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93화 (193/325)

#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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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수연 선배.

수연 선배의 마음은 잘 알겠어요.

어차피 해결될 일도 아니니까 괜히 소속사에 알려서 대표님이 신경 쓰게 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선배가 조금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네요.

어차피 저 사람은 촬영 끝나고는 볼 일이 없으니까요.

그 마음은 참 예쁘지만 원래 그러라고 있는 소속사잖아요.

그러니 이 일은 우선 회사에 알리는 게 맞는 거 같은데요.”

“끙….”

정론에 가까운 민수의 말에 수연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수연의 반론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건 그렇지.

그런데 어차피 안될 건 뻔하거든.

소속사에 연락하면 회사에서 TD 쪽으로 연락을 하겠지.

그리고 TD에서는 저놈한테 사실 확인을 한 후에 조처를 하고.

그런데 저놈의 TD의 말을 그렇게 잘 들을 거면 저런 짓을 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 내가 RD에 있을 때도 가끔 그런 일이 있었는데 원래 다른 소속사에서 그런 식의 항의가 들어와도 거의 들은 척도 안 해.

물론 말로는 잘 알겠다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는데 그냥 말 한마디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결국 그냥 신경만 쓰이고 의미가 없는 셈이야.

솔직히 저게 진짜 문제가 되려면 내가 저걸 언론에 떠들거나 촬영 보이콧을 하는 방법뿐인데 그건 정말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덤벼드는 거라서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걸 그쪽도 잘 아는 거야.

그런 이유로 배우들 일은 배우들이 알아서 해결하는 거야.

원래 여배우들이 자기들끼리 있을 때는 서로 싸우지만 저런 식으로 찝쩍대는 건 정말 불쾌해하거든.

그러니 만약 다른 여배우라도 있었으면 서로 커버를 쳐줬을 텐데 이번 촬영에는 불행히도 여배우가 나 혼자뿐이고 친한 배우도 없으니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었던 거야.

그래도 네가 와서 한시름 놨어.

아까도 깨갱하고 그냥 물러났잖아.

역시 민수가 든든하네.”

“흠….”

수연의 설명을 다 듣고 나니 대충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알 수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민수가 촬영한 드라마나 영화에서 배우가 저렇게 진상을 떠는 경우는 없었다.

그나마 비슷하다면 리 얀 정도였는데 그도 연기 외에 사적으로 진상을 떨지는 않았으니 창민과는 조금 달랐다.

“결국 회사에 말해도 소용이 없다니 무슨 진상 고객을 상대하는 기분이네요.”

민수의 비유에 수연도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상당히 그럴싸한 비유였기 때문이다.

“풋. 그러네. 진상 고객이라……

그거 정말 절묘한데.

그래, 진상 고객은 참고 넘겨야지.

어차피 적당히 추태를 떨다가 알아서 떨어져 나갈 테니까.”

“어쨌든 그냥 참고 넘기겠다면 어쩔 수 없이 제가 옆에 계속 있어야겠네요.

그런데 왜 선배가 윤 엔터에 먼저 있었다는 말을 안 했어요?

만약 그것만 말했어도 지가 선배라는 듯이 거만한 짓거리는 안 할 거 아니에요.”

“소속사 나갔다가 돌아온 게 뭐 자랑이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니?

그리고 애당초 말도 섞기 싫은데 굳이 대화거리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수연의 말을 들어보니 진짜 상종하기도 싫은가 보다.

“그래도 얼굴은 봐 줄 만하잖아요.

혹시 저 사람이 선배한테 진짜 관심 있어서 저러는 건 아니겠죠?”

“으웩. 그런 말은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아 줄래?

만약 그냥 심심해서 저러는 거면 그러려니 해도 진짜 마음이 있어서 들이대는 거면 정말 끔찍한데.

인성은 쓰레기고, 능력은 태준이보다 훨씬 못한 데다가, 그 잘난 얼굴도 태준이보다 못해.

저걸 어따 붙이겠니?”

“헤…..”

상대의 얼굴이 태준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는데도 태준보다 못하다가 단언하는 수연의 말에 민수는 친구의 연애 전선이 지금 화창한 햇빛으로 가득하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번에 진상 퇴치가 완료되면 태준에게 반드시 좋은 식사를 얻어먹겠다고 다짐했다.

“좋아요.

그럼 우선 시선을 제 쪽으로 조금 돌려야겠네요.

선배는 여성이라 아무래도 상대하기가 조금 껄끄러우니까요.

그리고 계속 자극하다 보면 뭔가 방법이 보일 거 같아요."

“그래, 잘 부탁해, 민수야.

그런데 태준이한테는 비밀이야.

태준이가 가뜩이나 저놈 싫어하는데 만약 이 일까지 알게 되면 어쩌면 이상한 짓을 할 수도 있어.”

물론 태준도 생각이 있는 사람인데 아무리 싫다고 해도 사고를 칠 가능성은 적어 보였지만 원래 감정이란 게 비이성적이다 보니 수연의 염려도 괜한 것만은 아니었다.

어쨌든 민수는 당분간 수연의 옆에서 진상의 행동을 지켜보기로 했다.

오후에는 민수가 기대했던 지은우의 연기를 살펴볼 기회가 생겼다.

이 드라마에서 지은우가 맡은 배역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꽃집 남자 “조현우” 역할이었다.

지혜와는 우연처럼 운명인 듯 여러 번 마주치게 되면서 서서히 서로 호감을 느끼고 있는 사이였는데 날카로운 사내 정치에 피곤한 지혜에게 한줄기의 오아시스가 되어주고 있는 인물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마음을 애써 외면하고 있던 지혜도 드라마가 중반부에 들어선 지금은 자신이 현우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고 알콩달콩한 모습을 종종 보여주고 있었다.

심지어 현우는 지혜의 딸인 혜민이도 엄청나게 아껴주기 때문에 혜민이도 현우가 자신의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니 정말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완벽한 연하남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도 지혜가 혜민이랑 같이 현우의 꽃집을 찾아가는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현우는 자신을 찾아온 지혜와 혜민이를 보며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상큼한 웃음과 달콤하게 꿀이 떨어지는 듯한 눈빛까지.

정말 로맨스의 달인답게 달달한 연기가 너무나도 능숙했다.

만약 은우가 다른 연기도 저만큼 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대단한 스타가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하….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민수는 아무리 거울을 보면서 연습해도 저렇게 달콤한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은우가 더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장면이 다 끝날 때까지 은우만을 눈이 빠져라 지켜봤지만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설마 저런 것도 타고나는 건 아니겠지?”

민수는 은우의 연기를 지켜보며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외모는 엄밀히 말하면 태준보다는 은우에 가까웠다.

이 말은 감독이 자신에게 선 굵은 연기보다는 섬세한 연기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자신 같은 외모를 가진 배우가 로맨스 연기를 못 한다면 그건 그야말로 앙꼬없는 찐빵과 같을 것이다.

요즘 계속 로맨스, 멜로 연기에 신경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거였는데 연습을 계속해도 도통 늘지가 않았다.

솔직히 용의 울음에서도 상대역이 설아가 아니었으면 그 정도의 연기를 하는 것조차 불가능 했을 것이다.

“하…. 로맨스 고자 진짜….”

연기를 마치고 돌아온 수연은 자기 혼자 한숨을 쉬면서 머리를 쥐어 쌓고 있는 민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아니요.

은우 선배의 연기를 보니까 조금 한숨이 나오네요.

솔직히 저건 좀 부럽다고 할까요?

전 연습해도 저렇게 안 나오거든요.”

“아아.

로맨스?

하긴 은우가 좀 그쪽으로 특출나긴 해.

나도 가끔은 연기하면서 조금 설렌다니까.

태준이도 저렇게 달콤한 스타일은 아니잖아.”

“엑. 그건 좀 위험한 발언인데요.

선배 이건 제가 선배와 윤 배우 사이의 원만한 관계 정립을 위해서 윤 배우한테 꼭 전달하겠습니다.”

민수가 진지하게 태준에게 일러바치겠다고 미리 이실직고하자 수연은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속마음을 말한 자신의 입을 원망했다.

저건 분명히 장난 같긴 한데 정말로 민수가 진지하게 말한다면 태준은 분명 이걸 빌미로 반전을 꾀할 것이 분명했다.

저번에 걸그룹 노래 사건으로 태준을 엄청나게 쪼아 놓은 걸 생각하면 이번 태준의 응징에는 정말 울분이 담겨 있을 가능성이 컸다.

수연은 한숨을 푹하고 쉬었다.

매사가 진지한 민수였는데 저번에 낚시로 태준을 낚아 버린 것도 그렇고 점점 애가 태준처럼 변해간다 싶어서였다.

아니면 요즘 설아와 사이가 점점 좋아진다고 하던데 설아를 닮아가는 건가?

누구를 닮아가고 있던지 상관없이 이건 자신의 위기였다.

“좋아. 이번 일을 묵과하면 내가 저 은우가 왜 저렇게 로맨스 연기를 잘하는지 말해 주겠어.

Deal?”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장난을 친 건데 수연이 생각보다 큰 것을 걸었다.

지은우의 로맨스 비법이라.

수연이 어떻게 그걸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보다 오랫동안 은우와 연기했으니 뭔가 느낀 것이 있을 수도 있었다.

“OK! Call! ”

민수는 바로 콜을 외쳤다. 자신이 전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수가 콜을 외치자 수연도 마음속으로 걸려들었다고 외치면서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민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사람마다 다르니까 넌 은우처럼 할 수 없을 수도 있어. 그래도 들을 거야?”

“그럼요.”

“그리고 만약 이게 너한테 소용없어도 절대 태준이에게 말하기 없기.

남자가 두말하진 않겠지?”

“당연하죠. 그런데 제가 들었을 때 너무 얼토당토않으면 안 돼요.

거짓말은 안 되니까요.”

“아니야, 이건 너도 들으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이야기일 거야.

그럴 리 없겠지만 네가 진짜 납득 못한다고 하면 나도 인정할게.”

민수는 대체 무슨 이야기이길래 이렇게 서설이 긴가 싶었다.

하지만 그래도 꼭 듣고 싶었다.

“알았어요. 이제 말해봐요. 뭔지.”

민수의 재촉에 수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민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민수도 조금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은우는 원래 저런 애야.”

“??”

“음…. 은우는 원래 남들한테 다 저래.

특히 여자들한테는.

어떤 여자들한테도 친절하고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하더라….. 아! 그래.

그 페로몬을 뿜뿜 뿜어대는 애들 있잖아?

얘가 날 좋아하나? 이런 착각을 부르는 애들.

은우가 그런 애라고.”

“하… 수연 선배 그러니까 그 말은.”

“응. 저게 연기가 아니라고 해야 하나?

나도 신기해서 물어봤는데 몸에 친절이 배어 있다나 봐.

그러니까 조금만 신경 써도 저런 연기가 나오는 거지.”

“와, 선배 진짜 이러기에요?”

민수가 항의하자 수연은 처음보다 더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뭐?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 너한테는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수연의 말은 맞는 소리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속은 것 같았다.

민수는 결국 수연에게 항의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건 딱히 결과를 바꾸려는 건 아니었고 그냥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하소연일 뿐이었다.

“아니 그래도 이건 좀 사기당한 기분인데요.”

“이게 왜 사기야? 잘 생각해봐 너도 은우처럼 평소에 여자들한테 엄청 친절하게 굴고 페로몬 뿜어내는 연습을 해봐.

그리고 그게 습관이 되면 저런 연기를 쉽게 할 수 있을 거야. OK?

자, 우리의 거래 조건을 잘 생각해봐. 지금 내 말이 이해가 안됐어?”

수연의 말대도 완전히 이해는 되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억울했다.

“….. 납득은 되네요. 만약 그렇다면 저런 연기를 쉽게 할 수 있겠죠.”

“거봐. 아니 애초에 다른 연기는 다 별로인데 저런 연기만 잘한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거지.

그래도 쟤는 그놈보다는 백배 나은 게 지금 자기가 부족한 걸 알고 엄청나게 노력한다고 하더라고. 더 나아지려고 말이야.”

“음…. 우선 거래는 인정할게요.

제가 선배를 너무 얕봤어요.

순진한 줄 알았는데 그렇게 영악하게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요.”

“훗. 순진하긴 이 녀석아. 내가 밥그릇이 몇 개인데.

너보다 적어도 2000끼는 더 먹었을걸.”

자랑스럽게 말하는 수연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먹은 밥그릇 수를 말해주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아낸 민수는 결국 은우에게도 특별한 비법이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만 깨닫고 별다른 수확을 얻을 수는 없었다.

“결국 경험이라는 거군요.”

“음…. 꼭 그런 건 아닌데 가장 빠른 것은 역시 그거겠지.

애초에 네가 이상하게 로맨스 고자라서 그래.

도대체 왜 그런 건지 미스터리 할 정도니까.”

민수는 아마 수연이라도 자신처럼 30년을 보냈으면 로맨스 고자가 되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수연에게 말할 수는 없었으니 너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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