다.

“그랬죠. 주위 사람을 아끼는 사람이거든요.”

“분위기도 참 괜찮네요. 뭐랄까. 좀 선비 같은 느낌이랄까?

점잖고 차분한 분위기인데 원래 저런 사람이 참 진국이죠.

그런 데다가 은근히 좀 섹시하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연기할 때는 그런 부드러운 분위기도 있고.

아까 설아 씨 손목에 손수건 감아주면서 살짝 웃는데 순간 심쿵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러게요. 그렇게 부드럽게 웃을 거라고는….”

서연이 민수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고 몽롱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데도 설아는 다른 생각 때문에 그 모습을 확인하지 못했다.

원래 이런 연기를 저렇게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이었나 싶어서였다.

분명 저번에는 이런 거에는 좀 약했었는데 그런 꿀 떨어지는 눈빛이라니.

뭔가 민수 답지가 않았다.

게다가 신경 쓰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니, 이게 어디 연애 세포가 박멸된 민수가 할 말인가?

설아는 왠지 조금 레벨 업 한듯한 만수의 모습을 반겨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무슨 계기가 있긴 할 텐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안보는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긴 한 게 분명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민수는 오늘 자신이 보여준 연기에 대하여 만족하고 있었다.

민수는 오늘처럼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야 할 경우를 대비해 자신의 머릿속에 캐릭터를 하나 만들었다.

캐릭터의 이름은 민수(연애 중).

엄청 유치한 이름이었지만 이건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이 캐릭터는 지금까지 민수가 설아와 같이 지내면서 느낀 모든 긍정적이고 따듯한 느낌을 모아놓은 캐릭터였다.

병원에 갔다 온 후 자신이 캐릭터에 몰입해서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민수는 가상의 배역을 만들어 몰입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이 바로 민수(연애 중)이었다.

다행히 이 민수(연애 중)은 민수에게서 나온 캐릭터였기 때문에 몰입 후 후유증이 적은 편이었다.

유일한 후유증은 상대를 설아로 생각하고 연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설아가 좀 더 좋아진다는 것 정도였는데 그 정도는 충분히 받아 들일만 했다.

이는 지금까지 민수가 취해왔던 배역을 모방하는 연기 스타일과 이번에 새로 경험하게 된 배역에 몰입하는 연기 스타일의 장점을 모두 이용하기 위해서 민수가 선택한 새로운 방식의 연기 스타일로 머릿속에 자신으로부터 파생된 여러 가지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언제든지 몰입할 수 있게 연습한 후 그 분위기를 빌려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

이런 연습을 시작하게 된 것은 윤 대표의 충고 덕분이었다.

윤 대표는 몰입의 후유증에 대하여 걱정하는 민수에게 배역의 캐릭터가 아니라 성향이

비슷한 자신만의 캐릭터에서 우회적으로 느낌을 빌릴 수도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윤 대표는 이 방법이 예전 자신의 선배 배우 중 한 분이 사용한 방법이었다면서 사실 너무 번거로운 방법이라 추천하지는 않는다며 참고만 하라고 말했었다.

그 말도 맞는 말인 것이 캐릭터를 이미지화하는 능력과 그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 여러 가지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까지 모두 갖춰야 사용할 수 있는 복잡한 방법인 데 비해 얻는 수확은 그냥 배역에 조금 덜 몰입하면서 적당한 연기력을 보이는 것뿐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민수에게는 퍽 괜찮은 방법이었다.

민수는 태준처럼 영리하고 순발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배역의 새로운 감정을 빠르게 이해하고 바로 재연할 수는 없었고 대신 전생에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갈고 닦은 감정의 폭 안에서는 조금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한번 배역에 몰입하기 시작하면 이번처럼 끝없이 몰입하게 되어 조금 위험하기까지 했다.

다만 민수는 예전에 수많은 연기를 끊임없이 봐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캐릭터를 모방하는 능력 자체는 뛰어났으니 캐릭터를 완벽하게 만들어 숙달만 해 놓으면 그 방면의 연기를 좀 더 빠르고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특히 자신이 만든 캐릭터에 심하게 몰입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극복하기 쉬웠고 몰입이 깊이가 깊은 민수에게는 덜 몰입하게 된다는 것만 해도 큰 매력이었다.

오늘 민수가 캐릭터를 사용해 보니 생각보다 효과가 괜찮았다.

물론 상대역이 설아여서 더 편한 감이 있었지만 이 정도 분위기면 연습만 뒤따른다면 다른 여배우와도 그런 분위기를 연출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리고 오늘의 성공을 시작으로 앞으로도 계속 머릿속에 캐릭터를 늘려가면 숙달해 나갈 것이다.

자신에게서 나온 캐릭터이다 보니 자신이 경험한 감정만 적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적어도 부정적인 감정을 자신보다 깊게 느낀 사람은 드물었으니 그쪽은 무난했고 긍정적인 감정도 민수(연애 중)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어 보였다.

그리고 설아와의 관계가 점점 깊어 질수록 캐릭터도 덩달아 상장할 테니 부정적인 감정처럼 완벽해지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좋아 좋아. 방향은 완전히 잡았네. 어? 형우잖아?

어. 형우야. 왜? 아아. 응. 별일 없었는데……….

아? 그게 그런 거였어?

그럼 내가 잘한 거네? 응응. 오케이.

고마워. 또 연락할게. 어.

알았어, 나중에 소희 씨 드라마 들어가면 해줄게. 어어.

그래 너도 중국에서 고생하고.”

민수와 형우가 통화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던 수정은 민수가 형우에게 무슨 약속을 하는 것을 보며 무슨 물밑 거래가 있나 싶어 넌지시 물어보았다.

“형우 씨랑 무슨 약속하시는 거예요?”

“아? 아… 별거 아니야.

나중에 소희 씨 드라마 들어가면 카메오 좀 뛰어 달라고.

자식이 이제 완전 매니저가 다 됐어.

지 배우 위해서 사소한 것 하나도 다 미리 약속받아 놓는 거 봐.”

“카메오요? 아직 드라마 확정도 아닌데 그걸 벌써요?”

“그러게 말이야.

뭐 나중에는 내가 바쁘다고 뺄 수도 있다나?

짜식이 사람을 뭘로 보고…..”

“그런데 케메오를 조건으로 배우 오빠가 뭘 받으신 거 같던데….”

“아아. 너도 알겠지만 내가 사실 사람 대하는 게 그리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쪽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형우한테 조언을 좀 받고 있거든.

뭐 꼭 그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좀 그래.”

“아하.”

민수는 그래도 자신이 설아 때문에 형우의 조언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창피해서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우연히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말 우연히 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별로 자세히 설명하지도 않았음에도 대충의 이야기만으로 모든 사항을 파악한 후 자신을 병신 보듯 보며 욕설을 퍼부었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자신과 설아를 유심히 관찰하던 형우는 이미 자신이 설아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이런저런 충고를 늘어놓았는데 형우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보다 유용해 오늘도 잘 써먹었으니 앞으로도 형우의 말을 계속 들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왠지 벅찬 설아에게 계속 휘둘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단 한 번이라도 주도권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깟 카메오 따위 수십 번도 해줄 수 있었다.

수정은 민수가 말을 얼버무렸지만, 이 이야기를 설아에게 꼭 해줘야 한다는 것을 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면 자신은 설아에게 고급 화장품을 계속 지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설아가 나눠주는 물건들은 고급이기도 했지만, 자신에게 꼭 맞아 꿀처럼 달달했다.

이렇게 민수의 벤 안에서는 배신(?)과 모략(?)이 판치고 있었다.

카메오 출연까지 마친 민수는 바로 다음 날 중국으로 출발했다.

중국 내에서는 이미 천루가 영화에 홍보를 시작한 지 오래였고, 민수가 없는 틈에 리 얀이 열심히 홍보 활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특히 민수는 없었지만 민수가 영화를 촬영할 때 찍었던 메이킹 영상을 조금씩 풀면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올리고 있었는데 민수가 아무런 장비 없이 건물에서 내려오는 영상은 이미 중국 내에서 가장 핫한 영상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런 영상들이 인터넷을 타고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까지 은근히 퍼지고 있었지만 민수는 그런 사실은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오. 리 얀! 오랜만이네.”

행사장에서 리 얀을 만난 민수는 웃으면서 리 얀에게 다가갔다.

리 얀은 민수가 갑자기 아는 척을 하면서 자신을 반겨주자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하긴 저번에 촬영할 때는 서로 소 닭 보듯 했는데 갑자기 친한 척이니 놀랄 만도 했다.

하지만 그건 민수가 창민을 만나기 전이었고, 창민이 진상짓을 경험하다 보니 리 안은 조금 귀엽게 느껴지는 것이 민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없을 때 중국 내에서 계속 홍보를 담당하며 수고로움을 감수한 것이 고맙기도 했다.

그러나 리 얀은 사실 천루의 지원 하에 홍보 활동을 하며 얼굴을 더 알리게 되는 것을 진심으로 반기고 있었다.

자신도 어느 정도 이름있는 유망한 액션 배우였지만 천루의 전적인 지원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민수의 부재로 잡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더 부지런히 움직인 것이었다.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다 보니 가지게 된 민수의 작은 오해인 셈이었다.

리 얀도 어쨌든 웃으면서 다가오는 민수에게 모질게 대하지는 못하였다.

게다가 지금은 행사장. 어쨌거나 민수와 사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유리했다.

사실 여러 인터뷰나 행사에서 민수와 친하다고 큰소리쳐 놓은 것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 민수의 반응은 차라리 리 얀에게 고마운 일이었다.

“아, 반가워.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민수는 자신의 인사를 조금 어색한 얼굴로 받아주는 리 얀의 모습에 진심으로 웃으며 리 얀을 다시 당황하게 했다.

적어도 며칠은 같이 홍보 활동을 해야 했기에 가능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였는데 행사장을 찾은 팬들과 기자들도 사이가 좋아 보이는 민수와 리 얀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던 민수와 친하다는 리 얀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며칠 동안 민수는 리 얀과 함께 홍보를 계속했다.

그래도 며칠 고생한 보람은 있었는지 여기저기 워낙 다양한 장소를 다니다 보니 기사도 이곳저곳에 많이 올라오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관심도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특히 민수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민수에 대한 여러 촬영 영상들이 재조명을 받고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었으니 그간의 고생이 헛수고는 아니었다.

며칠 동안 같이 다니면서 민수는 시종일관 리 얀에게 친절하게 굴었다.

태준이나 지인들에게 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의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둘이 그나마 낫다고 생각해서였는데 따지고 보면 중국 홍보를 같이할 만한 사람은 리 얀이 유일했다.

그나마 가능한 것은 린 샤오 메이였지만 8살 난 귀염둥이랑 같이 이 넓은 중국을 누비는 것은 불가능했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린의 초 귀여운 외모 때문에 도움은 많이 되었겠지만 아마 아동학대로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까?

민수는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리 얀은 그렇게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 자신에게 예의를 지키는 민수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리 얀도 자신이 치졸했다는 건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이 당한 것도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민수가 부러운 마음에 시기심을 버리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민수가 저렇게 행동하니 스스로가 더 부끄러워진 나머지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홍보 일정이 끝나고 민수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 리 얀은 진지한 얼굴로 민수에게 사과했다.

“내가 옹졸했다.

내가 마음이 좁아 시기한 것이었으니 부디 아량을 베풀어 주길.”

배운 무술인답게 포권을 하며 사과하는 리 얀의 모습에 민수도 흔쾌히 사과를 받아 주었다.

사실 민수도 리 얀이 촬영 중에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았으면 그냥 좋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리 얀이 편협한 마음을 버린다면 지금보다는 더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중국 홍보 활동을 마치고 일본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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