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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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그게 하루아침에 좋아지겠어요?
그래도 뭐 하다 보면 조금씩이라도 달라지겠죠.
그러니 형님도 좀 도와주세요.”
은우는 소속사에 들어온 다음부터 민수를 형님이라고, 태준은 선배님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조금 난감해하는 민수에게 자신이 1년 선배지만 민수가 두 살이나 형이니 플러스마이너스를 해도 자신이 더 적다며 서열을 깔끔하게 정리한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웃으면서 형님이라고 달라붙는데 참 위력적인 붙임성이요 밉지 않은 넉살이었다.
“그래요. 제가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그래야죠.
그런데 그 현우는 나중에 어떤 식으로 돌아오는 건가요?”
“저도 궁금해서 작가님한테 따로 물어봤는데요.
그렇게 특별한 설정이나 반전은 아니더라고요.
현우가 지하 쪽에서 크게 사채를 하는 집안의 의절한 아들이라서 나중에 현금을 잔뜩 들고 돌아온다는 뭐 그런 뻔한 이야기요.”
“성격 때문에 집안에서 하는 일들이 혐오스러워 집을 떠났다는 설정이겠네요.
흔하다면 흔한 설정인데 앞으로의 스토리를 생각하면 지혜에게 엄청 도움 되긴 하겠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지분 싸움을 할 때 총알을 잔뜩 들고 백기사가 나타난 거니까요.”
“사실 전 현우가 조 여사 쪽 집안이랑 무슨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거든요.
둘 다 조 씨인 데다가 조 씨가 김,이,박 처럼 그렇게 흔한 성은 아니잖아요.
그러니 굳이 그렇게 설정한 무슨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으엑. 그건 또 묘한 반전이네요.
그런데 조 여사는 지혜의 친모잖아요.
그건 또 무슨 막장이…..
아, 혹시 제 연기가 진짜 마음에 안 들면 저를 조 여사 집안의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다음에 서로 친척 사이라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제 출연 분을 줄일 계획도 있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친척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조 여사는 지혜의 친모가 아니었다는 식으로 진행될 수도 있고요.
작가님들은 원래 그런 것들 다 생각하면서 쓰실 테니까요.”
“뭔가 막장이지만….. 그게 아닐 거라고 장담은 못 하겠네요.
작가님들이 궁지에 몰리면 충분히 쓸 수 있는 방법이니…..”
한창 드라마에 앞날에 대하여 잡담을 나누던 은우는 슬쩍 주위를 살펴보더니 민수에게 슥하고 다가오더니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회사는 뭔가 조금 분위기가 다르던데요.
뭐라고 해야 되나….. 절도가 있다고 할까?
직원들 움직임도 엄청 빠릿빠릿하고요.
어쨌든 제가 예전에 있던 빅 엑터스랑은 분위기가 완전 달라요.
처음에는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놀랐는데 요즘은 직원들 분위기가 더 신기해요.”
하긴 처음부터 점점 인원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봤던 민수도 종종 놀라는데 은우가 신기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원래 인원이 이렇게 많지 않았거든요.
제대로 소속사가 돌아가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요.
그전까지는 태준이 혼자 활동하던 회사였으니까요.
그래서 부족한 부분도 많고 배워나가는 면도 많다 보니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나 봐요.”
직원들이 절도 있게 움직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지만 민수는 대충 그렇게 얼버무렸다.
은우도 이곳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결국 알게 모르게 진실(?)을 알게 되리라.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원래 소속사는 1팀이다 2팀이다 하면서 배우 누가 어느 팀에 있냐에 따라 팀장들이 서로 견제도 막 하고 그러다 보면 배우들도 서로 눈치 보면서 좀 서먹해지고 그런다던데 여긴 분위기가 완전 다르네요.”
“네, 그런 면은 좀 다르죠.
아무래도 외부인사들을 거의 스카우트하지 않다 보니 서로 견제할만한 직원이 없어요.
그러니 자연히 배우들도 서로 눈치 볼 이유가 전혀 없고요.
게다가 어쩌다 보니 거의 가족처럼 지내고 있거든요.”
“따로 팀도 없고 팀별로 지원팀이 있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뭔가 주먹구구식인 것도 같은데 그런데 별문제는 없는 거 같고 참 신기하네요.”
“따지고 보면 배우 하나하나가 각각 하나의 팀이죠.
그걸 총괄하는 지원팀이랑 스케줄 관리팀이 있는 거고요.
그래서 지원팀이랑 관리팀이랑 홍보팀에 직원들이 엄청 많아요.
문제가 있다면 아직 매니저들이랑 직원들의 경력이 길지 않고 인맥이 그리 많지 않다 보니 따로 일을 물어오거나 그런 활동에는 능숙하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 회사의 매니저들은 그야말로 배우들 관리만 하고 있거든요.
아직 처음이라 그런 건데 나중에는 조금 나아지지 않겠어요?”
“아~ 그래요? 그런데 별로 그런 티는 안 나던데요.
아….. 가만히 있어도 스케줄이 요청이 계속 들어오니까 그런 거군요.
매니저들이 굳이 나서서 스케줄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지금도 배우들이 알아서 엄청나게 잘 풀리고 있으니……”
은우의 말대로 윤 엔터의 배우들은 어느 순간부터 스케줄이 없어서 걱정하는 일이 없어졌다.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이 완전히 망하거나 큰 타격을 입은 적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되는 성공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민수가 보기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전생에서 한국 최고의 배우가 되었던 윤태준.
한때 최고의 배우였고 배우 보는 눈이 남다른 윤 대표가 완전히 매료되어 기획사를 차리게 만든 놀라운 재능의 보유자 이수연.
전생에서 최고의 가수이자 놀라운 감성 표현능력을 갖췄으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연기를 배운 윤설아.
그리고 중국에서 가장 있기 있는 여배우이자 중국 사대 미녀 여배우랑 이름을 나란히 했던 진소희.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배우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그림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자잘한 실패가 있을 순 있어도 특별한 사고가 터치지만 않으면 계속 탄탄대로일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배우들의 역량이 뛰어나다 보니 소속사 직원들이 아직 일에 서툰 것은 별로 티가 나지 않았다.
원래 이쪽에서 일하던 사람을 스카우트하기보다 윤 대표나 민 여사가 믿을 만한 직원들 위주로 회사를 운영했기 때문에 겪게 되는 필연적인 문제점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윤 엔터가 개선해야 할 유일한 문제점이기도 했다.
“그러네요.
조금 그런 면이 있죠.”
“그런데 솔직히 전 회사 분위기가 엄청 마음에 들어요.
연습실이 엄청나게 빵빵하게 설치돼 있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예전 자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좋고요.
그런데 가장 좋은 건 직원들이나 배우들이랑 쓸데없이 신경전을 안 해도 된다는 거예요.
저번 회사에는 엄청 신경 쓰였거든요.
제가 소속된 팀이 회사에서 첫 번째 팀이었는데 나중에 외부에서 스카우트된 배우랑 그 팀 팀장이랑 저를 얼마나 견제하던지.
다른 사람보다 돋보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정말.”
확실히 은우 같은 사람이라면 그런 분위기에 신물이 날만도 했다.
그리고 소속사에 은우를 질투할 만한 배우가 없다는 것도 윤 엔터만의 메리트이긴 했을 것이다.
민수가 알기에도 소속사의 다른 배우가 굵직한 예능이나 페이가 센 행사 스케줄을 잡으면 그걸 질투하거나 시샘하는 배우들이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윤 엔터 배우들은 만약 은우가 그런 스케줄을 잡으면 안쓰러운 얼굴로 힘내라고 말해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전혀 다른 환경에서 3년 동안 생활했던 은우가 조금 신기해할 만도 했다.
“아, 형님도 그렇고 윤태준 선배님도 그렇고 아까웠어요.
이번에 대상도 노릴 만했는데요.
왠지 김주민 선배님이 어부지리로 가져간 기분이네요.
딱 시상식에서 형님이랑 소속사 분들이 다 같이 모여있는데 그 위용이…..
솔직히 그건 좀 부럽더라고요.”
“아…. 그랬어요?”
부러움이라.
왠지 은우란 큰 뚝에 작게 새겨진 물고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하긴 모든 것을 다 가진 은우라도 지금은 아직 만족할 만한 연기력을 갖추지 못했으니 민수는 거기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럽다라….. 원래 그런 부러움이 점점 커지고 자신은 그렇게 못한다는 생각이 깊어지면 자괴감과 열등감이 시작되거든요.
은우 씨는 혹시 “용의 울음”을 봤나요?”
“네. 저도 봤죠. 아마 웬만한 배우들은 다 보지 않았을까요?
대표님이랑 조진성 선생님이 나오시는데요.”
“그럼 윤 배우의 연기도 봤겠네요.
전 사실 윤 배우가 대표님이랑 같이 연기할 때 제가 저기서 같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만큼 태준이의 여기가 좋았으니까요.
은우 씨는 어땠나요?
그 자리에서 연기했다면 윤 배우만큼 할 수 있었겠어요?”
“음……”
은우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고는 자기만의 생각에 잠겨 들었다.
그리고 작게 한숨을 쉰 후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네요.
아마 그건 무리겠죠?”
“그래요.
은우 씨가 연기를 다시 배우고 기초를 다진다면 아마 은우 씨도 분명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만약 앞으로 은우 씨가 더 배운다고 해도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상상해 봐요.
그럼 아마 열등감이란 게 어떤 감정인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아…..”
민수의 말에 은우도 조금 느껴지는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실마리를 잡았을 뿐 당장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니 좀 더 섬세한 감정연기를 하는 것은 은우의 노력에 달린 일일 것이다.
시상식이 끝나고 “로열”이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는 지금.
민수에게도 많은 시나리오가 날아오고 있었다.
시나리오 대부분은 윤 대표의 손에서 정리가 되었고 괜찮다고 생각되는 제안만 민수에게 전달되었는데 그중에는 민수가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도 있었다.
특히 단순히 시나리오를 보내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캐스팅 의사를 보이는 영화였기 때문이었는데 스토리 자체도 나쁘지 않아 민수도 긍정적으로 접근하게 된 것이었다.
감독과 제작사가 완전히 결정된 상황에서 민수에게 제안이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민수를 잡은 후에 투자자를 잡으려는 다른 영화와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게다가 감독도 한국에서 알아준다는 이기민 감독.
확실히 스타 감독이 연출하는 영화였기에 더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갔다.
하지만 민수에게는 조금 걸리는 면이 있었다.
이 영화의 목표 개봉 일자가 5월 초순.
어린이날을 필두로 그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휴일에 관객들을 끌어모으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민수가 3월에 영화 홍보 때문에 스케줄을 비워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결국 감독이랑 제작사와 일정을 조율해야 했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지 알 수 없었다.
특히 이 영화는 상당한 자본이 투자되는 영화였기 때문에 일정이 촉박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컸고 그러니 일정을 비우기가 더욱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민수의 고민이 무색하게도 제안을 받고 은밀히 일정을 조율하던 중 이 영화에 주연이 결정되었다는 기사를 발견하게 되었다.
[5월 개봉 예정 “쓰나미” 주연에 한류스타 정진영으로 확정. 1월 중 크랭크인!]
민수는 기사를 보고 어이가 없었다.
정진영이라면 지금 윤태준 김주민과 함께 감독들이 가장 선호하는 젊은 남자 배우 중 하나였고 그 위상을 생각해 보면 분명 민수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러니 정진영을 주연으로 쓸 마음이 있었으면 그에게 더 먼저 제안을 보냈을 것이 분명한데 자신한테도 연락을 주었다는 것은 분명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다.
“장진영 선배가 어지간히 질질 끌었나 보네.
어쩐지 크랭크인 준비가 거의 다 됐다 하더라니.
보아하니 난 스페어로 생각했다는 거고.
위치가 그러니 이해는 하지만 상대가 거절도 안 했는데 나한테 컨택을 넣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아니면 아예 끝까지 모르도록 잘 조절을 하던지.”
한 번에 두 명의 배우에게 동시에 섭외를 시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금기에 속했다.
둘 중 하나라도 거절을 하면 큰 문제가 없지만, 만약 둘 다 OK를 하게 되면 결국 한 명은 배역을 맡을 수 없게 되고 그건 그 배우의 자존심에 크게 상처를 입히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만약 저 발표가 조금만 늦게 나고 그전에 민수가 제작사에 계약 의사를 전달했다면 작품에 섭외를 받아 놓고도 거절당하는 말도 안 되는 수모를 당했을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니 결국 민수는 “쓰나미”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의 일정 때문에 상황이 모호하긴 했지만 어쨌든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좋게 생각하자고.
어차피 저 영화는 못 찍을 가능성이 컸어.
게다가 발표가 빨리 나서 빨리 포기할 수 있었으니 차라리 이게 낫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