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18화 (218/325)

#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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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학창 시절에 대한 촬영을 마치고 이제 본격적으로 성인이 된 정수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촬영하기 위해 소희가 촬영장을 찾았다.

“용의 울음”을 촬영할 때도 윤숙과 가장 가까이 지냈던 소희는 윤숙의 영화에 직접 카메오를 자청한 것이었다.

“서..선생님?”

반갑게 인사하러 다가오던 소희도 극에 완전히 몰입된 윤숙을 보며 당황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평소의 윤숙 같으면서도 묘하게 애잔한 것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윤숙과 슬쩍 인사를 나눈 소희는 부리나케 도망쳐 민수의 대기실로 들어왔다.

민수도 극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윤숙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도 편한 마음으로 소희를 맞이할 수 있었다.

“소희 씨 고마워요.

한창 쉴 시기인데 이렇게 카메오로 출연해 줘서요.”

“아니에요. 선생님 일인데요.

그나저나 선배님. 지금 선생님이….”

“네. 지금 선생님이 완전히 몰두해 계세요.

저도 방해될까 봐 접근하지 않고 있고요.

선생님한테는 정말 중요한 영화거든요.”

“네….”

과몰입의 후유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소희는 윤숙이 걱정스러웠지만 정말 일생에 한 번 있는 중요한 영화라면 차라리 그렇게 집중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영화촬영을 마친 후에 후유증이 크지 않기만을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그래.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쉰다고 소속사에도 안 오셨잖아요?

편히 잘 쉬고 계셨어요?”

민수는 굳어 있는 소희의 표정을 풀어 주고자 가벼운 일상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리 소희가 좋은 배우라도 윤숙의 걱정으로 저렇게 굳어 있으면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는 힘들 것이다.

“좋았어요. 쉰다는 게 이렇게 좋다니.

예전에는 쉬는 게 그렇게 우울했었는데 한번 바쁘게 움직였더니 휴식이 얼마나 달콤한지…..

참 우스운 거 있죠.”

“그래요?”

소희의 말을 들어보니 귀국하자마자 시상식을 마치고 바로 해외로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며칠을 편하게 보내고 3일 전에 귀국했는데 윤숙이 영화를 찍는다는 말에 바로 카메오를 자청한 것이었다.

사실 한창 드라마에 바쁜 수연과 이제 드라마에 들어가기 때문에 캐릭터에 열중하는 설아, 둘 다 현실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쉬고 있는 소희가 참여하든지 아니면 다른 배우를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른 배우를 쓰는 것보다는 잘 아는 소희를 쓰는 게 민수도 윤숙도 소속사도 편했으니 소희가 자발적으로 나서준 것은 참 고마운 일이었다.

그렇게 소희의 말을 듣던 민수는 소희가 해외로 나갈 때 형우랑 동반해서 나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매니저라도 쉬러 가는 여행에 따라가다니.

회사 차원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지만 배우 입장에서 괜찮았나 싶어 걱정스러웠다.

“아. 형우 씨요?

제가 같이 가자고 했어요.

어차피 혼자 가봤자 재미도 없잖아요.

형우 씨가 워낙 재미있기도 하고 저를 정말 잘 챙겨주시거든요.”

민수는 전혀 거짓이 없어 보이는 소희의 말에 형우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심하고 사람들을 피하는 소희와 벌써 저렇게 친분을 쌓다니.

그러고 보면 소희가 적극성과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에 형우의 몫도 어느 정도 있지 않았을까?

어쩌다 보니 윤 대표가 형우를 소희에게 배정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된 거 같았다.

물론 윤 대표가 이런 것까지 정확하게 계산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론 그랬다.

“수연 선배님의 드라마는 지금 최고조를 찍은 거 같아요.

그 상대역으로 나오시는 선배님이 이번에 소속사에 새로 오신 분이라면서요?

엄청나게 잘생기셨는데 연기도 괜찮게 잘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걸그룹 지망생으로 오래 있었던 소희는 은우를 잘 몰랐었는지 이름보다 그냥 잘생긴 배우 선배님이라고 지칭하고 있었다.

자신의 영화 때문에 “로열”을 모니터링 하지 못했던 민수는 소희의 말에 은우가 드디어 감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쯤이면 지혜와 현우가 헤어지는 시기쯤은 지났을 텐데 소희가 느끼기에도 준수한 연기를 보여줬으면 자신의 몫을 완전히 해주고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우가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서 시청률도 더 올랐는지 지금 30%를 넘어선 상황이라고 하는데 수연의 몸값이 뜨겁게 타오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 같았다.

“좋네요. 좋은 일이죠.”

한창 그렇게 수다를 떨면서 긴장을 푼 소희는 이제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민수와 함께 대기실을 나섰다.

소희의 배역은 정수의 애인인 “혜연” 역할이며 사고를 당한 정수를 잔인하게 떠나는 인물이었다.

오늘 소희는 “정수”랑 “혜연”이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과 “혜연”이 “정수”를 떠나는 장면 이렇게 두 장면을 촬영하면 끝이었다.

소희가 대본을 보며 감정을 잡고 있는 동안 “정수”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의 촬영이 먼저 시작되었다.

이 장면은 “정수”가 차량에 치여 뒹구는 장면이었는데 이 장면을 민수가 직접 하겠다고 하자 태원이 민수를 말리고 나섰다.

민수는 자신을 보고 걱정하는 태원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걱정할 사람을 걱정해야지.

이건 또 너무 낯선 일이라 신선하기까지 했다.

“이거 그냥 차량만 보여주고 뒤에 넘어지는 장면으로 연출해도 충분하잖아요.

민수 씨가 굳이 직접 튕겨 나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감독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 스턴트 연기에 이골이 난 녀석이에요.

정말 사고가 난 것처럼 연출하는 게 더 실감 나잖아요.

이건 그냥 지켜보기만 하세요.”

자신만만한 민수의 말에 태원은 슬쩍 찬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찬진 마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못 이기는 척 민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태원도 사실 민수의 말대로 하면 실감 나는 장면이 나온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괜히 배우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다음 촬영에 지장이 갈까 싶어 막아섰던 것이다.

안 그래도 감정 소모가 심한데 이런 일로 스트레스를 배가시키면 감독으로서 완전 실격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차량이 정확히 서는 위치를 파악하고 운전자와 약속을 마친 민수는 가볍게 몸을 풀고 달려오는 차 쪽으로 몸을 날렸다.

“끼~익!”

목표 지점에 차가 정확히 정지하고 민수는 차에 튕겨 옆으로 두 번 굴러떨어졌다.

“헉!”

마치 진짜 사고가 난 듯 튕겨 나가는 민수를 보며 태원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민수에게 바로 달려가려다가 민수가 슬며시 일어서 자신에게 다가오자 조금 무안한 듯 놀란 표정을 애써 감추며 슬쩍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그런 태원의 모습을 지켜보던 찬진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왠지 예전의 자신을 보는 거 같아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세상에 저렇게 실감 나다니.

지금까지 독립영화만 찍어왔던 태원에게 저렇게 진짜 같은 액션 연기는 처음이었다.

“이름값 하네 진짜. 와…. 그런데 저건 또 무슨 재능 낭비냐.”

태원은 몸을 아끼지 않은 민수가 고맙긴 했지만 이건 액션 영화도 아닌데 자신의 영화에서 굳이 저럴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하겠다는 민수의 의지가 엿보이는 거 같아 든든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희가 감정을 다잡자 바로 다음 촬영이 진행되었다.

장소는 병실.

“혜연”이 “정수”에게 문병하러 와 잔인하게 이별을 고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집을 떠난 정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항상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고 밤에는 온갖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다.

그러기를 몇 년, 정수는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고 유능한 변호사가 되어 유명한 로펌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한 여성과 진지하게 교제를 시작했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던 정수는 점점 어머니의 존재를 잊어 갔다.

자신이 매달 보내주는 돈으로 자신을 키워준 은혜는 충분히 갚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도 자신의 삶을 살고 있으리라 그렇게 믿으며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상도 이젠 산산이 부서지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정수의 하반신이 마비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고 소식을 듣고 찾아온 혜연의 모습은 정수를 더욱더 절망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망연자실해 있는 정수의 병실에 한 여성을 들어섰다.

화려한 화장에 타이트한 스커트를 입은 늘씬하고 매력적인 여성은 자신을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혜연이었다.

어제도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였던 아름다운 자신의 애인.

하지만 오늘 자신을 바라보는 혜연의 차가운 표정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주 낯선 얼굴이었다.

“어머, 자기.

괜찮아?”

“혜연아…..”

정수는 멍하니 혜연을 바라보았다.

괜찮냐는 혜연의 말 속에서 정수에 대한 염려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묘한 짜증스러움 만이 정수를 자극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정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혜연은 피식 웃으며 망설임 없이 정수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럼 우리 자기 몸조리 잘해.

앞으로 걷지도 못한다니 이제 우리가 만날 일은 없겠네?

고아 출신에 봐줄 만한 건 돈을 잘 번다는 거뿐이었는데 참 아깝게 됐어.”

“너…너….”

“그럼 내가 자기 뒷수발이나 들어줄 줄 알았어?

참 아쉽네.

그래도 지금까지 자기 돈으로 편하게 잘 지냈는데 말이야.

그럼 안녕~ 그동안 즐거웠어~”

웃으며 떠나가는 혜연의 모습에 정수는 할 말을 잃었다.

사랑이라고 했으면서 날 사랑한다고 했는데.

가슴속에서 들끓는 분노를 애써 참으며 정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가로 모멸감과 비참한 후회가 같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OK!”

냉정하면서도 차가운 그리고 밉살스러운 소희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었다.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들도 소희의 모습에서 정수가 느끼는 비참함을 같이 공감하게 될 것이다.

씬이 짧긴 했지만, 표현이 깔끔하고 맛깔스러운 것을 보니 아무래도 윤숙의 영화다 보니 소희도 바짝 힘을 주고 연기에 임한 모양이었다.

민수도 중국에서의 경험으로 연기가 더 늘어서 돌아온 소희가 자랑스러웠다.

여기까지 촬영을 마치자 이제 민수가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며칠간 병원에서 혼자 머물며 피폐해진 정수를 연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민수는 촬영이 시작되기 전태원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자신이 중간에 준비를 마치겠으니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그나마 영화가 시간의 진행에 맞춰 촬영되기 때문에 한번 피폐해지기만 하면 앞으로는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면 되었기 때문에 고생은 한 번뿐이었다.

아마 영화 촬영 계획이 이렇게 잡힌 것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민수가 준비를 하는 동안 제작팀과 윤숙은 정수가 떠난 후 혼자 남은 춘천댁을 촬영하기로 했다.

혼자 외롭게 남아 정수를 그리면서도 정수에게 미안해 찾아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리운 아들을 잊지도 못한 춘천댁.

그녀는 밤마다 정수의 사진을 보면서 눈물짓고 한숨을 쉬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정수가 자신을 못 찾을까 이사도 못 하고 전화번호도 못 바꾸면서 정수를 애타게 기다리는 춘천댁은 언젠가부터 자신의 계좌에 들어오는 거금을 바라보며 정수가 잘살고 있음을 은연중에 알게 된다.

언제나처럼 가난한 살림의 춘천댁이지만 그럼에도 정수가 보내주는 돈은 단 한 푼도 쓸 수가 없었다.

그 돈마저 사라지면 자신과 정수 사이에 이어진 마지막 끈이 사라져 버릴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계속 보내져 오는 돈을 바라보며 그래도 자신을 잊지는 않았구나 싶으면서도 한번 찾아오지도 연락하지도 않는 아들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들을 그리워할지언정 차마 원망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틀간 그런 춘천댁, “정수 엄마”의 애달픈 모습이 윤숙을 통해 적나라하게 연기될 것이다.

윤숙이 연기에 집중해 있는 동안 민수는 자신의 몸을 망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이틀 동안 소량의 수분만 섭취하면서 잠도 자지 않으며 자신의 몸을 혹사하고 있는 것이다.

“진짜. 망할 몸뚱이……

무슨 효율이 이러냐?”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치트키 같은 몸이었지만 이럴 때는 암담하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했다.

“와 진짜 이러기냐….. 정말 물까지 끓어야 해?”

민수는 물만 마셔도 시들었던 상추처럼 다시 쌩쌩해지는 몸뚱이를 보며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만약 진짜 누군가 알았으면 신체 해부를 해보겠다고 칼부터 들이밀 그런 몸이었다.

놀라운 건 놀라운 거고 이러다가는 정말 촬영이 망칠 거 같아 민수는 조바심을 느꼈다.

정말 대책이 시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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