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66화 (166/325)

# 166

4

이번에 민수가 찍는 에릭 존스 감독의 영화의 제목은 “My Uncle, Joe”, 중국어 제목은 “我的叔叔 Joe” 였다.

영화에서 민수가 맡은 배역은 주연인 Joe (이하 조)였는데 조는 버림받은 특수 요원이었다.

이름조차 없이 완전히 은폐된 특수 부대의 알려지지 않은 비밀 요원인 조.

그는 지금까지 어떤 임무에도 실패하지 않은 특급 요원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미국의 어두운 곳에서 활동하던 조와 비밀요원들은 이제 그 쓸모를 다했고, 정부는 알려지지 않은 이 위험한 요원들을 하나둘씩 제거하기 시작한다.

국가의 배신을 미리 눈치챈 조는 자신의 흔적을 최대한 은폐하여 죽음을 가장하고, 다행히 가장 알려진 것이 없던 조는 무사히 미국을 속이고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목숨은 건졌지만 어려서부터 요원으로 키워진 조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는 것은 자신의 국적이 중국이라는 것뿐.

심지어 이름조차 없었고 남은 것은 자신을 지칭하던 코드명 Joe뿐이었다.

짙은 허무에 빠진 그는 그냥 정처 없이 미국을 떠돌다가 한 중국인 가족을 만나게 된다.

젊은 과학자 부부에 어리고 귀여운 딸을 가진 행복한 가정.

조는 그 행복한 모습에 매료되어 그들 곁에 정착하기로 한다.

그렇게 1년 이지나고 조는 한 가정의 모습에서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지를 하나둘씩 배워나간다.

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1년, 하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다.

두 중국인 부부가 개발하고 있던 것은 차세대 에너지원.

그리고 그 성과가 가시권 안에 들어오자 그 연구 성과를 노린 승냥이들이 부부를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부부를 노리는 자들은 연구 성과를 탐내는 자들만이 아니었다.

차세대 에너지 개발을 막고자 하는 자들은 아예 부부를 없애려고 하고 있었다.

조는 자신에게 따듯함을 알려준 이 부부를 반드시 지키고 싶었지만 한 번에 실수로 결국 부부는 목숨을 잃고 만다.

그들은 죽어가며 자신의 딸인 “메이”를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싶어 했고 조는 그들에게 메이의 안전한 귀환을 맹세한다.

혹시나 딸에게 연구자료를 맡겼는지를 의심하는 적들은 메이 마저 살해하려 하고 조는 그런 메이를 무사히 대사관까지 데려가기 위하여 사투를 벌인다.

오랜 고생 끝에 메이를 대사관까지 데려가고 메이와 작별 인사를 나눈 조.

하지만 그의 마지막 임무는 끝나지 않았다.

부부를 살해한 적에게 복수하고 메이를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적을 사살하는 것.

그것이 조에게 남은 마지막 숙제였다.

이제 조가 본격적으로 활약할 시간이 되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온갖 범죄 조직과 그들에게 지시한 거물들까지 모두 조의 손길을 피할 수 없었고 하나둘씩 제거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조가 설치고 다니기 시작하자 결국 정부도 조에 대하여 알게 되고 그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 정부마저 조를 제거하기 위하여 움직이기 시작한다.

복수하는 조와 그런 조를 제거하기 위하여 달려드는 적들.

그들 사이의 처절한 전쟁이 이 영화의 핵심 내용이었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폐기된 조와 중국인 가족들의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 도입부, 부부가 죽고 메이를 구해 대사관까지 무사히 안내하는 초반부, 부부의 복수와 메이의 안전을 위해 조가 범죄조직을 들쑤시는 중반부, 조의 정체를 알게 된 미국이 조를 제거하기 위해 달려드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었다.

“흠…. 액션이 확실히 다르네.

하긴 당연한가.”

시나리오를 확인한 민수가 생각하기에 이번 영화의 액션 연기는 “용의 울음”에서 했던 그런 액션과는 확실히 달랐다.

그때는 대부분의 액션이 상대와 합을 맞춰 검을 나누고 직접 싸우는 내용이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대부분 총으로 상대를 제거 하므로 상대와 합을 나누는 장면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각종 지형지물을 이용한 침투와 암살, 도주 시에 벌어지는 각종 추격전 등이 액션의 중심을 이루었다.

“이 정도면 확실히 2주 만에 상대와 합을 나누는 장면들을 다 정리할 수 있겠네.

그나저나 이 스토리 이거 괜찮은 거냐?”

범죄 조직과 전쟁을 하는 것은 그렇다 치지만 아무리 대단한 요원이라도 범죄 조직에 사주한 자들과 자신을 사살하기 위해 달려드는 정예 요원들까지 제거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싶었다.

특히 상대 저격수의 저격을 감으로 피하는 장면에서 민수조차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사실주의 액션이라고 하지 않았나?

거참…… 이건 무슨 사람이 레이더네.”

대본에 각종 어이없는 장면들에 조금 웃음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감독이 잘 연출하기만 하면 멋있기는 할 거 같았다.

“그래, 잘 해보자고. 이번 영화도.”

민수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는 사이에 차는 에릭 존스 감독의 캠프에 도착했고 민수는 이번에 같이 촬영할 여러 스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오, 왔군.

몸 상태는 어떤가?”

에릭은 민수를 보자마자 그의 몸 상태부터 확인하고 있었다.

“네, 아주 좋아요.

그럼 감독님 전 지금부터 무엇을 하면 되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민수가 묻자 에릭 감독은 웃음을 터트리며 민수에게 이야기했다.

“하하 피곤하지도 않은가?

좋아, 그럼 우선 스턴트맨들과 인사를 하고 기본적인 합을 맞춰보도록 하지.

특히 초반부에는 서로 합을 나누는 씬들이 많으니까 말이야.”

민수는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후 에릭을 따라 스턴트맨들이 연습하고 있는 체육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민수도 에릭을 따라다니는 스턴트맨들의 수준이 어떨지 상당히 궁금했기 때문에 그들을 빨리 만나고 싶었다.

민수가 떠난 윤 엔터.

윤 엔터 외부의 일을 윤 대표가 처리하는 것처럼 윤 엔터 내부를 정비하는 것은 박 실장과 민 여사의 몫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여러 인원이 외부에서 움직이고 있고, 내부 인원을 확충하고 있을 때는 내부에서 신경 써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수연 씨 매니저는 결국 누구로 정해졌나요? 오 팀장은 이제 현장 나가기 힘들잖아요.”

“윤태준 씨 영화 들어가기 전에 인터뷰 나갈 수 있게 일정 확실하게 조율하세요.

영화 들어가면 일체 활동 없다는 것도 분명히 주지시키고요.”

“윤설아 씨 드라마 들어가기 전에 따로 이슈메이킹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보고하세요.”

“진소희 씨 중국 현지 상황은 어떤가요?

혹시 부당한 대우가 있으면 작은 것이라도 바로 보고하세요.

불편한 사항이 있어도 마찬가지예요.

뭐라고요? 텃세요? 심한가요?

아, 그건 삼화 쪽에 직접 항의하겠어요.

지켜보고 그런 분위기가 계속되면 다시 연락 주세요.”

내부의 전 부서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홍보팀장 이미영, 배우 지원부 실장 박찬수, 그리고 윤 엔터 내부 총괄 고문 민 아리는 아리 재단의 이 사장실에서 새로운 홍보 방법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었다.

홍보팀 이미영 팀장과 지원부 실장 박찬수는 윤 엔터의 배우들, 특히 젊은 배우들이 너무 방송 활동을 피하는 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배우들이 하늘 위에 떠 있는 별인 것은 이제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는 둘은 되도록 배우들이 팬들과 밀접하고 친근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랐고 항상 새로운 방안을 모색했지만 결국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미영 팀장은 그냥 배우들이 예능에 여러 번 나가면 정말 좋겠는데 이 배우들이 곱게 말을 들어 먹지 않으니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미영과 같은 생각인 박 실장은 입사 후 바로 팬 서비스 차원에서 소속사 홈페이지를 개설할 것을 주장했고 소속사 홈페이지에는 배우들의 약력과 스케줄을 공개하고 각 배우의 팬클럽에 직접 연결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음… 윤 엔터 일해라!

왜 배우들을 찾아보기가 힘드냐?

다들 뭐 하고 있는 거냐.

아니 민수형은 지금 뭐 하는 거야. 스케줄이 없잖아.

윤 엔터 이럴 거야?”

요즘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글들을 살펴보던 민 여사는 윤 엔터의 분발을 촉구하는 글들을 보며 헛웃음을 짓고 있었다.

“재미있네요.

확실히 우리 애들이 누굴 닮았는지 참 게을러서, 우리 미영이나 박 실장이 조금 피곤할 거 같긴 하네요.

우리 직원들 진짜 지금도 엄청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또 일하라니, 저 사람들도 참 너무해요.

그렇죠?”

“사람들이 보는 것은 배우들뿐이니, 그 뒤에서 소속사가 얼마나 바쁘게 움직이는 지는 아마 아무도 모를 겁니다.

사실, 이 정도는 그냥 애교 수준이죠.

만약 저희 소속사가 배우 소속사가 아니라 아이돌 소속사였으면…..

아. 그보다 민수 씨가 다음 작품에 들어갔다는 것은 아무래도 빨리 공개해야 할 거 같습니다.

지금 올라오는 글 중에 반 정도는 민수 씨의 다음 스케줄을 궁금해하는 글이니까요.”

“그래요. 박 실장. 민수가 지금 중국에서 촬영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기자들한테 알리고 홈페이지에 올리도록 하세요.

그리고 미영이는 홍보 때문에 할 말이 있다지?

무슨 말을 하러 온 거니?”

“네, 민 여사님.

배우들의 홍보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배우들이 너무 무심합니다.

예능은 별로 나갈 생각도 없고, 영화 홍보할 때나 잠깐 얼굴을 비추려고 하는 데다가 인터뷰나 취재도 거의 거절이니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팬들에게 왜곡된 이미지를 주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야.

사실 저번에 민수가 곤욕을 겪은 것도 우리가 민수에 대하여 미리 알리지 못해서 그런 것도 있으니까.”

“지금 당장은 소속사 배우들의 이미지가 좋지만 이런 양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 앞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결국 예전에 보여주었던 좋은 모습은 다 잊힐 테고 그 자리에 또 어떤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루머는 항상 있는 것이고, 잘나가는 배우들은 항상 선망과 시기를 함께 받아 왔으니까요.”

“흠….”

“솔직히 저도 배우들에게 원하지 않는 활동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배우들은 그게 너무 심해서 문제지만 어쨌든 그건 대표님의 신념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 본 것인데, 만약 배우들이 예능에 나가기 싫다면 차라리 개인 방송처럼 개인적으로 촬영한 영상들을 회사 홈페이지에 올리면 어떨까요?

만약 그렇게 되면 팬들에게 서비스도 되고, 배우들이 활동하지 않는 시간 동안에도 꾸준히 얼굴을 내보일 수 있으니 지금의 좋은 이미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박 실장도 이 팀장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다른 것은 몰라도 팬 서비스는 확실히 될 거 같았다.

그리고 배우들의 영상으로 회사 홈페이지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건 그거대로 충분히 윤 엔터의 힘이 될 수 있었다.

회사에서 공지하는 내용이 언론사를 통하지 않고 바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일리가 있습니다.”

박 실장마저 이 팀장의 의견에 동의하자 민 여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과연 이 녀석들이 개인적으로 영상을 남기라면 자주 남길까?

그렇다고 강제로 찍게 하는 것은 자기 취향이 아니었다.

“음…… 솔직히 저도 우리 아이들이 너무 나태(?)하고 활동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과연 그 아이들이 그걸 자주 찍어 올리라고 하면 자주 올릴까요?

전 가능하면 그 아이들의 행동을 강제하고 싶지는 않아요.”

민 여사의 말에 미영이 웃으면서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였다.

미영은 미리 이 문제에 대하여 많이 고민해 본 것이 분명했다.

윤 엔터 배우들의 나태함은 확실히 미영에게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그건 간단합니다. 여사님.

그냥 영상을 자주 올리면 그 배우는 나중에 인터뷰나 예능 스케줄을 안 나가도 된다고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정말 매일 한 개씩 올라올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안 나가는 예능을 핑계로 삼는다는 미영의 의견은 상당히 절묘해 보였다.

자신들이 싫어서 안 나가는 것이긴 하지만 마음속으로 꺼림칙함이 남아있을 테니 그걸 합법적으로 만들고 그 대가를 받겠다는 거였다.

배우들은 마음이 편해서 좋고, 소속사에서는 어차피 안 나갈 예능보다 직접 홍보의 자료가 되는 개인 영상이 더 소중했으니 서로 윈 윈하는 거래였다.

“풋, 미영이가 정말 힘들었구나.”

미영의 의견 속에 숨겨진 고뇌를 눈치챈 민 여사는 그냥 웃으며 미영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이 계획이 미영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