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63화 (163/325)

#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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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를 끌고 자신의 작업실로 데려간 에릭은 다른 소소한 이야기들을 전부 배제한 채 바로 영화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난 이번 영화로 중국인들에게 진정한 액션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그들의 뇌리에 진짜 액션을 새겨 놓고 싶어.

그래서 주연을 너로 결정했고 아마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엄청 힘든 나날이 계속될 거야.

네가 단독주연인데 주연이 흔들리면 영화가 엉망이 될 수밖에 없지.

그러니 혹시 어설픈 생각으로 뛰어들었다면 차라리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그만두든지 아니면 마음을 다시 다잡아 먹길 바라.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

민수는 이번 영화의 주된 목적이 노하우의 전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찍을 거로 생각했는데 지금 하는 말을 들어보니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런 그의 태도는 사사로운 목적하고 상관없이 자신이 만드는 영화는 무조건 최선을 다한다는 그런 장인 정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그가 최선을 다하고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민수도 바라던 바였다.

“네, 에릭 좋아요.

저도 가벼운 마음으로 온 건 아니에요.”

하지만 촬영에 합류하기 전에 자신의 궁금증은 확실히 해소하고 싶었다.

“그런데 에릭은 대체 왜 저를 주연으로 원하신 거죠?

중국에도 스턴트와 액션 연기가 둘 다 가능한 배우들이 많을 텐데요.”

민수의 의문에 에릭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노트북에서 하나의 영상을 재생했다.

그 영상에는 지금까지 민수가 촬영했던 모든 방송이 편집되어 있었다.

“서쪽 해변”부터 마지막에 촬영했던 “남자의 생존”까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인터뷰와 각종 사건·사고까지, 에릭은 자신을 주연으로 결정하기 전에 알려진 자신의 모든 정보를 확인했던 것이다.

“음…. 너의 액션 연기는 정말 대단했어.

솔직히 딱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었지.

간결하고 그러면서도 멋과 분위기가 살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널 대체할 다른 배우가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

사실 액션은 가르치면 결국 하게 되거든.

액션 배우들은 대부분 기본이 되어 있으니 세세한 부분만 조정해주면 나름 마음에 드는 액션을 보여주니까 말이야.

그런데 이걸 보고 생각이 달라졌지.”

에릭이 보여준 영상은 바로 “런런런”에서 광진의 공격을 피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난 이걸 보고 처음에는 대체 무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

한 남자가 어설프게 목검을 휘두르고 네가 그걸 피하는데 이건 합을 맞췄다고는 볼 수 없는 그런 막무가내 몽둥이질이었거든.

그런데 정말 어이없는 건 그걸 다 피했다는 거야.

저 멀대같이 키가 큰 녀석은 일반이 맞지?”

어설프게 목검을 휘두르는 광진을 보고 딱 집어서 일반인이냐고 묻는 에릭을 말에 민수는 살짝 실소가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광진이 이 소리를 듣는다면 얼마나 흥분하면서 소리칠지 그 모습이 생생하게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에릭, 그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이에요.

그 남자도 당연히 일반인이 아니라 배우고요.

하지만 에릭이 그런 뜻으로 물은 것은 아닐 테니 정확하게 대답하면 액션 배우가 아닌 일반 배우라고 할 수 있겠죠.”

“오, 이 녀석이 배우였어? 코미디 배우인가?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어쨌든 난 이걸 보고 의문에 빠져서 급하게 통역을 불러서 물어봤어.

지금 저 안에서 무슨 말을 하고 있냐고.

그리고 난 통역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지.

정말 놀랐어.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됐거든.

네가 합을 맞추지 않고 촬영을 했다는 말을 듣고 난 바로 다시 극장으로 가서 영화를 확인했지.

그랬더니 확실히 조금 다른 걸 알 수 있겠더군.

합을 맞춘 연기와 안 맞춘 연기의 차이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합을 맞추지 않은 연기는 놀랄 정도로 자연스럽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어.

하긴 그건 당연하겠지.

인위적으로 순서를 정한 액션과 즉흥적으로 몸 가는 대로 움직인 액션이 같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난 굉장히 욕심이 났어.

이걸 어떻게 이용할 수 없을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불가능했지.

모든 배우가 너처럼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저건 한 사람만 저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잖아.

그래서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나중에 가만히 생각을 좀 해보니까 저런 게 가능한 배우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확실히 편하고 다양하게 난이도 높은 씬을 구상할 수 있겠더라고.

그래서 무조건 너랑 해야겠다고 결정한 거야.

너의 이해 할 수 없는 반사신경과 절제된 액션 연기. 이게 널 원한 첫 번째 이유야.”

말을 마친 에릭은 다시 영상을 통하여 자신이 “서쪽 해변”과 “송포유”에서 연기하는 장면 몇 가지를 보여주었다.

“자 여기를 봐.

이게 널 선택한 두 번째 이유야.

너도 대본을 봐서 알겠지만, 주인공은 완전히 자신을 놓은 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그 안은 허무로 가득 차 있지.

하지만 그런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는 대사가 많지 않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작은 몸짓과 표정으로 그의 내면을 다 표현할 수 있어야 해.

너의 연기에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더군.

특히 이렇게 허무한 표정으로 슬픈 연기를 할 때는 그 분위기가 더욱 두드러지게 잘 드러나고 있어.

너 같은 화사한 외모를 가진 배우가 저런 분위기의 내면 연기를 잘하는 경우는 드물어.

특히 너 정도로 액션 연기에 능통한 배우 중에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지.

어때? 이제 내가 널 원한 이유가 무엇인지 대충 이해가 가나?”

설아의 말대로 에릭도 주인공의 내면 연기에 주목하고 있었다.

에릭의 말대로 이런 부류의 연기는 자신의 전문 분야였다.

특히 로맨스조차 등장하지 않는 채 순수하게 액션 연기와 내면 연기만을 원한다면 자신의 장점이 극대화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네. 좋아요. 에릭. 사실이 정도로 절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솔직히 조금 감동이네요.”

민수는 에릭이 단순히 자신의 액션 연기만을 보고 자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와 전작들까지 다 찾아서 확인한 후 자신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좋아. 그럼 이제 내가 몇 가지 알려줄 게 있어. 잘 들어봐.

우선 내 영화에는 와이어 액션 같은 건 없어.

이게 무슨 말이냐면, 아무리 어려운 동작이라도 기계의 도움 없이 직접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야.

그리고 당연히 스턴트 대역배우도 없지.

결국 다 자네가 몸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러려면 몸 상태를 최대한 끌어 올려놓아야 해.

지금 자네 상태는 어떤가?

만약 최대한 좋은 상태까지 끌어 올리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지?”

에릭의 말에 민수는 웃으며 지금 당장도 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때를 위해서 어제 운동을 하며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헬스장에 간 것은 설아와 놀러 간 게 아니라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하러 간 것이었다.

“오호… 그래? 좋아 그럼 한번 확인을 해보자고. 괜찮지?”

에릭이 민수를 데리고 간 곳은 실내 암벽등반 연습장이었다.

도대체 왜 이곳에 이런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건물 내에 버젓이 암벽등반 연습장이 있었다.

에릭의 말로는 이곳이 직원들이 체력단련을 하거나 배우들이 액션 연기를 배우는 장소라고 하는데 티어즈 시네마에서는 이렇게 액션 스쿨 체육관까지 같이 운영하는 모양이다.

자신의 몸 상태를 알려주기 위하여 민수가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오자마자 에릭이 다가와 날카로운 눈으로 민수를 관찰했다.

“와. 쉿! 정말 이 정도라고? 아니 넌 평소에도 이 상태를 유지하는 거야?”

만수의 팔뚝을 만져보던 에릭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에릭은 정말 놀랐다.

화면으로 민수의 몸을 확인한 바 있었지만, 그때는 영화가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었고, 지금은 그 뒤로도 한 달이나 더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액션 배우가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몸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면 음식에 제한도 많고 강도 높은 운동을 계속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촬영을 마치면 자연스럽게 보통 몸 상태로 돌아가고 촬영일 잡히면 일정에 맞춰서 다시 몸 상태를 올리기 때문에 에릭은 민수도 당연히 그럴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민수는 놀라는 에릭에게 특별히 다른 설명을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웃으며 에릭이 선택한 최고 난이도의 코스를 올라갈 뿐이었다.

실내 암벽등반을 하는 것은 민수에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민수는 최대한 빠르고 다이나믹하게 올라가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고자 했다.

민수가 신속하고 날렵하게 벽을 올라가자 에릭은 입을 벌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순식간에 벽을 타고 올라가는 민수의 몸놀림은 에릭에게 큰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오…..마이 갓…”

에릭은 지금도 최고의 몸 상태라고 말하는 민수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기분 좋은 오산이었다.

주연 배우의 상태가 이렇게 좋다면 제 생각보다 더 빨리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에릭이 민수와 영화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민수의 몸 상태를 점검하고 있을 때 윤 대표는 에드워드와 함께 계약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윤 대표는 천루의 입장에서 민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가려고 마음먹었으나, 이곳에 와서 에드워드를 접한 후 그런 마음을 바로 고쳐먹었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영화계에 잔뼈가 굵은 인물이라는 이 에드워드는 딱 봐도 이름과는 반대로 미국식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학 시절 크게 친분이 없었던 에릭에게 별다른 조건 없이 제법 많은 돈을 건넸다고 하더니, 에드워드는 확실히 묘한 분위기를 가진 남자였다.

윤 대표는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묘한 느낌 때문에 계약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 가야 할지 고민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윤 대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종종 이런 느낌을 주는 남자를 본 적이 있었다.

이런 남자들은 대부분 손익계산이 남과는 달랐다.

손익계산이 남과 다르다는 것은 이익과 손해를 판단하는 기준이 남과 전혀 다르다는 말이기 때문에 그의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전에는 그냥 적당히 거래하는 것이 맞았다.

괜히 하나를 더 얻으려고 달려들다가 상대에게 큰 반감을 사면 그게 더 손해였기 때문이다.

애당초 윤 대표가 상대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얻겠다는 것은 상대가 반감을 품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얻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그 한계를 짐작하지 못하게 된 지금은 그냥 적당한 수준에서 안전하게 거래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솔직히 에릭이 정민수 씨를 고집하는 상황에서 저희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촬영을 빨리 시작해야 하는 입장이니 밀고 당길 것도 없어요.

저희가 제시할 금액은 4000만 위안. (대략 60억 원)

중국에서도 정말 톱스타들만 받는 금액입니다.”

윤 대표는 에드워드의 말을 듣고 순간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자신들이 다른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까지 시원하게 공개한 후 바로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금액을 부르다니.

역시 자신의 예상대로 상대는 셈법이 완전히 달랐다.

확실히 상대는 지금 돈을 생각하지 않고 영화를 빠르게 찍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상대가 최대한의 금액을 부른 이상 더는 무언가를 얻으려 애쓸 필요는 없었다.

다만 생각보다 금액이 너무 컸기 때문에 이걸 민수의 말대로 러닝개런티로 돌리는 것이 맞는지는 살짝 고민이 되었다.

윤 대표는 상대가 제시한 금액이 아깝긴 했지만 그래도 민수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민수가 런닝개런티로 일원화하자는 것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분명 민수가 이 자리에 있었어도 자신과 같은 판단을 할 것이 분명했다.

“생각보다 높은 금액이군요. 우선 저희 배우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정민수 씨가 원하는 것은 그런 확정적인 개런티가 아니라 러닝 개런티 입니다.

혹시 런닝개런티로 계약을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윤 대표의 대답을 들은 에드워드는 조금 황당하다는 얼굴로 윤 대표를 잠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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