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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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신데렐라” 설아가 출연하고 있는 이 드라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신데렐라 물이다.
착실하지만 매사에 자신감 없는 여자 주인공 민아(배우 김주아)가 대기업인 우주 그룹에 취업하고 그곳에서 예전에 짝사랑하던 남자 주인공(정제)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극으로 꾸민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남자 주인공은 공교롭게도 이 우주 그룹의 후계자였는데 몸이 안 좋았던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났던 가슴 따듯하고 착한 소녀인 민아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쨌든 이 “미스 신데렐라”는 앞으로 여주인공 민아와 남자 주인공 정제가 다시 만나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이 메인 스토리로 진행될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지만 여성의 로망을 자극하는 이런 부류의 이야기들은 작가가 극을 잘 구성하기만 하면 확실히 통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설아가 맡은 배역인 “제니”는 아름다우며 매사에 자신감 넘치고 자신을 정말 사랑하는 커리어우먼이었는데 우주 그룹에서 민아의 직속 상사로 민아의 롤모델 격인 인물이었다.
이 “제니”라는 인물은 아름다운 외모와 우월한 업무능력으로 회사 내에 여왕벌 같은 존재였는데 사실 혈통조차 범상치 않아 훗날 남자 주인공 정제와 혼담까지 오가게 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거의 모든 대화를 직설적으로 하는 편인 데다가 답답한 것은 절대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초반에 여주인공인 민아에게 때때로 모진 소리를 하곤 했는데 그런 모습이 “제니”의 조건들과 합쳐져 그녀를 비호감 악역처럼 생각되게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극 초반뿐이었고 기본적으로 솔직할 뿐 뒤끝이 없고 음모를 꾸미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연기하기에 따라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를 여럿 가지고 있었다.
다만 설아가 걱정했듯이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도도하고 거만하기까지 한 그녀의 태도를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민수는 타이트하고 짧은 H라인 스커트에 고급 블라우스를 입고 한껏 짙은 눈 화장으로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성숙해 보이는 설아의 모습을 화면 너머로 잠시 감상했다.
얼마나 성숙하게 잘 꾸며 놓았는지 실제 나이는 21살인 주제에 주인공 민아(실제 나이는 27살)에게 한창 팩트 폭격을 날리면서 나무라는 장면이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저런 부분은 설아의 장점이었다.
화장을 옅게 했을 때는 확실히 나이 때의 귀여운 아가씨처럼 보이지만 눈 화장을 짙게 하면 20대 후반의 성숙한 여성을 연기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여성미 넘치는 몸매가 짙은 화장을 뒷받침하고 있었으니 아마 설아를 모르는 상황에서 저 화면만 보고 설아의 실제 나이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 것이다.
그리고 아마 작가도 그런 설아의 그런 면모를 충분히 알고 설아를 섭외했을 것이다.
아마도 K-G와의 뮤비에서 보여줬던 매혹적인 모습이 작가의 결심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설아의 연기를 가만히 살펴보니 설아는 “제니”라는 인물의 연기 방향을 뻔뻔함과 따듯한 눈빛으로 잡은 모양이었다.
화면 속 제니는 민아를 한껏 나무라면서도 항상 따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내가 너를 걱정해서 이러는 거야. 너도 잘할 수 있을 거야. 라고 꾸준히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차가운 말을 하면서도 계속 그런 모습을 보이니 확실히 제니는 민아를 도와주고 응원하는 인물로 비춰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제니를 칭찬하고 그녀에게 찬사를 보낼 때마다 나니까 당연하지. 내가 이 정도 하는 건 당연한 거야. 하는 거처럼 정말 뻔뻔하고 자연스럽게 대꾸하니 차라리 조금 유쾌하기까지 했다.
자신감 넘치고 속마음이 따듯한 미녀 커리어우먼이라…...
만약 설아가 이대로 끝까지 잘 연기하기만 하면 그녀가 연기하는 “제니”는 분명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미스 신데렐라”가 6회까지 방영된 지금 드라마의 시청률이 이미 20%를 넘어서고 있었으니 설아의 첫 드라마는 이미 성공 가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었다.
“어디 보자…..
[팩폭여왕 제니 박의 일침 어록]이라…
여자들이 남자들한테 잘 보이려고 예쁜 옷을 입는다고? 응, 그런데 그 남자가 너는 아니야.
일찍 퇴근하겠다고? 어차피 집에 가봤자 할 것도 없잖아. 집에서 TV나 안고 있을 거면 그냥 일이나 더 하고 돈이나 더 벌어.
바빠서 시간이 없데? 그냥 너랑 만나기 싫은 거 아니야?
김 부장님이 너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그냥 네가 일을 못 하는 거야.
와 이런 대사도 있었어? 진짜 팩폭인데 이거…..
그런데 벌써 이런 게 올라오는 걸 보니 확실히 드라마도 그렇고 설아 씨도 그렇고 잘되고 있긴 하구나.”
여러 기사나 사람들이 올린 글들을 보니 역시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여주인공 김주아 선배였지만 등장할 때마다 일침을 날리고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설아도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래요. 설아 씨 이렇게만 해요.”
설아의 드라마가 선전하고 있는 가운데 태준의 영화도 크랭크인에 들어가 촬영이 한창이었다.
윤태준 단독주연의 법정 스릴러 “일리걸”
올해 태준이 자신과 같이 “용의 울음”을 촬영하는 바람에 전생과는 행보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민수는 이 영화의 흥행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었다.
아니 그전에 완전히 달라진 태준의 행보에 그가 어떤 길을 걸을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원래 전생에 태준은 지금 한창 중국 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중국에서 드라마도 찍었고 그 뒤에는 다시 한국으로 들어와 “로드 오브 트릭 (Lord of Trick)” 이라는 영화로 다시 한번 톱스타로 발돋움하게 되는데 이 미래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잘 돼야 할 텐데….”
민수는 만약 자신이 등장한 바람에 태준의 미래가 바뀌어 전생만큼 대단한 배우가 되지 못한다면 마음이 아주 쓰라릴 거 같았다.
자신과 관계없는 일들이 전생과 같이 흘러가는 것을 보니 자신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윤 엔터가 전생과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은 결국 자신 때문이라는 말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수가 가장 바라는 것은 자신이 가장 본받고 싶었던 태준이 자신의 영향을 받아 더 큰 스타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 잘 될 거야. 워낙 잘난 녀석이니까…..”
중국으로 넘어와 이제 두 달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민수는 사실 조금씩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었다.
최고급 대우와 체계화된 촬영 일정, 그리고 대단한 감독과 훌륭한 스턴트맨들이랑 같이 하는 액션 연기는 민수에게 정말 좋은 경험이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무감각해지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대사 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표정 연기도 좋지만, 그것도 처음 부분만이었고 그 후에는 대부분 상대를 제압하고 때려 부수는 내용뿐이었다.
다른 배우였으면 모르겠지만 지금 민수에게는 이런 액션 연기가 단순한 노동과 마찬가지였으니 민수가 조금 무기력증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만약 민수가 말도 안 되는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피곤함에 이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겠지만, 현실은 어쨌든 매일 일하러 가는 노동자 같은 심정으로 촬영에 임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정민수 액션의 끝을 보여주자는 윤 대표와 민수의 결의조차 이미 지금껏 촬영한 부분으로 어느 정도 목표를 달성한 것 같았기 때문에 민수의 무기력증은 점점 더 커질 뿐이었다.
게다가 민수가 소속사 식구들이랑 연락을 끊은 것은 정말 악수로 작용하였다.
한평생을 외롭게 지내고 혼자가 익숙했던 민수는 이제 옛말이라는 듯이 소속사 식구들과 연락하지 않은 한 달이 넘는 시간은 민수의 외로움을 집요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소속사 식구들의 소식을 인터넷으로 접하고 그들의 일정을 생각하는 동안에도 민수는 끊임없이 그들이 보고 싶었다.
자신이 이렇게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민수는 몰아치는 외로움에 마냥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그나마 지금 민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설아가 보내주었던 귀여운 댄스 영상과 소속사에서 올린 설아의 개인 영상이었다.
설아는 개인 영상으로 당당하게 자신의 주특기인 운동을 꺼내 들었다.
여성들이 가장 빼기 어렵다는 팔뚝 살을 빼는 요령부터 전체적인 라인 밸런스를 바로잡는 필라테스까지, 설아는 네 번의 영상을 통해 지금껏 자신의 몸매를 가꾸면서 체득한 노하우를 아낌없이 방출했다.
덕분에 [윤설아의 비법공개]라는 이름의 이 영상들은 여성들에게는 좋은 운동 참고 자료로 남자들에게는 아름다운 설아의 몸매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은혜로운 자료로 유튜브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민수는 설아의 몸매를 보며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사람들에게 조금 반감을 품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설아가 촬영할 때 입은 옷이 자신과 운동할 때 입었던 것보다 훨씬 단정했기 때문에 애써 마음을 달래는 중이었다.
어쨌든 민수는 조금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설아의 운동 영상과 귀여운 댄스 영상으로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는데 만약 이것마저 없었으면 민수는 벌써 서울로 연락하거나 심하면 서울로 훌쩍 떠났을 수도 있었다.
“하…… 물론 내가 서울에 연락한다고 해도 다들 별말 없이 반겨 주겠지만….. 첫 드라마에 집중하고 있는 설아 씨.
첫 단독 주연으로 영화에 열중하고 있는 윤 배우.
그리고 드라마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수연 선배랑 혜민이라…..
다들 한창 민감할 거야.
내가 괜히 연락해서 하소연할 처지가 아니지…..”
민수는 한창 민감한 시기에 집중하고 있을 다른 배우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확실히 이럴 때 보면 전화 한 통으로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민수의 사고방식은 참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잠시 한국에 있는 식구들을 생각하던 민수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촬영 기간을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
“촬영도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뭐 조금만 참으면 되니까.”
민수가 워낙 난이도 있는 액션 연기를 수월하고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영화 촬영 일정은 당겨지고 있었다.
아마 이 추세대로 흘러간다면 아마 촬영이 시작된 지 두 달 보름이 지나는 시점인 다 다음 주 정도면 충분히 촬영이 마무리될 것 같았다.
“후…. 이제 진짜 당분간 액션은 안 해.
차라리 독립 영화를 찍는 게 낫겠어.”
물론 이 영화가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려서 민수가 할 게 액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서 그런 것이긴 했지만 에릭 존스 감독과 찍는 영화가 이 정도라면 아마 다른 감독이랑 찍는 액션 영화는 이보다 더 재미없을 가능성이 컸다.
이제 정말 액션 영화에서는 민수가 얻을 것이 별로 없어 보였다.
민수가 한창 향수병과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때쯤 반가운 손님이 민수를 찾아왔다.
바로 중국에서 촬영하고 있던 소희와 그 매니저 형우가 민수를 찾아온 것이다.
소희의 중국 촬영은 12월 말까지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다행히도 중간에 며칠 휴가를 가지게 되었다.
같이 중국에서 촬영하고 있는 민수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민수의 영상에서 보았던 “천루 시티”의 실체가 궁금하기도 했던 소희는 어차피 한국에 가도 마땅히 만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서둘러 한국으로 가지 않고 민수가 있는 곳에 잠시 들른 것이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는 그래도 신인 티가 났던 소희는 몇 달간의 촬영으로 이제는 어엿한 여배우 태가 나고 있었다.
“와. 소희 씨 정말 반갑네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드라마는 문제없이 잘 찍고 계신 거죠?”
아무리 어렸을 적의 경험으로 중국이 익숙하다고 해도 외지 생활이 편하지만은 않았는지 소희는 조금 피곤해 보였는데 애써 웃으며 민수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드라마는 좋아요. 아무래도 타국 생활이라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드라마는 잘되고 있으니 정말 다행이죠.
선배님도 영화 잘 찍고 계세요?”
“네 좋아요. 전 이제 거의 끝나가니까요. 소희 씨는 12월까지라고 했던가요?”
“음 맞아요. 저도 이제 반은 넘었네요. 후….”
민수가 피곤해 보이는 소희에게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소희 옆에 있던 형우가 지금까지 쌓인 울분을 풀듯이 강하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와 진짜. 중국 여배우들 진짜 장난 아니야.
아주 텃세가 그냥……
처음에 촬영할 때는 씬 하니 찍는데 몇 시간이 나 기다린 적도 있었어.
도대체 그 인간들은 왜 그 모양이야?
소희가 성격이 좋았으니 망정이지 다른 여배우 같았으면 옆에서 나만 갈려 나갈 뻔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