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07화 (207/325)

#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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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태준까지 모여들고 배우들은 시상식에 대한 이야기로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이번 청룡영화제에서 민수는 남자 신인상과 대상 후보로, 태준은 남우 주연상과 대상의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밖에 설아가 여자 신인상에 윤 대표와 진성이 남우 조연상에 후보로 올라 있었고 “용의 울음”은 각본상과 감독상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었으니 올해 “용의 울음”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 영화였는지 충분히 짐작할 만했다.

“신인상은 최소 두 명에서 세 명까지 수상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아마 설아나 민수가 무조건 받을 수 있을 거야.

배역의 비중이 너무 작아서 소희가 이름을 못 올린 게 조금 아쉽네.

사실 고생은 소희가 가장 많이 했잖아.

우리 연기 봐 주느라고.”

수연의 말대로 다른 배우들의 중국어 연기를 봐주기 위해서 가장 많은 고생을 한 소희가 입상을 못 하게 되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괜찮아요. 전.

이번에 대상이 우리 영화에서 나오기만 하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아마 우리가 받겠죠?”

“음….”

민수는 만약 대상을 우리 영화에서 받게 된다면 태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도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는 있지만, 그냥 보여주기식일 가능성이 컸다.

청룡 영화제의 심사위원회는 이상한 곳에서 완고한 데가 있어서 액션 연기를 정극 연기보다 조금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생각해봐도 태준의 연기 정말 훌륭했다.

강철과 진성 사이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혼신을 다한 연기가 물렁할 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이 태준의 연기를 보며 차라리 내가 저기에서 연기하고 싶다고 느낄 정도였으니 아마 심사위원들이 보기에도 자신의 연기보다 태준의 연기에 눈이 더 갔을 것이 분명했다.

솔직히 자신의 액션 연기가 훌륭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회자한 것도 아마 그들에게는 별로 어필되지 못했을 것이다.

청룡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으니까.

“대상이라…. 만약 받게 된다면 윤 배우가 아닐까요?”

“음….”

청룡 영화제의 성향을 잘 알고 있던 수연도 민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수의 수상 가능성을 점쳐보던 수연은 고개를 저으며 민수는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액션 연기로 청룡 영화제에 대상이라…..

그건 아마 브루스 리가 와도 힘들 거야.

원래 그런 족속들이거든.”

수연의 말에 설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희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부르스 리가 와도 불가능할 거라는 수연의 말은 기가 막히기도 했지만,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는 정확한 비유였다.

“어이없긴 하지만 느낌이 확 오네요.”

민수의 말을 들은 태준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태준은 만약 대상이 “용의 울음”에서 나온다면 수상자는 민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연기가 부족함이 없었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솔직히 민수가 보여준 기예는 아마도 한국에서는 민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연기였기 때문이다.

그런 연기를 보였는데 그게 액션이라서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건 한국영화계의 수준이 그 정도라는 의미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할리우드 액션 거장인 에릭 존스가 인정하는 액션 연기가 한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한다는 건 나름 웃긴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태준도 민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대상이 나온다면 그건 민수가 아니라 자신일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액션 연기로 대상을 받은 배우는 없었다.

관객 수가 조금 부족해도 정극 연기를 보여준 배우가 대상을 받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솔직히 조금 웃기긴 했다.

어떤 배우도 액션 연기를 하면서 액션만 연기하지는 않는다.

이번에 민수도 액션이 연기의 주를 이루긴 했지만, 피날레에서 보여준 모습이라든지 중간중간 내면의 갈등을 표현하면서 섬세한 내면 연기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액션이 지나치게 눈에 들어온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배제된다면 그건 정말 어이없는 이중잣대였다.

태준은 지금 바로 민수의 의견을 반박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시상식 날이 밝아 왔다.

배우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의상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특히 설아 같은 경우는 내일 열리는 드라마 시상식에도 참여해야 했기 때문에 더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미스 신데렐라”에서 열연을 보인 설아는 드라마 부분에서도 여자 신인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드물게 양 시상식에서 모두 신인상을 차지하는 행운을 거머쥘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윤 엔터의 여배우들은 단장한 드레스를 입었다.

단색에 심플이 이번 의상의 컨셉인지 수연이 단정하고 단아한 하얀 드레스를 설아가 매혹적인 라인이 드러나는 검은 드레스를 그리고 소희는 정열적인 붉은 드레스를 입었다.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는 수연과 매력적인 외모로 핫한 설아는 여러 곳에서 드레스 협찬 요청이 들어왔지만 둘 다 드레스는 무조건 “유니”라는 생각이 박여 있었기 때문에 정중하게 거절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조윤희가 보내준 드레스를 선택하였다.

그녀들의 머릿속에는 다른 옷을 입는다는 생각 자체가 없어 보였다.

하긴 이미 예전에 자신의 원하는 스타일을 유니 스튜디오에 전달해서 자신이 가장 원하는 드레스를 받았을 테니 다른 곳을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긴 했다.

이건 다른 말이지만 민수도 유니가 윤 엔터 배우들에게 의상을 협찬하기 시작하면서 유니의 한국 판매량이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민수가 모르는 사이에 여배우들이 유니의 기성 여성복을 자주 입었기 때문인데 윤 엔터 여배우들은 유니의 살아있는 광고판이 되어주고 있는 셈이었다.

특히 설아가 “미스 신데렐라”에서 입었던 옷과 지금 수연이 “로열”에서 입고 있는 고급 여성복은 상당한 판매량을 올려 그 선전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아마 한국에서의 판매량이 급격히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윤희가 윤 엔터 배우들에게 협찬과 의상 지원 하는 것을 본사에서도 은근히 환영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중국에서 소희의 인기가 늘어나면서 소희가 협찬받아 입고 다니는 의상과 액세서리가 중국에서도 많이 팔려나가고 있다니 확실히 유니 측에서 윤 엔터를 신경 쓸 만했다.

민수가 포토라인에 들어서자 플래시가 엄청나게 터져 나오면서 수많은 기자가 민수를 집중적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수가 기자들에게 가볍게 인사를 한 후 태준과 함께 식장으로 들어서는데도 여러 가지 연예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신청하니 작년에 태준에게만 질문이 집중되는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례적으로 신인상과 대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셨는데요.

수상 가능성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신인상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정말 영광이겠죠.

아무래도 가장 뜻깊은 상이니까요.

그리고 대상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습니다.

아마 저보다 훌륭한 배우 어떤 분이 받게 될 테니까요.”

민수는 최대한 청룡 영화제의 권위를 높여주는 쪽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민수가 간단하게 인터뷰를 마치고 “용의 울음”팀에 배정된 좌석으로 이동하다가 좌석을 보고 자연스럽게 헛웃음이 나왔다.

민수는 솔직히 저렇게 많은 배우가 모여있는 건 처음 봤다.

아무래도 식장에 모여있는 모든 배우가 다 몰려온 것 같았다.

젊은 배우들보다 일찍 입장한 강철과 진성은 몰려드는 후배 배우들의 인사를 받으면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만약 민수가 윤 엔터 소속이 아니었다면 자신도 분명 저렇게 와서 인사를 드리고 있을 테니 저 배우들의 마음이 이해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뒤이어 인터뷰를 마치고 온 태준도 자신들의 자리에 모여있는 배우들을 보며 자신과 마찬가지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와. 대박이긴 하네.

솔직히 집에서는 그냥 근엄한 아버지인데 말이야.”

“그러게. 다른 배우분들이 떠나갈 때까지 좀 기다려야 할 거 같아.

괜히 우리까지 들어가서 배우들에게 인사하다가는 완전 난리 통이 되지 않을까?”

“그래야겠네.

이 와중에 자신들에게 인사 안 했다고 뭐라고 하는 선배들은 없겠지?

양심이 있다면 그건 아닐 거야.”

“큭큭. 그건 그렇네.

그나저나 기자들도 좋은 기사 하나 잡았는데.

저 장면을 기사에 올리지 않는 기자는 없을 거야.”

“와, 저기 지성준 선생님도 계시네.

난 저분이 저렇게 인사하는 건 처음 보는데.”

“아무리 지성준 선생님이라도 조진성 선생님한테는 후배일 뿐이라는 거지.”

민수와 태준이 난장판을 구경하는 동안 여배우들도 하나씩 민수와 태준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신들에 자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장판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슬슬 배우들이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자 윤 엔터 배우들은 자신의 자리에 앉을 여유를 얻었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정윤숙이 자리에 합류하자 다시 후배들이 모여들었던 것이다.

윤숙은 자신이 조금 늦는 바람에 다시 후배들이 모여들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게 식이 시작될 때까지 “용의 울음” 팀 자리에는 배우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식이 시작하자 배우들도 겨우 안정을 찾았다.

“아버지가 대단하긴 한데요. 이렇게 배우들이 모여들다니.

전 지금까지 이 정도로 많은 배우가 한곳에 모여드는 건 처음 봤어요.”

“원, 싱겁긴.

다 늙어 가서 그런 거다.

그리고 나보다는 진성 형님이랑 윤숙 누님한테 인사하러 온 거겠지.”

태준은 멋쩍은 표정으로 겸손하게 말하는 강철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식이 시작되고 신인상을 발표할 차례가 되자 수상자를 발표하는 배우의 얼굴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가슴을 졸였다.

“남자 신인상. “용의 울음”에 정민수.”

“여자 신인상 “용의 울음”에 윤설아. 축하드립니다.”

각각 두 명씩 수상하게 되는 신인상에는 민수와 설아가 포함되어 있었다.

민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작년처럼 담담하게 나가 상을 받고 간단하게 수상소감을 발표했다.

작년에는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나서 그랬던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조금 의도적인 연출이었다.

그나마 작년에 수상을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조금 여유가 있다 보니 마음을 쉽게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대상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인상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수많은 영화를 찍은 신인 배우 중에 자신이 가장 두드러지는 연기를 선보였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민수는 자신의 소감을 발표하고 다른 배우의 소감발표가 마치길 기다렸다.

그리고 설아가 소감을 발표할 때는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만 작게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자신과 같이 무대로 이동할 때는 한껏 도도한 표정을 짓던 설아가 막상 소감을 발표할 때가 되자 굵은 눈물을 펑펑 흘렸기 때문이다.

아니 그럴 거면 그렇게 도도하고 자신만만하게 나오지나 말지.

그러고 보면 저 아가씨도 은근히 허세가 좀 있다.

하지만 민수도 저렇게 울고 있는 설아의 마음이 이해가 가긴 했다.

자신도 작년에 정신이 조금만 있었어도 저러지 않았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앞이 절망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저를 구원하고 배우의 길로 이끌어준 민수 오빠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오빠 정말 고마워요.”

민수는 설아의 감사에 작게 고개를 숙이며 답례했다.

아마 설아의 저 눈물은 자신이 절망스러웠던 과거를 이겨내고 한 명의 배우로 완전히 인정받았다는 데서 오는 그런 환희일 것이다.

민수도 예전에 하루하루 피 말리는 대사 연습 후 좌절하면서도 끝내 연기를 포기하지 않은 설아의 모습을 기억하며 지금 저 자리에 서 있는 그녀가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자리로 돌아온 설아와 민수는 많은 식구들의 격려와 축하를 받았다.

“용의 울음”이 소속사 식구들만 출연했던 영화다 보니 다들 자기 일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용의 울음” 팀 앞으로 떨어진 트로피 수는 적지 않았다.

신인상 두 개와 감독상 그리고 강철이 받은 남우 조연상, 진성이 받은 공로상.

그렇게 즐거워하던 “용의 울음”팀은 태준이 남우 주연상을 차지하게 되자 갑자기 분위기가 묘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망의 대상 발표.

“발표하겠습니다! 올해의 대상! 대상 수상자는 ….. 축하 드립니다.

“뜨거운 태양은 지지 않는다”에 김.주.민!!”

강철은 무대에 올라 대상을 수상하고 환하게 웃고 있는 주민의 모습에 고개를 저으며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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