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87화 (187/325)

# 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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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어서 3라운드가 시작되었다.

3라운드에서 설아가 선택한 노래는 이진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버려진 유기견을 의인화해서 표현했다는 이 곡은 민수도 평소에 아주 좋은 곡이라고 생각하던 노래였는데 민수는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 곡의 주인공이 유기견이 아니라 버려진 아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무래도 설아는 이번 출연에 확실히 감성적인 곡만 부르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1라운드는 듀엣곡이라서 그리고 2라운드는 외국곡이라 전달하지 못했던 그녀만의 독특한 감성이 이번 라운드에서는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버려진 자가 느끼는 외로움과 원망, 슬픔 그리고 쓸쓸함이 그대로 묻어났고 노래를 듣고 있던 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하게 적셔지고 있었다.

지금 설아는 어떤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민수는 지금 설아가 연기하는 표정이 너무나 궁금해졌다.

노래를 듣고 먹먹해지는 것은 수연과 태준도 마찬가지인 듯 그들의 눈시울도 조금 붉어져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관객들 사이에 잠시 정적이 감돌다 바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곡이 끝나자마자 한순간 관객들 사이에서 감돌았던 적막함이 설아의 노래가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마 1, 2라운드에서 받았던 느낌과는 또 달랐을 것이다.

패널들도 잠시 말을 잃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 극찬.

솔직히 저 패널들은 누가 나와도 칭찬만 해주는 사람들이긴 했지만, 오늘 저들이 쏟아내는 극찬이 가식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민수가 패널들의 칭찬을 듣고 있는데 옆에 설아의 콧대가 한 계단은 올라있는 것이 보였다.

마지 내가 잘했으니 이제 칭찬을 해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민수가 무슨 말로 그녀를 칭찬해줘야 할까 고민하는데 수연의 행동이 더 빨랐다.

“와…… 진짜 대박이네.

설아가 마음먹고 노래를 부르면 저렇게 되는구나.

조금 전에 민수가 한 말이 이런 거였어.

나도 순간 가면 안에서 네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진짜 궁금해지더라.

설아, 멋졌어.”

순수하게 감탄하는 수연과.

“오…… 대단한데.

역시 윤태준 동생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아주 훌륭해.

연기도 이만큼만 해주면 정말 좋을 텐데….”

감탄은 하지만 사족을 붙이는 태준을 보면서 민수는 말을 아꼈다.

대신 그냥 손으로 따듯하게 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설아도 민수의 손길을 즐기며 배시시 웃고 있었다.

배우들이 이야기하는 사이에 가왕 도전자는 설아로 결정되었다.

“와. 이거 진짜 설아가 가왕 되는 거 아니야?”

수연이 감탄하면서 기대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순간 가왕이 무대 위에 올라왔다.

“아….. 뭐야, 아직도 저 사람이 가왕이야?”

커다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귀여운 가면.

하지만 귀여운 가면과는 상반된 폭발적인 노래 솜씨.

지금 무대에 오르는 가왕의 이름은 “우리 동네 음악 깡패” 였다.

민수는 가왕의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어쩐지 전혀 노래 연습을 하지 않는 거 같더니 저런 엄청난 무대를 보이고도 가왕의 벽은 넘지 못했나 보다.

지금 가왕으로 있는 “우리 동네 음악 깡패”는 그야말로 이름처럼 깡패 같은 실력을 갖춘 진정한 고수였다.

기본적으로 저음도 맛깔 나는 데다가 하늘을 찌를듯한 고음을 아주 가볍게 구사하고 있으니 누구도 저 가왕의 실력을 깎아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라도 가장 오랫동안 가왕의 자리에 앉아 있기도 했다.

물론 민수는 설아의 노래 실력이 저 가왕과 비교해도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취향의 차이인데, 문제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설아처럼 노래를 부르는 가수보다 가왕처럼 날카로운 고음을 자랑하는 가수를 더 높게 친다는 것이었다.

가왕의 노래는 평소처럼 대단했다.

무대를 쥐고 흔드는 것이 참 공연에 익숙한 가수다웠다.

“에이….씨.”

수연은 무대를 완전히 폭발시키는 가왕의 노래를 듣고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음악 깡패님의 무대는 제가 봐도 대단했어요.

확실히 공연을 많이 한 티가 나는 무대였죠.

아마 전 나중에도 저렇게는 못 할 거에요.

그래서 별로 억울하진 않았어요.”

가왕의 노래가 마친 후 역시 평소처럼 패널들의 감상이 이어지고 바로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대결의 승자는………52대 47! 우리 동네 음악 깡패가 이겼습니다.

단 다섯 표! 다섯 표 차로 가왕이 자신의 자리를 지켜냅니다!]

결과는 예상대로 가왕의 승리였지만 민수는 설아가 저 가왕을 상대로 감성적인 노래만 불러서 5표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는 점을 대단하게 생각했다.

게다가 지금 시기는 저 가왕이 한창 인기가 있을 시기였고 앞으로도 한참 동안은 저 가왕이 왕좌를 지킬 테니 설아가 못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노래하는 초승달”의 정체는……. 이카루스의 “너와 함께” 뮤직비디오로 데뷔, “용의 울음”에서는 연화 공주로 “미스 신데렐라”에서는 제니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 신인 여배우 윤설아 씨였습니다.]

설아의 정체가 밝혀지자 방청객들 그리고 패널들까지 놀라서 난장판이 되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지금까지 한 패널도 설아의 정체를 짐작조차 못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반갑습니다. 신인 연기자 윤설아라고 합니다.]

설아가 가면을 벗고 인사를 하자 사람들의 환호성과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가면 때문에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평소의 청순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고, 제니로 연기할 때 했던 그런 두꺼운 화장이 아니라서 조금 생소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와, 진짜 배우였어?]

[아니 대체 쟤는 저렇게 예쁘고 연기도 잘하는데 노래까지 잘한다고?]

설아가 정식으로 인사를 하자 다시 패널들은 한바탕 칭찬을 늘어놓았다.

특히 정식으로 앨범을 발표하면 사겠다는 패널들도 있었는데 그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어쨌든 설아는 마스크 싱어에서 가왕전까지 오르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고, 설아의 출연은 그녀의 노래 실력을 세상에 알리면서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아쉬웠어. 설아야. 사람들이 조금만 더 눌러줬으면 가왕까지 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수연은 설아가 가왕이 못된 것이 못내 아쉬운 것 같았다.

“아니에요. 어차피 안됐어요.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왕같이 부르는 가수를 최고로 치거든요.

음…. 민수 오빠 말대로 가면을 벗고 싸웠으면 몰라도?”

설아는 자신의 얼굴이 다섯 표 가치는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옆에서 그 말을 듣던 태준이 혀를 차면서 딴죽을 걸었다.

“거기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은 거 알고는 있냐?

여자들이 재수 없다고 안 누르면 아마 지금보다 더 적게 받았을걸.”

하지만 설아는 태준에게 자신의 외모는 여자한테도 먹히는 외모라고 뻔뻔하게 근거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웃음을 자아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웃으며 이야기를 하던 민수는 슬슬 수연에게 자신을 찾은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래서 수연 선배는 무슨 일이에요?”

“아 그거. 후…..”

민수가 말을 꺼내자 밝게 웃던 수연이 축 늘어지면서 휴대폰으로 기사 하나를 보여주었다.

[배우 박정우 음주 운전 구속!]

“이 새끼가…… 음주운전으로 들어가 버렸어.”

민수는 수연의 말 한마디로 대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배우 박정우는 수연이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 “로열”에 중반부터 합류하기로 되어있었다.

흔히 관계자들 사이에서 인성을 갈아서 연기력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박정우는 연기력과 외모만은 누구라도 인정하고 있는 그런 배우였다.

민수도 그의 데뷔작을 볼 때마다 그의 연기력에 감탄하곤 했다.

아마 민수에게 그 정도의 충격을 준 젊은 배우는 태준을 제외하고는 박정우뿐일 것이다.

다만 인성을 갈았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인간성이나 생활 태도가 좋지 못했는데 폭력 사건이나 도박 등과 같이 안 좋은 사건에 연루되면서 몇 년째 자숙하는 중이었다.

데뷔작을 찍자마자 자숙에 들어간 박정우가 복귀작으로 선택한 것이 “로열”이었는데 출연 직전에 또 사고를 치게 된 것이다.

“하. 솔직히 난 저놈 들어오는 거 반대였어.

그런데 저놈이 방송국 쪽에 빽이 있는지 국장님이 싸고도는 바람에 작가님이랑 피디님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결국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시더라.

그나마 다행인 건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무리하게 주연이나 주·조연 말고 중반부터 들어오지만, 비중 있고 연기력이 필요한 자리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나 봐.

위쪽에서 오더가 들어온 거니 작가님도 별수 없이 결국 기를 쓰고 겨우 배역을 하나 만들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지금 저놈이 저렇게 날아가 버렸네?

근데 진짜 웃긴 건 인제 와서 저 배역을 없앨 수가 없다는 거야.

앞에 복선은 다 뿌려놨는데 그걸 지우려면 재촬영을 얼마나 해야 할지 상상이 안 될 정도야.”

아주 젊은 나이에 데뷔했던 천재 배우가 사고를 치고 자숙하다가 이제 슬슬 복귀를 위해 선택한 것이 “로열”이었고 작가가 박정우의 연기력에 맞춰서 배역을 만들었는데 민정우는 또 사고를 치고 다시 복귀가 미뤄진 상황.

그리고 누군가는 그 배역을 소화해 줘야 하는데 마땅히 대안이 없는 상황.

드라마 “로열”이 처한 상황이 좀 어이없긴 했다.

“도대체 배우 관리를 어떻게 한 걸까요?”

“그쪽에서는 차라리 음주운전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마약이나 폭행, 도박보다는 낫잖아.”

태준의 말대로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마약이나 폭행, 도박보다는 음주운전을 더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자기 혼자 손해를 보는 마약이나 금전적인 문제인 도박보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칠 수도 있는 음주운전이 더 위험한 범죄행위라고 생각하고 있던 민수는 이런 점이 참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지금 문제는 그 배역을 할 배우를 찾고 있는데 마땅히 없다는 거죠?”

“어. 맞아.

사실 진짜 안되면 태준이라도 붙들고 늘어지려고 했는데 저 녀석은 이제 시사회 일정에 들어가잖아.

정말 도움 안 되는 애인 님이라니까.”

아무래도 수연이 태준까지 찾을 정도면 배역도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박정우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배역이라면 젊은 배우들이 소화하기에는 조금 무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에이~ 우리 윤 배우가 어디 가서 남의 대타나 뛸 군번인가요?

무슨 배역인데 그렇게 곤란한 거예요?”

“솔직히 너나 태준이나 마찬가지지.

에릭 존스 감독이랑 영화까지 찍고 와서 그 영화가 내년에 할리우드에서도 개봉하는데.”

“에이~에이~ 그건 이거랑 상관없죠.

윤 배우는 주작에서 작년에 대상까지 받은 배우고, 전 아직 영화 2편에 드라마 1편 밖에 찍지 않은 신인이라고요.

어쨌든 대본부터 줘보세요.

우선 봐야 뭘 알겠으니.”

민수가 별다른 말 없이 대본부터 달라고 하자 수연은 신속하게 대본을 민수에게 내밀었다.

수연은 어이없게도 두 손으로 공손히 대본을 내밀고 있었다.

민수는 그런 수연의 모습에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참 이 선배가 지금 정말 급하구나 싶어서였다.

“지금 상황이 아주 더러워.

이제 다음 주에 바로 촬영에 들어가거든.

정말 어이없는 건 사고는 터졌는데 위에서는 서로 싸우기 바빠서 수습이 안 되고 있다는 거야.

우선 배우가 날아갔으니 대타부터 빨리 구해야 할 거 아니야?

이번 드라마가 시작부터 조짐이 좋아서 배우들도 다 기대하고 있거든.

그런데 며칠째 대타가 안 구해지니 결국 답답한 배우들이 발 벗고 나서게 된 거야.”

“뭐에요? 그건.

원래 언니 모셔가려고 예전부터 성의 보이던 제작진 아니었어요?

“맞아. 작가님이랑 피디님은, 그런데 문제는 그 위에 CP랑 스타 엔터 쪽이랑 계속 싸우는 거야.

국장님까지 껴서 말이야.

책임 소재부터 따지자는 건데……

원래 이런 식으로 문제가 터지면 CP가 책임을 지는데 그게 싫다는 거야.

박정우를 데려온 게 자기가 아니라는 거지.

CP는 지금 스타 엔터 쪽에서 드라마 국장한테 압박 넣어서 박정우 넣었으니까 알아서 책임지고 대타 구해오라고 하는 중이야.

그런데 지금 그게 되나? 지금 그쪽도 박정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을 텐데.

캐스팅에 가장 열을 올려야 할 CP가 그러고 있으니 지지부진이고.

작가님도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는데 답이 없는 모양이야.

솔직히 딴 건 몰라도 박정우가 외모랑 연기력 하나는 봐줄 만했잖아.

인성을 갈아서 그렇지.”

“그거참 웃긴 일이네.

CP가 그렇게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을 텐데.

드라마 전체적인 문제는 어쨌든 CP가 책임지게 되어 있는 거잖아?”

태준의 의문은 당연했다.

민수도 상황이 저렇게까지 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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