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204화 (204/325)

#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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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는 요즘 “로열”을 시청하면서 작가의 능력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극의 진행능력이 뛰어난 것도 대단했지만 배우들을 정말 효율적으로 잘 배치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력이 일천하여 특급 배우를 쓸 수 없었던 이정미 작가는 가장 먼저 주연으로 확실한 대표작이 없어서 능력보다 아직 저렴한 수연을 낙점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조연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정태성을 어려운 내면 연기를 소화해야 하는 장남 성호 역에, 그리고 회장인 한철원 역에 인정받는 원로 배우 최원태를 넣으면서 극의 중심을 잡았다.

따지고 보면 그 돈이면 주연에 지금보다 더 괜찮은 젊은 남자 배우를 쓸 수 있음에도 이 돈을 중요 조연에 투자함으로 극의 퀄리티를 높인 것이다.

그리고 뛰어난 외모에 비해 연기력에 조금 하자가 있다고 알려진 박창민과 지은우.

이 둘의 선택은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지은우는 참 오묘한 위치의 배우였다.

첫 드라마에 데뷔한 후 그 외모로 인기를 끌고 여러 개의 CF를 찍으면서 스타가 된 지은우는 외모 때문에 인기가 있긴 했지만, 연기에 조금 허점이 있다는 이유로 정작 드라마 출연료는 그리 높진 않았다.

그렇다고 지은우가 싼 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최상급인 윤태준이나 조태수, 정진영 김주민에 비하면 저렴하다는 뜻이지 주연급인 만큼 그 금액이 만만치 않았다.

차라리 인지도 때문에 어중간하게 높아진 단가가 그를 쓰기 어렵게 만든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리라.

특히 하이틴 드라마도 아니고 “로열”처럼 극 자체가 무게감을 가지는 드라마에서는 지은우를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극의 중심을 여주 쪽으로 몰아 버리면서 과감하게 지은우를 썼고 지은우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그 특유의 상큼한 모습으로 지금도 여심을 녹이고 있었다.

그리고 박창민 역시 마찬가지.

뛰어난 외모로 인정받고 있는 박창민도 연기력은 물음표였는데 특정 연기에 능숙하다는 것을 캐치한 작가가 강력하게 박창민을 둘째 한정호 역으로 밀어붙였다.

창민은 자신이 주연이 아니라는 것에 조금 짜증 났지만 이번 역을 소화하면 연기력 논란이 사라질 거라는 작가의 감언이설(?)에 이번 배역을 허락했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창민 역시 열연을 선보이고 있었으니 작가의 말대로 창민도 손해는 아니었다.

하지만 역시 정점은 이수연이었다.

다른 원탑 여주와 비교하면 반값밖에 안 되는 이수연은 지금 “송포유”에서 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설움을, “용의 울음”에서는 배역 때문에 많은 장면을 연기하지 못한 울분을 “로열”에서 폭발시키고 있었다.

완전히 자신의 연기력을 찾아 물이 올라있는 수연의 포스는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에 작가가 상상했던 그 모습 이상이었다.

게다가 드라마 밖에서 지금껏 쌓아 놓았던 수연의 긍정적인 이미지가 드라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니 캐스팅 전에 작가가 이수연에게 쏟은 정성이 지금 그 가치를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이정미 작가 특유의 글솜씨와 배우들의 적절한 배치가 시너지를 내고 있는 “로열”은 민수가 등장하는 9화가 되기도 전에 이미 25% 넘어서며 이번 연도의 마지막 다크호스가 자신임을 천명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민수가 등장하면 그에 따른 시너지를 다시 얻게 될 것이니 수연이 기분이 좋을 수밖에.

게다가 요즘 창민까지 수연에게 얼씬도 하고 있지 않고 있으므로 정말 날아갈 거 같았다.

반면 태준의 영화 “일리걸”은 개봉 첫 주에 450만을 기록하며 준수한 기록을 남겼지만, 그 다음 주에는 250만 기록하며 서서히 분위기가 식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아마 다음 주에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진 한국 영화 “대 고구려”가 개봉한다면 아마 스크린을 다른 영화에 내어줘야 할 것이 분명했다.

지금까지 700만이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아마 태준이 만족할 만한 성적은 아닐 것이다.

평론가들과 관객들은 영화가 재미있고 태준이 정말 좋은 연기를 보여주긴 했지만 태준 외에는 티켓파워를 낼 수 있는 배우가 없었다는 것을 이 영화가 빅 히트를 기록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아무래도 아직 한국영화에서 스타 배우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준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제작사와 영화사에서는 이번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판단했다.

제작비대비 수익이 자신들의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태준 한 명을 썼을 뿐인데 이 정도였다니.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아 제작비 절감을 위해 최고 등급의 탑배우들을 잘 쓰지 않던 제작사 측은 스타 배우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지금 정확하게 체감하고 있었다.

민수는 조금 뚱한 표정의 태준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용의 울음”이 끝나고 자신의 힘으로 이룬 성과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번에는 자신이 단독 주연으로 들어갔는데 자기 생각보다는 성과가 좋지 않아서 기분이 많이 상해 있는 게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민수도 “용의 울음” 같은 영화는 앞으로 찍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자신이 이번에 찍은 “My Uncle Joe” 역시 자신의 영화가 아니었다.

솔직히 그건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한 에릭 존스의 영화였다.

그러니 그 영화가 아무리 흥행을 거둔다 해도 그건 거의 에릭 존스의 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윤 배우.

우리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솔직히 “용의 울음”은 말도 안 되는 영화였어.

너도 알잖아.

그런데 그걸 기준으로 삼으면 앞으로 영화를 찍을 때마다 기분이 상할 거야.”

“하…. 그건 나도 알긴 하지만.”

물론 태준도 “용의 울음”이 말도 안 되는 영화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용의 울음”의 오픈 스크린이 무려 2200개.

솔직히 이건 말도 안 되는 거였다.

MJ가 직접 투자해서 영화를 만든 후 자신들의 스크린을 몽땅 한계치까지 몰아넣지 않는 한 그런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되었다. (“유적 탐색자”가 1600개의 스크린을 MJ에서만 배정받은 것처럼)

미국 M 사의 히어로 물이 들어와도 한국에서 2000개 이상의 스크린으로 시작하지는 못한다.

물론 나중에 점점 늘어날 수는 있지만, 시작은 그렇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용의 울음”이 그렇게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윤강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퇴했던 전설 윤강철이 다시 한번 영화를, 그것도 같은 시절을 풍미했던 조진성과 정윤숙, 그리고 그 아들인 윤태준과 같이 찍는다는 이슈가 그 정도의 스크린을 배정하게 만든 것이다.

이번에 “용의 울음”으로 그 이름값이 한 단계 올라간 자신이 주연한 영화가 1200개의 스크린으로 시작했다는 것만 생각해 봐도 그게 얼마다 대단한 일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과 대표님의 은퇴 작 프리미엄도 있었고, 물론 우리도 연기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사실 우리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그래, 그렇지.”

“난 단독 주연으로 그 정도 관객을 모은 윤 배우가 차라리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용의 울음”을 보러 왔던 1900만의 관객 중에 윤 배우의 비중이 700만은 넘었다는 거잖아?

출연한 배우가 몇인데 그 정도면 충분히 대단하지 않을까?”

“그렇게 계산할 문제는 아니지만…..”

민수는 태준이 조금 기분이 풀어지자 웃으며 조금 엉뚱한 소리를 장난스럽게 내뱉었다.

“물론 대표님 보러 온 관객은 그중에 1000만은 될 테니 그게 위로가 되지는 않으려나?”

“야. 정 배우 지금 날 위로하는 거 맞지?

그런데 왜 난 이상하게 들리냐?

내가 착각한 걸 거야. 그렇지?

그리고 태준은 민수의 말이 어이가 없어서 완전히 기분이 풀어지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윤태준 배가 불렀어.

700만이면 준수하구만 참. 사람이….”

드라마가 25%를 기록하면서 으쓱해 하던 수연이 생각나 태준이 뭐라고 말하려는 그때, “무모한 도전”이 시작되면서 배우들의 눈이 그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 몸뚱이는 윗몸일으키기를 하기에는 심각하게 부적합하군요.

만약 저 상태가 계속된다면 저 선수는 단명 가능성이 큽니다.

내장 지방은 만병의 근원이니까요.]

[건강을 위해서라도 고기를 끊어야 할 텐데요.

그런데 아마 그건 안될 겁니다.

고기를 끊으려면 다시 태어나야 해요.]

[아. 아까 제가 말했던 혜민이가 저 선수보다는 더 많이 하겠네요.

정말 창피합니다.

9살 여자아이보다 못한 저질 체력이라니요.]

[6명이 합쳐서 턱걸이 21개, 석재 선수를 제외하면 5명이 8개를 했군요.

아마 정민수 선수가 한 손으로 해도 그거보다는 많이 할 텐데요.

도대체 이런 경기를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저 선수는 지금 여기 있지 말고 당장 병원으로 보내야 합니다.

저 뱃살이 더 없어지기 전에는 병원에 가둬놓고 풀만 먹여야 해요.

안 그러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시합이 시작하자마자 설 아가 나서서 달리기로 멤버들의 기를 완전히 꺾어 놓더니 이제는 중계석에 앉아서 멤버들이 시합에 나설 때마다 독설과 조롱을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설아가 뭐라고 말할 때마다 심적인 충격을 받고 나 뒹구는 멤버들의 모습이 설아의 얼굴과 교차하면서 웃음을 자아내고 있었는데 왠지 포커스가 민수보다 옆에서 깐죽대는 설아 쪽으로 맞춰진 느낌이었다.

“와 설아 표정 봐.

완전히 비웃고 있어.”

“이건 정민수 특집인지 윤설아 특집인지 참…..”

민수도 이렇게 될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다.

그리고 솔직히 자신이 상대를 완전히 압살하는 모습보다 저런 설아의 모습이 더 재미있기도 했으니 딱히 불만은 없었다.

“무모한 도전”이 끝나고 태준은 방송 내내 계속된 설아의 활약에 한숨을 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동생, 남의 잔치에 가서 저게 대체 무슨 짓이야?

도우러 나갔으면 도우미만 적당히 하고 빠졌어야지.

우리가 널 그렇게 키웠니?”

설아는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태준이 어이없어 발끈하며 이를 갈았다.

“그러게요, 누구 씨가 바보 같은 짓만 안 했어도 민수 오빠가 저렇게 급하게 나갈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러게 말이야. 내가 분명 괜찮다고 했는데 참. 말을 안 들어요.”

수연까지 나서서 자신을 타박하자 태준은 세상 억울한 표정이 되었다.

“그래. 나도 인정은 하는데 솔직히 이수연, 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내가 누구 때문에 그랬는데.”

태준이 항변하자 수연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아직 애야. 애.

남자들은 원래 이러니.

난 요즘 왠지 남자에 대한 환상이 점점 사라지는 기분이야.”

“남자들이 원래 좀 단순하긴 하죠.”

수연과 설아가 짝짜꿍이 되고 태준이 점점 궁지로 몰리고 있자 민수는 대화의 흐름을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

게다가 왠지 같은 남자인 자신까지 이상하게 세트로 취급 받는 상황이 아닌가.

“그런데 은우 선배는 결국 어떻게 되는 거예요?”

민수의 물음에 태준은 잘 만났다는 듯 쾌재를 부르면서 말을 받았다.

“아, 그러네. 수연이가 은우를 추천했다지?”

“어. 내가.

은우가 사람이 괜찮아 보이더라고.

그리고 우리 소속사에도 샤방한 꽃돌이 하나쯤은 있어도 괜찮지 않겠어?”

뻔뻔한 수연의 말에 태준은 어이가 없었다.

“야. 너 예전에 내가 여돌 노래 좀 들었다고 그렇게 들들 볶았으면서 뭐? 꽃돌이?”

하지만 태준의 말에도 수연은 더 뻔뻔하게 행동할 뿐이었다.

“왜? 억울하면 너도 그 여돌을 소속사에 데리고 오든지.

대신 연기는 좀 하는 애로 데려와라?

선생님 넘어가시지 않게.”

태준은 수연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이건 분명 자신이 공격할 타이밍인데 상대의 뻔뻔한 방패에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민수는 그 모습을 보며 수연의 태도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태준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적반하장 식으로 나가니 태준이 공격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수는 예전에 태준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것을 생각하며 저것이 수연의 연륜(?)인가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넘어가기는 재미가 없어 보여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그러네요. 하긴 예전에 수연 선배가 은우 선배가 하는 연기를 보고…..”

수연은 본능적으로 민수의 팔을 꽉 잡았다.

왠지 이 말이 끝나는 순간 자신이 태준에게 맹공격을 당할 거라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수연은 민수의 팔을 놓지 않고 이를 악물면서 민수에게 신호를 보냈다.

“미스아. 이르그아. 느즈마 이르며 고라흐지. (민수야. 이럴 거야? 너 정말 이러면 곤란하지.)”

입을 다물고 괴상한 소리를 냈지만, 그녀가 지금 충분히 당황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뻔뻔해도 그 말실수를 그냥 넘길 정도는 아닌가 보다.

“뭐야?”

태준은 둘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미심쩍어했다.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민수가 자신이 역전할 무기를 하나 가진 모양이었다.

“아. 아니 수연 선배가 은우 선배 연기보고 괜찮다고 했거든 특색 있다고. 그냥 그 얘기야.”

“아닌 거 같은데….”

태준은 의심은 들었지만, 딱히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남자 배우를 그것도 샤방한 녀석을 수연이 추천했다는 사실이 이렇게 그냥 넘어가다니 정말 통탄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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