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97화 (19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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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의 촬영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특히 이번 주 방송된 3화 4화의 시청률이 21% 22%로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모든 배우와 제작진을 흥분시켰는데 이런 성공이 촬영장 분위기를 더욱더 좋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높은 시청률 뒤에는 민수의 공 역시 적지 않았다.

[할리우드 스타 정민수 차기작은 드라마 “로열”]

[액션 스타 정민수 “로열”에서 어떤 모습 보여주나?]

[이번엔 드라마다! 정민수의 도전]

드라마가 방영되는 시기에 맞춰 제작사와 소속사가 일제히 민수가 드라마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알리며 적절히 언론 플레이를 통해 시청률 상승을 견인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 나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벌써 관심을 모아 버리네. 우리 민수가.”

수연의 말에 자신의 기사를 살펴보던 민수도 지금 상황이 신기하긴 했다.

“솔직히 사람들이 저를 이렇게 신경 쓰고 있을지는 몰랐네요.

와~이건 좀 무안한데요. 할리우드 스타라니. 진짜 기자들 설레발은…..”

“원래 수식어란 게 그렇죠.

대충 붙이고 아님 말고.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이미 다 잊었을 테니까요.”

“이거 제가 “로열”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너무 과하게 관심을 받는 거 같네요.

다른 배우들에게 미안한 것도 그렇고 나중에 제 배역이 주 조연이 아니라는 게 알려지면 후폭풍이 있을 수도 있겠어요.”

“음….. 솔직히…. 준호가 단순한 조연은 아니지.

늦게 나와서 그렇지 배역 자체는 주 조연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아마 민수 씨가 나올 때쯤 되면 이미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을 테니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오….. 은우 자신감! 캬~ 은우가 페로몬 말고 자신감도 뿜뿜 뿜어내는구나!”

“피디님도 그렇고 다들 잘 나왔다고 하니까요.”

수연이 신나서 놀리기 시작하자 은우는 당황스러운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수연의 시선을 피하면서 제작진의 핑계를 대었다.

은우가 수연과 어울린 지도 벌써 4일.

벌써 은우는 수연과 짝짜꿍이 맞아 몇 년은 어울린 사람처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울타리는 높지만,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면 넓은 평지가 펼쳐진 수연은 이미 은우를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끌고 온 모양이었다.

은우도 수연이 자신을 자연스럽게 대하는 것을 은근히 반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틈이 나면 수연과 민수에게 연기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구했는데 그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연기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고 민수와 수연에게 접근한 거 같은데 그런 모습도 이상하게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았다.

아마 민수와 수연이 설명해주는 것을 은우가 항상 진지하게 듣고 고민하기 때문일 것이다.

열정적인 배우를 좋아하는 민수와 수연이다 보니 그런 은우의 태도를 볼 때마다 오히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기까지 했다.

4일간 같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은우의 성격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은우는 기본적으로 조금 우유부단한 남자였다.

학창시절에도 여자가 고백을 해오면 어떻게 거절할까 고민하다가 어느새 사귀고 있다거나 양다리를 걸치거나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고 하니 참 나쁜 남자였다.

“그래도 모든 일에서 그랬던 건 아니고요. 저도 결단을 내릴 때는 확고하게 결단을 내리곤 했거든요.”

뒤늦게 은우가 애써 변명했지만, 수연이 듣기에는 그냥 나쁜 남자일 뿐이었다.

그리고 우유부단한 남자답게 인간관계는 위아더월드라는 만민평등사상을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과 잘 지내지만 깊게 사귀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보면 이런 은우에게까지 못된 사람으로 찍힌 창민은 대체 평소의 행실을 어떻게 하고 지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수연이 은우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에도 창민은 수연을 찾지 못했다.

아무래도 민수의 협박이 상당히 껄끄러운 모양이었다.

다만 촬영 중에 민수를 자주 노려보곤 했는데 그런 행동은 민수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으아. 창민 선배가 민수 씨를 또 노려보고 있어요.

눈빛만으로 사람을 찌를 수 있다며 민수 씨는 이미 수차례 병원에 실려 가지 않았을까요?”

은우는 창민이 민수를 노려보면서도 쉽게 접근하지 않는 모습에 은근히 신이나 보였다.

왠지 쌤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은우야. 너 너무 신나 있는 거 아니니?”

“아… 그런가요? 하지만 저 선배가 저런 모습을 보이니 왠지 참…..”

“저러다가 저거 또 무슨 사고를 치는 건 아닌지 몰라.

눈에서 레이저나 뿜어져 나올 거 같긴 하네.”

“아마 저 선배가 민수 씨한테 덤볐다가는 바로 병원으로 직행일걸요?

하긴 민수 씨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주먹으로 덤비진 않겠죠.

그나마 가능한 것은 자기랑 친한 선배들한테 민수 씨에 대해 험담을 하는 것뿐일 텐데......”

“굳이 다른 선배들이랑 척을 지고 싶지는 않지만 남의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선배들이랑 사이좋게 지낼 생각은 별로 없어요.”

은우는 민수의 쿨한 말을 듣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기본적으로 사람을 좀 좋아하는데 창민 선배는 참 좋아하기 힘들더라고요.

제 친구 중에 저번에 창민 선배랑 같이 드라마 했던 얘가 창민 선배가 계속 추근대는 바람에 촬영 기간 내내 버티느라 엄청 힘들었대요.

그런데 그런 친구가 한둘이 아닌 거 보면……”

“저놈은 경력도 그렇게 길지 않은 놈이 대체 몇 명한테 찝쩍거린 거야?

진짜 대단하긴 하네.

그나저나 난 친구라고 해서 당연히 남자 배우인 줄 알았는데 여자 배운가 봐?”

수연의 지적에 은우는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글쩍였다.

“하…. 이상하게 제가 남자 친구들이 별로 없어요.

재수 없다는 소리도 종종 듣는데 제 성격이 확실히 문제가 좀 있긴 한가 봐요.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동성 친구들이 별로 없으면 자신의 성격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요.”

민수는 은우의 말을 들으며 나지막하게 혀를 찼다.

하긴 저 외모로 주변 친구들을 다 오징어로 만들어 버리고 고백하는 여자들한테 양다리를 걸치면 남자 친구들은 재수 없다고 할만하지.

하지만 민수가 생각하기에 은우의 성격 자체에 결함이 있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좀 우유부단해서 오는 여자를 마지 못한 것과 과하게 샤방한 저 외모였는데 차라리 그런 은우를 시기한 남자들도 문제가 좀 있지 않은가 싶을 정도였다.

“글쎄.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그래도 친한 친구들도 있다며 그 녀석들에게 물어보지 그랬어?”

“물어보긴 했죠.

배우들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진짜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 녀석들은 저 성격에 별문제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워낙 친해서 거짓말할 녀석들은 아니니까 그 말을 믿긴 하는데 그래도 가끔은 제 성격에 문제가 있나 걱정되긴 해요.”

“음… 그럼 뭐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은우가 말했던 동성 친구가 적다는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사실 은우의 동성 친구는 수연이나 민수가 보기에 와 많다! 라고 할 만큼 정말 많았다.

다만 이성 친구가 그보다 몇 배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동성 친구가 적다고 느껴지는 것이었다.

민수는 은우의 핸드폰에서 연락하고 있는 동성 친구들의 목록을 본 후 하긴 이런 성격인데 친구들이 적을 리가 없지 라고 생각하며 은우의 성격에 대한 걱정을 완전히 접게 되었다.

물론 수연은 은우의 머리에 촙을 날리면서 응징을 했고 말이다.

수연은 앞으로 촬영할 장면들을 대본으로 확인하다 한 장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 이거 이 정면에서 그놈의 복수가 들어 올 수도 있겠는데?”

민수는 수연이 가리킨 장면을 살펴보았다.

이 장면은 드라마가 거의 끝나 가는 시기의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주주총회에서 준호와 준호의 어머니가 회사 지분의 10%를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한철영 회장의 차명 주식까지 준호가 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호가 분노에 차서 준호를 찾아오는 장면이었다.

“오. 그럴 수도 있겠는데요.”

“은우야. 아까도 말했지만 너 너무 신나 있는 거 아니냐?”

수연의 말에 잠시 지지한 표정을 지은 은우는 수연에게 점잖은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요.

창민 선배가 무슨 짓을 해도 민수 씨를 때릴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요.

이런 말 있잖아요. 질 자신이 없다.

아마 민수 씨는 맞을 자신이 없을 거예요.”

수연은 낙관적인 은우의 태도에서 민수에 대한 믿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 봤다고 이렇게 믿고 있는 건지 참 기가 막혔다.

민수도 은우의 말에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황당한 건 저 근거 없고 대책 없는 믿음이 사실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점이었다.

민수도 저 장면에서 창민이 무슨 액션을 취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창민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민수는 창민의 행동을 보고 자신의 행보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크게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없었다.

“은우 선배 말대로 별문제 없을 거예요. 선배.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래도 수연은 안심이 안 되는지 대본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민수는 그런 수연의 태도가 고마웠다.

별로 도움도 안 되고 옆에서 걱정만 하고 있는데 그게 뭐가 고맙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민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었다.

옆에서 그냥 걱정해 주는 거 마음 써 주는 거.

그런 염려와 걱정을 들을수록 민수의 마음이 조금씩 더 충만해지기 때문이었다.

문제의 장면을 촬영할 시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참아 온 것이 쌓였는지 창민의 표정은 시작 전부터 흉흉했고 어떤 면에서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대체 이게 뭐라고 이러는 참 이해가 안 갔지만 창민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후배한테 굴욕을 당한 것이니 화가 날만도 했다.

물론 제가 한 짓을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겠지만 어디 사람이 자신을 냉정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이던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정호는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면서 준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여준 창민의 연기 중에 가장 실감 나는 연기였다.

아마 지금 화면으로 지켜보고 있는 피디도 내심 놀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준호에게 다가온 정호는 준호의 어깨를 잡고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다.

“이 자식!”

정말 자신의 얼굴을 향해 정확히 날라오는 주먹을 보면서 민수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맞은 것처럼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NG! 민수 씨 괜찮아요?”

문제는 민수가 너무나도 실감 나게 잘 피하는 바람에 피디도 민수가 맞은 것으로 착각하고 NG를 선언한 것이었다.

액션 영화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드라마에서 주먹을 휘두르고 맞는 연기를 할 때는 당연히 실제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대충 휘두르고 상대가 맞는 척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따귀 같은 경우는 그냥 때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드라마 촬영 경험밖에 없었던 최수철 피디는 저 정도로 정밀한 액션 연기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것이다.

“아 괜찮아요. PD님 맞은 게 아니에요.”

“휴~ 그래요? 다행이네요.

근데 진짜 엄청 실감 나네요.

대본을 보면서도 진짜 맞은 거처럼 보였어요.

그, 박창민 씨 연기도 좋지만 조금 전에는 너무 위험했잖아요.

진짜 맞았으면 어쩔뻔했어요?”

“피디님. 민수 씨가 액션 배우니까 그 정도는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이왕 하는 거 실감 나게 하면 더 좋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피디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창민을 타박하자 창민은 뻔뻔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는지 자신도 예상한 연기였다고 의뭉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본 민수는 대놓고 때릴 생각으로 주먹을 휘두른 주제에 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예상대로 움직여주는 창민이 조금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도대체 대본은 확인하고 있는지 의문이었는데 왜냐하면 이 장면은 단순히 준호가 맞는 장면이 아니라 서로 한 번씩 주먹을 휘두르고 준호가 정호를 타박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 선배는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생각인지 참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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