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75화 (175/325)

# 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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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는 지금 조의 상황과 그의 목표를 확인하고 앞으로 조가 어떤 행동을 할지 여러 방향으로 검토하였다.

아마도 조의 목표는 복수.

지금까지 조가 살아온 삶을 생각해 보면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조의 동선까지 체크하자 다음 목표를 예상할 수 있었다.

안전한 기회는 단 한 번.

이번 기회에 조를 제거하지 못하면 다음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짐승 같은 감각과 기계적인 움직임을 가진 조를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잡을 수 없었다.

만약 단순한 포위 섬멸로 조를 잡을 수 있다면 다른 요원들이 제거될 당시에 조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터가 결정한 방법은 역시 저격.

자신의 장기인 저격으로 조를 잡을 계획이었다.

피터는 여러 자료를 검토한 끝에 조의 다음 목표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항상 최단 시간 안에 목표를 제거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동선 낭비를 하지 않는 조의 습성을 생각하면 아마도 다음 목표는 이곳일 것이다.

피터는 조의 침투 경로로 예상되는 지점 세 곳을 완전히 감시할 수 있는 곳에 저격 포인트를 잡았다.

지금 피터가 위치한 곳에서는 조가 가장 빈번하게 침투하는 환기구, 배수로, 옥상 세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모두 감시할 수 있었다.

그렇게 포인트에 대기한 지 2일, 피터는 조금 싸한 느낌과 함께 환기구 입구 쪽으로 접근하는 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조를 발견하고 마른 침을 삼킨 피터는 서둘러 스코프로 조를 겨냥했다.

완벽한 기회는 한 번뿐이라는 압박감 때문에 피터의 가슴은 점점 크게 뛰기 시작했고 그렇게 수 초 동안 조를 조준한 후에야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힘을 주는 순간 스코프 안의 조와 스코프를 통하여 조를 보던 피터의 눈이 마주쳤다.

이 거리에서 자신을 볼 수는 없을 텐데 조의 눈은 왠지 자신을 정확히 인지하고 바라보는 것 같았다.

순간 오싹한 느낌이 피터의 뇌리를 자극했다.

하지만 이미 당겨지는 방아쇠를 멈출 수는 없었고 방아쇠를 완전히 당기는 찰나에 스코프 안에서 조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쉣.”

피터는 저격에 실패했음을 깨닫고 서둘러 장비를 챙겨 자리를 떴다.

자신이 저격에 실패한 이상 공수가 완전히 뒤집어졌기 때문이다.

조는 다음 목표에 접근하기 위하여 뒷골목을 서성이며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다음 목표는 이탈리안 마피아 “반 리텔” 이 거리의 지배자 이기도 하고 메이의 부모를 살해한 직접적인 원수이기도 했다.

자신이 여러 곳을 괴멸시켰는데도 반 리텔의 조직은 자신을 별로 경계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들이 거리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까지 찾아와 자신을 공격하지 못할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아직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은 거래를 받아들여 사실관계를 파악하지도 않은 채 그냥 중국인 부부 둘을 제거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만약 정말 그랬다면 중국인 둘을 제거하는 사소한 일이 이런 후폭풍을 몰고 올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 전혀 상관없었다.

그 착각과 무지가 이제 그들의 숨통을 서서히 죄어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반 리텔이 머무는 곳은 거리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클럽의 지하 아지트.

조는 침투 경로를 환기구로 결정했다.

제법 오래된 건물답게 구식으로 환기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곳을 통하면 건물의 조용한 곳까지 침투할 수 있을 것이다.

목표는 언제나처럼 적의 머리.

머리부터 차근차근 붕괴시킬 것이다.

천천히 환기구로 접근하던 조는 순간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묘한 찝찝함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지금까지 이런 느낌이 드는 순간에는 항상 누군가가 자신을 살펴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먼 곳을 살피던 조의 눈에 어떤 건물 옥상에서 달빛에 반사된 작은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스코프. 저격.

조는 본능적으로 바로 앞으로 튀어 나가 사각지대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가 있던 자리에는 작은 소리와 함께 땅에 깊이 파인 자국이 생겨났다.

저격임을 확인한 조는 바로 아까 확인한 스코프 빛으로 확인한 상대의 위치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위치는 바로 일반적인 상가 건물.

옥상에 도착한 조는 상대가 이곳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미약한 온기와 여러 가지 잡동사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는 이 위치라면 자신이 익숙하게 침투하는 세 가지 경로를 모두 시켜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

아무런 근거도 없었지만 조는 상대가 전문 저격 요원 P임을 느낄 수 있었다.

저격 스폿을 잡는 스타일과 저격 위치가 그를 P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동료들을 팔아 새로운 곳에 자리 잡은 P가 자신을 잡으러 온 모양이었다.

조는 어차피 P를 믿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특별히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자신 앞에 가로막는 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아무래도 복수를 하기 전에 하루살이부터 쫓아내야 할 것 같았다.

메이는 항상 인사를 받으면 답인사를 건네야 한다고 말했었다.

그러니 우선 P에게 그는 과거의 유산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는 것부터 알려줘야겠다.

피터는 조의 추격을 고려해 최대한 돌아 돌아 자신의 은신처에 도착했다.

가장 안전한 공격에 실패한 이상 자신도 이제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은신처의 문을 연 피터는 은신처 안에서 느껴지는 묘한 위화감에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끼릭..”

그리고 안으로 한 발 걸어 들어가자 작은 소리와 함께 작은 불길이 피어올랐다.

내부가 불빛으로 조금 밝아지자 은신처 안에 가득 떠다니는 하얀 알갱이가 보였다.

하얀 알갱이와 불빛.

피터는 혼비백산하며 서둘러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꽝!”

“Shit the Fxxk!”

몸을 날려 겨우 폭발의 범위에서 벗어난 피터는 완전히 파괴된 은신처를 보며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었다.

이곳을 미리 확인했다고? 어떻게?

각 요원의 은신처는 헤드만이….. 헤드!

맙소사. 헤드라고?

피터는 요원 중 유일하게 정체를 알 수 없었던 헤드(Head)가 조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각 요원에게 지령을 전달하던 암묵적인 리더 헤드.

정면에서 상대를 분쇄하던 조와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뒤에서 활동하던 헤드.

피터는 이 둘이 동일 인물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헤드와 조가 동일 인물이라는 결론이 나자 조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헤드는 모든 정보를 담당했다.

그러니 조가 정부의 배신을 미리 눈치채고 자신을 죽음으로 위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피터는 조가 헤드인 이상 앞으로는 예전부터 비밀리에 사용해 왔던 모든 도주로를 사용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 싸움은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았다.

조와 피터가 서로에게 첫 공격을 날리는 장면을 촬영한 이후부터 한참 동안 민수와 스티븐의 촬영이 계속 이어졌다.

피터의 존재는 조의 복수에 큰 난관이자 복병으로 남았다.

조가 안심하는 순간 어김없이 피터의 매서운 공격이 날라오니 조도 마음 놓고 복수에만 전념하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의 중반부 주요 테마가 조의 복수였고 너무나 강한 조의 공격에 적들이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지게 된다.

시원한 액션도 좋지만 그렇게만 진행될 경우 관객들은 반복적인 행태에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릭 감독은 영화 중반부에 피터를 넣어 그런 분위기를 환기하고 있었다.

조의 사각만 노려 공격한 후 실패하면 도주하는 피터는 관객들이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어줄 것이다.

영화 촬영은 정말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촬영 계획.

배우들과 스턴트맨 들 간의 환상적인 호흡.

완벽하게 제작된 세트장.

하지만 영화 촬영이 완벽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민수에게도 약간 성가신 존재가 나타났으니 후반부 가장 비중 있는 조연으로 나오는 “리 얀” 이었다.

“리 얀” 일명 얀이 맡은 배역은 중국 삼합회의 고수 명왕 시우, 예전에 조가 요원으로 있을 때 삼합회의 지부 하나를 완전히 전소시킨 적이 있었는데 그 원한으로 조를 제거하기 위하여 달려드는 인물이었다.

명왕 시우는 천극권이라는 고대 무술을 익힌 고수였는데 영화의 설정상 유일하게 대인 전에서 조를 제압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민수는 저격도 눈치채고 피하는 조가 도대체 어째서 중국 고대 무술 고수를 이길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에릭도 민수의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해 주지는 못하였다.

민수가 생각하기에 아무래도 저 시우라는 캐릭터는 왠지 중국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 캐릭터,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일명 국뽕 캐릭터 같았다.

지금까지 무적임을 자랑하던 조가 두 주먹으로 덤비는 중국 무술 고수에게 몇 차례 패배하게 되는데 이런 장면이 상대적으로 중국 무술과 중국인의 우월함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중국을 목표로 개봉하는 영화이니 최소한, 이 정도는 해줘야 할 것이다.

어쨌든 배역의 불합리함과는 상관없이 문제는 이 배역을 연기하는 배우 얀 그 자체였다.

얀은 에릭이 민수를 알기 전에 이 영화에 주연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배우였다고 한다.

민수가 그의 이름을 모르는 것을 보니 전생에서 한국까지 명성을 날릴 정도로 성공한 배우는 아니었지만, 중국 내에서는 대단한 액션 배우로 인정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민수가 보기에 이 얀이란 배우도 스티븐처럼 자신이 이 영화의 주연이 되지 못한 것에 크게 뿔이 나있는 거 같았다.

그리고 민수와 연습을 할 때마다 민수의 신경을 긁는 것을 보니 확실히 스티븐보다도 질이 좋지 않았다.

배역의 특징상 얀은 배우 중에는 유일하게 민수와 합을 나누어 연기하게 된다.

두 주먹으로 민수와 싸워야 하므로 격투 장면이 필수적으로 추가되기 때문이다.

얀이 민수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합을 연습할 때이다.

그는 민수와 합을 맞출 때마다 미묘하게 경로와 어긋나게 공격을 하고 있었다.

다칠 정도는 아니었고 민수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미묘한 공격이 민수의 신경을 계속 자극하고 있는 셈이었다.

물론 민수의 탁월한 반사신경으로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계속 이런 자세로 연습에 임하는 것은 역시 불쾌한 일이었다.

얀은 원래부터 중국의 팔극권이라는 권법을 제대로 배운 무술인이라고 하는데 확실히 미묘하게 엇박자로 공격을 한다든지 아니면 각도를 꼬아서 공격한다든지 하는 고명한 수법이 확실히 제대로 배운 놈(?)다웠다.

오늘도 촬영을 마치고 얀과 결투 합을 맞추던 민수는 미묘한 엇박자 공격으로 얀에게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맞은 건 맞은 거지만 그것보다 더 기분 나쁜 것은 공격을 맞춘 후 슬며시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건들건들하며 사과하는 얀의 태도였다.

처음에는 영문을 모르던 스티븐도 이제는 얀이 민수에게 억하심정을 가지고 저런 공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저놈, 완전 저질이네.

Boy도 저놈처럼 저렇게 변칙 공격을 할 수 있지 않아?

눈에는 눈이라고 했는데 대체 왜 맞고만 있는 거야?”

인상을 쓰면서 묻는 스티븐의 말에 민수는 그냥 작게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 그래도 저놈이랑 같은 수준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저것도 한철이고 저놈도 본 촬영에서 저런 장난을 치지는 못할 테니 그냥 두고 보는 중이야.

어차피 저런 솜 주먹에 한두 대 얻어맞는다고 별일 있는 것도 아니잖아.

이제 저놈이랑 연습하는 것도 얼마 안 남았어.

본 촬영 들어가면 자제하겠지.

저놈도 배우니까 말이야.”

스티븐은 관대한 민수의 태도에 조금 불만이 있는지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하지만 작은 도발에 연연하지 않는 민수의 모습이 조금 대단하기도 했다.

만약 자신이었으면 상대에게 바로 어퍼컷을 날렸을 것이다.

확실히 Boy는 외모보다 훨씬 어른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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