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80화 (180/325)

#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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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큰돈이 생겼다고 너무 들뜨지 말거라.

하긴 네가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지만, 가끔 젊은 애들 중에는 돈이 생겼다고 바로 헛바람부터 드는 아이들이 있더구나.

돈의 사용처를 신중히 생각하고 잘 사용하리라 믿겠다.”

윤 대표에게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솔직히 금액에 너무 놀란 상황이라 크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 영화 하나에 이 정도를 벌 수가 있다고? 정말 세상이 요지경이긴 하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나랑 윤 배우가 공동 주연이었으니 그 녀석도 이 정도 받았을 거 아니야?”

한참 동안 멍하니 있던 민수는 드디어 반가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태준을 만나게 된 것이다.

“오…. 이게 누구야. 정 배우 아니야.

겨우 석 달 못 봤을 뿐인데 몇 년은 된 거 같아.”

민수도 반가운 얼굴로 다가오는 태준을 환한 웃음으로 반겨 주었다.

“하하. 오랜만이야 윤 배우.

그래. 촬영은 잘 돼 가시는가?”

“그럼 그럼. 내가 누군데. 내가 윤태준이라고.

자네도 수고가 많았구먼.

진짜 수연이 말대로 석 달 만에 그 영화를 다 끝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역시 대단해.”

민수는 태준의 말에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서로의 어투가 왠지 20대의 젊은이들이 아니라 중년을 넘은 남자들이 대화하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말하는 게 어딘가 조금 이상하지 않아?”

“역시 그런가?

나도 왠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난 그냥 정 배우한테 맞춘 거뿐인데 말이야.

우리 정 배우가 가끔 보면 참 고풍스럽단 말이야.”

“끙….. 역시 내가 이상한 거였어?”

“이상하긴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난 점잖아 보여서 괜찮던데.”

태준과 둘이 대화하다 보면 가끔 이런 식으로 나이든 어투로 말하게 되는데 태준은 다행히 그냥 고풍스럽다는 말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마 태준과 대화하는 것이 너무 편하다 보니 가끔 전생의 어투가 나와서 그런 거 같았다.

“윤 배우. 내가 말이야. 오늘 오자마자 대표님한테 정산서를 받고 말았어.”

민수가 진지하게 정산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태준도 민수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대충 알아듣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래? 하긴 나도 받고 많이 놀랐거든.

아버지가 해외 쪽 수익은 주연 배우 쪽으로 몰았다고 했을 때는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그게 돈으로 들어와 버리니 황당하긴 하더라고.”

“용명”이 중국에서 분배받은 수익이 대충 350억 정도였고 그 밖에 배우들이 중국에서 얻은 이익이 대략 80억.

여기서만 두 주연 배우가 각자 80억 정도를 분배받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외의 수익이 일본에서 발생하였다.

“사실 이거 정말 순수하게 정 배우 덕에 얻게 된 수익이거든.

솔직히 누가 우리 영화가 일본에서 그 정도 수익을 낼 거로 생각했겠어?

이게 다 정 배우가 일본에서 비스또가 되어서 그런 거라고 볼 수 있지.”

태준의 말대로 일본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익을 얻게 된 것이 배우들의 수익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였다.

일본 극장가에서 “용의 울음”이 얻은 총 수익은 40억엔, 한화로 대충 400억이었고 윤 엔터 쪽에 배분된 금액은 120억 정도였다.

솔직히 이것만 해도 정말 예상치 못한 선전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정말 대박은 바로 DVD 판매량이었는데 영화보다는 DVD 사업이 더 발전한 일본답게 무려 100만 장이 넘게 팔려나가면서 50억 엔의 수익을 추가로 기록하게 된 것이다.

특히 한정판 DVD에는 형우가 개인적으로 찍었던 민수와 배우들의 사진과 각종 에피소드가 포함된 책자와 화보를 따로 추가했는데 일본 배급사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이 한정판은 자본주의 정신의 끝을 보여주며 무려 1만 엔이라는 고가에 발매되었지만 금방 다 팔려나갔다.

어쨌든 일본에서 생각지도 못한 추가 이익을 얻게 된 윤 엔터는 계약서 규정대로 바로 두 주연 배우에게 수익 배분을 하게 되었고 결국 태준과 민수는 일본과 중국에서 얻은 이익으로 각자 150억, 소속사에 30%를 분배한 후에도 105억 정도를 얻게 된 것이다.

“100억이라니 솔직히 좀 웃기네.

이걸 어떻게 할까 고민되기도 하고 말이야.

사실 처음에 받은 30억도 엄청 많다고 생각했거든.”

“하긴 그렇긴 하지.

일이 이상하게 커져서 수익이 생각보다 너무 많긴 해.

나도 처음에 받을 때는 조금 당황하긴 했어.”

“그래서 윤 배우는 어떻게 했는데?”

“음…. 솔직히 내도 배우 생활을 시작한 지 6년인데 지금까지 번 돈보다 이번에 영화 하나를 찍고 번 돈이 더 많아.

그래서 놀란 거고.

우선 내 돈은 지금 어머니한테 가 있어.

그쪽에서 따로 투자회사를 돌리고 있으니까.

사실 내가 들고 있어봤자 마땅히 쓸 데도 없잖아.

어머니가 알아서 굴려 주시겠지.”

“그래? 민 여사님이라…..”

아리 재단을 운영하는 민 여사는 따로 투자회사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직접 업무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맡긴 투자회사는 크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이익을 얻어 아리 재단에서 버리는 여러 가지 복지 사업을 지원하고 있었다.

“의외네. 정 배우가 돈에 대하여 고민하는 건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원래 돈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잖아?”

“아? 그건 그런데…..”

그냥 받자마자 은행에 넣어 놓고 신경 쓰지 않을 거로 생각했던 민수가 예상외로 돈의 사용처에 대하여 고민하자 태준의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윤 배우도 알다시피 내가 그렇게 유지비가 많이 들어가는 인간은 아니야.

특별히 사치하는 성격도 아니고 내가 먹고살 돈만 있으면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래서 돈에는 조금 초연해 보이기도 했을 거야.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지고 있어.

윤 배우도 알겠지만, 예전에 혜민이가 많이 아팠잖아.

그래서 내가 치료비를 대주었고.

그런데 내가 그때 그 돈이 없었으면 혜민이는 어떻게 됐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까 확실히 돈을 쥐고 있긴 해야겠더라고.

“음….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긴 하네.

그런데 그 정도는 지금 가지고 있는 돈 정도면 이미 충분한 거잖아.

따로 생각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맞아.

지금 번 돈이면 내 주변에 사람들이 잘 먹고 잘사는 데는 충분하겠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돈이 늘어날 테니까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거야.

그런데 갑자기 돈이 이렇게 늘어나니까 혹시 또 혜민이 같은 애들이 또 어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그들을 모두 도와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도와주고 싶어.”

태준은 이제야 민수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혜민이처럼 어려운 애들을 좀 도와주고 싶다는 거네.

흠…..

좋은 생각이긴 한데.

무작정 도와준다고 나선다고 될 일은 아니네.

어려운 사람들은 계속 나올 거고 정 배우가 가진 돈은 한계가 있으니까 말이야.”

“아 물론 나도 내가 모든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는 건방진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아.

그냥 내 손길에 닫는 사람들만이라도 좀 도와주고 싶다는 거지.”

“그래?

그럼 우선 어머니한테 상의해 봐.

우선 우리 아리 재단이 기본적으로 복지 재단이거든.

그러니까 이쪽 방면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실 거야.”

태준은 돈이 생기자마자 기부부터 생각하는 민수가 좀 유별나 보이기도 했지만 원래 처음부터 이런 성품을 가진 녀석이다 싶어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좋아.

만약 정 배우가 결정하면 나도 손을 좀 보탤게.

사실 우리한테 이번 수익은 정말 불로소득이나 마찬가지잖아.

의외로 얻은 수익이니 좋은 일에 써도 나쁘지 않을 거 같네.”

하지만 자신을 위해 돈을 쓸 생각은 전혀 없어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 베풀 생각부터 하는 민수가 조금 어이없기도 했다.

과연 이 친구는 어떤 욕구와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일까.

“혹시 말이야. 정 배우는 따로 무슨 로망 같은 게 있었어?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꼭 하고 싶다 이런 거 말이야.”

“로망이라……”

“사실 난 어렸을 때 커서 돈을 많이 벌면 정말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싶었어.

왜 그런 거 있잖아. 진짜 비싼 스포츠카를 몰고 서울 시내를 질주하는 거야.

그러면 웬만한 차들은 다 내 차를 피해 갈 거야.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쫙~ 갈라진 모습을 보면 얼마나 짜릿하겠어?

그리고 차고에 원하는 차들을 쫙 진열해 놓고 뿌듯하게 구경하는 거지.

주차장에 여러 대의 스포츠카를 진열해 놓으면 참 볼 만한 거야.”

민수는 태준이 어렸을 때 비싼 스포츠카를 몰고 싶었다고 말하자 참 그 나이 때 다운 생각이다 싶어 웃음을 지었다.

“사실 진짜 말도 안 되게 비싼 놈이면 몰라도 지금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

하지만 한국에서 배우가 그런 차를 몰고 다니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안 봐도 뻔해서 진작에 포기했어.”

태준의 말대로 아무리 돈이 많다 한들 배우가 그런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조금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자신이 번 돈으로 자신이 사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온갖 색안경을 쓰고 자신들만의 잣대로 판단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인기로 돈을 번 배우가 대중들에게 박탈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대중들의 시선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번 돈을 떳떳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이야기들은 어느 쪽이 옳은지 명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은 그런 연예인을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고 구설에 오르면 손해 보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기 때문에 연예인들이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태준의 말을 듣고 민수도 자신이 예전에 어떤 로망을 가지고 있었나 생각해 보았다.

아주 먼 기억이었지만 자신도 분명 그런 로망이 있긴 했다.

“그래…. 로망이라……

사실 나도 있었지.

내 로망은 집이었어.

거대한 정원에 수영장이 있는 집을 가지는 것이 내 소원이었지.

내가 어렸을 때 우리는 집이 없었거든.

엄마도 아빠도 자신의 집을 꼭 가지고 싶어 하셨는데 마당이 큰 집에서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고 싶다고 종종 말씀하시곤 했어.

그리고 그때마다 난 수영장이 있는 큰 집을 살 거라고 큰소리쳤지.

엄마 아빠는 내 말을 듣고 그냥 웃기만 하셨는데…..

아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셔서 그랬을 거야.

“집이라…. 서울에서라면 무리지만 서울 근교라면 충분히 가능하긴 하지.

조금만 나가면 그 정도는 지금도 가능하지 않겠어? 소속사랑 멀지 않은 곳을 생각하면…..”

태준이 가능성을 따지듯 여러 장소를 언급하자 민수는 피식하고 웃으며 태준을 말렸다.

“뭘 의미도 없는 걸 가지고 가능성을 따지고 있어?

내가 혼자서 그렇게 집을 지어 봤자 뭐 하겠어?

원래 혼자 사는 사람에게 그런 큰집은 그냥 독일 뿐이야.

그래서 난 지금이 참 좋아.

매일 이렇게 친한 사람들이랑 쉽게 만날 수 있잖아.”

웃으면서 말하는 민수의 표정은 조금 쓸쓸해 보였다.

자신이 집을 사줄 여력이 있음에도 받아줄 부모님이 없어서일까?

태준은 자신이 괜한 말을 한 거 같아 더 환하게 웃으며 민수에게 이야기했다.

“뭐. 지금 당장은 그렇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같이 가자고.

서울 근처에 그런 집 지어놓고 나랑 수연이랑 정 배우랑 설아랑 같이 살면 되겠네.

그럼 지금처럼 계속 친하게 지낼 수 있지 않겠어?”

“풋. 이 친구야. 그건 너무 갔잖아.

자네가 수연 선배랑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나도 설아 씨랑 잘된다는 보장도 없으니 말이야.”

민수가 웃으며 말하는 중 멀리서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들려온다.

민수는 자신의 가슴이 갑자기 급하게 뛰어오기 시작하자 이 발걸음 소리의 주인이 설아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설아가 아니라면 자신의 가슴이 이렇게 뛸 리가 없다.

그리고 드디어 저 코너를 돌아 설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석 달 동안 화면으로만 봐왔던 그 설아였다.

화면에서 보여주던 그런 성숙한 모습이 아니라 화장을 지운 평소의 귀여운 설아였다.

“아…..”

석 달 동안 계속 생각해 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설아를 보지 못한 석 달의 시간 동안 그녀가 더 좋아지기라도 한 것일까.

태준도 설아처럼 그립긴 마찬가지였는데 태준을 볼 때 자연스럽게 나왔던 웃음이 설아를 보고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민수는 자신에게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설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냥 그녀를 잠시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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