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14화 (214/325)

#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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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의 말에 윤숙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시나리오 계약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걸 보면 민수가 아닌 어떤 배우가 들어왔어도 저 영화가 제작되었을 거 같지 않아서였다.

“그게 어떻게 네 책임이니.

어차피 만들 생각도 없는 영화였는데.”

민수도 제작사 사장을 만나보니 윤숙의 말이 어느 정도는 옳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이 없고 윤 대표가 투자금을 내밀었으면 그 사장마저 마음을 바꿔 영화를 만들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건 어차피 예상에 불과하고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해결하느냐였다.

“우선 소속사로 돌아가요.

돌아가서 윤 대표님 말을 들어보죠.

아마 감독님도 저희 소속사에 계실 거에요.”

윤숙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괜찮겠니?

나야 어차피 앞으로도 별로 활동할 생각이 없지만 넌 아니잖니.

저 치들이 참 치졸해서 아마 너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다른 제작사에 퍼트릴 텐데 괜히 너에게 피해가 가는 게 아닌지 모르겠구나.”

윤숙의 말에 민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윤숙의 말은 옳지만 틀린 말이었다.

분명 자신에 대한 안 좋은 소리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였다.

자신이 쓸만하면 그런 소리가 있어도 쓸 거고, 자신이 쓸모가 없으며 그런 말이 없어도 안 쓸 게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이 돈이 된다고 판단되면 저런 소리가 있던 말던 자신에게 달려들 것이다.

하지만 민수도 사장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생각하면 조금 기가 막혔다.

그러고 보면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너무 중구난방이었다.

게다가 그 차이가 너무 심해 가끔은 도대체 어떤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실 실제로도 민수에 대한 평가는 정말 제각각이었다.

우선 민수를 잘 알고 있는 소속사 식구들은 민수를 정말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켜본 민수의 연기력 자체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고 “용의 울음”의 성공과 중국에서 영화를 찍은 것도 민수의 능력이 빛을 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앞으로 민수가 더 대단한 배우가 될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민수가 수연의 드라마에 200만 원만 받고 갑작스럽게 출연해 준 것에 감동을 하는 것은 민수의 가치에 대한 고평가도 어느 정도 기인하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일반 대중들은 기본적으로 민수를 멋진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배우의 능력도 어느 정도는 인정하지만, 아직 경력이 짧다 보니 확신은 없는 상황이었고, 다만 민수가 지금까지 보여준 여러 가지 모습에서 인간적인 멋을 느끼는 것이었다.

물론 저번에 할리우드에서 개봉하는 영화의 주연으로 출연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평가가 한 단계 올라가긴 했지만, 아직 개봉한 영화는 아니었고 성적도 몰랐으니 그 부분은 아직 물음표가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

방송 관계자들의 평가는 각각 조금 달랐다.

우선 모든 관계자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고 여러 가지 이슈를 몰고 다니는 민수가 좋은 소재라고 것은 동의하는 바였다.

다만 민수가 정말 대단한 스타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모두 달랐다.

민수를 끝까지 섭외한 “무모한 도전” 제작진이나 민수와 드라마를 찍은 “로열”의 제작진은 민수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는 부류라고 볼 수 있었다.

문제는 영화 관계자들이었는데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할리우드 진출의 허구성을 잘 알고 있었고 “용의 울음”에서도 태준 진성 강철의 인기에 편승한 감이 있었기 때문에 민수에 대한 평가가 가장 박했다.

정말 제대로 보여준 것도 없는 반짝스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민수는 그냥 인기 있을 때 잠깐 쓰고 말 그런 배우에 불과했다.

민수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영화 관계자들에게 은근히 박대당하고 있는 것은 그런 평가의 차이 때문이었다.

특히 민수가 자신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영화들을 계속 거절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수와 접하는 영화 관계자는 다 민수를 박하게 평가하는 사람뿐이었으니 좋은 대우를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결국 민수의 인지도가 너무 갑작스럽게 올라가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다지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었으니 민수가 좋은 활동을 보여 주면서 서서히 바로잡는 방법밖에 없었다.

민수가 소속사로 돌아가고 있을 시점.

윤 엔터는 민수의 연락을 받자마자 바로 움직이고 있었다.

윤 엔터 홍보팀에서 모든 일을 선두 지휘하고 있는 민 여사는 윤 대표에게 상황을 듣고 바로 홍보팀에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홍보팀 모든 직원이 민 여사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지금 윤 엔터 홍보팀도 예전에 정우철한테 얻어맞기만 하던 그런 얼뜨기들이 아니었다.

민수와 함께 온갖 사건을 다 경험하면서 맷집과 실력을 키운 백전노장이었다.

“아~ 기자님 아시면서 그러세요.

지금 당장 이수연 씨 인터뷰를 달라고 하시면 곤란하죠.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배우들 아시잖아요.

물론 드라마 끝날 때까지는 다른 곳하고도 인터뷰는 없을 겁니다.

예. 예. 그럼요. 드라마 마치면 바로 연락 주세요.

그럼 기사는 그렇게 부탁드릴게요. 네네.”

“에이. 기자님. 딱 바로 답 나오잖아요.

이거 갑질 아닙니까? 네네.

그럼요. 사실이죠. 감독님 인터뷰도 바로 딸 수 있고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잖아요.”

“하하하. 정민수 씨라니까요.

저희 배우님이 아니면 누가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원래 저희 배우님이 정의구현의 달인 아닙니까?

그럼요.”

“정윤숙 선생님이랑 정민수 씨고요.

투자는 정민수 씨가 직접 할 겁니다.

에이~ 그러니까 정민수 씨가 직접 하는 거죠.

배우랑 작가한테 갑질하는 제작사라니 딱 느낌 오시죠?”

민 여사는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음 지었다.

그런 민 여사를 홍보팀장 이미영이 옆에서 보필하고 있었다.

“미영아.”

“네. 여사님.”

“저번에 말이야. 내가 진짜 느낀 게 하나 있었어.”

“……”

“뭘 막으려고 한다는 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더라고.

힘만 들고 얻는 건 없고 정말 짜증만 나더라.

그러니 굳이 뭐 하러 그러겠니.

내가 먼저 선빵을 치면 훨씬 편한데.

수연이랑 태준이 팔면 조선이랑 대한의 사회면에도 기사를 올릴 수 있을 거야.

눈앞에서 대상 놓친 윤태준의 최초 심정 고백! 이 정도면 아마 대한에서도 솔깃하겠지?

태준이한테는 내가 미리 말해 놨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거짓말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사실을 올리는 거니 거절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번에는 팩트로 한번 조져주자고.”

“네 여사님. 지시대로 연락 넣었습니다.”

“그래. 우리 배우를 거지 취급하는 제작사를 진짜 거지로 만들어 줘야겠어.

감히 윤숙 언니한테 뭐라고?

개런티는 무슨, 몇 푼이나 쥐여 주려고 그딴 유세를 떨어.”

미영은 서슬 퍼런 민 여사의 태도에 몸을 떨며 자신의 할 일을 찾아 바쁘게 뛰어다니는 홍보팀 직원들에게 다가가 괜히 엄포를 놓았다.

“지금까지 잘 놀았잖아.

자자. 다들 밥값을 하라고.

빨리 움직여.

오늘 바로 기사 나갈 수 있게.

따로 접촉해서 접대해야 하는 애들은 당장 퇴근하고 일 마칠 때까지 출근도 하지 마.”

윤숙은 민수와 함께 대표실로 오르다가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의 행동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게다가 며칠 전에 왔을 때는 전혀 몰랐는데 생각보다 직원들이 훨씬 많았다.

원래 이렇게 직원들이 많았나?

윤숙이 제대로 소속사를 살펴봤던 것이 벌써 몇 년 전이니 근 2년사이에 갑작스럽게 직원들이 몇 배나 늘었다는 것이 신기할 만도 했다.

“누님 오셨어요?”

민수는 대표실 안에서 윤 대표와 대화를 나누는 김태원 감독을 보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감독님도 계시네요.”

제작사에 일방적으로 뒤통수를 맞고 영화에서 완전히 배제된 채 실의에 빠져있던 김태원은 윤 대표의 연락을 받고 윤 엔터로 오면서도 일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전혀 몰랐다.

정말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듯 빠르게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자신의 영화가 예산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고 세트장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 영화이기는 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다음 주에 크랭크인에 들어갈 기세였다.

“누님도 앉으세요.

감독님하고는 대충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누님은 연기만 신경 써주시면 됩니다.

그게 누님이 제일 잘하는 거잖아요.

제작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강철아…..”

윤 대표는 조금 감동한 듯한 윤숙을 보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이 진작이 이랬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윤숙의 말만 믿고 제작은 알아서 되겠거니 하면서 민수만 보낸 것은 너무 무심한 행동이었다.

“진작에 이랬어야 했어요.

누님이 처음으로 주연으로 들어가는 영화였는데 제가 너무 무심했어요.”

“민수를 보내준 것만 해도 고마운 거지. 어떻게 그런 걸 부탁하니?”

윤 대표는 윤숙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지금까지 윤숙이 살아온 모습이 기억나 참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주연이라는 말만 들어가면 급격히 약해지는 윤숙이 아니었던가.

아마 처음부터 자신이 주연으로 들어가는 영화가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다른 사람에게까지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누님.

이 영화 무조건 성공할 겁니다.

그때는 회사에서 누님한테 감사하다고 절을 해야 할 테고요.”

윤숙은 자신 있어 하는 윤 대표를 보며 작게 웃음을 지었다.

왠지 그의 말대로 모든 일이 흘러갈 거 같은 그런 착각이 들 만큼 윤 대표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그런데 오늘 그렇게 깽판을 치고 와서 민수가 걱정이구나.

괜히 앞날 창창한 애한테 내가 무슨 실례를 한 건지.”

“아, 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 누님.

이런 일이 있어도 민수의 앞날은 창창할 테니까요.

이번에 영화에 들어가면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아직 배울 게 많은 녀석이니까요.

저 녀석이 이번에 들어간 것도 누님한테 배우고 싶어서 그런 거 잘 아시죠?

누님한테 배우는 값으로 영화 한 편 정도라면 참 저렴한 거죠.

안 그러냐? 민수야.”

윤 대표의 말에 민수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대표님.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윤숙은 두 사제의 너스레에 기분 좋게 웃으며 민수를 바라보았다.

“용의 울음”에서 자신이랑 연기할 때 보여준 것만 해도 충분히 훌륭했는데 더 배우겠다는 민수의자세가 너무나 예뻐 보였다.

그리고 그런 민수에게 가르침을 내리려면 자신도 만전을 기한 연기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용의 울음”에서는 중국어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최선을 다한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으니 이번엔 더 제대로 보여주리라.

“김찬진 감독님은 별말 없으셨어요? 스태프들 보내주신다고 하셨다면서요?”

“아 그 녀석?

지가 어쩔 거야. 지는 놀아도 스태프들은 놀리면 안 되지.

그 사람들은 프리랜서인데.

넉넉하게 주기로 해서 별 불만 없더라.

김 감독님. 사실 그 돈 주고 그 정도 스태프 구하기도 정말 힘듭니다.

저번에 “용의 울음” 촬영한 스태프들이에요.

아마 별문제 없이 김 감독님이 원하는 데로 잘 찍어 줄 겁니다.”

“아… 설마 김찬진 감독님 쪽 스태프들인가요? 허…..”

“아세요?”

윤 대표는 태원이 찬진을 아는 듯 보이자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찬진이 많이 유명해진 것일까?

“알죠. 저도 독립영화판에서 전전하는 인물인데요.

김찬진 팀이면 정말 그쪽에서는 최고로 치죠.

예산 짜내는 것도 정말 일품이고요.

아주 군더더기가 없으니까요.

차라리 제가 영광이네요. 저도 많이 배우겠어요.”

윤 대표는 태원이 기대된다는 눈으로 즐거워하자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조한 팀이라도 팀 간에 불화가 생길 거 같진 않아서였다.

태원이 알고 있다는 건 신기하긴 했지만, 예전에 윤 대표도 찬진의 스태프들이 보여준 궁상에 많이 놀랐으니 유명할 만도 했다.

일정이 빨리 끝나서도 그렇지만 촬영 예산을 몇억이나 아낄 수 있었던 건 그런 스태프들의 노고도 큰 몫을 했었다.

물론 그 돈이 결국 다 찬진의 다음 영화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스태프들도 손해는 아니었다.

어쨌든 회사가 투자를 결심하면서 일이 더 잘 풀려나갈 거 같았다.

그리고 만약 영화가 실패해도 사실 별로 상관이 없었다.

여기서 예산 몇억 까먹는다고 문제가 생길 윤 엔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망해도 배우들이 좋은 연기만 보여주면 윤 엔터 입장에서는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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