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91화 (191/325)

#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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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진짜 정민수다! 와~미친….”

지은우는 민수가 대기실에 들어서자 미처 인사를 하기도 전에 민수를 발견하고 탄성부터 내질렀다.

진짜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 정말 진지해 보였는데 아무래도 민수가 드라마에 참여한다는 말을 듣고도 반신반의했던 모양이다.

민수는 자신에게 탄성을 지르는 이 선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머뭇거리게 되었다. 들어오자마자 격하게 소리를 절러 버리니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기가 왠지 뻘쭘해서였다.

은우는 난처해하는 민수를 보고 정신을 차렸는지 서둘러 민수에게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정민수 씨.

제가 초면에 너무 무례를 범했네요.

정말 놀라는 바람에……

반가워요. 지은우라고 해요.”

민수는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은우의 손을 잡았다.

“네, 반갑습니다.

정민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에이~ 부탁은 제가 드려야죠. 하하하.”

은우는 민수를 정말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처음 봤는데 너무 격한 환영이라 민수도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은우한테까지 인사를 마친 민수는 수연의 대기실로 들어섰다.

수연은 오늘 연기할 부분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그 옆에는 혜민이 같이 대본을 보고 있었다.

오늘 수연과 혜민이 그리고 민수가 같이 연기하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민수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오! 민수. 인사하고 온 거야? 배우들이 뭐래?”

“대체로 반겨 주시네요. 든든한 구원투수라서 그런가요? 촬영장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 보이고 좋네요.”

“그래? 다행이네.”

수연은 정말 안도한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중에 조금 애매한 인물도 있었지만 그건 성정 범위 내였고 어쨌든 민수가 말한 것처럼 외부에서 진흙탕 싸움을 한 드라마치고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피디가 성격이 모난 데 없이 무던한 인물이라고 하더니 그래서 그런지 스태프들도 그렇게 날카롭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첫 회부터 12%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가 그런 일을 겪는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었다.

민수도 대본을 살펴보는 수연과 혜민 옆에 앉아 대본을 다시 읽어 보았다.

민수가 연기할 한진호는 회장인 한철원의 사생아로 한철원 회장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성에게서 태어난 자식이었다.

재벌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설정이 사생아였는데 드라마마다 그런 사생아가 등장할 때는 드라마의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곤 했으니 이번에 민수가 맡은 역할이 역시 그런 역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한진호는 일반적인 사생아와는 전혀 다르게 복수심이나 그런 증오 따위는 전혀 없었고 그냥 제가 갈 길을 가면서 회장 일가와는 상관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장에 대하여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다른 사람들 모르게 지분까지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후반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는 중요한 등장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잠시 대본을 살펴보는 사이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되었고 민수는 촬영장으로 나가 촬영을 하고 있는 배우들을 느긋하게 바라보았다.

이번 장면을 연기하고 있는 배우는 정태성과 박창민이었다.

회장인 한철원이 쓰러지고 병원에 입원하자 가장 유력한 회장 후보인 한성호가 회장 대리를 맡게 되었는데 한정호는 그런 형에게 다가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민수가 박창민의 연기를 이렇게 보니 확실히 매력적인 부분이 있었다.

다만 기본기가 조금 부족해 보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재촬영을 할 때마다 조금씩 기복이 있었다.

분명 기본기를 완전히 쌓지 못한 것은 태준이 말한 것처럼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질만한 근성이 없어서 일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지금까지 쌓인 연기 경험이 있어서 부족한 부분을 임기응변식으로 채우고 있었으니 확실히 재능 있는 배우임은 분명해 보였다.

하긴 재능이 없었으면 애당초 윤 대표가 눈독을 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정말 깊이 있는 연기를 하게 된다면 미묘하게 부족한 기본기 때문에 그 바닥을 들어낼 수밖에 없었으니 아마 크게 대성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윤 대표님이 아까워 할 만하네.”

“응?”

“아, 아니에요. 저분이 원래 윤 엔터 배우였다고 해서 자세히 살펴본 거예요.

저분 나갔을 때 윤 대표님이 조금 아쉬워하셨다고 해서요.”

“아아. 박창민?

저놈 내가 윤 엔터에 먼저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지가 나보다 선배인 양 굴던데.

참, 기가 막혀서.

뭐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라나?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했다.”

수연은 확실히 창민에게 쌓인 감정이 많아 보였다.

“이건 내 편견일 수도 있겠는데, 솔직히 배우가 우리 회사에서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그냥 나갔다 그러면 배우로서는 완전 낙제 아냐?

정말 더는 배울 게 없는 상황이라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러면 그건 그냥 인성 문제지만, 연기를 저따위로 하면서 배우는 도중에 옮겼으면 저건 그냥 생각이 없는 거지.

인성이 엉망이면서 연기 잘하는 놈은 그래도 배우로 인정하지만 저건 참….”

아무래도 수연은 민수보다 창민을 완전히 박하게 평가하고 있었는데 단순히 자신을 귀찮게 하기 때문만은 아닌 거 같았다.

“저거 봐. 지금 저거 하면서도 발성이 묘하게 흔들리지?

지금 저 장면이 어디 목소리 떨면서 연기할 장면이야?

얼굴하고 목소리 억양하고 분위기가 이상하게 다르지.

쟤는 그냥 아주 기본적인 연기만 할 줄 아는 거야.

그런데도 잘난 척은 또….. “

“그런데 그래도 TD에서 몇 년 동안 밀어주고 있잖아요.

그쪽에서는 그래도 큰 가능성이 봤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

민수가 묻자 수연은 민수를 조금 묘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넌 평소에는 참 어른스러운데 가끔가다 순진한 생각을 할 때가 있어.

야. 모든 소속사가 다 선생님 같지는 않아.

쟤가 얼굴은 잘생겼잖아. 그래서 어린 팬들도 제법 있고, 그러니 당장 쓸 수 있는 데까지 쓰는 거야.

아마 젊을 때 뽑을 만큼 뽑아먹고 계약 끝나면 그냥 바로 버릴걸.

지금이야 워낙 반반하니까 여기저기서 찾아 주지.

시간 조금만 지나 봐.

쟤보다 더 잘생긴 애들 나오는 순간 쟤는 그냥…..

쟤가 진성 선생님처럼 연기에 열정이라도 있으면 그 뒤에 다른 길이 있겠지만 쟤는 안돼.

아주 성격부터 기본이 안 돼 있어서.”

수연의 말을 듣다 보니 민수도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전생에 자신도 소속사에 들어간 후 몇 차례 기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창민은 소속사가 제공한 기회를 잘 잡은 게 아닌가 싶었다.

만약 자신이 그때 창민만큼 기본적인 연기를 할 수 있고, 연기의 재능이 있어서 임기응변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자신도 저렇게 되지 않았을까?

하긴 자신은 그것마저 못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으니 수연의 말대로 창민의 장래가 어둡다고 해도 별로 딱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건 다 자업자득이었기 때문이다.

정작 민수가 놀란 것은 연기 수준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수연의 판단기준이었다.

예전에는 수연이 자기의 일에 집중해야 할 상황이라 주변을 전혀 돌아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지금 보니 수연 역시 윤 대표에게 배운 배우답게 연기에 대하여서는 완고한 기준이 있었다.

조금 전에 창민의 연기는 수연의 말대로 기본적인 부분만 갖추어진 연기였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줘도 저런 평범한 장면들은 수월하게 연기할 수 있으니 아주 몹쓸 연기라고 볼 수는 없었다.

과연 수연의 냉정한 평가가 객관적인 평가인지 아니면 주관적인 울분까지 포함된 평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혹독하긴 했다.

창민과 태성의 촬영이 끝나고 바로 다음 씬은 민수와 수연 그리고 혜민이가 같이 하는 장면이었다.

드라마의 시간상으로는 정호가 준호를 찾아온 이후였지만 촬영의 편의를 위해 순서를 바꾸어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바로 짐을 싸는 바람에 유명한 호텔에서 일하던 준호까지 덩달아 한국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준호는 자신의 어머니가 뭐가 아쉬워서 그 영감탱이한테 그렇게 정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 그녀의 뜻을 꺾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그게 아니라도 예전에 부탁받은 일 때문에 자신은 한국에 돌아가야 하긴 했다.

전날 찾아왔던 정호는 역시 예전처럼 밥맛없이 굴었다.

하지만 집안에서 유일하게 정이란 것을 가지고 있던 그의 누이는 어떻게 변했을까.

예전처럼 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다른 가족들처럼 괴물이 되어 있을까?

게다가 그렇게 자식들이나 부인이나 다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 정이란 것을 숨기고 살았던 그 영감탱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준호는 그냥 웃음만 나왔다.

준호가 차린 아주 작은 레스토랑.

그 앞에서 지혜와 혜민이 옷깃을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 삼촌 만날 거야. 혜민아.”

“삼촌?”

혜민이는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린다.

“삼촌이야? 양아치야?”

삼촌의 탈을 쓴 양아치를 항상 봐왔던 혜민이는 오늘 자신이 만날 사람이 삼촌인지 양아치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가로 돌아온 지 몇 년.

본가의 분위기는 어린 혜민이 마저 상대에 따라 행동을 달리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지혜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묻는 혜민이를 보며 가슴이 조금 쓰라렸다.

이래서 본가와는 인연을 끊고 살고 싶었는데 지금은 너무 늦어 버렸다.

“혜민아. 진짜 삼촌이야. 양아치 말고 삼촌. 알았지?”

“응, 알았어. 엄마.”

영리한 혜민은 지혜의 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 만나는 사람은 양아치가 아니라 진짜 삼촌인가보다.

“딸랑~”

문이 열리고 혜민과 지혜가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식당은 테이블이 3개 밖에 없는 좁은 곳이었지만 아기자기하고 따듯하게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전혀 돈을 벌 생각 따위는 없어 보이는 것이 참 준호다웠다.

“오~ 이게 누구야. 지혜 누나네.

참 한국에 오니까 이렇게 다 보게 되는구나. 진짜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이제는 완전히 어른이네.

잘 컸다. 우리 준호.”

지혜는 태어나서 십 년 남짓 본가에서 살았던 준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턱없이 밝은 아이였다.

그리고 본가에서 나간 후에도 명절이면 종종 인사를 하러 왔었다.

항상 준호와 작은어머니가 집에 들렀다 간 날은 온 집안에 냉기가 흘렀기 때문에 두 오빠는 준호와 작은어머니를 많이 미워했지만, 자신은 특별히 준호를 미워하지 않았었다.

차라리 기약 없는 사랑에 몸을 던진 작은 어머니를 동정했다면 모를까.

그러나 어이없게도 진짜 아버지가 쓰러지게 되자 정작 아버지를 보살피고 있는 건 다른 가족들이 멸시하던 그 작은 어머니였다.

자신의 어머니는 아버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임원들을 추슬러 경영권 확보에 열을 올리는 중이었다.

그게 가문을 위해서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 경쟁상대가 자신의 큰 오빠였고 어머니는 대원 그룹을 자신의 가문으로 빼앗아 가려고 하는 거였다.

작은어머니를 묵인해 주는 조건으로 아버지 생전에 분배받은 지분이 10% 만약 모든 우호지분을 다 모은다면 어머니가 대원 그룹의 회장이 되고 그룹을 자신의 가문으로 가져가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었다.

병원에서 작은어머니를 뵙고 준호까지 한국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들은 지혜는 준호를 한 번쯤 다시 보고 싶었다.

저 아이가 작은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 지가 벌써 10년도 넘었다.

그리고 10년 만에 만난 준호는 정말 훤칠한 청년이 되어있었다.

자신도 물론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나야 언제나 잘 크고 있었지. 어쨌든 반가워. 식전이지?”

“응 그건 그런데 우선 인사부터. 혜민아. 작은 삼촌이야. 인사해”

“안녕하세요 삼촌. 혜민이라고 합니다.”

준호는 배꼽 인사를 하는 자신의 조카를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았다.

참으로 귀엽고 깜찍한 아이였다.

그렇게 인사하는 혜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준호는 혜민이와 눈을 맞추면서 다정스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래. 반가워. 난 한준호라고 해.

너희 어머니 동생이고, 너한테는 삼촌이겠네.

귀여운 게 꼭 누나 어릴 적을 보는 거 같구나.

배고프지?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줄래?

이 삼촌이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

인사를 나눈 준호가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가자 혜민은 바로 지혜에게 다가가 그녀의 품에 꼭 안겼다.

“히히. 내가 엄마 어릴 적 같아서 귀엽데.”

“그럼~ 누구 딸인데. 우리 혜민이 배고프지?

조금만 기다리면 삼촌이 맛있는 거 해 주실 거야.”

웃으면서 서로를 껴안으며 자리에 앉은 둘은 테이블에서도 훤히 보이는 주방에서 준호가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놀랍도록 빠른 칼질과 화려하게 팬을 뒤집는 모습이 정말 대단한 요리사처럼 보였다.

“미국에서 유명한 호텔에서 일했다더니. 진짜 잘하네.”

“응. 엄마. 멋있어!”

잠시 후 요리를 마친 준호가 근사하게 꾸며진 스파게티와 먹기 좋게 잘게 썰린 찹스테이크를 혜민에게 내밀었다.

“자~ 완성이다. 맛있게 먹어~”

“찹스테이크네?”

“응. 누나가 예전에도 좋아했었잖아. 그리고 어린 혜민이가 먹기에도 편하고.”

“그걸 아직 기억하고 있었구나.

식구들은 아무도 모르는데…..”

“뭐…. 그 사람 중에 사람다운 사람은 누나뿐이었으니까.”

지혜는 아직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하고 있는 준호가 참 따듯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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