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08화 (208/325)

#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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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주작에서도 안 하는 주작질을 청룡에서 하고 자빠졌네.

-김주민이 대상 받은 게 주작이라고 하는 건 너무하지 않냐?

-ㅋㅋㅋ 솔까 천만영화 주연이 대상이고 이천만영화 주연이 남우주연상인데 이게 주작이 아니라고?

그건 어느 별 계산법이여? 아재, 숫자 몰라요??

-관객 수가 청룡상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

문제는 그 기준이란 게 확실하지 명확하지 않다는 거야.

-솔직히 작품성이면 용보다는 태양이지.

-태양이 작품성이 더 있다는 건 또 무슨 기준인지 모르겠네.

왜? 노동자가 나오니까 뭔가 더 있는 작품 같디?

어차피 그것도 상업영화인 건 매한가지고 관객 끌어모으려고 적당히 허구 섞어서 맛깔나게 버무렸던데.

-그 기준이 작품성이란 것도 웃긴 게 어떤 해에는 관객 수가 장땡인 경우도 있었거든.

-정민수가 신인상 하나 받고 땡처리 당한 것도 개 웃긴데 대상까지 딴 곳으로 돌려버리네

윤 엔터는 위원회에 뭐 밉보인 거라도 있나?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용이 6개 부분에서 상을 싹쓸이했지.

-위원회 새끼들은 지들끼리 골방에서 쑥덕공론하지 말고 입상기준부터 명확하게 공개해야 해.

완전 지들 X꼴리는데로 상을 뿌려대니 맨날 이 모양이지.

예상대로 어제의 시상식은 사람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가장 시끄러워야 할 윤 엔터 배우들은 그런 논쟁에서 잠시 벗어나 있는 상황이었다.

윤 대표가 언급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어제 잠시 허탈하게 웃더니 수상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언론들의 계속된 접촉에도 윤 대표가 입을 열지 않자, 기자들은 다른 배우들에게 달려들게 되었는데 배우들까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수상에 대해서는 완전히 입을 닫았다.

그리고 결국 어제 시상식 이후 다음 날까지 계속 매달렸음에도 윤 엔터에서 공식적인 코멘트를 남기지 않자 이제 기자들도 어느 정도 포기한 분위기였다.

윤 대표는 어제 시상식이 끝난 후 태준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이번에는 운이 없었으니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이야기하며 태준을 달랬다.

태준은 아버지의 위로를 받으며 아무 말 없이 그냥 씁쓸하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다만 그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단순히 억울함이나 그런 것이 아닌 모양인지 표정이 어딘가 조금 미묘하긴 했다.

그리고 윤 대표는 배우들을 모두 보내고 아무도 없는 곳, 아니 민 여사만 있는 곳에서 울분을 터트리고 있었다.

“미친 작자들, 진짜 지들 멋대로야.

무슨 상업 영화에서 작품성을 찾겠다는 거야!

어떤 해에는 흥행만 따지더니 이번에는 작품성을 따지겠다고?

도대체 그 작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거야?”

민 여사는 한참 동안 욕설을 내뱉으며 식식거리는 윤 대표의 노성을 조용히 다 들어준 후 가만히 그의 등을 두드리며 끌어안았다.

그리고 윤 대표가 자신의 품에 안기자 문득 예전에 지금처럼 울분을 토했던 남편의 과거가 생각났다.

이 남자도 과거에 대상을 받기 위해 열정을 다하며 영화를 찍고 좌절하고를 반복했다.

그런 좌절이 반복될 때마다 조금씩 집착이 되었고 나중에는 대상을 받을 때까지 대상 외에는 아무것도 만족스럽지 않아 했다.

그리고 결국 대상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이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허탈감에 시달렸으니 남편은 아마도 혹시 제 아들이 예전에 자신처럼 대상이라는 늪에 빠져 조바심과 집착을 둘까 염려되는 것이리라.

“여보.

우린 아들딸을 그렇게 물렁하게 키우지 않았어요.

당신이야 그 당시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고 아무도 당신에게 충고해 주지 않았으니 그랬던 거에요.

그런데 태준이는 아니잖아요.

당신이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죠?”

“후…..”

민 여사의 말에 겨우 진정하고 침착함을 찾은 윤 대표는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민 여사의 말대로 아들은 자신과는 달랐다.

조금 전에도 분노나 억울함 대신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지 않은가.

“그래. 태준이가 그럴 리가 없지. 그럴 리가 없어.”

민 여사는 지금은 태준보다 차라리 윤 대표가 더 흥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예전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대상을 몇 번이나 놓치면서 울분을 토하며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었으니 말이다.

“대상이란 게 다 때가 있더라고.

그리고 그 때 대상을 놓치면 다시 그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아.

지금이야 처음이니 태준이도 그나마 침착한 거지.

만약 이런 일이 반복되면 녀석도 쉽게 참지 못할 거야.

난 그게 무서운 거고.

상에 집착하는 배우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이번에 무조건 받기를 바랬는데…..”

안정을 찾고 넋두리를 늘어놓는 윤 대표를 바라보며 민 여사도 왜 태준이 대상을 타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왜 아니었을까요? 솔직히 이해가 잘 안 가는데요.”

“몰라. 이걸 모르니까 환장한다는 거야.

기준이 매해 제 멋대로거든.

작품성이라고 하기에는 태양도 사실 조금 애매하잖아?

관객도 천만을 겨우 넘었고.

도대체 이게 뭔지…..”

윤 대표의 말대로 수상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만 지금까지 청룡 영화제가 권위를 잃지 않은 것은 기준은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입상한 작품이나 수상자들이 그래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한창 논쟁이 일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수상자에게도 자격이 있음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었다.

만약 수상자가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면 지금처럼 논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위원회를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조롱했을 것이다.

이래저래 결국 상을 받지 못한 배우만 억울한 일이었다.

청룡 영화제가 마친 다음 날은 바로 주작 방송 연기대상이 개최되는 날이었다.

이날 설아는 “미스 신데렐라”팀과 함께 수상자 후보로 행사에 참여하였고 태준과 민수 그리고 수연은 작년도 수상자로 시상을 위해 행사에 합류해 있는 상황이었다.

식이 시작되기 전에 시상자 대기실에서 같이 모여있던 수연과 민수는 태준의 기분이 생각보다 괜찮은 거 같아 안심하고 있었다.

어젯밤에 행사가 끝난 후 잠시 혼자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확실히 마음을 정리한 모양이었다.

“솔직히 말이야.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난 정 배우가 타는 게 맞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도 정 배우도 아니라 주민 선배라니…..

솔직히 좀 황당했어.”

“사람들은 아마 작품성 때문에 김주민 선배가 탔을 거라는 말이 많던데 정말일까?”

“작품성이라……”

“용의 울음”이 전반기 한국 영화계를 완전히 평정했다고 한다면 김주민의 단독 주연 작품인 “뜨거운 태양은 지지 않는다”는 추석 연휴에 개봉해서 후반기에 개봉한 한국영화 중에 가장 준수한 성적을 기록한 작품이었다.

독립 직후부터 혼란하던 사회 상황에서 한 남자가 맨몸으로 노동자부터 시작해서 결국 건설회사의 사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그런 영화였는데 독립 직후의 어지러운 사회상도 절묘하게 잘 표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준은 작품성이라는 수연의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만약 저 영화가 독립 직후 어려웠던 노동자의 비참한 삶과 그걸 극복하는 인간애를 그린 영화였으면 아마 태준도 바로 그 말을 인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영화는 그런 것보다는 주인공이 성공하는 성공담을 다룬 이야기였고 그 외의 것들은 그저 부수적인 장치에 불과했다.

그러니 단순히 소재가 그렇다는 이유로 저 영화가 “용의 울음”보다 더 작품성이 있는 작품이라는 말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내가 가만히 생각해 봤는데 주민 선배가 혼자서 천만을 끌어와서 그랬던 게 아닐까?

난 혼자서 780만 밖에 못 끌어모았잖아.

그러니까 “용의 울음”의 2000만이 내 공이 아니라고 판단한 거지.

이거 나름 논리적이지 않아?”

태준은 심각하게 이야기했지만 민수는 어이가 없어서 그저 웃음만 나왔다.

수연도 그런 태준을 불쌍한 놈 보듯이 애잔하게 쳐다보았다.

“무슨 계산이 그래?

그럼 지금까지 단독 주연이 아닌데도 대상을 받은 선배님들은 뭐고.

위원회가 그렇게 단세포일까?”

민수도 위원회가 어떤 기준으로 대상을 선정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주민의 영화가 작품상과 대상을 차지한 것을 보면 사람들의 말대로 “용의 울음”보다 “뜨거운 태양은 지지 않는다”를 더 뛰어난 작품으로 판단했다는 이야기는 나름 일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관객 수의 차이가 상당히 벌어져 있음에도 굳이 대상을 주민에게 수여한 것은 단순히 그런 이유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수는 전생에서 얼핏 청룡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여할 때는 수상자의 경력과 나이를 은근히 따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다만 그 이유가 20대의 배우가 대상을 받기 시작하면 청룡 영화제의 권위가 낮아질 수 있다는 조금 어이없는 이유였는데 어쩌면 그 말이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번도 20대의 배우가 대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과 앞으로도 그런 배우가 없다는 전생의 기억이 그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또 태준은 천만이 넘는 대작 영화를 찍은 게 이번이 처음이었고 이제 32살이 된 주민은 지금까지 두 번의 천만 영화를 더 찍었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태준의 경력과 젊은 나이가 이번에는 불이익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민수는 차마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태준에게 이야기하지는 못했다.

자신도 태준이 대상을 놓치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어이없는 가능성이었기 때문이다.

민수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드는 사이에 수연과 옥신각신 말다툼을 벌이던 태준은 기지개를 쭉 펴면서 평소처럼 웃어 보였다.

“뭐. 줄 만하니까 줬겠지.

어차피 찜찜하긴 했어.

이 나이에 아버지 등에 업혀서 대상 받았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조금 창피하니까.

나중에 내 힘으로 받아야지.”

다행히 태준은 생각보다 별로 충격을 받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자신이 단독으로 780만 밖에 못 끌어모았으니까 받지 못했다는 발상은 좀 어이없지만, 자신의 멘탈 관리에는 차라리 그게 나을 것이다.

주작 방송 연기대상에서는 설아가 여자 신인상을 받으면서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사람들도 다 받을 만한 사람들이 받았다고 평가하고 있었다.

어제 울면서 수상 소감을 발표했던 설아도 오늘은 조금 차분한 분위기에서 스태프들과 동료 배우들에게 감사하면서 무난하게 수상을 마쳤다.

청룡 영화제의 대상 논란은 연달아 다른 시상식이 개최되면서 예전처럼 아무런 해명과 설명도 없이 그렇게 조용히 잊혀졌다.

그리고 세상은 다시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시상식까지 마치고 시청률 고공행진을 기록하던 “로열”은 드디어 30%의 벽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적당한 투자로 극한의 효율을 뽑아내고 있는 “로열”은 지금 SBC 드라마국의 효자로 자리 잡았고 작가도 이제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 심사숙고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타를 위해 지은우가 윤 엔터를 찾아와 연기를 배우고 있었다.

드라마 속 꽃돌이 현우였지만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꽃돌이로 남을 수는 없었다.

지혜가 대원 그룹의 장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현우는 지금 자신이 힘들어하는 지혜를 도울 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열등감과 자괴감에 시달린다.

그리고 자신을 되찾기로 한 현우는 자신의 옆에만 있어 줘도 된다는 지혜에게 잠시 이별을 고하고 지혜를 떠나가는데 이 장면의 연기를 위해 윤 엔터를 찾게 된 것이다.

특히 천상 해피 바이러스를 뿜어대는 은우로써는 저런 자괴감이나 열등감을 표현하는 일이 너무 서툴렀다.

그리고 이 장면의 연기를 위해 이제는 은퇴를 결심하고 삶의 여유를 완전히 찾은 진성이 도와주고 있었다.

오늘도 진성에게 호되게 혼나며 연기를 배운 은우는 민수를 찾아와 하소연을 내뱉고 있었다.

항상 웃던 은우가 저렇게 늘어진 것을 보니 진성의 연기 수업이 정말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정말 은우를 괴롭히는 것은 그 자괴감과 열등감이라는 감정의 아는 것 그 자체였다.

민수는 자괴감과 열등감에 대하여 전혀 감을 못 잡는 은우를 보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민수가 들어 보니 워낙 부유하고 안정적이며 화목한 가정환경에 돈 한번 부족한 적이 없었고 말도 안 되는 외모와 밝은 성격 때문에 남녀노소에게 사랑받았으며 교우 관계조차 원만했던 은우가 그런 감정을 잘 모르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나마 부족한 것이 있었다면 학업성적이었는데 그것에는 본인이 전혀 관심도 없었고 부모님도 별로 바라지도 않았다니 정말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살았던 그야말로 다 가진 놈이었다.

그러니 진성이라도 은우에게 그런 감정을 가르치는 것이 힘들긴 할 것이다.

민수도 은우의 설명을 듣고 숨이 탁 막혔으니 확실히 곤란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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