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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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배를 타고 2시간.
민수와 설아는 인천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봉영도(가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름 성수기에는 제법 많은 손님이 온다고 하는데 겨울이라서 그런지 선착장도 한가하기 그지없었다.
배에서 내린 민수는 역시 가장 먼저 돌아가는 배편의 정확한 시간을 체크하기 위해 매표소 쪽으로 향했다.
섬이라는 조금 특수한 장소였기 때문에 배가 없으면 돌아갈 수 없었으니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고 생각해서였다.
“영화나 이런 데서 보면 꼭 늦게까지 생각 없이 놀다가 배가 끊겨서 고립되더라고요.
그때마다 전 대체 배편도 확인 안하고 뭐했냐고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아 그렇죠. 하하하, 그건 뭐 영화니까요.”
조금 어색하게 웃는 설아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린 민수는 매표원에게 돌아가는 배편의 시간을 묻고 2장의 표를 요구했다.
[네. 내일 오전 10시 출발. 인천행 2장입니다?”
[내일 오전 10시요.]
잠시 말이 없어진 민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재차 돌아가는 배편의 시간을 확인했다.
“저기 죄송한데요. 원래 인천 봉영도 배편을 하루에 3번 운행한다고 들었는데요.”
[네, 성수기에는 그렇고요. 지금처럼 겨울 비수기에는 1회 운행하고 있습니다.]
“아…그래요?”
민수는 당황한 얼굴로 설아를 바라보았다.
설아도 당황한 기색인 것을 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인 모양이었다.
민수는 설아의 말만 믿고 있었던 자신이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아도 분명 비수기에는 한가한 곳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아마 원래 하루에 1회 운항하는 것이 정상이고 성수기에만 관광객을 위해 3회로 추가 운항하는 것이었으리라.
“그… 어쨌든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네요.
오늘은 하루 동안 잘 쉬고 내일 들어가는 수밖에요.”
“그러게요. 다행히 내일도 촬영이 없으니까 일찍 들어가면 괜찮을 거 같아요.”
다행히 설아도 내일 스케줄이 없었으니 큰 문제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배가 없어서 섬에 묶여서 하룻밤을 지내는 영화 주인공을 비웃었는데 자신이 그렇게 되어버리자 어이가 없어서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설아도 웃는 것을 보니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긴 한가보다.
둘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바로 부두의 낚시터였다.
그냥 밥을 사 먹는 것보다 바닷가 섬에 나왔으니 자신이 낚은 물고기를 먹고 싶다는 설아의 바람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 서해에서 잡히는 물고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민수는 낚시에 성공하는 것에는 조금 회의적이었지만 설아가 꼭 하고 싶다고 하니 말리지는 않았다.
적당히 실패하면 설아도 포기할 테고 그러면 따듯한 국물이 있는 해물탕집으로 설아를 데려갈 생각이었다.
부두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낚시 코스가 존재했다.
비수기라 손님이 거의 없어서 개점휴업 상태였지만 쉬는 어부 한 분이 흔쾌히 낚시터까지 배를 몰아 주기로 했다.
“허허, 선남선녀 커플이구먼.
혹시 어디 TV에 나오는 처자인가? 왠지 눈에 익은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은 아무래도 설아가 누군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익숙해 보인다고 하는 걸 보니 오며 가며 설아가 나오는 방송을 보시긴 했나 보다.
“하하. 그런 말을 많이 들어요.
제 애인이 워낙 예뻐서요.
말씀만 들어도 감사하네요.”
민수가 부드럽게 대꾸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던 어르신도 “그래?” 하면서 가볍게 웃어넘겼다.
적당한 곳에 둘을 내려준 어르신은 두 시간 있다가 오겠다면서 지금은 때가 좋지 않으니 많은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하셨다.
“좋아요. 반드시 대물을 잡아 보이겠어요.”
전혀 기대하지 않는 민수와는 달리 설아는 완전히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민수가 기억하기론 겨울의 서해에는 기껏해야 우럭 정도만 잡히는데 그것도 정말 운이 좋아야 잡힌다고 알고 있었다.
그나마 오늘 날씨가 워낙 맑고 바람 한 점 없으며 날씨도 따듯한 편이라서 이렇게 나올 수라도 있었지 날씨가 안 따라 줬으면 도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씨 좋은 어르신에게 대여한 낚시도구와 방한 도구 일체를 챙긴 설아는 낚싯대를 들고 신중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날렵하게 낚싯대를 다루는 모습이 외형상으로는 한 십 년은 낚시를 한 고수처럼 보였다.
민수는 그런 설아의 장인 같은 면모가 어이 없기도 했지만, 솔직히 너무 귀여웠다.
저 귀여운 여자가 실망하지 않게 한 마리라도 잡았으면 좋으련만.
낚시에 한해서는 자신이 도와줄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민수는 그냥 설아를 지켜보기만 했다.
역시 예상대로 입질이 전혀 오지 않았다.
민수는 부들부들 떨면서 낚싯대를 노려보는 설아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혹시 무슨 방법이 없을까 계속 고민했는데,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문득 예전에 태준이 자신을 액받이 토템이라고 불렀던 것이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태준, 진성이랑 낚시를 하러 갔을 때 자신이 없는 곳에서만 대박이 터지지 않았던가.
민수는 설마 하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설아가 없는 곳에서만 슬쩍슬쩍 몸을 움직였다.
설아를 중심으로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슬슬 몸을 움직이자 설아도 이게 뭔가 싶어 민수를 이상하다는 눈으로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기를 잠시, 설아의 찌가 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팽팽하게 늘어난 낚싯줄을 보며 설아가 급하게 낚싯대를 끌어당겼다.
“어어~!! 오!오!! 오!”
신이 난 설아는 막무가내로 낚싯대를 더 세게 끌어당겼다.
정말 두서없는, 낚시 고수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도 안 되는 행동이었지만 뭔가 되려고 하는지 물고기가 속절없이 끌려 올라왔다.
“어?”
물고기가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데 왠지 익숙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우럭 같은 녀석이 아니었다.
뭔가 흐릿한 줄무늬가 어렴풋이 보이고 지느러미가 늠름한 것이 예사롭지 않은 모양새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서 잡힐 그런 고기가 아닌 거 같았다.
어쨌든 잡힌 것은 좋은 일이었으니 민수는 서둘러 달려와 뜰채로 물고기를 건졌다.
그리고 바로 앞에서 살펴보니 놈의 정체를 알아챌 수 있었는데 정말 어이없게도 놈은 감성돔이었다.
거기다가 무려 35cm도 넘어 보이는 큰 녀석이었는데 도대체 이놈이 왜 여기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대체…”
민수는 퍼덕거리는 감성돔을 모습에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겨울에도 종종 감성돔이 잡히고 추울 때 잡아 올리는 감성돔이 씨알이 굵다는 것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건 남해나 동해 남부 쪽의 이야기였고 서해에서 겨울에 감성돔을 잡는다는 건 정말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설아가 잡아 올렸고 자꾸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이렇게 눈앞에 딱 있었으니 사실을 부인할 수도 없었다.
“헤헤, 큰놈인데요? 오빠 이거 뭐에요?”
설아는 이놈이 뭔지도 모르는 모양인데 정말 비기너스 럭(beginner's luck)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설아가 해신의 가호를 받은 여자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렇게 벌어지고 말았다.
“음… 감성돔이라고 맛있는 녀석이에요.
잘했어요. 설아 씨.”
물고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 보이는 설아에게 민수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저것이 전부였다.
설아는 민수가 웃으며 자신을 칭찬하자 헤헤거리며 다시 낚싯대를 던졌다.
왠지 처음보다 더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민수가 떠나고 다시 시작된 낚시에서 설아는 연속으로 우럭을 두 마리나, 그것도 상당히 큰 놈을 낚아 올렸다.
그리고 저 멀리서 어르신이 배를 몰고 오는 모습에 낚시 도구를 슬슬 정리하기 시작했다.
낚시 도구를 다 정리한 후 어르신을 기다리던 민수는 멍한 눈으로 고기 통에서 퍼덕이는 감성돔(35cm)과 우럭 두 마리 (25cm, 40cm 추정)을 바라보며 자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이 완전히 파괴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헤실거리며 물고기를 바라보는 설아가 있었다.
“자네들 많이 잡았나?”
설아와 민수를 태우러 돌아온 어르신은 아무 생각 없이 설아가 내미는 고기 통을 들여다보다 감성돔을 발견하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수를 쳐다보았다.
“아니… 이거 감성돔이잖아? 이게 왜 있어?”
어르신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놈의 모습에 두 눈이 마구 흔들리고 입까지 벌리면서 당황하고 계셨다.
민수는 어르신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의 상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였다.
그래, 지금 여기서 저놈을 잡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지. 내가 틀린 게 아니었어.
“허… 어신이 강림했구먼. 어신이…”
민수가 중얼거리는 사이에 감성돔뿐만 아니라 우럭까지 2마리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어르신은 작게 감탄을 터트리며 놀란 눈으로 설아를 쳐다보았고 감탄 서린 어르신의 눈빛에 물고기를 낚은 설아의 어깨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쑥쑥 올라가기만 했다.
민수와 설아는 콧노래를 부르며 어르신이 소개한 음식점을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한 시도 넘은 상황이었고 추운 날씨에 바닷바람을 맞으며 낚시를 하느라 평소보다 더 출출한 상황이었다.
어르신이 소개해준 포구 근처의 음식점은 낚시하고 온 낚시꾼들이 자신이 잡은 고기를 요리해 먹는 음식점이었는데 일정한 요금을 지급하면 요리를 해먹을 수 있는 재료와 술까지 파는 곳이었으니 물고기를 잔뜩 든 설아와 민수에게는 가장 적당한 장소였다.
음식점에 도착한 민수는 서둘러 불을 켜고 매운탕부터 준비했다.
그리고 바로 감성돔부터 회를 치기 시작하는데 그 솜씨가 아주 예사롭지 않았다.
사실 민수가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진성과 낚시를 갔을 때 회를 먹지 못하고 손가락만 빨다 왔기 때문이었으니 민수로서는 예전의 수모(?)를 갚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설아는 민수가 능숙하게 회를 치고 매운탕을 끓이는 모습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얼마나 맛있을까.
바닷가에서 먹는 회와 매운탕이 특별하다는 말을 여러 번 들어왔던 설아였기에 오늘 음식이 더욱 기대되었다.
하물며 자신이 잡은 고기였으니 모르긴 몰라도 지금까지 먹은 회 중에 가장 맛있는 회임은 틀림없었다.
요리는 순식간에 준비되었다.
민수는 감성돔과 우럭을 예쁘게 회 쳐서 큰 접시에 담고 한번 끓인 매운탕을 들고 설아가 기다리는 탁자로 돌아왔다.
그리고 매운탕을 약한 불에 다시 끓이기 시작한 후 술을 한 병 꺼내 설아에게 따라 주었다.
“회에는 역시 소주죠.
자, 어서 맛부터 보세요.
산란기를 앞둔 시기라서 감성돔 맛이 아주 기가 막힐 거에요.”
민수의 말에 침을 꼴깍 삼킨 설아가 조심스럽게 회 한 점을 집어 들고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오물오물 예쁘게 씹으며 맛을 보던 살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수를 쳐다보았다.
크게 뜬 두 눈과 씰룩거리며 올라가는 입꼬리를 보니 설명을 듣지 않아도 얼마나 맛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설아의 모습에 미소를 짓던 민수도 젓가락을 들고 회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야들야들하고 쫀득한 것이 정말 기가 막힌 맛이었다.
이 맛에 바닷가에 온다는 생각이 든 민수는 다시 한번 예전에 놓친 진성의 대물들이 아깝게 느껴졌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놀라운 맛을 자랑하는 싱싱한 회와 따끈하고 얼큰한 매운탕.
둘은 술이 절로 넘어가는 술안주를 앞에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술잔을 기울였다.
“오빠는 회도 뜰 줄 아셨어요?
이제 요리 쪽은 못 하는 게 없으시네요.”
“사실 요리를 시작한 게 요놈 때문이거든요.”
민수는 설아에게 예전에 태준과 낚시를 하러 가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특히 설아는 태준이 민수에게 액받이 토템이라고 부르는 부분에서 빵하고 웃음이 터트렸다.
“진짜요? 하하하! 진짜 바보 오라버니 정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아 그러고 보니 아까 그래서 오빠가….”
“네. 혹시나 해서요.
그런데 설아 씨가 물고기를 잡은 걸 보면 그게 완전히 틀린 소리는 아닌가 봐요.”
“에이~ 설마요.”
농담처럼 치부하던 설아도 왠지 민수의 표정이 은근히 진지해 보이자 정말 그런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문득 민수가 옆에 있을 때는 전혀 입질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그렇게 민수 토템 설은 그 효력만 확인한 채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 속에 남게 되었다.
민수와 설아는 이런저런 엉뚱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섬에서 갖는 여유 있는 점심 식사라니, 그것도 회와 매운탕, 그리고 미녀와 함께하는.
민수에게는 정말 힐링 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