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82화 (182/325)

#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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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충동적인 행동에 이불킥을 날리면서 잠들었던 민수가 다음날 가장 먼저 만나러 간 사람은 바로 민 여사였다.

설아가 등장하는 바람에 말이 끊겼지만 태준이 말했던 전문가와 상의해 보라는 이야기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 그러니?

네 녀석들은 대체 왜 돈을 다 나한테 들고 오는지 모르겠구나.”

민 여사는 아침부터 찾아와서 통장을 들이미는 민수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민수는 몰랐지만, 배우들이 정산을 받은 후 그 돈을 다 민 여사에게 맡기고 있었다.

설아와 태준은 자신의 자식들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수연과 소희까지 자신에게 돈을 맡긴 것은 조금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자신을 믿는다는 이야기일까.

배우들이 쓸데 없는 소비를 하면서 헛바람이 드는 것보다는 바람직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특히 금전적인 부분에 애착이 상당한 소희의 돈을 날려 먹었다가는 아마 미안해서 잠도 제대로 못 이룰 거 같았다.

하지만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어떻게 은행에만 넣어 두겠어요?’라고 말하던 소희의 태도를 생각하면 자신이 받아 주지 않아도 다른 곳에 투자할 것이 명백하니 엉뚱한 곳에 투자해서 투자금을 날리느니 그냥 자신이 받아서 안전하게 관리해 주는 게 나아 보였다.

“그냥 내가 해주는 게 속 편하긴 하지….

그래. 그러니까 네가 요구하는 것은 효율적으로 기부를 하는 거란 말이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소속 배우들이 원하는 한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주기로 결심한 민 여사는 민수의 요구 조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벌써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혜민이 때도 느낀 일이지만 이 녀석은 참 남다르긴 했다.

“네. 여사님. 어떻게 하면 될까요?”

“너의 숭고한 뜻은 둘째치고 우선 기부행위 자체는 나도 찬성이란다.

이번에 갑자기 엄청난 이익을 얻었고 그에 따라 많은 세금을 내야 할 텐데, 어차피 세금으로 나갈 돈이라면 기부를 통해 절세하는 것도 확실히 나쁘지는 않아.

기부할 때 따로 내가 생각해야 할 조건 같은 건 없니?”

“음…… 어제 태준이랑 이야기하면서 생각한 건데요.

태준이 말대로 제가 많은 사람을 다 도와주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니까 우선순위를 정해 놓고 싶어요.

그러니까 혜민이처럼 병을 치료하기만 하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데 치료비가 없는 아동들을 먼저 도와주는 거죠.

지속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제가 계속 도와주기는 힘드니까 그건 다른 복지 재단에 기부하는 방법으로 간접적으로 도와주고요.

가능할까요?”

“대충 무슨 소린지 알겠어.

좋아.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니?

우선 너의 뜻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재단은 네가 홍보 대사로 있는 아동복지 재단이야.

“큰사랑 한사랑”은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자금 운용을 투명하게 하는 곳이거든.

그래서 우리가 너에게 홍보 대사가 되라고 추천한 것이고 말이야.

네가 홍보 대사로 있는 곳이니까 네가 꾸준히 기부하면 더 그림이 좋게 나올 거 같구나.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주기적인 기부를 하는 곳은 그곳으로 결정할게.

그리고 올해는 네가 얻은 재산이 너무 많아서 기부를 좀 많이 넣어도 돼.

그러니 재단 쪽에 연락해서 혜민이 같은 입장에 처해있는 아이가 있으면 바로 지원하도록 하자.

지원금액은 내가 세무사랑 상담해 보고 결정하도록 할게.

그래도 최소한 몇 명은 도와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이후에는 투자금으로 넣고 수익이 나는 금액을 주기적으로 기부하는 거로 하마.

그렇게 하면 원금 손실을 최소화로 하면서 꾸준히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을 거야.

그러면 되겠지?”

민 여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자 민수는 자신이 생각했던 데로 효율적으로 꾸준히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네, 여사님 그렇게 해주시면 될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태준이는 네가 넣는 금액만큼 같은 금액을 기부하기로 했고, 아마 다른 배우들도 어느 정도는 동참해 줄 거야.

너희들 덕분에 적어도 몇 명의 아이들이 더 밝은 세상을 살겠구나.”

“그럴까요? 그러면 참 좋은 일이겠네요.”

민수는 민 여사의 이야기를 듣고 뿌듯함에 미소 짓다가 문득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민 여사와 눈이 마주쳤다.

생각해보니 저번에는 민 여사에게 법무팀을 지원받았는데 투자 회사에 법무팀, 그리고 아리 재단에 세무팀까지 가만히 보면 민 여사가 손을 뻗고 있는 부분이 너무나도 넓었다.

민수가 이 모든 일을 총괄하는 민 여사를 존경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민 여사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민수를 놀리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왜 그런 눈으로 보니.

내가 아무리 돈 많고 능력 있는 예쁜 누님이지만, 난 자식이 있는 유부녀란다~

반하면 곤란하지~”

“끙…..”

“하긴….. 내가 너무 과하게 멋진 누님이긴 하지. 호호호.”

뜬금없이 튀어나온 장난스러운 말에 민수는 잠깐 자신이 가졌던 민 여사에 대한 존경심이 갑자기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분은 역시 태준과 설아의 어머님이었다.

윤 대표님의 성정을 생각해 보면 아마 그 남매의 장난기는 무조건 이분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민수는 민 여사와의 상담을 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휴게실에 들어섰다.

휴게실에는 설아와 혜민이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에 혜민이가 들어간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혹시 설아가 혜민에게 연기에 대한 조언을 하는 것일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둘의 모습이 사뭇 진지해 보여서 민수는 최대한 조용히 그들에게 접근했다.

“네. 그 이상한 아저씨가 자꾸 수연 언니를 귀찮게 하고 있어요.”

“그래? 그건 좀 곤란하네…..

지 버릇 개 못 주는 건가.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참 여전한 인간이네.”

“어? 오빠?!!!”

민수가 그들에게 거의 접근하자 혜민이가 먼저 민수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민수를 보자마자 오빠를 외치며 바로 달려드니 민수는 자연스럽게 자신에게 달려드는 혜민이를 안아 들었다.

“그래. 우리 혜민이 잘 지냈어?

요 녀석. 요즘 연기한다면서.

일은 어렵지 않아?”

민수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걱정하자 혜민이는 방긋 웃으며 재미있다고 이야기했다.

즐겁게 웃으며 재미있다는 혜민이를 보니 민수도 자신이 혜민이를 너무 어리게 보고 걱정만 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혜민이는 정말 즐거워 보였으니 말이다.

혜민이를 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민수는 슬쩍 설아의 눈치를 봤다.

어제 자신이 충동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고 도망갔으니 설아의 기분이 어떨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아는 그냥 평소대로 자신과 혜민의 모습을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모습이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아 어제 그 입맞춤이 자신에 꿈속에서 상상한 일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하마터면 준수 오빠가 헛바람이 들 뻔했다니까요.

우리가 사는 전셋집을 사는 건 좋은데 이상한데 투자하는 것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인데 오빠가 그걸 몰라요.

여사님이 강제로 수거해 가지 않으셨으면 준수 오빠는 그 돈 다 잃고 엉엉 울었을걸요.”

설아의 반응에 조금 마음이 놓인 민수는 뾰로통하게 이야기하는 혜민이를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이제 자신에게 귀여운 행동만 보이는 것은 포기했는지 혜민의 말 속에서 조금씩 어른스러운 생각들이 보이고 있었다.

그래도 민수에게는 여전히 귀여운 혜민이 일 뿐이었다.

혜민의 말을 들어보니 준수가 엉뚱한 곳에 투자하려다가 민 여사에게 덜미를 잡혀 돈을 압수당한 모양이었다.

“용의 울음”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준수도 생각보다 많은 보너스를 받게 되었는데 준수는 그 돈으로 우선 자신들이 사는 전셋집을 구매했다고 한다.

그리고 남은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하려고 했는데 그 투자처가 혜민이가 보기에도 얼토당토않았나 본데 그걸 혜민이가 민 여사에게 일러서 그 투자를 막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투자금은 고스란히 민 여사의 투자회사 쪽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마 민 여사가 소희와 수연의 돈을 거절하지 않고 바로 받은 것은 준수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혜민이가 보기에도 엉뚱한 투자를 하려고 했다는 준수도 참 대단했다.

9살 아이보다 보는 눈이 없다니.

그 녀석도 사업할 팔자는 아닌가 보다.

혜민과 설아는 민수가 오기 전에 촬영장과 촬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수연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로열”에 대한 이야기라는데 혜민의 말을 들어보니 드라마 촬영장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고 한다.

마지막에 민수가 얼핏 들은 말은 그것과는 좀 달랐지만, 그냥 못 들은 척하기로 했다.

수연이 드라마에서는 베테랑인 만큼 스스로 알아서 잘할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맞아요. 민수 오빠.

저 이번에 “마스크 싱어”에 나가게 되었어요. 헤헤헤.”

8명의 연예인을 모아 놓고 가면을 씌운 채 노래 실력을 겨루는 “마스크 싱어”는 설아가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프로그램이었다.

예전에 “시웨이”가 혼자 단독 출연해서 설아의 부러움을 샀던 “무모한 도전”과 함께 설아가 가장 출연하고 싶어 했던 예능 프로그램 두 가지 중 하나였는데 설아는 영화 출연 당시 얼굴을 알리기 위해서 패널로만 몇 번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설아가 나중에는 반드시 노래하러 나가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번 드라마에서 그녀가 인기를 얻게 되자 제작진이 설아를 섭외한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연습을 좀 해야겠네요.”

“맞아요. 제가 가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망신을 당할 순 없으니 열심히 연습할 생각이에요.”

당차게 두 손을 꼭 쥐는 설아를 보니 자신이 배우지만 가수 못지않은 노래 실력을 가진 것을 마음껏 뽐낼 생각인 거 같았다.

설아의 말을 대충 들어보니 아마 출연할 때까지 종일 노래 연습만 할 생각인가 본데 저거 저러다가 괜히 엄한 가수들에게 충격을 주는 건 아닌 가 싶었다.

틈틈이 노래연습을 하던 설아가 진심으로 연습하고 부르는 노래라.

민수의 눈에는 사람들의 놀라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다만 설아가 원하던 프로그램에 나가게 된 것은 좋지만 이제 드라마가 막 끝나가서 조금 여유가 생겨 날 시기에 그녀가 노래 연습 때문에 자신을 자주 보지 못할 테니 그건 조금 아쉬웠다.

설아의 말을 들어보니 촬영 일정은 며칠 남지 않았다.

이번 주 며칠 연습한 후 바로 촬영하고 다음 주에 바로 방송된다니 기다리는 시간이 별로 길지 않아 참 다행이었다.

민수는 당장 설아의 노래가 듣고 싶었지만, 방송 때까지 참기로 했다.

“세라”의 노래를 듣는 건데 그 정도는 참아야지.

민수에게 설아의 노래는 분명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설아도 노래 연습을 시작해서 자주 보기가 힘들어졌는데 태준과 수연은 더욱 만나기 힘들었다.

아마 촬영에 집중하다가 여유시간에는 둘이 따로 시간을 가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시간 동안 민수가 하는 일은 예전처럼 다시 “힐링 멘토”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과 설아의 식사를 챙겨주는 일이었다.

요즘 소속사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설아는 식사 시간 때마다 민수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호강을 하고 있었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민수의 음식 솜씨는 설아로 하여금 집에 가서 밥을 먹지 못하게 만들 정도였는데 만약 이대로 설아의 위장이 민수에게 정복당한다면 설아는 점점 민수가 없으면 살지 못할 몸이 될 수밖에 없었으니 어쩌면 민수가 제대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민수는 자신이 해준 음식을 야무지게 먹고 있는 설아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요즘 설아와 민수가 같이 있는 시간은 이 식사 시간이랑 같이 운동하는 시간뿐이었다.

드라마 촬영 때문에 바빠진 수연은 요즘 운동을 못 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혼자 외롭게 운동하는 설아를 위해 민수가 같이 시간을 내는 중이었다.

만약 이 소속사 안에 녹음실과 헬스장이 없었으면 민수가 설아를 보는 시간은 거의 없었을 테니 민수는 윤 대표의 지나친 딸 사랑이 만들어낸 녹음실과 헬스장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윤 대표가 소속사 내에 헬스장과 녹음실을 만들 때는 이 장소가 자신의 딸과 엉뚱한 놈팡이의 데이트 장소가 되거나 데이트를 도와주는 장소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만약에 알았으면 이런 장소를 다 치워 버리지 않았을까?

민수가 설아의 제지를 받아 유일하게 못 들어가고 있는 곳은 녹음실이었다.

설아의 노래를 한 번이라도 더 듣고 싶었던 민수로서는 참 애석한 일이었다.

“세라”의 노래를 단독으로 들을 이런 꿀 같은 기회를 놓치다니.

설아의 말로는 곡명을 최대한 숨기기로 계약되어 있어서라는데 어차피 자신이 나간다는 것을 다 밝힌 상황이라 그 말은 조금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아마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오늘 대전상대와 1라운드 듀엣곡 연습을 하고 온 설아는 민수가 해주는 스파게티를 먹으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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