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90화 (190/325)

#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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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다시 한번 대본을 살피던 민수는 웬일로 자신의 방에 찾아온 태준을 만날 수 있었다.

태준이 수연을 빼고 혼자 온 것은 둘이 사귄 이후에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민수는 의아했지만 반갑게 태준을 맞이했다.

“오, 윤 배우. 혼자서 어인 행차신가?”

“어? 아….. 별일은 아니야.

오늘 어땠어? 별일 없었어?”

“아아. 뭐 특별할 거 있나. 그냥 별말 없던데.”

“역시 그런가…..”

“솔직히 뭐라도 트집을 좀 잡을 거 같았는데 전혀 그렇진 않더라고.”

“그래? 그래도 머리를 균형 잡는 추로만 쓰는 사람은 아니었나 보네.

음…….”

민수는 태준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무슨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 그게 뭔지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나한테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

“아. 그래. 뭐 사실 별건 아닌데.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정 배우는 모르겠지만 사실 정 배우가 소속사에 오기 전에 잠시 소속사에 몸담았던 놈이 하나 있었거든.

수연이가 나가고 얼마 안 있어서 인가….

아버지가 찾아낸 배우였지.

아마 수연이가 나가서 아버지도 마음이 많이 허했던 거야.

그렇게 길진 않았어. 한 몇 달 정도?

그런데 그놈이 지금 “로열”에 나오고 있거든.

그래서 아마 이번에 촬영장에 가게 되면 정 배우도 만나게 될 텐데, 별일은 없겠지만 정 배우도 알고는 있어야 할 거 같아서 말이야.”

“아, 그래?

그야말로 나랑 별로 상관없는 일이긴 하네.

그런데 배우가 우리 소속사에 잠깐만 있었다니 그게 더 신기한데?

어떤 사람이야?”

민수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태준의 표정이 좀 안 좋아졌다.

아무래도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난다는 얼굴이었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놈이긴 했지.

난 딱 보고 마음에 안 들었는데 아버지는 그래도 키워볼 만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너도 알다시피, 우리 아버지가……”

“아, 나도 알지.

실력은 별로라도 특색 있고 느낌 있는 걸 중요시하시잖아.”

“응. 맞아.

그런데 그때는 인성도 별로 신경을 안 쓰셨어.

솔직히 나도 그렇고 수연이도 그런 쪽으로 문제를 만드는 성격은 아니었잖아?

이놈을 보고 아버지가 배우도 인성이 중요하다고 느끼셨으니까 말 다 했지.”

“많이 안 좋았어?”

“음….. 다른 건 모르겠는데 참을성은 더럽게 없고, 특히 여자 쪽으로 문제가 많았어.

그래도 얼굴은 괜찮아서 따르는 여자들이 많았는지 심지어 소속사까지 따라온 여자도 있었으니까.

그 짧은 시간에도 여자 몇을 갈아 치웠다고 하더라고.”

“그건 나름 대단하네.”

“절제라고는 전혀 모르는 놈이었거든.

그놈, 심지어 설아한테까지 찝쩍대고 있었으니까.”

“아니 잠깐만.

수연 선배가 나간 후라고 해도 대충 4년 정도 전일 텐데 그때면 설아 씨가 17살이나 18살 아니었어?”

“맞아. 아마 17살 때 일 거야.

설아가 발육이 빠르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참…..”

“와…. 미친…… 몇 살이나 먹은 놈인데?”

“수연이랑 동갑이니까 지금은 28살이네.

그때는 보자. 24살? 그쯤 되었겠고.”

“허허, 뭐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몇 개월만 있었다는데 왜 그렇게 짧게 있었던 거야?”

“우리 소속사에 오면 연기를 배우잖아?

솔직히 좀 지루한 작업이긴 하지.

거기다가 아버지가 얘를 사람 만들려고 그랬는지 이것저것 좀 막은 게 많았어.

소속사에 들어오면 바로 데뷔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연기만 가르치니까 불만이 많더라고.

그래서 결국 바로 딴 곳으로 옮겨갔어.

덕분에 아버지는 더 실의에 빠지게 되었고 말이야.

그런데 그놈은 그곳에서 나름 배우 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걸 보면서 또 아버지는 자신의 교육방법이 잘못됐나 고민하기도 하셨고.”

“그래도 재능은 있었나 보네.

다른 곳에서 나름 연기 생활을 잘하고 있다니까.”

“그랬으니 아버지가 데리고 왔던 거겠지.

어쨌든 그래서 지금 TD에 있어.

들리는 말로는 처음에 계약할 때 계약금 엄청나게 주고, 대신에 사고 못 치게 이것저것 계약으로 막아 놓은 모양이야.

그러니 지금까지 사고 안 치고 잘 하는 거겠지.”

“그래? TD가 현명했네.

대표님 스타일은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방법이 맞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OK 어쨌든 알았어.

나랑 별로 상관없을 거 같긴 한데 알아서 나쁠 건 없으니까.”

민수는 자신의 방을 나서는 태준을 보내면서 태준이 한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이내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원래 사람은 고쳐 쓰기가 어렵고 제 버릇 개 주지 못한다고 했으니 아무리 계약으로 묶여 있다 해도 그 행실이 어디 가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음….. 내일 상황을 좀 봐야겠네.”

다음날 촬영장으로 찾아가는 길.

평소에는 수연의 차를 타고 촬영장에 가던 혜민은 오늘 민수의 차에 올랐다.

민수가 특별히 요청했기 때문인데 혜민은 웃으면서 민수의 손을 잡았다.

바로 자신을 버리는 혜민을 보며 수연은 조금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혜민과 민수의 조금 특별한 관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차량이 출발하자 민수는 혜민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이미 혜민의 영악함을 완전히 파악한 민수는 혜민에게 말을 돌려서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차라리 직접 물어보는 게 나으리라.

“혹시 촬영장에서 수연 선배를 귀찮게 하는 배우는 없니?

수연 선배급의 여배우는 없어서 딱히 기 싸움 같은 건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왠지 요즘 수연 선배가 좀 피곤해 보여서 말이야.”

“어? 어떻게 아셨어요?

왠 이상한 아저씨가 쉬는 시간마다 언니를 찾아와서 귀찮게 하는데.

설아 언니는 그 사람 보고 개아들이라고 하던걸요.”

혜민은 민수가 꼭 찍어서 물어보자 놀란 눈으로 민수를 바라보았다.

혜민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의 예상이 맞았나 보다.

게다가 설아도 아는 사람이라니 딱 봐도 누군지 알만했다.

하지만 개아들이라니, 개새끼라고 하고 싶은 걸 그래도 상대가 혜민이라 설아 나름대로 순화를 했나 보다.

어쨌든 예전에 설아에게도 찝쩍댔다고 하니 역시 설아도 별로 감정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태준의 말을 들어보니 한창 실의에 빠진 윤 대표가 다시 마음을 잡고 배우를 받은 것이었는데 몇 달 버티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홀랑 도망가서 그 후로 윤 대표가 일을 놓아 버렸으니 감정이 안 좋을 만했다.

촬영장에 도착하고 민수는 바로 피디와 작가에게 인사를 건네고 주연 배우들을 찾아갔다.

이번 촬영장에서도 주. 조연 배우들은 다 자신보다 선배였기 때문에 자신이 찾아가서 인사를 하는 게 예의에 맞았다.

드라마 “로열”은 재벌인 대원 그룹의 삼 남매가 서로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임원들의 지지를 얻어 최종적으로는 대원 그룹의 회장이 되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였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심 인물은 장남 한성호. 차남 한정호. 그리고 장녀 한지혜인데, 수연이 맡은 역은 장녀 한지혜 역이었다.

냉혹하고 차가운 집안 분위기에 신물이 난 지혜는 어린 나이에 가문을 버리고, 자신을 삶을 찾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이름까지 바꾸고 자신의 삶을 살던 지혜는 사랑하는 남자와 몰래 결혼하고 딸인 이혜민을 가지게 되었다. (혜민의 극 중 배역도 혜민이었는데 이는 아역이 자신의 배역에 몰입하기 쉽게 이름을 그대로 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가문과는 상관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했던 지혜의 바람은 사고로 남편을 잃고 딸인 혜민까지 잃을 위기에 처하자 그 뜻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혜민의 치료비를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당연히 반기는 사람은 없었고, 아버지도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딸에게 별다른 위로나 질책 없이 혜민의 치료비를 얻고 싶으면 바로 일을 배우라고 종용한다.

지혜는 집을 나가 몇 년 만에 돌아온 딸에게 어떠한 질책이나 질문도 없고, 남편을 잃은 딸에게 아무런 위로조차 건네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에 신물이 올라올 지경이지만 혜민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감내하게 된다.

그렇게 지내기를 몇 년 이제는 어엿한 한 계열사의 CEO가 된 지혜는 따듯한 마음과 차가운 이성을 모두 가진 그런 철의 여인이 되었다.

별다른 야망이 없이 자신의 자리만 지키는 지혜였지만 그녀의 뛰어난 능력이 두 오빠를 계속 자극하고 있었고, 두 오빠는 어떻게든 지혜를 실각시키려고 온갖 수를 다 쓰게 된다.

웬만한 일들은 다 모른 척 넘어가던 지혜도 상대가 혜민에게 접근하자 결국 칼을 뽑아 들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총수에 오르게 된다면 혜민까지 무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결국 왕위 쟁탈전에 발을 들이게 된 지혜는 대원 그룹이 가진 고질적인 문제점을 직시하고 그런 문제들을 하나둘씩 풀어가며 서서히 세력을 넓혀가며, 최종적으로는 대원 그룹의 회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아마도 여성인 지혜가 온갖 사건들을 다 해결하면서 두 오빠를 꺾고 회장 자리에까지 오르는 중심 스토리가 여성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주고 지혜와 남자 주인공의 아름다운 로맨스가 여성들의 감성을 충족시켜 준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챠밍포인트일 것이다.

민수가 가장 먼저 찾아간 배우는 장남 한성호 역을 맡은 배우 “정태성”이었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가장 어른은 삼 남매의 아버지, 회장 역을 맡은 원로 배우 “최원태” 였는데 이분은 오늘 촬영이 없어 촬영장에 나오시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민수가 다음으로 경력이 많은 태성을 찾아간 것이다.

이제 중견 배우 축에 들어선 정태성은 그렇게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제작사나 피디들 사이에서는 어떤 배역을 맡겨도 제 몫은 해준다는 평가를 받는 그런 배우였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아버지를 그대로 빼닮아 냉혹하면서 이성적인 장남 한성호를 연기하게 되었는데, 태성은 근래에 드물게 주연급 조연을 맡은 것이라 배역에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가 위기 상황에 부닥쳤을 때 애매한 배역으로 드라마에 참여해 준 민수에게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 박정우의 기사가 났을 때 가장 많이 화가 난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정태성이었다.

이제 정말 제대로 된 드라마에 이름을 올리나 하는 찰나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배역을 자처해준 민수가 고마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에 민수가 찾은 사람은 문제의 박창민이었다.

박창민은 TD 엔터에서 밀고 있는 배우 유망주였는데 상당히 준수한 외모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번에 맡은 역할은 방탕하고 오만한 둘째 아들 한정호.

지혜를 가장 백안시하는 인물임과 동시에 혜민이한테 검은 손을 뻗은 장본인이었다.

자신의 혈통에 프라이드가 강한 한정호에게는 혜민의 존재 자체가 눈엣가시 같은 상황이었다.

한정호가 대원 그룹을 차지하면 자연적으로 혜민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 없었으니 결국 지혜가 대원 그룹의 후계자 경쟁에 열을 올리게 만든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박창민은 민수가 인사를 하러 오자 뚱한 표정으로 민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민수를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조금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어? 정민수라고? 액션 배우 아니었어? 그 배역이 쉽지 않을 텐데. 뭐 잘해봐.”

창민이 민수보다 선배이고 나이도 두 살 많았지만, 초면부터 말을 놓는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스타일이면 설아가 확실히 싫어 할 만했다.

민수는 적당히 인사를 건네고는 별 말 없이 창민의 대기실을 나섰다.

이제 다음으로 만날 사람은 남자 주인공 “지은우”였다.

배우 지은우는 민수보다 선배이긴 했지만 민수보다 한 살 어린 배우였다.

정말 샤방하게 잘생긴 이 배우는 아직 연기에는 미숙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 외모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을 어필할 수 있는 그런 배우라고 할 수 있었다.

샤방한 꽃미남 계열에서 봤을 때 민수가 조금 남자다운 면이 보이는 박력 있는 꽃미남이라면 은우는 완전히 섬세하고 여린 꽃미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은우의 연기가 물론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민수가 생각하기에 로맨스만은 은우를 따라갈 만한 젊은 배우가 없었다.

결국 이 지은우란 배우는 민수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민수가 가장 만나고 싶었던 배우였다.

로맨스의 스페셜리스트라니.

민수는 이번 기회에 눈앞에 은우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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