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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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이거 정말…. 완전 민수 오빠 같지 않네요.
특히 마지막에 말할 때는 오빠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을지 상상이 돼요.
아마 엄청나게 비열하거나, 아니면 썩소 같은 걸 짓고 있었겠죠?”
“네 맞아요.
최대한 미친놈같이 보여야 상대가 식겁하고 상종하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저도 배우인데 마음먹으면 그 정도는 당연하죠.”
“네네, 그럼요.
우리 민수 오빠가 사랑 연기 빼고는 다 잘하니까요.
그런데 대체 그 녹음기는 뭐에요?
동원 오빠도 그런 게 있다고 말한 적은 없었는데 대체 언제 산 거예요?”
자신이 동원과 커넥션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숨길 생각이 없는 듯한 설아의 모습에 민수는 실소를 지으며 설아를 바라봤다.
아직도 동원을 통해 자신의 동태를 보고 받고 있나 보다.
“아니, 매니저님하고 무슨 모의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건 좀 너무하는 거 아닌가요?”
이미 동원과 딜을 마친 민수는 설아에게 일부러 더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혹여나 설아가 동원 말고 다른 정보원(?)을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에이~ 알고 계시면서 그러신다.
그리고 너무하긴요! 사랑이죠.
상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게 사랑 아닐까요?”
민수는 설아가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자 어이가 없어 그냥 웃음만 나왔다.
딱 보니 동원은 이미 글렀는지 동원과 설아의 모의를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설아가 이미 눈치챈 것 같았다.
그러면 당연히 동원 말고 다른 정보원을 찾았을 것이다.
결국 자신과 동원의 밀약은 의미가 없어졌다.
게다가 사랑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건 좀 집착이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굳이 따지지는 않았다.
설아는 민수가 대답도 없이 그냥 웃고만 있자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빨리 대답해 달라고 민수에게 졸라댔다.
“왜 대답 안 해 주세요? 궁금하거든요~ 너무 그러시면 현기증 나거든요!”
민수는 설아의 댕댕거리는 모습이 귀엽긴 했지만 왜 안 하던 짓을 하는지 조금 기가 막히긴 했다.
“대답해 드릴게요.
그런데 그거 안 하면 안 돼요?
평소와 캐릭터가 너무 다르잖아요.
귀엽긴 한데, 제가 적응이 안 되네요.”
“칫. 애교였는데 안 통하네요. 어쨌든 어떻게 된 건데요?”
민수가 자신의 애교에 녹지 않아서 그런지 설아는 조금 뾰로통해졌다.
애인이 연애 고자라 참 답답하긴 했다.
이럴 땐 모르는 척 받아주면 좋을 텐데.
“그러니까 음….. 설아 씨도 아시다시피 제가 데뷔 전에 했던 인터뷰로 속이 좀 상했잖아요.
그래서 무슨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고민하다가 녹음기를 생각한 거죠.
음… 그러니까 그때가…..설아 씨랑 같이 있을 때 받았는데요.
혹시 기억나세요? 제가 송포유 찍을 때 촬영 마치고 돌아오다가 우연히 건물 로비에서 설아 씨를 만났는데 그때 어르신이 저에게 작은 상자를 건네주셨잖아요.”
설아도 민수의 말을 듣다 보니 기억이 나는 거 같았다.
예전에 자신이 새로 옷을 입고 친구를 만나고 온 날 우연히 민수를 만나서 기분이 좋았었다.
그때 민수가 말하길…..
“설마 제가 뭐냐고 물어봤는데 배우의 필수품이다 뭐다 하면서 안 가르쳐 주시던 게 그거였어요?
세상에….. 그럼 그때부터 가지고 계셨던 거네요.”
민수는 설아가 작년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게 신기했다.
“네. 용케도 기억하고 계시네요.
항상 가지고 다는 건 아닌데, 연기할 때는 가지고 다니는 편이에요.
원래 그런 용도는 아니지만, 자신이 대사가 어떻게 나갔는지 나중에도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녹음된 게 지금 제 컴퓨터에 다 저장되어 있죠.”
“그건…. 좀 대단하네요.”
설아는 작은 것 한 가지에서도 민수의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지금은 조금 나아지긴 했어도 연기에 대한 애착과 집중력은 지금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런 면에서는 참 한결같긴 했다.
“어쨌든 이번에 톡톡히 덕을 보긴 했네요.
아마 창민 선배가 이제 수연 선배한테 접근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렇게 대화를 이어나가던 민수는 설아에게 조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낀 문제점들을 설아와 상담하고 싶어서였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였는데 항상 자신을 바라봐 왔던 설아가 그 대상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촬영을 하면서 고민이 조금 생겼어요.”
“뭔데요?”
설아는 민수가 고민이 생겼다고 하자 귀를 쫑긋 세우고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음…. 설아 씨도 아까 그랬잖아요.
전혀 저 같지가 않다고요.
물론 설아 씨가 말한 건 제가 창민 선배한테 말한 말투였겠죠?
그런데 저는 제 행동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요.
설아 씨도 들어서 아시겠지만, 제가 예전에 다른 일에 조금 무신경했던 건 제 병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올해 초 상담을 하러 갔을 때는 상당히 호전되었기 때문에 이제 다채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들었고요.
그런데 요즘 확실히 제가 충동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제가 설아 씨한테 살짝 입 맞춘 것도 그런 거였고요.
사실 이번에 창민 선배한테 협박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어요.”
“음….. 충동이라….”
민수가 충동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는 말을 했지만 설아는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번에 입맞춤은 자신도 행복했으니 서로 좋은 일이었고, 이번에 일도 상대의 성향에 맞게 잘 해결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데요?”
“그러니까 제가 걱정하는 건요.
혹시 예전에 억눌려 있었던 그런 감정들이 이제 와 갑자기 표현되면서 너무 격하게 표출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제가 지금껏 이런 일이 없다 보니 제가 정상적인 건지 확신이 안 서네요.”
“음…..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 감정이 느껴지면 충동적으로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게 예전에 억눌린 감정 때문에 과하게 표출되는 건지, 아니면 일반적인 사람들도 그런 식으로 충동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는 거네요.
쉽게 말하면 민수 오빠가 하는 행동들이 병의 반동으로 감정 절제를 못 한 문제 있는 행동인지, 다른 사람들도 할법한 그런 평범한 반응인지 모르겠다는 거고요.”
“와…. 진짜 개떡 같은 말을 찰떡같이 잘 알아들으셨네요.”
“훗 보통이죠.”
민수는 설아가 자신의 말을 바로 알아듣자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마음속에 있던 말이라 설명이 횡설수설해서 걱정했는데 상대와 완전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설아 역시 태준의 동생답게 확실히 영리한 모양이었다.
“사람에 따라서 같은 일에 반응하는 정도가 다르겠죠.
제 생각에는 억눌렸다가 폭발하고 있다는 표현보다는 예전에 민수 오빠로 돌아가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요?
하지만 민수 오빠가 그 점에서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면 고민하는 건 좋은 자세인 거 같아요.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고민한다면 확실히 실수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 생각에 이번 일은 민수 오빠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우선 민수 오빠는 상대를 제거(?)하려고 할 때 바로 주먹을 휘두르거나 그런 게 아니라 상대의 성향을 분석해서 녹음이라는 수단으로 상대를 제압한 것이잖아요.
거기에 벌써 이성의 존재가 개입했으니 충동적인 해결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수연 언니한테 무례하고 구는 그 개아들을 응징하고 싶다고 느낀 것 자체는 충동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건 누구나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요?
아마 저라도 거기 있었으면 어떤 방법을 찾았을 거 같아요.
수연 언니는 그런 면에서는 참 순둥순둥한 여자라서요.
참는 것도 익숙하고요.
그러니 오빠가 특별히 유별난 행동을 한 건 아니에요.
그리고 더 확실히 하고 싶으면 역시 상담을 받는 거겠죠? 선생님도 자주 오라고 하셨으니 이번 기회에 한번 가서 확인해 보는 게 어떨까요?
원래 상담은 전문가에게! 라고 하잖아요.”
“음, 역시 그렇겠죠?”
“물론 전 오빠가 저에게 그런 말을 해주셔서 좋긴 해요.
그만큼 절 믿어 주신다는 거겠죠. 제가 오빠에게 중요한 사람이란 거고요.
바람직한 현상이에요.”
설아는 민수가 자신에게 고민을 이야기하자 신이 난 듯 기분이 좋아 보였다.
민수는 설아의 설명을 듣고 나자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는 설아에게 조금 놀라게 되었다.
조금 진지한 분위기에서 상담해준 설아는 이 분위기에서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거 같아서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에는 자신이 수연에게 들은 이야기가 직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연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드라마 촬영장에서 새로운 동료를 발견했다고요.”
민수는 설아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갔지만 무슨 RPG 게임도 아니고 동료를 발견했다는 표현은 조금 재미있었다.
그리고 수연이 확실히 설아와는 거의 모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양이었다.
창민 선배의 이야기도 그렇고 은우에 대한 이야기도 한 것을 보니 둘의 사이가 어떤지 대충 짐작이 갔다.
“지은우 선배요.
설아 씨도 아시지 않나요?”
“알죠. 여배우 중에 지은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마성의 페로몬 꽃돌이잖아요.”
“…..그거 참 쌈박한 별명이네요.”
“그것보다 지은우를 잘 표현하는 단어는 없을 거예요.
데뷔한 지 3년밖에 안 됐는데 그 마수에 빠져들어 간 여자 연예인의 수가 적지 않아요.
정말 그 성격 아니었으면 벌써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았을까요?
하긴 사실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여자들이 달라붙어서 그렇게 된 거니 딱히 뭐라고 하기도 힘들긴 하네요.”
“와… 은우 선배가 그렇게 인기가 있어요?”
“네, 앞에 마성이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에요.”
“흠흠, 그래서 설아 씨는 어때요? 은우 선배가.”
설아는 민수가 묘한 표정으로 은우에 관하여 물어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떠냐니 이게 무슨 소리인지 혹시 민수가 질투를 하나 싶었다.
그리고 정말 그런 거라면 참 귀엽긴 할 거라고 생각하며 가감 없이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다.
“솔직히 전 별로.
제 이상형이랑 완전히 반대거든요.
전 저한테만 웃어주는 사람이 좋더라고요.
만인의 꽃은 그냥 꽃인 거죠.
제 화병에 꽂혀 있어야 제 꽃인 거 아니겠어요?”
“아…. 그래요?”
“혹시 그거 질투인가요?
헤헤.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
설아의 말에 뜨끔한 민수는 웃고 있는 설아를 외면하며 바로 화제를 돌렸다.
이 주제가 계속된다면 자신이 계속 공격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제 윤 엔터에서의 삶이 익숙해진 민수에게는 그 정도의 분별력이 있었다.
“흠흠. 그런데 은우 선배가 왜요?”
민수가 서둘러 말을 돌리자 설아는 피식 웃으며 설명을 계속했다.
“확실히 지은우 정도면 소속사에 들어와도 좋겠다 싶어서요.
지금 아버지가 연기 영상을 살펴보고 계세요.”
민수는 설아의 말을 듣고 벌써 그렇게 되었나 싶었다.
하지만 은우의 소속사에서 은우를 놓아 줄 리가 없는데 일이 그렇게 되고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지금 은우 선배 인기를 생각하면 소속사에서 쉽게 놓아 줄 리가 없잖아요?”
“놓아 주고 말고가 어디 있겠어요? 계약이 끝났는데.
제가 말했잖아요. 지은우가 데뷔 3년 차라고 그리고 신인 배우들이 대부분 작은 소속사에서 데뷔할 때 3년짜리 계약서를 쓰고요.”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3년차라니…..”
“그리고 거기서 지은우, 은우 선배의 요구사항을 별로 신경 쓰지 않은 모양이에요.
재계약 없이 그냥 프리가 되어 버렸다네요.
그래서 지금 한창 소속사 찾는 중이고요.
그런데 은우 선배가 원하는 계약 조건이 그러니까……”
민수는 설아가 한창 뜸을 들이자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민수의 그런 표정을 읽은 설아가 배시시 웃으면서 민수에게 혀를 쏙 내밀었다.
“그거 봐요. 답답하죠? 현기증 나죠?”
“풋, 알았어요. 미안해요. 그러니까 빨리 대답해 줄래요?”
“훗. 좋아요. 오빠가 사과하니까 제가 아량을 베풀겠어요.
은우 선배가 원하는 게 제대로 된 연기 연습과 스케줄 조절이라네요.
아무래도 전 소속사가 어지간히 굴렸나 봐요.”
“음… 수연 선배랑 비슷한 경우네요.
그래서 수연 선배가 정을 주는 건가?”
“자. 어쨌든 그런 상황이니 합류는 긍정적이겠죠?
우리 집이 배우가 연기 배우기 정말 좋은 소속사니까요.”
커피숍에서 일하다가 캐스팅이 된 지은우는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운 경험 없이 갑자기 스타의 반열에 오른 배우였다.
그리고 연기에 대한 열정이 있는 배우였고.
과연 지은우가 윤 엔터에 와서 날개를 더 넓게 펼칠 수 있을지 자못 궁금해졌다.
자신과 완전히 상반되는 은우이다 보니 달라진 그의 행보가 민수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