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65화 (165/325)

#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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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으로 돌아온 민수는 촬영 전까지 몸을 풀기 위하여 오랜만에 액션 스쿨을 찾았다.

몸 상태는 더 올릴 필요가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예전에 했던 스턴트 동작들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배역은 사극과는 다르게 자동차에 뛰어들거나 건물 벽을 오르는 등의 몸 전체를 완전히 써야 하는 연기가 많은 만큼 자신의 몸이 전생의 기억대로 완벽하게 움직여 주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다행히 민수의 몸은 자신의 의지대로 완벽하게 움직여 주었고 이렇게 완벽하다면 움직인다면 아무리 어려운 연기라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몸 상태를 완벽하게 점검한 민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몸 상태 점검까지 마친 민수는 이제 중국으로 떠날 때까지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남은 시간 동안은 그냥 설아와 함께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풀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떠나기 전날 밤.

민수는 이제는 세트처럼 되어버린 수연과 태준을 만날 수 있었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제법 편안하게 보냈는지 둘의 표정은 아주 밝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민수가 걱정했던 것처럼 특별히 한국 사람들을 만나 곤욕을 치르지는 않은 모양이다.

“워~ 정 배우. 60억을 거절한 패기 넘치는 남자!

역시 정 배우는 마성의 남자야.

자네가 포기하고 받은 12%로 과연 60억을 채울 수 있겠는가?”

벌써 소식을 들었는지 밝게 웃으며 말하는 태준은 완전히 건수를 하나 잡은 것처럼 신나 보였다.

벌써부터 웃고 있는 태준의 모습을 보니 아마 자신이 중국에서 찍은 영화가 망한다면 최소 1년은 이걸 가지고 놀릴 거 같았다.

“내가 윤 배우 무서워서라도 흥행에 성공해야겠네.

내가 거기서 한 100억 벌어오면 윤 배우한테도 큰소리 떵떵 칠 수 있지 않겠어?”

“푸하하. 그러면 좋지. 내 자네의 선전을 기대하네.”

기분 좋게 대화하는 태준과 민수와는 다르게 수연은 조금 어이없다는 얼굴이었다.

“와. 중국 진짜 세긴 하네. 60억을 불렀다고? 그것도 대단한데 그걸 그냥 거절한 넌 정말….

무슨 생각을 하면 그걸 거절할 수 있는 거야?”

“뭐, 다 그런 거죠.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더 많이 벌어 올 테니까요.”

“그래그래. 알아서 해라.

어차피 네 돈이지 내 돈은 아니니까.”

수연은 못내 민수가 거절한 것이 안타까운 모양이다.

“확실히 우리 정 배우가 이젠 자신감이 많이 생긴 것 같아. 예전 같으면 더 많이 벌어오겠다는 그런 말을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진 못했잖아.

내 생각하기에 이건 아주 좋은 현상이야. 그럼 그럼.”

태준의 말대로 이번 영화에서 민수가 얻은 것은 돈과 인기 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자신에게 환호하던 사람들, 그리고 중국 활동을 할 때 자신을 따라다니던 팬들을 보며 민수는 배우로서 충분한 자신감을 얻게 된 것이다.

아무리 자신에게 부정적인 민수라도 그 많은 사람의 환호를 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의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식구들 앞에서 더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은 지금까지 한결같이 자신을 믿어준 식구들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기도 했다.

항상 자신을 믿어 주는 식구들에게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민수로서도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정 배우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해.

주연 배우로서 영화에 대하여 그 정도 책임을 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니겠어?

영화가 인기가 없으면 주연 배우도 당연히 돈을 벌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나도 솔직히 이번에 계약할 때 그냥 러닝개런티로 밀고 나가려고 했는데 제작사 쪽에서 절대 그럴 수는 없다고 하더라고.

내가 돈을 더 벌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쓸데없는 오해만 샀다니까.

어쨌든 잘해봐 정 배우.”

태준의 격려에 미소 지은 민수는 문뜩 이 커플이 유럽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졌다.

즐겁게 지냈는지, 그리고 자신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유럽은 어떤 분위기인지.

그래서 여행 중에 별일은 없었는지 가볍게 물어보았다.

“그래. 윤 배우의 유럽여행은 어땠는가?

혹시 거기까지 가서 한국인 관광객들한테 둘러싸인 건 아니겠지?”

“아, 그럴 리가 있나. 아예 한적한 곳에 짱 박혀서 푹 쉬다 온 걸.

원래 관광객들이 주로 가는 도시들은 따로 있거든.

그러니 그곳만 피하면 의외로 조용하다는 거지.

게다가 이번에는 수연이랑 같이 다녔는데 그렇게 관광지를 활보하고 다닐 순 없잖아.”

수연이랑 같이 갔다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태준을 보며 민수는 자연스럽게 웃음이 났다.

결국 이 친구가 참지 못하고 연애 사실을 공개하나 싶어서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설아도 태준의 말에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바로 아쉬워하는 것을 보니 설아는 역시 차라리 태준이 최대한 오래 감추기를 바랐던 거 같았다.

아마 두고두고 놀릴 거리를 놓친 것이 아쉬운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진짜 놀란 사람은 바로 수연이었다.

“야 인마. 최대한 오랫동안 숨겨 보자고 했잖아.”

아무래도 수연은 태준과 자신의 연애 사실이 진작에 들킨 것을 아직 모르는 거 같았다.

“수연아. 이미 쫑 났어. 눈치들이 얼마나 빠른지 예전부터 알고 있는 거 같더라고.

그러면 차라리 공개하는 게 낫지. 안 그러면 계속 피곤하기만 하다고.

저번에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데.

태준은 저번에 자신이 민수의 낚시질에 걸려 당황했던 일을 수연에게 이야기했다.

민수는 아무래도 자신의 행동이 태준의 결심에 주된 원인이 된 거 같아 슬쩍 설아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설아는 민수를 살짝 새초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태준의 설명이 끝나자 수연은 인상을 쓰면서 태준의 등짝을 여러 번 내려쳤다.

“아우, 이 화상 진짜.

그걸 그렇게 들키냐? 어!? 내가! 조심하라고! 했지?”

그 일이 있기 전에 이미 들킨 것이었지만 민수는 굳이 사실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만약 태준이 수연에게 많이 혼나지 않으면 자신이 설아에게 그만큼 당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설아가 수연처럼 자신을 때리지는 않겠지만 차라리 맞는 게 낫지 행동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설아는 솔직히 너무 두려운 존재였다.

그래도 태준이 수연에게 응징당하는 것을 보며 설아도 조금 마음이 풀린 듯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태준이 얻어맞은 후, 이제 응징이 다 끝났겠다고 생각할 무렵에 설아가 수연에게 다가가 그녀를 가볍게 안았다.

“언니, 서운해요. 왜 저한테까지 비밀로 한 거예요?”

솔직히 민수도 그것이 의문이었다.

지금까지 우리 사이를 생각해 봤을 때 감추는 것보다는 동료 배우들의 협조를 얻는 게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수연과 설아가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문뜩 설마 수연이 설아 때문에 그 사실을 숨겼나 싶기도 했다.

남매간에 사이가 정말 좋은 경우에는 간혹 여동생이 오빠의 애인에게 적대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수연에게 얻어맞는 태준을 보며 흐뭇해하는 설아의 모습을 생각해 봤을 때 저 태준 설아 남매는 그런 사이 좋은 남매라기보다는 그냥 순수한 현실 남매에 가까운 사이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둘을 지켜봤던 수연은 자신보다 그걸 더 잘 알고 있겠지.

그렇다면 대체 수연은 왜 숨긴 걸까.

응징이 끝나고 식식거리던 수연은 설아가 안겨들자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토닥거렸다.

“아, 미안해. 설아야.

내가 그냥 좀 부끄러워서 그랬어.

그리고 끝까지 숨길 생각은 아니었어.

그런데 막상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수연이 부끄럽다고 말하자 태준은 인상을 쓰면서 수연을 바라보았다.

“야. 이수연 뭐가 부끄러워. 우리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넌 좀 닥쳐봐. 이 바보야.”

태준과 수연은 교제하면서도 특별히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아니 어쩌면 더 의사 표현이 과격해진 것이 어쩌면 이런 게 서로에게 진짜 솔직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민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신기하기도 했지만 정말 연애다운 모습은 단둘이 있을 때 서로에게만 보여 줄 거로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수연의 말은 조금 인상적이었다.

단지 부끄러워서 숨겼다니.

역시 저 선배는 난감하면 우선 숨기는 것이 습관인 것 같았다.

평소에는 진짜 털털한 주제에 조금만 큰일이 발생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못 하는 걸 보니 앞으로 태준이 여러 가지 일로 고생할 게 훤히 보였다.

하긴 그런 걸 생각하면 연애는 못 하겠지.

“어쨌든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사귀는 건 아니야.

내 나이가 그렇게 작은 것도 아니고, 가능하면 결혼은 서른이 되기 전에 하고 싶었거든.”

“안돼요! 언니. 여배우는 서른이 시작이라고요.

벌써 족쇄를 달면 안 되잖아요.

좀 더 천천히 해도 돼요.”

“어이, 동생 듣는 족쇄가 너무 서운한데 이거.

결혼하고 나서도 연기 활동하는 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그래도 대접이 많이 다르단 말이에요.”

남매가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민수는 수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수는 솔직히 그녀의 생각이 조금 의외였다.

설아의 말대로 여배우에게 서른은 연기에 깊이를 더하고 다양한 배역을 맡을 수 있는 진정한 시작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민수가 듣기로 수연의 가정은 대단히 화목한 가정이었다.

잘못된 보증을 서고 아버지가 쓰러지는 아주 위험한 순간에도 두 부부의 사이만은 누구보다 좋았다고 하니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수연은 아무래도 결혼과 가정에 대하여 약간의 판타지나 기대감이 있는 것 같았다.

하긴 그러니 저 털털한 모습 뒤에 가정적이고 자상한 면모를 숨기고 있는 것이겠지.

태준과 수연이 돌아오고 두 남매가 다투는 소리를 들으니 왠지 진짜 윤 엔터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설아와 단둘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사실 조금 적적한 기분이긴 했다.

“그래서, 일정은 얼마나 되는 거야? 한동안은 못 보겠네.”

두 남매의 정신 없는 다툼은 수연이 민수의 일정에 관하여 물을 때까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민수는 수연의 질문에 두 남매의 시선까지 자신에게 집중되자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죠.

촬영 시작은 2주 후고, 아마 계획대로라면 촬영 자체는 석 달 정도면 끝날 거 같아요.

특별히 해외로케가 잡혀 있진 않거든요.

이국적인 배경도 천루시티에서 촬영이 가능하다니 조금 기대가 되긴 하네요.

어떻게 꾸며 놓았을지.”

“석 달이라….. 적당한 기간이네. 그렇게 길지도 않고.

그 시간이면 한창 수연이가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을 시간인가.”

“저 녀석이 단독 주연이면 생각보다 빨리 끝날 수도 있어.

액션 연기할 때 저 녀석이 NG 내는 건 한 번도 못 봤으니까.”

“유일하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촬영은 애틋한 장면이었는데 이번 영화에는 그런 게 전혀 없으니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석 달의 시간.

민수는 막상 내일 떠난다고 생각하니 소속사 친구들이랑 떨어져 있는 이 기간이 조금 쓸쓸할 것 같긴 했다.

게다가 소속사 친구들과 동떨어진 상황에서 촬영에 들어간 것이 처음이라서 그런지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솔직히 태준과 수연이 적절한 시기에 돌아와 줘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을 한 번 더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빈번하게 벌어질 테니 되도록 빠르게 적응해야 했다.

“뭐, 촬영 마칠 때까지 잘 지내고 계세요.

윤 배우도 영화 잘 찍고.

설아 씨도 드라마 촬영 잘하세요. 특히 첫 드라마라고 너무 긴장하시면 안돼요.

설아 씨 드라마는 항상 모니터링 할 테니까요.”

민수는 자신의 긴장감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친구들에게 웃으며 작별인사를 건네었다.

민수의 인사에 태준과 수연도 마주 웃으며 민수의 선전을 기원했다.

그리고 설아는 자신의 드라마를 항상 확인하겠다는 민수의 말에 배시시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다음날, 민수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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