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96화 (196/325)

#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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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민에게 한 방 먹인 민수는 상쾌한 기분으로 수연의 대기실로 돌아왔다.

수연은 민수가 창민과 함께 어딘가로 사라지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민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민수. 뭐야? 그놈이 뭐래?”

“아~ 아니에요. 선배.

이제 아마 창민 선배도 선배한테 귀찮게 하지 못할 거예요.”

민수는 수연에게 작은 녹음기를 보여 주었다.

수연은 민수가 녹음기를 꺼내서 보여주자 이게 왜 나오나 싶어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수를 바라보았다.

“뭐야 이거?”

“뭐긴요. 녹음기죠. 원래 연예인들은 다 이런 거 하나씩은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닌가요?”

민수의 태도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일까.

수연은 순간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인터뷰할 때는 혹시 몰라서 녹음하긴 하는데 이걸 따로 준비해 온 거야?”

“뭐 꼭 따로 준비한 건 아니에요.

어쨌든 잘 들어 보세요.”

민수는 조금 전에 녹음한 내용을 수연에게 들려주었다.

수연은 창민의 태도가 어이없기도 했고 민수에게 욕설을 내뱉는 것이 영 기분이 좋지 않아서 잔뜩 인상을 쓰고 있었다.

수연도 태생부터 미녀였기에 인상이 조금 찌푸려진다고 그 미모가 퇴색되지는 않았지만 설아의 말대로 주름이 진다면 곤란한 것은 수연 본인이기 때문에 민수는 수연에게 얼굴을 펴라고 이야기했다.

“에이, 선배 얼굴 피세요.

선배 얼굴에 주름지면 설아 씨가 또 얼마나 슬퍼하겠어요?

슬퍼하기만 하면 다행이지 나중에 날 풀리면 또 얼마나…..”

“힉~ 그건 안돼!

설아가 요즘 완전히 벼르고 있단 말이야.

나 진짜 죽을지도 몰라.

물론 설아가 수연을 죽이진 않겠지만 대신 죽을 만큼 힘들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어쨌든 설아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수연은 바로 얼굴을 바로 하고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후…. 그래서 이걸로 뭘 어쩔 건데?”

“어쩌긴요. 앞으로 선배 대기실에 한 번만 더 찾아오면 이거 그냥 TD 쪽이랑 언론사에 뿌리겠다고 했죠.”

“뭐?”

민수가 창민을 협박했다는 이야기에 수연도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녹음을 언론사에 뿌리겠다.

직관적이고 효과적이긴 했지만 걸리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런 효과적인 협박을 사람들이 잘 하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기 마련인데 민수가 너무 과감하게 질렀다.

“야. 그게 먹히겠어?

솔직히 이거 뿌리면 너도 손해가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

분명 욕한 놈이 잘못이긴 하지만 네티즌들이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을 거 아냐?

분명히 어딘가에서는 욕먹을 짓을 했으니 욕을 했겠지. 이런 소리 하는 놈들이 분명히 있을 거고.

그러면 또 그놈 팬이랑 네 팬이랑 서로 진흙탕 싸움에 아후… 생각만 해도 정말.

그리고 드라마 제작진은 또 어떻게 생각하겠어?

너 그런 식으로 드라마 망쳐 버리면 네 경력에도 치명적이야.

게다가 선배 배우들은 또 어떻고.

저놈이 잘못한 걸 떠나서 고깝게 생각하는 놈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안돼, 안돼.

이건 너무 무모한 짓이야.

이거 까발리면 누가 잘못했는지가 무의미해져.”

수연은 부정적이었지만 민수는 그럴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핵미사일을 쏘면 다 죽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쉽게 쏘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만, 사람들은 핵미사일을 두려워한다.

무기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억제력을 가지기 때문인데 민수는 이 녹음이 핵미사일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선배. 물론 그렇죠.

이걸 제가 뿌리기 어렵다는 걸 저도 알고 선배도 알고 아마 창민 선배도 알 거예요.

하지만 알아도 창민 선배는 선배한테 함부로 접근하지 못할 거예요.

아마 이걸 뿌리면 드라마는 난장판이 될 테고 온갖 부정적인 기사들이 난무하겠죠.

그러면 당연히 창민 선배도 손해 그리고 저도 손해에요.

여기서 누가 더 손해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창민 선배가 무조건 손해를 본다는 게 중요한 거죠.

전 지금까지 창민 선배 같은 사람을 많이 봐왔어요.

저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것을 못 참기 마련이거든요.

그러니까 에이 설마 라고 생각하다가도 혹시 그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거예요.

그리고 그런 생각에는 제 이미지도 한몫하지 않을까 싶네요.

제가 세간에서는 은근히 좀 막 나가는 이미지잖아요.

그러니까 저 새끼는 왠지 진짜 그럴 거 같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죠.”

“세상에…..너 정말.”

수연은 민수의 설명이 기가 막혔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상당히 그럴싸했다.

그리고 이제 창민이 오는지 안 오는지만 지켜보면 민수의 가설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날 창민은 수연의 대기실에 더는 접근하지 않았다.

민수의 가설이 맞았다는 증거였다.

창민이 수연에게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지속할지는 모르겠지만 수연은 그의 기분 나쁜 면상을 보지 않아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지나 드라마가 걱정돼서 창민에게 거친 소리 한번 못했는데 자신을 위해 조금 무모하다 싶은 태도를 보인 민수가 고맙기도 했고 걱정되기도 했다.

앞으로 창민이 민수를 눈엣가시처럼 여길 것이 뻔해서였다.

결국 자신 때문에 민수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이 늘어난 격인데 드라마에 불러서 염가로 연기를 맡긴 것도 미안한데 이런 부수적인 피해를 보게 만들다니, 수연으로서는 민수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창민이 사라졌지만, 수연의 대기실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창민 대신에 이제는 은우가 은근히 수연에 대기실에 놀러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만 예의 바르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방문하는 은우를 수연도 친절하게 반겨 주었다.

특히 수연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은우가 민수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보는 것이 웃기기도 했고 그럴 때마다 민수가 난감해하는 게 재미있기도 해서 은우의 방문을 오히려 더 종용하고 있었다.

“그게 진짜였어요?”

“그럼, 그때 나도 얼마나 놀랐는데.

그때 일곱 명이나 후다닥 민수를 따라가는데 아후….”

은우는 민수에게 궁금한 것이 많은지 수연이 신나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민수는 그런 은우를 보며 앓는 소리를 내뱉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은우의 눈빛이 너무 과했기 때문이다.

난 당신이랑 꼭 친해지고 싶다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는 데 이걸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난감하기만 했다.

민수는 창민과 대화를 할 때 누군가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느낌상 그게 은우일 거라고 짐작했다.

은우에게는 그만이 가진 조금 따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민수의 예리한 감각이 그 느낌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느낌은 아마 거의 모든 사람을 다정하게 대하는 은우의 생활 방식이 만들어낸 그런 따듯함이었을 것이다.

민수는 자신이 창민에게 대드는 것을 보고 은우가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다만 창민처럼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그나마 대하기 편했지만 리온이나 은우 같이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는 상대를 대하는 것은 조금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될 뿐이었다.

특히 자신은 성격상 친하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는 편이라 주변 사람을 대하는 것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은우를 대하는 민수의 애매한 태도는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은우는 민수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상관없이 민수를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기분이 전혀 나쁘지 않으니 민수는 은우가 참 이런 면에서는 타고났다 싶었다.

민수가 기억하기에 은우는 배우 생활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솔직히 일반적으로 잘생겼다는 이유로 배우의 길을 걷던 많은 배우가 대부분 은우와 같은 결말을 얻었으니 차라리 아무런 기초 없이 연기를 시작해서 그런 경력을 쌓은 진성이 더 비정상적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젊은 시절 거의 주연이나 주연급 조연으로 연기하던 배우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배역이 줄어들어 이 바닥을 떠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흐름이었다.

아직 한국 드라마는 젊고 잘생기거나 예쁜 배우들이 드라마를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렇게 화려한 시절을 보내고 다시 연기력만으로 조연급 배역을 맡는다는 것이 그 배우들에게 더 비참한 일일 수도 있었다.

자신의 화려한 과거를 반추하며 조용히 이 바닥을 떠나는 것과 어떻게든 연기 경력을 이어가는 것.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건 오로지 배우에게 맡겨진 선택이었다.

물론 민수나 은우 같이 젊은 배우에게는 조금 먼 미래였다.

“그…. 이런 말이 조금 실례될 수도 있겠지만…..

민수 씨는 어떻게 그렇게 연기를 잘하세요?

아까 연기도 정말 대단하던데요.”

배우들의 롱런에 대하여 생각하던 민수는 은우가 자신에게 말을 걸자 바로 정신이 차렸다.

게다가 이건 대놓고 얼굴에 금칠하고 있으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오늘 민수가 했던 연기는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맞이하던 준호에게 한철원 회장의 개인비서가 찾아와 지금 각 세력이 가진 지분의 비율을 보고하는 장면이었다.

친절한 얼굴로 손님을 대하다가 손님이 떠나자 바로 냉정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다가와 보고를 받는 것이 그 장면의 백미였는데 은우가 감탄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그 부분인 거 같았다.

“솔직히 액션 연기는 좀 타고나기도 하는 거고, 민수 씨가 워낙 넘사벽이라 그렇다 치지만 오늘 연기는 정말……

원래 분위기 잡는 건 시간이 좀 걸린다고 생각했는데 민수 씨는 그걸 씬 도중에 바로 해버리시더라고요.

그것도 극과 극의 분위기를요.

그게 참 대단해 보였어요.”

오늘 민수가 보여준 연기를 한껏 칭찬하던 은우는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비록 민수가 은우를 본건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지금처럼 웃음 짓지 못하는 은우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이 남자는 지금까지 항상 웃음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참 그게 안 돼요.

아니 애당초 냉정하거나 무거운 분위기를 만드는 게 어렵다고 해야 할까요?

요즘 계속 연습하는데도 쉽지 않더라고요.”

“그렇군요. 음…..”

원채 웃는 얼굴인 은우였기 때문에 아마 웬만한 변화로는 분위기가 극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건 기본적으로 슬픈 분위기를 가진 민수가 달콤한 표정을 짓는 것처럼 어려울 일임이 분명했다.

민수는 은우의 말이 왠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뭐라고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분위기란 것이 설명한다고 바로 이해하고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대답할 말을 찾기 힘들었다.

만약 자신이 그걸 그렇게 잘 알고 있다면 로맨스 연기에 이렇게 고생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제가 최원태 선생님께 들었는데요.

윤강철 선생님이 배우들한테 연기를 가르쳐 주신다는 게 사실인가요?“

“네? 아…. 예. 소속사에 들어오면 대표님이 배우들 연기를 손봐 주시긴 하죠.”

“그래요? 그럼 민수 씨도 선생님께 연기를 배우신 거고요?”

“네. 저도 당연히….”

“애당초 선생님께 허락 못 받으면 데뷔도 못 해.

연기 안 되는 배우가 데뷔하는 건 선생님이 절대 용납 못 하시거든.”

수연의 말에는 자신과 윤 엔터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분명 윤 대표에게 연기를 배웠고 윤 대표가 허락해서 연기 인생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수연이나 민수 같은 젊은 배우에게는 큰 영광이고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이었다.

특히 윤 대표가 가진 까다로운 기준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다.

“그렇군요. 그건 좀 부러운 일이네요.”

그렇게 쉬는 시간 내내 수연의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낸 은우가 개인 촬영을 위해 떠나가자 수연은 잠시 은우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지은우라….. 지은우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민수는 수연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자 의아한 기분이 들어 수연에게 물어보았다.

“쟤 어때? 그래도 성격은 좋아 보이지 않아?”

“글쎄요. 사람 마음은 원래 알 수 없는 거고 워낙 짧은 시간 동안 본 거라 딱히 뭐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크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네요.”

“그렇지? 저 성격이 꾸민 건 아닐 거야.

저게 연기라면 쟤가 로맨스만 잘하는 배우라는 말을 듣지도 않았겠지.

만약 그렇다면 정말 서스팬스급 연기력을 가진 셈인데 와…. 그건 좀 소름 돋네.

인간 불신이 생길 거 같아.”

“풋, 그건 그렇네요.

저런 성격이 완전히 꾸민 것이 아니라면 확실히 인간성은 괜찮겠죠.”

“음…. 맞아.”

“뭔데요? 대체.”

“너도 알다시피 우리 소속사가 배우를 거의 안 받잖아.

소속 배우들이 소개해 주는 경우에만 선생님이 확인하고 배우를 받는데.

쟤가 좀 괜찮아 보여서 그래.

어때? 괜찮을까?”

“은우 선배요?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갑자기는 아니야.

느낌이 좀 괜찮아서 계속 살펴봤는데 아직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는지 부족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내가 전에 말했다시피 얘가 열정이 있어 보여.

그러면 빨리 배우기도 할 테고…..

그리고 오늘 막상 이야기해 보니 성격도 좋아 보이니 조금 마음이 가네.

뭐 그냥 그렇다고. 좀 더 두고 봐야지.”

수연의 말에 민수는 그건 좀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인기 있고 앞으로도 창창한 은우를 소속사에서 쉽게 놓아줄 리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민수도 만약 그가 우리 소속사에 들어온다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서로 배울 점도 많을 거고 확실히 열정이 있는 배우로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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