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78화 (178/325)

#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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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다다 분풀이를 하는 형우의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소희가 시작부터 많은 텃세에 시달린 모양이었다.

아마 소희가 삼화의 위시춘 사장 쪽에서 직접 캐스팅한 것이라 더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다른 배우들은 중국에서 별다른 뚜렷한 경력이 없는 소희가 아마 낙하산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게다가 처음부터 상당히 비중 있는 배역을 맡았으니 끓어 오르는 질투심도 텃세의 이유가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아후. 진짜 참다 참다 못해서 소속사에 연락하지 않았으면 정말 별의 별꼴 다 당할 뻔했다니까.”

원래 배우들의 사소한 텃세는 소속사에서 터치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심할 때는 소속사를 통해서 경고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다만 이런 경우 한국 소속사가 아무리 항의해도 별 효과 없는 경우가 많은데 소속사에서 삼화 필름 쪽을 타고 경고를 전달해서 다행히 어느 정도 시정이 있었나 보다.

“이제 진짜 매니저 다 됐구만. 조형우.

내가 다 뿌듯하다.”

형우가 중국에서 소희를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했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확실히 형우도 이제 어엿하고 제대로 된 매니저였다.

아마 첫 스케줄을 중국으로 떠나게 된 극한 상황이 형우의 잠재능력을 한껏 끌어올린 것 같았다.

민수는 반가운 손님 소희가 “천루 시티”와 촬영장을 구경할 수 있게 에릭 감독의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에릭 감독의 허락하에 소희가 촬영장을 찾자 한창 남탕이라 칙칙하던 영화 촬영장이 조금 활기를 띠게 되었는데 스턴트맨 팀의 젊은 남자들이 소희에게 더 멋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평소보다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동양의 미인이 서양 남자들에게도 충분히 어필이 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좋은 구경 했어요 선배님. 나중에 한국에서 다시 봬요.”

“그래요. 소희 씨. 몸 건강히 촬영 마무리 잘하세요.”

소희는 하루 동안 영화 촬영장을 구경한 후 호텔에서 쉬고 바로 다음 날 바로 한국으로 출발했다.

이 하루 동안 민수가 느낀 것은 소희랑 형우가 생각보다 더 사이가 좋아 보였다는 것이다.

아무리 소심한 소희라도 오지랖의 달인 형우의 너스레에는 당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같이 국외로 나와 있다는 동질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원래 그런 의도로 소희와 형우를 붙였으니 아무래도 소속사의 예상대로 형우가 제 몫을 해준 모양이었다.

민수는 떠나는 형우와 소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이 촬영을 잘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조금씩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던 민수였지만 이곳에서 느끼는 유일한 즐거움이 있었으니 그것은 식자재를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서양인 스태프들의 점심을 위해 양식 전문 요리사도 촬영장 근처에 자주 들렀으니 틈틈이 쉴 때마다 그에게 다가가 자신이 잘 알지 못했던 양식에 대한 팁을 얻을 수도 있었다.

처음에는 민수의 접근에 조금 당황해하던 요리사도 민수가 계속 친근하게 다가오니 민수에게 마음을 열고 즐겁게 소소한 팁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민수는 지금까지 배운 사실을 토대로 제대로 된 스테이크를 요리하고 있었다.

스테이크는 이론적으로는 아주 단순한 요리지만 사실 어떻게 굽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라 요리사의 역량을 바로 파악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민수가 준비한 것은 가장 흔하게 취급하는 등심 스테이크와 베이컨 감자 수프였다.

오늘 민수의 음식을 얻어먹을 희생양은 바로 스티븐 로우와 스턴트맨 잭슨이었는데 둘은 전문가처럼 고기를 굽고 있는 민수의 모습에 조금 놀란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요리가 끝난 민수는 스테이크 두 접시를 들고 각자 앞에 내려놓았다.

스티븐과 잭슨은 처음에 민수가 요리를 해주겠다고 했을 때 내심 비웃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훌륭한 스테이크나 나오자 기대에 찬 얼굴로 칼을 들고 고기를 썰었다.

살짝 핏기가 새어 나올 정도로 잘 조리된 고기.

고기의 겉은 확실하게 익었지만 고기 내부는 약간의 핏기와 함께 촉촉함이 살아있어 스티븐과 잭슨의 만족감을 높여주고 있었다.

“오… 좋은데 Boy. 생각보다 더 괜찮아. 이 정도면 그냥 팔아도 되겠어.”

약간의 립서비스가 포함되어 있겠지만 맛있는 것은 확실해 보여 민수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설아나 소속사 친구들에게도 충분히 대접해 줄 만했다.

민수는 오늘 자신의 실험대상이 되어준 두 친구를 감사하며 나중에 서울에 가면 소속사 식구들에게도 꼭 한번 대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즐겁게 식사 시간이 끝나고 배가 부른 스티븐은 민수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지나가듯이 민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 장면을 같이 연기하는 스티븐도 요즘 민수의 태도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Boy. 요즘 좀 늘어진 것 같은데 내 기분 탓인가?

무슨 문제라도 있어?”

“음…. 조금 그래. 너무 반복되는 듯한 액션에 긴장감이 떨어진 거 같아.

이러면 안 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네.”

솔직한 민수의 대답에 스티븐은 그럴 수도 있겠다며 우선 민수의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하긴. 웬만한 놈이 그런 소리를 했으면 건방 떨지 말라고 했겠지만, 솔직히 넌 그럴 자격이 있지.

아무리 어려운 액션 연기도 무난하게 소화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이게 아무리 쉽게 느껴져도 위험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아.

그러니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괜히 다치기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처음에는 무모하게 행동하던 스티븐도 한차례 위기를 겪은 후부터 안전 문제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특히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민수가 사소한 실수로 크게 다치는 것을 누구보다 경계하고 있었다.

민수는 스티븐의 말을 듣고 자신의 행동에 경각심을 끌어올리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확실히 스티븐까지 이렇게 느끼고 있을 정도라면 확실히 요즘 자신이 너무 부주의하긴 했었나 보다.

“그래. 그렇지.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할게.

만약 다치면 나만 다치는 게 아닐 테니까 말이야.”

스티븐은 민수가 자신의 말을 알아듣고 조심하겠다는 뜻을 전하자 웃으며 민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민수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준 스티븐은 민수가 별다른 반발 없이 자기 뜻을 받아드리자 마음이 편해져서 앞으로의 촬영 일정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마무리 단계에 들어갈 거지?

몇 가지 자잘한 장면들도 추가로 촬영하겠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마지막 대폭발 씬 아니겠어?

조 가 모든 악연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한 번에 다 같이 펑~”

민수는 장난스럽게 “펑”이라고 말하며 손가락을 모아 쥐었다가 쫙 펴는 스티븐의 모습이 제법 우스워서 작게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말이 대폭발 씬이지 그냥 CF로 폭발을 표현할 뿐이니 별거 없잖아.

실제로 폭발시키면 볼만은 하겠지만…. 그랬다가는 우리 세트장이 다 날아가겠지?

사실 우리 영화보다 이 세트장이 더 비쌀 테니까 말이야.”

“오~ 세트장이 영화보다 비싸다는 말은 마음에 확 와 닿는데.

진짜 CG 없을 때는 정말 이런 영화를 어떻게 찍었나 모르겠어.”

민수는 가볍게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사실 이 마지막 씬은 그렇게 가벼운 장면이 아니었다.

살육자 조 가 아닌 냉철한 헤드가 되어 여러 가지 정보를 교란해 모든 인물을 한자리에 모으는 기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장면으로 아마 사람들은 조가 단순한 돌격대장이 아니라 진정으로 완성형 비밀 요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마지막 장면 역시 민수에게는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처럼 실컷 싸우다가 마지막에 다 같이 폭사한 것처럼 죽음을 위장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장면이 끝나고 이어질 죠와 메이의 재회가 민수에게 더 의미가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원래 이 영화는 마지막에 조와 모든 악연이 동시에 폭사하는 것처럼 끝날 계획이었다.

그렇게 영화를 마치면서 사람들에게 조가 정말 죽었는지 아니면 혹시 살았는지 궁금증을 유발해 여운을 남기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이런 감독의 계획이 영화 막바지에 와서 많은 사람의 반대 때문에 결국 그냥 살아서 메이와 재회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스태프들이 엔딩의 변경을 주장한 이유는 민수가 지금까지 너무 연기를 잘해서 인세의 최종병기같이 표현된 조가 자신이 심어 놓은 폭탄으로 같이 죽는 것은 말이 안 돼서였는데 에릭 감독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스태프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마지막에 린과 한 컷을 더 찍으면서 민수도 다시 한번 감정연기를 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그 멍청이는 요즘 어때? 아직도 너한테 나대는 건 아니겠지?”

스티븐이 말하는 멍청이는 바로 민수에게 시비를 걸다가 역으로 당해 망신살이 뻗친 “리 얀”이었다.

얀은 저번에 민수에게 된통 당한 후부터는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 않고 최대한 자숙하는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중국인 스태프들에게 실망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것 때문에 그 점을 만회하기 위하여 자신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거 같았다.

그리고 민수는 가능하면 그런 자세가 촬영 끝날 때까지 이어지기를 바랐다.

“뭐… 요즘은 별말 없지 않나. 연습 때도 그냥 평범하게 하는 거 같고.

촬영 때는 더 조심하는 거 같으니 당분간은 문제없지.

그래도 가능하면 촬영 마칠 때까지 계속 그랬으면 좋겠어.”

“흥 그렇겠지. 정해진 합으로도 NG를 내는 놈이 무슨 액션 배우야? 스턴트맨도 그 정도는 다 하겠다.”

옆에서 조용히 식사하던 잭슨도 얀의 이야기가 나오자 짐짓 목소리를 올렸다.

아마도 얀이 스턴트맨들한테도 조금 반감을 산 모양이었다.

하나를 보면 열은 안다고 원래 인성이 그러니 아마 스턴트맨들을 조금 무시했었나 보다.

민수가 강제로 얀의 NG를 유도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스티븐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민수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난 네가 그 촬영에서 한 짓을 알고 있어. 라는 눈빛인 거 같은데 민수는 애써 스티븐의 눈빛을 무시하며 말을 돌렸다.

“어쨌든 끝이 다가오고 있긴 하네.

마지막까지 열심히 하자고.”

그리고 정말 촬영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민수가 억지로 말을 돌린 것은 아니었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민수는 조금 느슨해졌던 집중력을 다시 올려 최선을 다해 촬영에 임하였다.

그렇게 민수가 다시 집중력을 올리자 촬영도 더욱더 빠르게 진행되었고 별다른 문제 없이 촬영의 끝을 향하여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민수의 신경을 거슬리던 얀 마저 요즘에는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자숙하고 있었으니 영화의 촬영은 탄탄대로를 걸을 뿐이었다.

민수와 스티븐이 이야기했던 대폭발 장면도 아무런 문제 없이 부드럽게 넘어갔다.

애당초 배우들이 서로 감정을 나누는 장면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완벽한 동작으로 에릭 감독의 기대에 부응할 뿐이었다.

이 장면에서는 피터와 조의 화려한 섬세한 장거리 저격 전, 그리고 조와 시우의 격렬한 격투 씬이 이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을 선사할 것이다.

다만 이 정면을 촬영할 때 얀이 민수에게 처절하게 달려들어 영상을 더 빼어나게 꾸며 주었다.

아무래도 저번에 격투 장면에서 당한 망신을 이번에 만회하려고 그런 거 같은데 확실히 얀이 작정하고 합대로 움직이자 저번에 조를 놓친 시우가 이번에는 집중해서 조에게 공격을 퍼붓는 상황과 맞아떨어졌고 결국 생각보다 더 좋은 영상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번에는 얀의 노력이 가상해서 민수도 얀에게 최대한 맞춰 주었으니 얀도 저번에 깎인 체면을 어느 정도는 만회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피터와 시우까지 가까스로 쓰러트린 조는 자신이 매설한 폭탄을 화려하게 터트리며 자신을 잡으러 온 모든 사람을 지옥행 열차에 길동무로 삼은 것처럼 보였다.

대폭발 장면까지 촬영이 끝나자 드디어 에필로그 부분을 촬영하게 되었다.

영화의 에필로그는 혼자 중국에서 돌아온 메이가 겉으로는 밝은 척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런 메이를 멀리서만 지켜보던 조가 눈물을 흘리는 메이 앞에 결국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게 되는데, 슬픈 표정으로 울던 메이가 조를 발견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환하게 웃는 것이 이 장면의 백미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장면을 찍을 때 민수는 무표정한 얼굴에서 조금씩 표정을 움직여 결국에는 웃으며 메이를 반겨줬어야 했는데 한동안 표정 없는 얼굴로만 연기해서 그런지 당장 그런 섬세한 표정을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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