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71화 (17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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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천루 시티”의 전경을 등지고 안부 인사와 영화 소개를 마친 민수는 인상 깊은 세트장 몇 곳을 선정하여 소소한 이야기와 함께 세트장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차후에 이곳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모습을 촬영한 후 그 연기 영상과 오늘 찍은 영상을 같이 내보내기만 하면 끝.

그러면 소속사에서 두 영상을 편집해서 적당한 시기에 올려 줄 것이다.

아마 세트장 별로 연기 영상을 조합해서 홈페이지에 올리면 대략 4~5편 정도의 영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촬영을 다 마친 민수는 동원과 함께 처음 인사 영상을 찍은 그 마천루에 올라서 전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배우님.

이 정도 세트장이라니요.”

“천루 시티”의 전경을 처음 본 동원도 그 규모에 매우 놀란 상태였다.

천루에서 세트장 이름에 시티를 붙인 것은 그냥 단순한 과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 천루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될 것이다.

현대식 건물이 등장하는 거리 액션들을 찍기에 이곳은 최적의 장소였다.

건물의 베이스만 잡아 놓은 이곳이라면 CG 작업을 통하여 충분히 여러 가지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건물을 구성할 때부터 CG 작업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네, 정말 대단해요. 솔직히 이 정도의 규모의 세트장을 짓는 데 얼마나 들었을지 상상이 잘 안 가네요.

하지만 이런 세트장이 있다면 다른 영화들도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겠죠.

이를테면 도로를 닦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까요?

돈은 많이 들지만 한번 만들어 놓으면 그 뒤로 많은 사람이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도로 말이에요.”

민수는 거대한 세트장을 보며 조금 씁쓸한 기분이었다.

민수가 알기로 천루는 이 현대식 건물을 베이스로 한 “천루 시티” 외에도 이것과 비슷한 규모의 사극 세트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삼화도 자기들만의 거대한 드라마 세트장을 여럿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소희가 그것 중 하나에서 열심히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

민수가 알기로 중국을 지배하고 있는 이 세 개의 거대한 미디어 그룹은 이제 그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각 그룹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총수들이 차례로 별세하면서 거대한 세 개의 그룹은 조각조각 갈라지고, 지역마다 여러 개의 미디어 그룹이 경쟁하는 일명 전국시대 같은 그런 시기가 다가온다.

그리고 그 시기 동안 수많은 미디어 그룹에서는 경쟁적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여 중국 방송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리게 되는데, 그렇게 수많은 콘텐츠가 나올 수 있는 기초 인프라가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저런 대형 세트장일 것이다.

민수는 중국이 대규모 자본을 이용해서 이렇게 거대한 영화 세트장이나 드라마 세트장을 제작하는 것이 부럽기만 했다.

“한국에도 이런 세트장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조금 무리겠죠.”

민수가 세트장을 보며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자 동원도 조금 씁쓸한 표정이 된다.

“아무래도 그렇죠?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 규모라면…..

이걸 일개 미디어 그룹에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 아닐까요?”

“맞아요. 대단하죠.

중국에서 이렇게 많은 자본을 계속 투자한다면 아마 조만간 우리나라보다 더 좋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을 거예요.

지금은 아직 우리나라나 미국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지만 그 양상이 바뀌는 데 얼마나 걸릴지…..”

“하긴, 중국이 투자를 많이 하긴 하는 거 같군요.

이번 영화만 봐도 할리우드 스타일로 한다면서 제작 과정에도 엄청 힘을 주고 있고요.

그리고 그만큼 정말 대우도 잘해주고 있고요.”

“그렇죠. 이런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동원이 할리우드 스타일이라는 말을 꺼내자 민수는 오늘 있었던 촬영 장면이 생각났다.

촬영 내내 수많은 중국인 제작진들이 에릭 존스의 스태프들을 따라다니며 촬영의 노하우를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조금 산만한 분위기가 유지되긴 했지만 아마 그것도 조만간 자연스러워지리라.

그리고 배우들에 대한 대우들도 엄청났다.

민수도 제대로 된 배우 전용 트레일러를 이곳에서 처음 구경할 수 있었다.

게다가 촬영장 근처에 최고급 호텔에서 머무르고 있었으니 민수도 주연 배우로서 대우를 톡톡히 받고 있는 셈이었다.

“할 일을 다 마쳤으니 이제 가죠.

빨리 돌아가서 쉬고 다음 촬영을 준비하고 싶네요.”

민수는 많은 자본으로 자국의 콘텐츠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중국의 행보에 작은 부러움을 느끼며 다음날 촬영을 위하여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영화의 초반부 촬영은 아무런 문제 없이 순항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촬영은 린 샤오 메이와 찍는 마지막 촬영이었다.

민수가 촬영장에 들어서자 이제는 제법 친해진 린이 민수에게 달려와 민수를 반겨 주었다.

“삼촌~!”

민수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며 지금까지 수고한 린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었다.

“린은 오늘이 마지막 촬영이지?

정말 수고했어.”

민수의 말대로 린은 정말 수고했다.

특히 최근에 찍은 조와 메이의 도주 씬은 어린 린이 소화하기에는 조금 벅찬 장면들이었다.

하지만 린은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도 끝까지 웃음과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정말 어린이답지 않은 프로 정신이었다.

피곤한 촬영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촬영장을 활보하는 린의 귀여운 모습은 아마 많은 스태프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민수도 린의 귀여운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올 때가 많았으니 그녀의 덕을 크게 본 셈이었다.

확실히 귀여운 것이 진리라는 우스갯소리가 그냥 헛소리만은 아니었다.

메이를 향한 수많은 습격자를 모두 제거한 조는 결국 메이를 중국대사관으로 무사히 대피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메이는 이제 중국에 있는 할머니 댁으로 무사히 인도될 것이다.

이제 메이는 밝은 세계로 그리고 조는 다시 어둠의 세계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메이. 언제나…. 건강히….

울지 말고, 항상…. 행복해야 해.”

조의 무미건조한 얼굴 위로 처음으로 슬픔과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이 깃들고 있었다.

메이의 부모가 죽었을 때도 안타까움보다 분노와 증오를 느꼈던 조 였지만 다시는 메이를 보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는 감정이 피어 올라오고 있었다.

“삼촌. 삼촌도 같이 가면 안 돼요?

가서 메이랑 같이 살아요.

메이 울지 않고 밥도 잘 먹고 양치도 잘할게요.

그러니 제발…..”

이 이별이 영원한 이별임을 눈치챈 듯 메이의 예쁜 눈에서도 계속 눈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도 저 귀여운 아이와 영원히 함께하고 싶었지만, 자신은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메이의 안전을 위하여 자신은 더 날뛰어 줘야 한다.

그들이 메이에게까지 신경 쓸 틈이 없도록 그렇게 거칠게, 그리고 덤으로 자신의 평화를 깨고 메이를 고아로 만든 자들에게 하는 복수까지.

그리고 만약 복수하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체가 알려지게 되면 자신의 케케묵은 원한까지 정리해야 했다.

그렇게 모든 일이 정리되면, 그때는 메이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자신이 살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메이. 이 삼촌은 아직…. 할 일이 남았어.

내…. 일이 다 끝나면 그때…. 메이를 보러 갈게.

그때까지 울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지?”

“정말 메이 보러 오는 거죠?

거짓말 아니죠?

저 끝까지 기다릴 거예요. 삼촌.”

조는 자신을 초롱초롱하면서도 애절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작은 숙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마치 그 모습을 각막에 세기 듯 천천히 메이를 내려다본 조는 손을 뻗어 메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한동안 메이를 그렇게 바라본 조는 메이를 남겨놓고 혼자 조용히 대사관을 벗어난다.

그리고 떠나는 그의 얼굴에는 이제 아무런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메이를 떠나면서 자신의 모든 감정을 다 메이에게 주고 왔기 때문이다.

에릭은 조와 메이가 떠나는 장면까지 촬영을 마치자 크게 한숨을 쉬었다.

촬영이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깊은 감정이 요구되는 장면들이 오늘로써 다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더 훌륭한 연기를 해준 아역 배우와 생각만큼 좋은 연기를 보여준 주연 배우 둘 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충분히 가능하겠어.”

에드워드는 고개를 저었지만, 에릭 존스 감독은 이 영화를 할리우드에 올릴 생각이었다.

이 영화가 내수용이라는 것은 이 영화의 주요 배우들을 다 중국인으로 쓸 때 이야기였고 주연 배우 한 명만 동양인이라면 자신의 이름값으로 어느 정도 관객을 모을 수 있었다.

만약 배우들의 연기가 시원찮았다면 자신도 당연히 그런 모험을 하지 않겠지만 지금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한 가장 큰 근거는 바로 주인공 조 연기였다.

조는 지금까지 중국인 가족과 이야기할 때는 중국어로 연기했지만 이제 앞으로 적들과 싸울 때는 자연스럽게 영어로 연기하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조의 설정상 말을 어눌하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민수의 조금 어색한 영어 연기도 충분히 묻어갈 수 있었다.

영어 연기의 미묘한 어색함이 문제가 아니라면 민수의 액션 자체는 할리우드에서도 매우 빼어난 축에 속하니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놓기에 부끄럽지 않은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어린아이의 귀여움은 만국 공통이지.

게다가 민수가 연기하는 조 역시 설정에 충실하고 있고….

이 정도면 내 이름에도 부끄럽지 않아.

내가 부끄럽지 않으면 뭐, 흥행이야 어느 정도 가능할 테고.

그리고 내가 발품 좀 팔면 에드워드한테도 타이틀을 하나 달아 줄 수 있으니까.”

에릭은 이곳에 와 천루가 흘러가는 형세를 보니 에드워드의 입지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미국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에드워드의 중국 내 인맥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면 그가 내세울 수 있는 건 미국 내 인맥과 여러 가지 타이틀뿐 일 테니 자신이 나서서 그에게 한가지 타이틀을 달아 줄 심산이다.

만약 이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적당한 성적만 거두어도 에드워드의 입지는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 분명했다.

감독의 의도를 전혀 알지 못하는 민수는 촬영을 마치고 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작별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앞으로 촬영을 다 마치고 나중에 시사회나 관련 행사를 할 때까지 린을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중에 또 만나요. 삼촌.

액션 연기하는데 다치지 마시고요.

삼촌이랑 연기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앙증맞은 두 손을 흔들면서 같이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린을 보며 민수도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손을 흔들었다.

민수에게 린과 같이 연기한 기억은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민수는 그녀도 자신과 연기했던 기억이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바랐다.

초반부의 촬영이 다 끝나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민수가 날뛰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이제 앞으로의 촬영은 거의 끝까지 액션 연기로 이어질 것이다.

“어때? Boy. 준비됐어?

이제 액션의 세계로 들어갈 시간이잖아?”

자신에게 다가와 장난을 거는 스티븐을 보며 민수는 피식하고 실소를 머금었다.

미국 특무대 소속 “피터”를 연기할 스티븐은 극 중반부터 끝까지 조와 끊임없이 충돌하게 된다.

아무래도 이 액션 바보는 자신과 린이 연기하는 것을 보고 상당히 좀이 쑤신 모양이었다.

“좀이 쑤시는 모양이지. 스티비?

그래. 남은 시간 동안 한번 잘해 보자고.”

민수가 초반부 촬영을 대충 마쳤을 무렵, 한국의 윤 엔터에서는 민수의 첫 번째 영상을 홈페이지에 업로드 했다.

첫 영상은 민수가 찍고 있는 영화에 대한 소개와 함께 첫 번째 세트장인 마천루의 소개와 주변 영상, 그리고 민수의 연기 장면 일부를 포함하고 있었다.

드라마 방영을 앞두고 한창 촬영 중인 설아도 민수의 영상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영상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수연과 요즘 한창 연기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혜민이 설아 쪽으로 다가왔다.

“설아는 뭘 보고 그렇게 집중해서 보고 있는 거야?

오~ 멀리 출장 간 님의 영상을 보고 계시네.

연락도 매일 하는 모양이던데 뭐가 그렇게 좋으신지?”

설아는 자신에게 다가와 영상을 확인하며 말을 거는 수연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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