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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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우의 이야기로 분위기를 환기한 설아는 민수의 기분이 조금 풀리고 밝은 표정이 되자 슬슬 자신의 용건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음음. 오빠, 올해는 참 바쁘게 보냈잖아요?
시작부터 영화 촬영에 중국 활동에 여름에는 중국에서 몇 개월이나 보냈고요.”
“그러네요. 참 바쁘게 지나갔네요.
올해도 이제 며칠 안 남았으니까요.”
설아의 말에 민수도 조금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었다.
작년에 정식으로 데뷔해서 다음 해에 바로 영화를 두 편이나 찍다니 운도 좋았고 놀라운 일이긴 했다.
어쩌면 자신에게 액션 영화만 들어온다고 실망하던 그 여름에 일 조차 자신에게는 과분한 일이었는지도 몰랐다.
설아는 그렇게 감상에 빠진 민수에게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이제 내년에는 또 드라마나 영화를 찍느라 바쁠 텐데, 이번 기회에 여행이나 한번 다녀오는 게 어떨까요?
이제는 한국에서 돌아다니긴 조금 힘드니까. 이왕이면 해외로요.”
“아…. 여행이요?”
설아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일리가 있긴 했다.
여행이라.
그러고 보니 저번에는 태준이 수연이랑 여행을 다녀왔었지.
생각해 보면 시간이 지금뿐이긴 했는데 연말이 되면 다시 시상식을 생각해야 하고 올해는 “용의 울음”이 가장 흥행한 영화였기 때문에 결실이 뒤따를 테니 시상식에 참여해야 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크리스마스다 뭐다 하면서 공항도 번잡할 것이 뻔했다.
시상식까지 대충 10일 정도 남았으니 짧게 나갔다 오기 좋은 시기이긴 했다.
“음… 마땅히 혼자 갔다 오는 것도 그렇고……”
“무슨 말씀이신지? 혼자라니요.”
“네?”
“당연히 저랑 같이 가야죠. 이 분이 참…..”
“설아 씨랑 같이요?”
“네.”
“단둘이요?”
“네.”
단호박을 잘라 먹은 듯한 설아의 태도에 민수는 말을 잃었다.
단둘이 해외로 여행이라니, 너무 위험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그전에 딸 사랑이 과한 윤 대표가 과연 허락할지도 의문이었다.
“둘이 간다고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잖아요.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방은 당연히 두 개를 잡을 테고요.
그냥 에너지를 충천한다고 생각하세요.”
“아… 그렇죠. 당연히 방은 두 개….
하하하. 당연한 건데요.
음…..”
설아는 민수의 태도가 긍정적으로 변하는 걸 보며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물론 방은 두 개지만 살다 보면 원래 두 개였던 방이 한 개로 변할 수도 있다는 걸 민수 같은 사람은 꿈에서도 모를 것이다.
자신의 친구들이 말하길 원래 두 개로 시작된 방이 여행이 끝날 때쯤이 되면 자연스럽게 한 개가 되는 법이라고 했다.
민수가 고민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동원이 나타나 헐레벌떡 민수에게 달려왔다.
“배우님. 스케줄 요청이 들어왔는데요. 이건 배우님이 꼭 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아, 마침 설아 씨도 계셨네요.”
“네? 스케줄이요?
원래 시상식까지는 아무것도 없는 거 아니었나요?”
“아 원래 그랬는데요. 이거 “무모한 도전”이거든요.
크리스마스 근처에 방송될 거고요.
배우님이 메인이고 설아 씨가 보조로 나와 달라네요.”
“아….”
영화를 촬영하고 두문불출하던 민수가 SBC 드라마에 출연하자 MBS 쪽에서는 심기가 많이 불편하였다.
지금까지 모든 스케줄 요청을 거절하던 민수가 아니었던가.
특히 MBS의 간판 예능인 무모한 도전 제작진은 용의 울음 때부터 민수와 함께 할 아이템을 만들어 놓고 민수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용명"이 중국에서 히트를 치면서 중국으로 날아가더니 그다음에는 중국에서 영화를 찍는다면서 한국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온 다음에는 다시 휴식기를 가지면서 방송에 나오지 않으니 MBS 예능국에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심지어 예전에 “용의 울음”의 경쟁작인 “유적 탐색자”의 주연인 시웨이를 무모한 도전에서 단독으로 방송한 것 때문에 윤 엔터에서 무모한 도전을 싫어한다는 오해까지 하고 있었다.
“이거…. 하긴 해야겠네요.
MBS에서 그런 오해를 하고 있을 줄이야.
전에 거절했던 건 영화나 드라마 때문이었는데……”
“예전에 그런 적이 있긴 했죠.
저희는 다 잊어버렸는데요.
아니 그전에 그런 거로 방송을 안 나갈 수도 있는 건가요?”
동원의 설명에 민수와 설아 둘 다 당황하고 있었다.
“사실 원래 저희 쪽에서 “런런런” 보다 “무모한 도전”에 나가려고 요청했었거든요.
그런데 거절한 게 MBS였고요.
물론 시웨이 쪽 스케줄이 워낙 전에 잡혀 있긴 했지만요.
사실 은근히 이런 일이 많다고 하네요.
자기 깐 프로그램에는 절대 안 나가는 연예인들이요.
그래서 MBS에서도 오해하는 거고요”
“아… 그래요?
그런 유치한 일이…..”
“우리야 시웨이가 워낙 예전에 스케줄을 잡은 거라 그러려니 했지만, 만약 진짜 다른 이유로 상대가 안 된다고 했으면 저도 그 프로그램에 나가기 싫긴 할 거 같아요.
연예인들, 특히 배우들은 정말 자존심 덩어리잖아요.”
“하긴 그건 그렇네요.
우리랑은 다른 경우지만 만약 신인 때 박대했던 프로그램에서 뜬 다음에 나와달라고 하면 저라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자존심 이런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인간적으로 싫은 거니까요.
그런데 무모한 도전에서 자주 요청했나요?
전 별로 들은 기억이 없는데요.
석재 선배도 그런 말 없었고요.”
“네, 요청은 줄기차게 들어왔죠.
그런데 시기가 배우님이 중국 일정이 있을 때였고요.
그나마 요즘인데…..”
“아, 드라마 들어가기 직전에도 요청이 있긴 했죠.
이제 기억나네요.
예능이라서 전혀 신경 안 쓰고 있었거든요.”
동원의 설명을 들어보니 이건 하긴 해야 할 거 같았다.
방송국이랑 이런 사소한 일로 핏대를 세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모한 도전을 진행하는 석재에게는 마음에 빚이 있기도 했다.
석재가 예전에 두 번의 예능에서 소희를 잘 포장해준 은혜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게 아니라도 석재 자체가 인간적으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니 같이 어울리는 것이 나쁘지 않기도 했다.
“설아 씨. 아무래도 해외여행은 좀 힘들겠네요.
그래도 설아 씨가 좋아하는 무모한 도전이잖아요.
그러니 얼굴 좀 펴요.”
설아는 순간 표정 관리에 실패한 모습이었다.
최대한 웃으려고 하는데 웃음이 안 나온다고 할까.
민수는 자신의 앞에서 거의 항상 완벽한 표정 관리를 보여주던 설아가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자 조금 재미있기도 했고 여행이 그렇게 가고 싶었나 싶기도 했다.
저렇게 아쉬워하니 다음에는 정말 빼지 말고 적극적으로 여행에 도전해 봐야겠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은 아니니까 너무 서운해하지 말아요. 우리.
그리고 만약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꼭 같이 가요.
이번에는 어쩔 수 없으니까요.”
“그러네요. 진짜 어쩔 수 없네요.”
민수가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도 아쉽다는 듯이 설아를 달래자 설아도 조금 진정이 된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음 기회가 있으면 꼭 간다는 말에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언제예요. 녹화는?”
“저.. 그게 3일 후랍니다.”
“3일이요? 상당히 촉박하네요.”
“네. 죄송합니다. 배우님.”
동원이 미안한듯한 얼굴로 민수에게 사과했지만 어디 이게 동원의 잘못이겠는가.
민수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동원을 안심시켰다.
“아뇨, 아뇨. 진짜 어쩔 수 없는 스케줄이니 이렇게 된 거겠죠.
전 괜찮아요.”
민수는 정말 괜찮았다.
솔직히 자신은 만약 내일이라고 해도 별로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알았어요. 동원 씨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민수는 가볍게 알겠다고 했지만,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았다.
이번에 민수에게 “무모한 도전”의 섭외가 다시 들어온 데는 나름의 속사정이 있었고 그건 설아가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MBS의 간판 예능인 “무모한 도전”은 예전에 윤 엔터 배우들을 거절한 이후부터 계속 윤 엔터와 약간의 알력이 있었다.
솔직히 알력이라기보다는 감정 소모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당할 텐데 우선 “무모한 도전”팀은 민수가 스케줄상의 이유로 예전부터 출연을 거부한 것부터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중국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해도 중국의 촬영 스타일상 분명 도중에 휴가가 있을 테고 쉬는 시간에 하루 정도 촬영을 할 수 있는데 윤 엔터에서 빼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그건 사실 민수가 영화를 촬영하는 도중에 거의 쉬지 않았으면 몰라서 그런 거였다.
특히 윤 엔터에서 어떤 식으로 스케줄이 정해지는지 몰랐던 제작진은 연예인이 “무모한 도전”에 출연하는 걸 거부할 리가 없으니 필시 소속사에서 막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오해가 쌓여가는 와중에 최고 여배우 특집에서는 수연이 출연자 중 하나로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무산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계속 거절하는 민수 때문에 기분이 상한 작가 하나가 이수연이 그 급이 되냐고 하면서 이수연은 한참 멀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걸 우연히 윤 엔터 쪽에서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그때부터는 아예 민수 쪽으로 스케줄 요청조차 전달되지 않았고 이번에 태준이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서 예능을 나갈 때도 “무모한 도전”은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민수에다가 태준까지 “무모한 도전”을 거부하기 시작하자 그때서야 무모한 도전 팀에서도 상황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태준이 영화 홍보를 위해 선택한 예능들이 알려지자 MBS 예능국은 고민에 빠졌다.
“무모한 도전”을 직접 거절한 것은 물론 KBC와 SBC 그리고 케이블 채널인 TVA에만 출연하고 방송 활동을 마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태준의 행동이 괘씸하고 그런 것을 떠나서 이대로 감정 대립이 더 심해지면 나중에는 윤 엔터 배우 중 누구도 MBS 예능이나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싸움은 무조건 방송국이 유리했지만, 상대가 아쉬운 게 없으면 또 그렇지 않았다.
당장 다섯 명의 젊은 배우 중 누구 하나 녹록한 사람이 없었고 능력이 있는 데다가 심지어 어리기까지 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커나갈지 짐작하기도 힘들었다.
심지어 윤 엔터를 징치 할 명분조차도 사실 좀 애매했다.
예능국 차원에서 방향을 선택하기 전에 가장 먼저 움직인 쪽은 바로 마스크 싱어 팀이었다.
마침 설아가 “미스 신데렐라”에서 열연을 보였기 때문에 명분은 충분했다.
즉 설아가 마스크 싱어에 초대받은 것은 MBS에서 앞으로 손을 내밀 수 있다는 제스쳐였다.
그리고 방송은 대박을 터트렸다.
윤설아의 미친 노래 실력이 그녀 자체를 빛내다 못해 가왕까지 더욱 빛내준 것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설아가 1라운드를 통과할 때는 아연하기까지 했는데 완전히 다크호스가 되어 주었으니 제작진들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무모한 도전”팀은 자신들에게 명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애당초 시작은 민수가 예전의 일로 무모한 도전을 거부한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민수가 영화 촬영 중에 한국에 한 번도 들르지 않고 그 시간 내내 영화만 찍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상황이 묘하게 변했다.
게다가 영화가 단순히 중국 영화가 아니라 할리우드 개봉 예정작이었고 심지어 촬영 동안 민수가 사적으로도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았단다.
일이 이렇게 되자 결국 상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일이 이렇게 되자 이수연에 대하여 함부로 말한 것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이수연마저 지금 SBC 드라마의 상황을 보니 급이 한 단계 올라갈 기세였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무모한 도전”팀은 점점 압박을 받게 되었다.
아무리 간판 예능이라도 자신들의 실수로 한 소속사의 젊은 배우들, 그것도 앞으로 얼마나 더 올라갈지 짐작도 안 되는 데다가 자기네들끼리 엄청난 결속력을 보이는 배우들과 완전히 등을 돌리게 되면 서로 피곤할 뿐이었다.
가장 난리인 것은 역시 드라마 국이었다.
처음에는 예능국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드라마국은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하지만 민수가 수연의 드라마에 200만 원을 받고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드라마국에서는 윤 엔터 배우들의 결속력을 다시 보게 되었다.
배우들이 저 정도로 친하다면 정말 일이 이상하게 돌아갈 수도 있었다.
물론 배우들은 많고 방송국이 갑이라는 사실은 맞는 소리였지만 정말 연기 잘하는 젊은 배우는 확실히 레어 아이템이었다.
지금은 설아가 드라마에 출연한 것을 보니 아직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인데 정말 문제가 심각해지면 모든 배우가 MBS 드라마를 피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지은우까지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단다.
이러니 계속 무모한 도전 팀에 압박을 넣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능국.
이수연 사건은 알게 모르게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알려지고 있었다.
넓지만 좁은 이 바닥에서 작가 하나가 배우한테 막말한 셈인데, 그 당시 이수연이 완전히 최고급이 아니었고, 그 특집에 출연한 배우들이 정말 최고 배우들 뿐이었지만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일은 아니었다.
작가가 말실수한 것은 맞지만 그냥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사과하고 넘어갔으면 커지지 않았을 문제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형국이라 다른 배우들도 이 사건에 대하여 듣고 조금씩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니 예능국에서도 “무모한 도전”팀에서 빨리 이 일을 알아서 해결하라고 보채는 중이었다.
결국 자신들의 오해와 실수로 발생한 일이었기에 “무모한 도전”팀에서 먼저 손을 들게 되었다.
우선 윤 엔터에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을 사과했다.
공식적인 사과를 보낸 “무모한 도전”팀은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어야 하니 서로 다시 관계를 다진 증거로 민수가 “무모한 도전”에 출연하기를 요구한 것이다.
사실 방송국에서 그런 일을 직접 사과하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라 정상적인 경우라면 민수가 “무모한 도전” 출연하는 것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했다.
하지만 사과를 받은 윤 엔터에서는 배우의 스케줄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답변과 함께 출연을 승낙하지는 않았다.
이는 당연히 민수가 스케줄을 거부해서 그런 거였는데 요청이 들어왔을 때 민수는 이미“로열”에 출연을 마음속으로 확정 지은 상황이었다.
특히 예능보다 드라마에 집중하는 것이 배우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민수는 지금까지 MBS 예능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전혀 신경 몰랐기 때문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출연을 거절한 것이다.
“무모한 도전”팀은 자신들이 사과했음에도 민수가 출연을 고사하자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아서 민수에 대하여 처음부터 다시 알아보았다.
민수가 어떤 상향의 배우이고 윤 엔터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 결국 사실에 대하여 정확히 파악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윤 엔터에서 한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영화 때문에 바빴고, 이번에는 드라마에 들어가야 하니 안 된다고 말이다.
자신들이 예전부터 기다렸는데 드라마에 들어가는 것은 조금 불만이었지만 배우가 연기하겠다는데 뭐라고 할 수도 없었던 제작팀은 결국 민수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두말 못 하게 아예 윤 엔터에 미리, 그것도 여러 번 협조를 요청했다.
드라마국과 예능국에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확실히 민수를 출연 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에도 윤 엔터 측에서 민수를 내보내지 않으면 방송국에서도 생각을 달리 먹을 가능성이 컸다.
윤 엔터에서도 당연히 일을 그렇게 크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사실 태준이 MBS 예능에 나가지 않은 것은 순전히 그의 단독 행동에 불과했다.
수연이 무시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태준이 이를 갈고 있었던 것인데 사실 수연도 그 말을 듣고 아무렇지도 않아 했는데 태준이 혼자서 열을 내는 건 조금 웃긴 일이긴 했다.
윤 대표도 못마땅하긴 했지만 억울하면 더 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사실 이런 일로 단체 행동에 들어가 봤자 제 살 파먹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지금 자신들은 진룡과도 사이가 안 좋은 상황이 아닌가.
방송국이 MBS밖에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리 상대가 먼저 잘못했어도 방송국에 압박을 넣은 셈이 되면 다른 방송국도 윤 엔터를 못마땅하게 생각할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윤 대표도 태준이 "무모한 도전" 에 안 나간다고 했을 때 그냥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스케줄 선택이야 우리 마음이었고 예능국에서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민수가 영화에 집중한다고 다른 스케줄을 안 하는 거였는데 그걸 그렇게 생각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윤 대표도 태준이 설마 MBS예능을 전부 거절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쉬었다.
물론 나중에 태준이 윤 대표에게 경솔한 행동에 대한 꾸지람을 들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윤 대표의 잘못이라기 보다 수연이 얽힌 일이다 보니 태준이 이성을 찾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태준도 딱히 특별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고 그냥 자기가 MBS에 나가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윤 대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조금 당황했지만 명분은 그래도 윤 엔터 쪽에 있었기 때문에 일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고자 했다.
그리고 민수의 일과 태준의 일에 합쳐지자 이상한 방향으로 나비효과가 일어났다.
태준도 자신의 행동 하나에서 이런 나비효과가 일어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냥 싫어서 나가지 않았을 뿐이고 민수는 정말 스케줄 때문에 못 나간 거였는데 일이 참 웃기게 되었다.
특히 방송국에서 사과까지 하면서 출연을 요청하는 일은 정말 드물었다.
하지만 방송국이 그런 요청을 했을 때도 출연을 결정 지을 수는 없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 드라마에 들어가야 했으니까.
윤 대표는 최대한 친절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싫어서 안 들어가는 게 아니라 정말 드라마 때문이라고.
처음에는 안 믿고 정말 너무 한다고 화를 내던 예능국에서 며칠 지나더니 알았다고 드라마를 마치면 꼭 보내 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윤 대표도 이번에는 민수에게 스케줄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거부하게 되면 상황이 진짜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잘 해결된 것은 윤 엔터와 "무모한 도전"제작팀 모두 서로와 척을 질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런 전제 조건이 없었다면 아무리 명분이 윤 엔터에 있었어도 이런 식으로 방송국에 양보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윤 대표가 어쩔 수 없이 민수에게 예능을 강요하게 된 이유였다.
설아의 큰 그림은 결국 태준이 저지른 미묘한 갑질(?) 때문에 그렇게 허무하게 어긋나고 말았다.
만약 태준 때문에 방송국이 경각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민수가 다음 해에 방송에 출연해도 별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 이 일의 내막을 모두 설아가 알게 된다면 아마 태준은 설아의 뜨거운 응징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