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26화 (226/325)

#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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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잘하죠.

전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하잖아요.”

“그래. 네가 낚싯대를 처음 들었던 게…. 아마 13살 때였나? 진성 선생님이랑 같이 갔지 아마?

그런데 낚시에서 무슨 문제가 있었는데?”

“들어 보세요.

제 계획은 이거였거든요.

원래 겨울에는 물고기가 거의 안 잡혀요.

특히 서해에서는요.

그러니까 딱 잡히지도 않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애처롭고 가련한 미녀!

혼자서 애타게 물고기를 기다리지만, 결과는 꽝! 이거였거든요.

제가 잡히지 않는 물고기가 야속하다며 슬쩍 눈물을 흘려주면 민수 오빠가 그런 절 불쌍하고 딱하게 여기면서 제 차가운 손을 따듯하게 잡거나 제 얼어붙은 몸을 따듯하게 감싸 안으면서 위로하는 거죠.

그러면 전 민수 오빠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더 깊이 안겨드는 거예요.”

“오~ 괜찮은데.

너 같은 애가 추위에 떨면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으면 어떤 철석 간담을 가진 냉혈한이라도 쉽게 버틸 수 없을 거야.

그런데 어떻게 됐어?”

설아는 흥미진진한 눈으로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는 수연을 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며 설명을 계속했다.

“문제는 두 가지였어요.

우선, 제가 아무 생각 없이 찌를 너무 멋지게 던져 버렸어요.

낚시 초보가 그렇게 화려하게 찌를 던질 리가 없잖아요?

당연히 어설프게 해야 했는데 오랜만에 낚싯대를 봤더니, 본능적으로…..

아마 낚시 꽤나 했다는 걸 들켰을 거예요.”

“그래? 왜 그랬어? 조심했어야지.”

수연이 딱하다는 듯이 설아를 봤지만 설아는 문제가 그게 아니라고 계속 이야기를 이었다.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예상대로 물고기가 전혀 없더라고요.

그래서 오 됐다 싶었는데 갑자기 민수 오빠가 이상한 짓을 하더니 물고기가 찌를 물어 버린 거예요.

그때 얼마다 당황했던지.

그래도 제가 순발력이 있잖아요?

이놈 놓치면 오빠가 저를 더 불쌍하게 보겠다 싶더라고요.

원래 없는 거 보다 줬다 뺏는 게 불쌍한 법이니까요.

그래서 낚싯줄을 막 사정없이 댕기기만 했는데 글쎄.

이 정신 없는 녀석이 그냥 맥없이 쭉 잡혀 올라오는 거 있죠?

와, 진짜 그때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도대체 도망치라고 등을 떠미는데도 굳이 잡혀 올라오는 녀석은 뭐예요?

근데 더 황당한 건 잡혀 올라온 게 그곳에서 전혀 잡을 수 없는 감성돔이라는 녀석이었다는 거예요.

덕분에 분위기가 아주…..”

“감성돔? 그게 원래 서해에서도 잡히는 놈이야?”

“네 잡히긴 하는데 겨울에는 거의 남해 쪽에서 잡힌다고 들었어요.

서해는 물이 얕아서 겨울에는 수온이 매우 낮잖아요? 그래서 없는 건데 이놈은 무슨 용가리 통뼈라고 서해에서 떡하고 잡혔는지 정말….

덕분에 민수 오빠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놀라는데 아무래도 그 뒤로 무슨 짓을 해도 계획처럼 동정심을 사는 게 불가능해 보이더라고요.”

“감성돔이 감성 돋는 분위기를 완전히 깨버렸구나.”

“….. 언니 그거 농담은 아니죠?

저 지금 기분도 별로인데 이러시면….”

수연은 짜게 식은 설아의 얼굴을 보며 뜨끔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더니 말을 돌려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흠흠, 재미없었어? 그래서 그래서, 그다음은?”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실력 발휘를 했죠.

뒤에 우럭 2마리 추가했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배라도 불러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나마 능력 있는 여자란 걸 어필할 수는 있었네요.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요.”

“에~ 그랬어? 좀 아쉽긴 한데 그게 큰 그림을 해칠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그렇죠. 이건 그냥 양념 같은 거였으니까요.”

“그래. 그 섬 자체가 트릭이었잖아.

배는 하루에 한 번 밖에 없고 숙소도 하나뿐이고.

그래서 일부러 웃돈 내면서 여관 아주머니랑 말까지 맞춰 놓은 거고.

설마 들켰다든지 그런 건 아니겠지?”

“아뇨. 전혀요. 아주머니의 연기는 완벽했어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던데요?

청룡상 대상을 줘야 할 정도의 열연이었죠.

게다가 방도 최고였고요.

방 전체가 침대로 돼 있어서 침대 아래에서 잔다는 가능성마저 완전히 차단한 완벽한 공간이었죠.

게다가 그 가운은 정말 제가 봐도 벗겨보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고 예뻤는데….”

설아의 설명을 다 들은 수연은 대체 왜 실패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게 처음에 계획했던 그대로였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그런데 뭐가 문제였어?”

“후…. 문제는 그냥 민수 오빠 그 자체였어요.

민수 오빠는 불행히도 한국에서 몇 안 되는 정말 믿을 만한 오빠였어요.

오빠에서 아빠가 되는 걸 꿈꾸는 대한민국의 보통 남자들이 아니었던 거죠.

흐트러진 가운 사이로 슬쩍 보이는 가슴골과 뽀얀 허벅지의 유혹을 이겨내다니, 정말 예술적으로 연출한 각도였는데….”

“끙…..”

설아는 수연이 자신을 안쓰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애써 힘을 내며 다시 한번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자신을 위로하듯 수연에게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얻은 것도 있다며 자신이 느낀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성과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어요.

우선 앞으로 민수 오빠에게 접근하는 다른 여자들도 저 티타늄 벽을 뚫지 못할 거라는 확신.

그리고 민수 오빠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보다 그냥 제가 행동하는 게 빠를 거라는 계획 수정.

딱 보니까 방어는 오빠가 알아서 잘할 거 같아요.

그러니 이제 전 공격에만 힘을 쏟을 생각이에요.

애당초 연애 세포가 멸종한 연애 고자를 평범한 방법으로 개도하려고 했던 제가 오만했어요.

연애 고자에게는 그에 걸맞은 방법이 필요했던 거죠.”

수연은 두 손을 굳게 쥐고 단호한 표정을 짓는 설아를 보며 앞으로 왠지 민수가 피곤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 놀라기도 했다.

그 상황에서 설아의 유혹을 이겨내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만약 태준이라면 저 정도 미녀가 무방비하게 유혹하는 것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솔직히 그 상황에서 자신을 옆에 두고 몸을 기대여 온다는 건 이미 게임 셋이란 뜻인데 민수는 그걸 알고도 그랬을까?

수연은 어차피 저 커플은 저 커플대로 자기들이 알아서 할 테니 자신은 이 기회에 태준을 단속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드라마를 같이 찍는 여배우가 누구였지?

수연은 저번에 자신이 드라마 상대역인 은우를 소속사로 데려왔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태준이 얼마나 짜증 냈었는지도.

민수는 며칠 후 설아가 출연하는 “햇살이 빛나는”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을 정식으로 요청받았다.

민수는 요청을 받자마자 바로 승낙하고 날짜부터 잡았다.

그래서 카메오 촬영 날짜는 바로 다음 날로 결정되었다.

민수가 가능하면 빠른 날로 하기를 원해서였는데 그것은 중국에서 민수에게 가능하면 서둘러 합류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민수는 모르고 있었지만 민수가 영화 촬영을 하고 있을 때도, 영화 촬영 후 정신적으로 실신해 있을 때도 천루의 요청은 계속되었다고 한다.

다만 민수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윤 대표가 천루 측에 양해를 구하고 있었는데 민수의 상태가 좋아졌으니 이제 더는 미룰 수가 없는 상황이란다.

특히 영화가 한국, 중국 일본 미국까지 동시 개봉 예정이라니 민수도 덩달아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민수는 영화가 일본과 한국에서도 동시에 개봉된다는 말을 듣고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민수가 예상한 건 중국을 목표로 보여주기식으로 미국에서 개봉하고 중국에서 인기가 있으면 그때야 한국 개봉 정도가 가능하지 않을까 정도였는데 이건 민수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규모였다.

“그래요. 한국은 그래도 이해가 돼요.

그래도 제가 한국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어쨌든 미국에도 개봉하는 영화니 사람들이 궁금해하긴 할거에요.

그런데 일본은 또 무슨 일이에요?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중국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하는 게 가능한 일이었어요?”

민수가 알기론 중국과 일본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런데 문화적으로 한 수 아래로 보는 중국의 영화를 일본에서 수입한다니.

상식적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과연 일본 사람들이 중국 영화를 보기나 할까?

“이걸 중국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거야.

일본에서는 이 영화를 에릭 존스가 찍은 정민수의 영화라고 생각한단다.

그리고 일본에는 에릭 존스의 팬도, 너의 팬도 아주 많다는 게 중요하지.”

윤 대표가 말을 아꼈지만, 일본에서 민수의 인기는 생각 이상이었다.

“용의 울음”에서 보여준 민수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해서였는데 “용의 울음”으로 재미를 톡톡히 본 시차쿠 측에서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고 이번에는 아예 천루와 윤 엔터 측에 민수를 꼭 일본으로 보내 달라고 계속 요청하고 있었다.

천루 측에서도 일본에서 영화를 개봉하겠다는 시차쿠의 뜻을 받아들이고 민수가 일본에서 홍보 활동을 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천루는 무조건 이번 영화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야 했고 일본 관객을 끌어모았다는 것은 천루에게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가 중국 극장가에서 준수한 성적을 내는 것에 비해 중국의 영화는 일본에 수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일본에서 실사 영화가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추세이기도 했지만, 중국 영화의 수준이 아직 낮기 때문이기도 했으니 천루는 이번 영화를 일본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생각이었다.

“어쨌든 빨리 카메오 출연해 주고 바로 중국, 일본으로 갈 생각을 하여라.

중국에서 잠깐, 그리고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영화가 개봉하면 한국에서 시사회를 갖고 바로 중국으로 가면 될 거야.

한동안 영화나 드라마 출연만 했었는데 이번에는 원 없이 다른 활동을 하겠구나.”

“끙….”

앞으로 당분간 계속 연기 외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민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기의 재미를 느끼고 있는데 아쉬운 일이었지만 배우의 일이 연기만은 아니라고 위안하며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연기만 하면서 잘 놀긴 했었다.

“그나마 미국에서는 에릭 존스 감독만 활동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거라.

만약 네가 미국에서까지 활동을 해야 했으면 지금보다 더 지옥 같은 일정이 널 기다렸을 거야.”

윤 대표의 엄포를 듣는 민수의 입가에 슬며시 실소가 새겨졌다.

미국에 자신을 아는 사람도 없으니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는데 자신이 미국 시사회에 참가해야 했으면 미국까지 가야 했으니 그건 정말 끔찍했다.

“일본이라…..”

중국 활동은 저번에 해봤으니 대충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이 갔는데 일본 활동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애당초 일본에 자신의 팬이 있기나 한가?

윤 대표는 자신의 팬이 많다고 하는데 민수는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일본에서 야심 차게 행사를 잡았는데 팬이 거의 안 오면 그건 그거대로 웃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민수는 가벼운 마음으로 “햇살이 비추는” 촬영장을 찾았다.

피디와 배우들 모두 민수를 환영하는 분위기였는데 “로열”에서 민수가 출연한 이후에 드라마의 시청률이 더 높아졌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단순한 카메오 출연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 효과를 낼 수는 없겠지만 지금 민수의 영화가 홍보를 시작해서 2주 후부터 한국에서도 개봉한다는 소식이 퍼지고 있었으니 민수의 출연이 드라마에 도움이 될 것은 분명했다.

“하하하. 정민수 씨 반갑습니다. 우명종이라고 합니다.

곧 영화가 개봉한다죠? 축하드립니다.”

드라마의 피디 우명종은 설아가 민수의 카메오 출연을 이야기하자 솔깃한 기분이었다.

이슈에 가장 민감한 방송국 피디로서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민수의 할리우드 영화가 이제 곧 개봉하는 시점에 민수가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은 분명한 호재하고 생각해서였다.

이 출연 분이 아마 영화가 개봉하기 적전, 사람들의 관심이 최고조로 달했을 때 방송 될 테고 그러면 작게나마 시청률에 도움이 될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알아서 시청률을 높여 주겠다는데 어떤 피디가 싫어하겠는가.

“하하. 제가 부탁드릴 건 아주 단순한 배역입니다.

대신 가오는 좀 살려 주셔야 해요.

멋있게 나오면 나올수록 좋거든요.”

역시 민수의 예상대로 카메오이기 때문에 단순하지만, 시선을 끌 수 있는 배역을 맡길 생각인가 보다.

민수는 피디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배역의 이미지를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해야 할 연기를 머릿속에 그리며 출연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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